(12)치열한 삶의 현장을 떠나, 유유자적 평화로움 속을 거닐다보면…이민 가고 싶은 나라를 만난다

김진 | 여행작가

캐나다 토론토

300여가구만 모여 사는 평화롭고 작은 섬 토론토 아일랜드 뒤로 캐나다 최대 도시 토론토 다운타운이 한눈에 들어온다.

300여가구만 모여 사는 평화롭고 작은 섬 토론토 아일랜드 뒤로 캐나다 최대 도시 토론토 다운타운이 한눈에 들어온다.

‘낭만’이 살살 녹는다

무상교육·무상의료·워라밸의 일상에 아늑한 노후까지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곳…단순함과 여유가 넘친다

새삼스레 깨달았다

일이란 적게 할수록 좋고, 인생이란 지금 살아가는 것임을
토론토에 가면 ‘쫓기듯 살기보다 인생을 즐겨야지’ 느껴

토론토(Toronto)란 이름은 이로쿼이 부족의 단어 ‘트카론토(tkaronto)’에서 기원했다. ‘물속에 나무들이 있던 장소(wood in the water)’라는 뜻이다. 원주민들은 호수에 나무 울타리를 세우고 그물을 걸어서 물고기를 잡고 살았다. 호수는 캐나다 원주민들의 젖줄이었다.

원주민들이 물고기를 잡고 비버나 들소, 순록 사냥을 하고 참나무로 집을 지어 평화롭게 살던 캐나다 땅에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부터다. 당시 비버 털은 최고의 옷감으로 유럽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영국인 헨리 허드슨(Henry Hudson)은 1610년 허드슨 베이에 도착해 비버 털 교역을 시작했다. 캐나다의 역사를 말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대기업 허드슨베이는 이렇게 시작했다. 회사는 200년 동안 모피 교역으로 급성장했다. 온타리오주에는 헨리 허드슨과 같은 영국인이 몰려왔고 퀘벡주엔 프랑스인들이 발을 디뎠다. 백화점으로 유명한 허드슨베이는 온타리오주 토론토에 본사를 두고 있다.

19세기 후반부터는 토론토에 독일, 이탈리아, 아일랜드, 러시아, 폴란드 등지에서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 모든 인종이 토론토에 정착했고 1980년대에 인구나 경제 면에서 캐나다 최대의 도시로 성장했다. 이민 가고 싶은 나라 상위권에 항상 이름을 올리는 캐나다. 여행 중에 많은 이민자들을 만났다.

“한국에서 영어강사였는데 내 생활이 없어서 이민을 결심했어요. 캐나다에서 약사가 되었고 오후 5시면 퇴근해요. 정착한 지 8년째네요.” 토론토에서 오타와로 가던 버스에서 만난 안나는 휴가를 내고 여행 중이었다. 새벽에 탄 우버 기사도 마침 한국인이었는데 그는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다 2년 전 토론토로 왔다. 억지로 술을 마시는 회식이 싫었고 자녀와 보내는 시간이 없는 게 토론토로 오게 한 결정적 이유였다. 에어비앤비 주인도 한국인 중년 부부였는데, 10년 전 자녀교육 문제로 토론토에 왔다. 고향인 수원이 그립기는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사람 사는 것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해 이민은 꿈도 꾸지 않는 나도 매년 봄마다 반복되는 미세먼지를 보면서 청정국가라고 일컫는 캐나다나 호주, 뉴질랜드 같은 나라에 살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본 적은 있다. 캐나다는 사람답게 살기에 이상적인 곳일까? 무상교육과 ‘워라밸’이 보장되는 삶 외에도 노후에 대한 이야기를 특히 많이 들은 것 같다. 캐나다는 치과치료를 제외한 모든 질병에 대해 무상의료를 실현하는 나라다.

■ ‘로켓’을 타고 토론토니언처럼

캐나다의 뉴욕이라 불리는 토론토의 번화가 풍경.

캐나다의 뉴욕이라 불리는 토론토의 번화가 풍경.

토론토는 캐나다의 뉴욕이라고 말한다. 둘 다 이민자로 이뤄진 도시지만 뉴욕과 토론토는 무척 다르다. 토론토는 단순한 매력이 있다. 지하철 노선은 극단적으로 단순하다. 동서를 연결한 ―자 선 위에 U자형 노선이 하나 겹쳐 있다. 총 2개의 노선은 큰 도시를 거의 다 연결한다. 토론토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을 권하는 캠페인이 열릴 당시 ‘로켓을 타자(Ride the Rocket)’라는 슬로건을 썼기 때문에 토론토 사람들은 지하철을 로켓이라고 부른다. 로켓처럼 빠른 지하철을 타고 토론토니언(Torontonian)처럼 매일 곳곳을 누볐다. 인터넷이 전혀 터지지 않는 토론토 지하철에서는 멀뚱멀뚱 앉아 있다가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도시생활에서 인터넷이 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버프런트에서 배를 타고 토론토 아일랜드로 향했다. 하버프런트에서 단지 10분 거리인데 높은 빌딩이 수놓은 토론토 도심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300여가구만 모여 사는 평화로운 작은 섬. 정박해놓은 수많은 요트와 모터보트가 토론토니언의 주말 풍경을 짐작하게 했다.

캐나다 사람들은 평생 모기지를 갚으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이 갚는 것이지 초장기 상환이기 때문에 늙어서까지 적금을 붓듯 이자를 낸다. 그것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데 발목을 잡지도 않는다. 우리는 어떤가. ‘집을 산 후에, 퇴직 후에, 애들이 다 큰 후에, 빚을 다 갚은 후에, 그때부터 즐겨야지’라고 한다. 이런 생각에 닿으면 지금을 누리지 못하고 궁색하게 살아가는 삶이 어쩐지 쓸쓸하다.

어느 정도 나이와 지위가 되면 고급 스포츠라 여기는 골프에 너나없이 빠져드는 모습은 캐나다나 호주나 뉴질랜드 같은 곳에 오면 한심하다고까지 느껴질 정도다. 우리에게 특권에 해당하는 취미가 이런 곳에선 생활일 뿐이니까. 그들이 특별히 나보다 행복하다든가 한 것은 아닐 테지만, 획일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은 지루할 때가 많다. 10㎏이 넘는 가방을 메고 걸어다닐 수 있을 때, 흥이 있을 때, 만사에 시큰둥해지기 전에 인생을 즐겨야지.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오늘의 삶을 사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란 걸 느낀다. 돌아가면 또다시 쫓기듯 살고 걱정하고 후회하겠지만, 오늘을 살리라고 또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노을을 즐기며 이런 생각을 했다.

■ 캐나다를 이해하는 열쇠

세인트로렌스 마켓에 토론토 아이스하키팀의 깃발이 걸려 있다.

세인트로렌스 마켓에 토론토 아이스하키팀의 깃발이 걸려 있다.

폭우에 강풍까지 겹친 날, 안나가 팀호턴(Tim Hortons)이라는 카페로 데리고 갔다. 팀호턴은 1964년 캐나다 아이스하키 선수 팀 호턴이 창업해 캐나다 문화의 아이콘이 된 성공적인 브랜드다. 미국에 스타벅스가 있다면 캐나다에는 팀호턴이 있다고들 한다. 팀호턴을 처음 와봤다니까 그녀는 깜짝 놀라면서 아이스캡을 권했다. 아이스캡은 아이스카푸치노의 줄임말이다. 국민 음료 수준이니까 꼭 먹어보라고 했다. 맛있게 탄 믹스커피를 잘 갈아 만든 슬러시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순간 중독이 돼버려 매일 하나씩 사먹고 다녔다. 브랜드 커피지만 캐나다를 이해하기 위해 꼭 맛보라고 권하고 싶다.

고층 빌딩 숲 한가운데 선명하게 눈에 띄는 고풍스러운 건물 하나가 있다. ‘하키 명예의 전당’이다. 캐나다 사람은 하키를 모르면 대화가 안 될 정도라고 하니 호기심에 들어가 봤다. 우리나라와 북한 하키 선수의 유니폼도 있었다. 워낙에 얼어붙은 호수와 드넓은 목초지가 많아 캐나다에선 아이스하키와 필드하키 모두 인기가 많다. 맑은 날이면 동네 공원에서 자기 키보다 큰 하키 스틱을 들고 스트리트 하키를 하는 어린아이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농구에 마이클 조던이 있다면 아이스하키엔 웨인 그레츠키가 있다’는 말이 있다. 웨인 그레츠키(Wayne Gretzky)는 캐나다의 국가 훈장을 받을 정도로 존경받는 국민 영웅이자 아이스하키 선수다. 하키도 캐나다를 이해하는 열쇠 중 하나다.

■ 지금을 산다는 것

캐나다에서 가장 큰 개인 저택인 카사로마.

캐나다에서 가장 큰 개인 저택인 카사로마.

부자가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보게 하는 곳이 있었으니 카사로마(Casaloma)다. 캐나다에서 가장 큰 개인 저택으로 중세 유럽의 고성을 떠올리게 한다. 19세기 캐나다 최대 갑부였던 헨리 펠라트(Henry Pellatt)경의 모든 욕망이 집약된 집이다. 그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수력발전으로 큰돈을 모았는데 캐나다 부의 25%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당시 350만달러의 건축비를 들여 성처럼 거대한 집을 지었다. 캐나다의 도널드 트럼프였다. 방은 모두 98개, 집 안에 온실식물원과 수천병의 와인을 보관할 수 있는 와인룸까지 있다. 결국 거대한 저택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세금을 내지 못해 인생을 바쳐 만든 집을 떠나야 했고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커다란 샹들리에 아래 드레스 자락과 연미복을 날리며 춤을 추었던 모습을 상상하면 쓸쓸하다. 흰 대리석과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호화로운 궁전, 타지마할을 짓다가 재정을 탕진해 결국 자신이 만든 성에 유폐돼버린 샤자한 황제가 떠올랐다.

집이란, 돈이란, 일의 의미란 뭘까. 눈을 뜨면 조깅을 하고 해가 지면 가족과 식사를 하며, 주말이면 피크닉을 가는 것. 퍼블릭 골프장에서 멋부리지 않은 채로 골프를 치거나 근처 호수에 요트를 띄워 유유자적하는 삶. 내가 만난 보통의 토론토니언의 모습에서 새삼스레 깨달았다. 일이란 적게 할수록 좋고 인생이란 지금을 살아가는 것임을. 그래서 이곳이 이민자들의 천국이라는 것을.

토론토의 서울역 격인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동쪽으로 가면 토론토에서 가장 예스러운 지역이 시작된다. 200년이 넘은 세인트로렌스 마켓(St. Lawrence Market)은 토론토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다. 빵과 치즈를 직접 골라 샌드위치를 주문해 먹으면 현지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메이플 시럽은 이곳이 가장 저렴하다.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Distillery District)는 토론토에서 가장 ‘힙’한 곳이다. 디스틸러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 자리가 1800년대부터 위스키 증류소였기 때문이다. 붉은 벽돌로 지은 빅토리안 시대 건축물 40여동은 모두 리모델링을 거쳐 레스토랑과 펍, 갤러리, 수공예품 상점, 예술가의 공방 등으로 변신했다.

▶필자 김진

[김진의 나 혼자 간다](12)치열한 삶의 현장을 떠나, 유유자적 평화로움 속을 거닐다보면…이민 가고 싶은 나라를 만난다

기업 홍보팀에서 십여년 근무하다가 여행을 좋아해 여행작가가 되었다. 취미가 직업이 되면 안 좋다고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두루 누릴 수 있어서 여전히 행복하다. 여행과 글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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