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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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시간 후 업무지시를 하거나 매일 성과점검을 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지난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 이후 불명확한 기준 등으로 현장 혼란이 계속되자 고용노동부가 17일 또다시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지난 2월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안내서, 5월 소책자 배포에 이어 세 번째다.

‘사회 통념’에 따라 판단하라지만…

고용부가 질의응답 형식으로 가이드라인을 낸 것은 판단 기준의 모호함, 실질적 예방 효과 부족 등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부는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해 △업무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지에 대한 판단은 ‘사회 통념’ 또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사회 통념에 근거한 사례별 판단 기준을 살펴보면, 업무와 관련한 질책 등으로 부하 직원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 가령 은행 지점장이 실적 목표 달성을 위해 매일 성과를 점검하거나, 수주 상황에 따라 업무량이 달라지는 광고회사 부장이 근무시간 외에 업무지시를 하는 경우, 업무가 끝난 시간이지만 관계부서에 협조 요청을 하는 경우 등도 괴롭힘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사생활과 관련해서도 “애인 생겼느냐, 무슨 일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하더라도 성적 언동을 포함하지 않으면 괴롭힘이 아니라고 봤다.

반면 업무와 상관없이 후배에게 지속적으로 술자리를 만들라고 강요하거나, 따로 시간을 내 영어를 가르쳐달라는 등의 행위로 시간을 빼앗는 것은 대표적인 괴롭힘 사례로 제시됐다. 상사가 주말 또는 퇴근 후 모바일메신저에 단체 대화방을 열어 대답을 요구하는 행위도 위반 사례다. 또 대졸 출신이 대다수인 회사에서 고졸 사원에 대한 따돌림 등도 법 위반이다.
"술자리 갖자" "애인 있냐"…이건 괴롭힘일까?
시행 첫날 9건 신고…전담반 구성

고용부는 제도의 조기 정착을 위해 전국 47개 지방관서에 167명의 직장 내 괴롭힘 전담 근로감독관을 지정했다. 또한 지방관서별로 전문가가 참여하는 ‘직장 내 괴롭힘 판단 전문위원회’를 구성해 괴롭힘 여부에 관한 판단이 모호하거나 형사처벌이 동반될 수 있는 사건을 다루도록 했다. 해당 법은 피해 신고를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을 주면 사업주에게 징역 3년 이하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16일 하루에만 MBC 아나운서, 한국석유공사 직원들을 포함해 모두 9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MBC 복직 아나운서의 경우 업무 수행에 필요한 사내 전산망 접근 권한을 주지 않는 등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10인 이상 사업장은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예방·대응 조치, 피해자 보호 조치 등을 담아야 한다. 다만 고용부는 취업규칙에 해당 내용이 없는 사례를 적발하더라도 즉시 과태료(500만원)를 부과하지 않고 25일간 시정 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