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양국이 무역전쟁 휴전에 합의한 지 보름이 넘도록 협상 재개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관세 위협을 높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친구’라고 부르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 대해 관계가 예전만 못하다는 말까지 했다. 무역전쟁 휴전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백악관 국무회의에서 “(중국과 관련한) 관세에 대해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원한다면 나머지 3250억달러어치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더 부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 우리 농산물을 사기로 돼 있었는데 지키지 않았다”며 “그걸 메우기 위해 관세를 유지해 160억달러 수입을 거두고 있어 괜찮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요구 중인 기존 관세 철폐를 거부한 셈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 발언이 전해지면서 뉴욕증시의 주요 지수는 내림세로 마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미국산 제품 전시회 행사에 참석해 “나는 한때 시 주석을 좋은 친구라고 말하곤 했다”며 “아마도 이제는 그렇게 가깝지 않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통화정책에도 날을 세웠다. 그는 “시 주석은 사실상 중국 중앙은행(인민은행) 총재”라며 “중국 금리는 시 주석이 원하는 대로 정해진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달 29일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 중단과 협상 재개에 합의했다. 양국은 지난주 한 차례 고위급 통화를 했지만 대면 협상 일정은 잡지 못했다. 미국의 기존 관세 철폐와 중국의 합의 내용 법제화, 중국의 미국산 제품 구매 확대 규모 등을 놓고 의견차가 큰 탓으로 알려졌다.

양국이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실제 협상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리서치회사 에버코어ISI의 도널드 스트라스하임 중국연구팀장은 “양국은 대면 회의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며 “양국 주장은 작년 말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고 무역협상은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관세를 유지하고 있고, 화웨이에 대한 제재 해제도 국가 안보와 관련 없는 일부 제품에만 한정하겠다고 밝혔다. 또 최근 대만에 첨단무기 판매를 결정하면서 중국 측 반발이 커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을 사지 않고 있으며, 최근 ‘강경파’로 통하는 중산 상무부 장관을 협상 대표팀에 넣었다. 중 장관은 전날 인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측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어겼고, 양국 교역의 마찰을 일으켰다”며 “중국은 국가와 국민의 이해를 보호하기 위해 전사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가에선 양국이 협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역 갈등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예상보다 견조해서다. 미국 경제는 6월 신규 고용 22만4000명을 창출했으며, 6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0.4% 증가해 예상치인 0.1% 증가를 크게 웃돌았다. 중국도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년 대비 6.2%로 1992년 이후 최저로 떨어졌지만 6월 산업생산, 소매판매, 고정자산투자 등 다른 지표는 예상보다 양호했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무역 마찰에 따른 중국의 경제적 충격이 경제 지표에서 드러나는 것만큼 심각하지 않다”며 “중국이 협상 타결을 위해 서두르거나 백기를 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캇 케네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중국전문가는 뉴욕타임스에 “휴전에도 불구하고 양국 사이엔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며 “양국이 실제 합의점에 도달하기보다는 주변부를 계속 맴돌 가능성이 더 높다”고 내다봤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