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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레시피-사표 내기 전 체크 포인트

입력 : 
2019-07-17 14:4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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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를 내겠다고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몇 가지 체크 포인트가 있다. 물론 이 체크 포인트에 임하는 자세는 객관적이어야 한다. 나의 능력, 장점, 단점, 이직할 직장, 미래 설계 등은 물론이지만, 체크 포인트의 중점은 사표를 내야 할 결정적 이유를 점검하는 데 두어야 한다. 그런 과정과 심사숙고에도 사표를 내야 할 명분과 실리가 더 크다면 그때 던져라. 내 기분은 시원하게, 남아 있는 상사와 부서원들에게는 ‘폼 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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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또 고심하고 결행하라

1, 3, 5…. 홀수, 혹은 축의금이나 조의금 액수인가? 이도 맞는 이야기지만 여기서는 직장인에게 예외 없이 찾아오는 ‘위기의 숫자’를 가리킨다. 신입 시절, 가슴에 야망을 가득 품고 입사해 부장이 앉아 있는 목 받침대 의자를 노려보며 ‘저 자리에 앉아야지!’라고 결심한다. 하지만 직장 일, 이거 만만치 않다. 일에 치이고, 사람 관계에 치이고, 경쟁과 성과에 치이고, 처음에 많아 보이던 월급도 몇 번 받다 보면 은근히 ‘한숨 유발 봉투’가 된다. 그 순간 생각한다. ‘나는 이 일에 맞지 않는가?’ ‘이렇게 몇십 년을 다녀야 하나?’ 등등. 이러한 ‘자기 성찰’의 시간이 대개 직장 생활 1년, 3년, 5년 차에 오는 것이 보통이다. 가끔은 술자리에서 호기 있게 “나 내일 사표 낼 거야. 정말 더러워서 못 다니겠다. 말리지 마!”라고 큰소리도 치지만, 이런 말을 하는 당사자도 듣는 동료들도 이를 실행에 옮길 확률이 0%임은 다 알고 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동료와 술자리에서 회사, 상사 뒷담화 한번 시원하게 날리고 다음 날이면 또 익숙한 출근길을 재촉한다. 직장 생활에서 당면하는 갖가지 문제들. 생각해 보면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은 없다. 더구나 신입으로 출발해 경력 5년 차 미만일 경우는 더 그렇다. 그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해결할 권한도, 스킬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천우신조로 진상 상사나 선배의 인사 이동, 업무 변화, 월급 인상 등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순전히 ‘운빨’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직장인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견딜까. 사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극복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다. 즉 무뎌지는 것이다. 부장의 잔소리, 선배의 진상 짓, 겨우 한 달 살 만큼의 월급, 보람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비전 등등이 그저 ‘너는 떠들어라. 그래도 내일 해는 뜬다’, ‘이거라도 받아야 자동차 할부금이라도 내지’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래서 조물주께서 인간에게 귀를 두 개 선사하신 것은 아닐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싹 흘려 보내라고.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에게는 ‘생각, 비교, 감정, 상상’의 DNA가 존재한다. 이것들은 인간을 진화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서글프게 만드는 ‘불행의 씨앗’이기도 하다. 이 DNA들이 그야말로 ‘왕성’하게 작동하면 직장인들은 ‘선택지’ 앞에 놓인다. 바로 사표다. 사표는 직장인이 ‘슈퍼 갑’인 회사를 상대로 자신의 권리와 용기를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내라고 강요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시원하게 ‘던지는 꿈’, 누구나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 ‘아름답고 황홀한 상상’을 실현시키는 ‘용감한 자’들이 심심찮게 나오는 것도 직장이다.

사표를 내야 하는 환경은 많다. 금수저급으로 태어나 “미국에 가서 MBA 공부하려고요” 하는 경우도 있고, 탁월한 능력으로 업계에 소문이 파다해 파격적 연봉으로 스카우트 되는 경우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아버지가 물려주신 강남 빌딩이나 관리하면서 살려고요”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이 사표를 내겠다고 결심하는 경우는 딱 두 가지다. ‘이 직장에서 더 이상의 비전을 찾지 못할 때’와 ‘비록 월급이 적어져도 저 진상 팀장하고는 일 못하겠다’는 케이스다. 그래도 고심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평생 직장 개념이 없어지고 월급 50만 원 더 준다고 쉽게 옮기는 세태지만, 사표는 자신의 인생에서 남발할 수 있는 ‘문방구 어음’ 같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말할 수 있다. “내 입장이 안 돼 봐서 모르겠지만 정말 하루하루가 지옥이에요. 이렇게 사느니 김밥 집이라도 하는 게 낫겠다니까요”라고 목소리 높일 수 있다. 물론 맞는 이야기다. 다 자신의 입장에서 재단하고 생각하기에 “네가 이해하고 참아”라는 말은 그저 수식어다. 어쩌면 “이해하려고 노력해 볼게”가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사표를 내겠다고 결심한다면 실행에 옮기기까지 몇 가지 체크하고 점검할 포인트가 있다. 이 체크 포인트에 임하는 자세는 객관적이어야 함이 전제 조건이다. 내 능력, 장점, 단점, 이직할 직장, 미래 설계 등은 물론이지만, 체크 포인트의 중점 부분은 나, 부서 그리고 사표를 내야 할 결정적 이유를 점검하는 데 두어야 한다. 그런 과정과 심사숙고에도 사표를 내야 할 명분과 실리가 더 크다면 그때 던져라. 내 기분은 시원하게, 남아 있는 상사와 부서원들에게는 폼 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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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 이유가 맞는가?

‘블루Blue’를 표기하는 단어를 한 번 살펴보자. 파란색, 푸른색, 하늘색, 군청색 등등 수도 없이 많다. 무슨 이야기냐고? 어떠한 결과도 단 하나의 이유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사표를 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상사의 갑질이 싫어서, 월급이 적어서, 비전이 없어서 등등 굵직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의 수면 아래 그동안 잠재돼 있던 수많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내가 사표를 내는 이유가 정말 맞는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인간은 이성과 감정이 교차 작용하는 기묘한 능력을 갖고 있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는 ‘인간만의 능력’으로 표출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최면과 정당화’의 도구가 된다. 표면의 이유가 아닌 그 이면의 이유가 더 크고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대개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가장 합리적인 이유를 찾는다는 뜻이다. 월급이 적어서 이직을 결심했음에도 ‘비전이 없어서’, ‘해 보고 싶은 일을 진취적으로 하고 싶어서’라고 이유를 대는 경우다.

월급이 적어서 다른 곳으로 이직을 결심했다고 치자. 물론 천만 원대 이상 연봉 차이가 난다면 사표를 낼 이유가 충분하다. 하지만 이 세상의 저울은 어느 순간 좌우 균형을 이루게 되어 있다. 그러니 5년, 10년 후에도 그 월급을 유지할 수 있는지, 지금의 회사와 이직할 회사의 대외적인 신용도와 평판은 어떤지, 업무 강도는 어떤지, 하다못해 이직할 회사와 집과의 거리는 어떤지 등도 살펴야 할 항목이다. 회사는 ‘가마니’가 아니다. 천만 원을 더 준다는 것은 그 몇 배의 성과를 당신에게 기대한다는 뜻이다. 그것도 죽~ 지속적으로 말이다. 그런 능력을 보여 줄 자신이 없다면 연봉 천만 원은 일시적이라고 판단해야 한다. 또 월급이든 인간관계든 다른 어떤 것이든 사표를 내야 할 가장 큰 이유로 비중이 50%를 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짜 이유를 찾아야 한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자문자답을 통해 진짜 이유를 찾기 전까지 사표는 품에 간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의외의 이유를 발견할 수도 있다. 상사나 선배의 갑질, 인간적인 무시, 적성에 맞지 않는 일, 혹은 매일 저녁 팀장의 술 수발도 이유로 등장할 수 있다. 이유를 찾았다면 그 다음은 해결 가능성이다. 상사와 선배의 갑질은 예의를 갖춘 정당한 건의로 물리쳐 보거나 공식적인 보고 체계를 통해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인간적인 무시도, 술 수발도 마찬가지다. 물론 활발하고 외향적인 당신이 하루 종일 숫자와 씨름하는 내근직이라면 상사와 인사팀과의 면담을 통해 직무 조정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 과정과 노력 없이 몇 개월의 구직을 통해 ‘연봉과 비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표를 내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닌 일시적 봉합일 뿐이다. 당신이 옮겨갈 회사에도 앞서 열거한 문제는 차고도 넘친다. 자신에게 질문하라.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를. 그리고 행동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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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끝맺음이다

A대리가 변했다. 항상 성실하고 팀의 활력소 역할을 하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매사에 심드렁하고 일에도 열의를 안 보인다. 팀원들은 이유를 찾지만 그저 고개만 갸웃거린다. ‘개인적인 문제가 있나 보지.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지만 갈수록 상태는 더 심해진다. 이제는 지각도 예사고 반차에 연휴도 마음 놓고 쓰기 시작한다. 팀장이 A대리를 불러 면담한다. “무슨 일이 있나? 이야기해 봐. 문제가 있다면 해결을 해야지.”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인 문제가 좀 있고요. 슬럼프인지, 아무튼 신경 쓰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팀장과의 면담 후 며칠 반짝 열심히 하더니 다시 심드렁하던 어느 날, 갑자기 A대리가 사표를 제출한다. 팀장과 팀원들은 그제서야 A대리의 무신경, 무기력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A대리는 사표를 내기까지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직장인에게 회사는 태양계의 지구다. 지구를 벗어나는 것은 단순한 ‘지구 탈출’이다. 지구 외에 ‘태양계’와 더 넓은 ‘은하계’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 된다. 작게는 같은 업종, 크게 보면 대한민국 직장은 세밀한 신경망, 즉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A대리는 진작에 이미 옮겨갈 직장의 출근일을 확정해 놓고 그 공백기에 그저 지금의 회사를 다닌 것이다. 그러니 업무에, 사람과의 관계에, 상사에 대해 예전 같은 열성과 예의가 실종되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A대리가 그저 월급 타는 재미에 몇 달을 버틴 것이라면 그것은 회사와 팀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차라리 A대리는 일찍 사표를 내고 그동안 재충전과 새로운 업무를 공부하는 편이 훨씬 나은 처세였다.

팀장과 팀원들은 생각한다. 그들은 A대리를 같은 ‘을’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동료’로는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 팀장과 팀원들은 열정을 다해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A대리에게는 그저 남의 일 정도의 가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장 오묘한 것은 ‘질투’다. 질투는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전이된다. 이 감정은 인간 발전의 토양으로 작용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춧가루를 살짝 뿌리는 쾌감’이 숨어 있다. A대리의 능력과 성과를 보고 스카우트한 회사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포인트는 A대리의 끝맺음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일과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책임감은 능력의 방점이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은 수많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도 표시 나지 않는 네트워크다. A대리의 무책임한 끝맺음은 실시간으로 새로운 회사에 전달되고 그 순간부터 새로 옮겨갈 회사는 A대리에게 이직 협상의 동등한 위치에서 갑으로 변신한다. 이 끝맺음이 중요한 것은 단순히 평판 조회 때문만은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이직에 대한 마지막 결심을 확인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늘 출근하던 사무실, 늘 마주하던 동료들, 늘 하던 일이 어느 날 당신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과 보람을 찾게 되는 ‘기적 같은 시간’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떠올려 보자. 모시기 힘든 상사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 그녀의 개인 비서 앤디 삭스(앤 해서웨이)는 연인도 사생활도 모두 포기하고 회사 일에 매달렸다. 하지만 결국 파리 패션쇼에서 앤디는 미란다의 전용 호출폰을 분수에 던져 버리고 회사를 그만둔다. 구직 활동을 하던 앤디는 면접관으로부터 “미란다에게 당신을 물어봤어요!”라는 말을 듣고 이내 표정이 변한다. 앤디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끝냈으니 미란다가 좋은 말을 해 줄 리가 없지’라고 생각했지만 “당신을 붙잡지 않으면 엄청난 손해라고 미란다가 말했어요”라는 뜻밖의 답을 듣는다.

해피 엔딩, 하지만 이는 영화다. 과정이 어떠하든 해외 출장지에서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떠난 부하 직원의 평판을 이렇게 말해 줄 상사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영화 같은 일이 나에게도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 말자. ‘영화는 영화’다. 시작의 마음을 끝까지 유지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오만 정이 다 떨어져서 이직을 결심했는데 갑자기 없는 열정을 내보이는 것도 자기 위선이다. 그럼에도 끝은 아름다워야 한다. 적어도 이직할 회사의 팀장이 지금의 팀장에게서 “A대리? 뭐, 일은 잘하지. 아무튼 나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어”라는 말을 듣게 하지는 말자. 이 문장은 굉장히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이 문장을 풀어 쓰면 ‘일은 잘해서 네가 스카우트 했잖아. 그런데 A대리의 다른 점은 모르겠지. 네가 겪어 봐’가 되기 때문이다. 다 잘해 놓고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지 말자. 아름다운 끝맺음이란 오늘 사표를 내고 야근까지 하라는 말이 아니다. 남아 있는 자들의 마음을 골고루 어루만지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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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자의 선례를 지켜보라

재미없겠지만 군대 이야기를 꺼내 보겠다. 군대에서는 가끔 ‘전출병’을 본다. 다른 부대에서 우리 부대로 옮겨오는 군인을 말한다. 내무반에 전출병이 오면 긴장감이 조성된다. 특히 전출병의 계급이 상병쯤 되면 내무반의 사병들은 이른바 ‘군기’를 잡는다. 병장들은 그 군기 잡는 일을 전출병과 같은 계급인 상병이 아니라, 한 계급 낮은 일병에게 맡기곤 한다. 이 과정을 잘 넘겨야 전출병은 내무반 생활이 편안해진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사표를 내고 이직을 결심하면 미리 예습을 할 필요가 있다. 상습적으로 사표를 내고 철새처럼 이 회사 저 회사 떠돌이 생활을 한 직장인이라면 예습이 필요 없겠지만, 대개의 직장인에게 예습과 예상 문제는 지금 회사에 와 있는 이직자를 훌륭한 선생으로 삼을 수 있다. 스카우트로 왔든, 고위층 낙하산을 타고 왔든, 경력직 공채에 뽑혔든, 그들의 회사 적응기를 찬찬히 살펴보면 살아 있는 공부가 된다. 기존 조직에 적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나름의 텃세와 은근한 견제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슬기롭게 적응해 나가는 이도 있고, 물 위에 기름 뜨듯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이도 있다. 그 두 가지 경우에 당신을 대입해 보아야 한다. 오죽하면 ‘슬기로운 감빵 생활’이라는 드라마까지 있겠는가. 빠르게 적응하는 이에게는 그 적응력의 방법을, 그 반대의 경우에는 그가 의도치 않게 보여 주는 금기 행동들을 지켜보면서 당신의 성향과 능력 그리고 적응력의 점수를 매겨 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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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자는 일종의 용병이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가지 않는 이상, 이직자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는 암묵적 기대감이 있다. 프로 야구만 봐도 제아무리 미국 메이저리그 경력자라도 잠실구장에서 그 능력을 바로 발휘하기는 힘들다. 당연히 팀마다 적응기를 두지만 구단, 감독이 생각하는 적응기는 일치하지 않는다.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치는 ‘비정상’의 경우도 있지만 그저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만으로도 3개월은 서로 ‘익스큐즈’하는 것이 보통이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그 익스큐즈의 시간을 연장하고 단축시키는 것은 바로 이직자의 몫이다. 나의 특별함을 과시하는 순간이든, 용도 폐기든 단 한 게임만으로도 승부가 날 수 있는 것이 용병의 처지다. 이직자를 통해 승진, 인사 고과 등에서 예외적인 특혜나 불이익이 없는지도 체크할 필요가 있다. 이직을 결심하고 새로운 회사와 고용 계약서를 쓸 때 대개의 경우는 꼼꼼히 보지 않는다. 이직 자체에 몰두해 세부 조건이나 이직할 회사의 독특한 사내 문화라든가 사규를 체크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놓치는 경우가 숫자의 허상이다. 지금보다 천만 원 많은 연봉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기수가 있는 회사라면 나는 몇 기인지, 연차는 몇 년 차를 인정받는지, 승진에서 이직자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모든 직장인은 나만의 비밀이 있다. 연봉, 상여금, 인센티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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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회사의 이야기다. 연봉도 많고 복지 혜택도 좋은 회사로 업계에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많은 직장인들이 그곳으로 또 이직한다. 하지만 이 회사 내규에는 비밀이 있다. 바로 기존 공채생 우대 정책이다. 이직자는 연봉에서 후한 대접을 받지만 이직을 1월에 했어도 만 1년이 지나야 승진 대상이 되거나 연차가 오른다. 즉 2년 동안은 승진 대상이 안 된다는 뜻이다. 또한 그 2년 동안 연차에 따른 수당이나 연봉의 자동 승급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필요에 의해 스카우트 형식으로 입사해 연봉은 후하게 받지만 연차에서 손해를 보는 셈이다. 회사는 새로운 인재 영입에 주저함이 없지만 그만큼 기존 인력에 대한 ‘어드밴티지’도 인정한다. 선배 이직자에 대한 관찰이 끝나면 그때 사표를 내기 위한 정리가 필요하다. 재무제표를 쓰듯 사표를 낼 때의 장점을 오른쪽에, 단점과 손해를 왼쪽에 써 보라. 어느 한쪽에 더 많은 항목이 나열되고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체크 포인트들이 생길 것이다. 그때 다시 한 번 심사숙고 해야 한다. 물론 능력에 맞게 회사를 옮기면서 자신의 경력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저 한 직장에 뿌리 내리고 ‘선산 지키는 굽은 소나무’처럼 버티는 것이 미덕도 아닌 시대다. 하지만 사표는 단순한 시말서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당신의 인생을 바꾸는 기회이자 위기다. 기회는 위기의 가면을 쓰고, 반대로 위기는 기회의 가면을 쓸 때가 많다. 나의 작은 노력으로 사표를 내야 할 이유를 상쇄시킬 수 있는 것이 의외로 많다. 나를, 회사를, 상사를 설득하고 그들의 입장을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고, 또 일정 기간 인내해 보는 과정이 회사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1년, 3년이 지나고 당신에게도 ‘회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관한 정답이 숙성되는 것이다. [글 박기종(커리어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8호 (19.07.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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