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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칸 황금종려상 수상 ‘기생충’ 봉준호 감독 “변장하고 극장 가서 관객 반응 보고 싶다”

박찬은 기자
입력 : 
2019-06-12 16: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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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도쿄!’, ‘마더’, ‘옥자’에 이어 ‘기생충’으로 다섯 번째 찾은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은 간담회에서 “칸은 이미 과거…변장하고 극장 가서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싶다”고 밝혔다. 다들 알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불편한 상황들을 굳이 도려내 그 환부를 ‘공동 관람’하게 하는 악취미를 지닌 그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 ‘공생’이라며 “보고 나서 여러 갈래의 생각으로, 술잔 기울이고 싶어지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상생’과 ‘공생’의 삶을 원하지만 결국은 ‘기생’의 삶을 사는 두 가족의 블랙코미디에 웃다가 엉뚱한 절박함들에서 발생하는 서스펜스에 심장이 쫄깃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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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자본주의가 전부인 세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이야기하는 영화” “봉준호 감독이라는 훌륭한 가이드를 따라 패키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이선균)

“핸들이 이리저리 꺾이며 어디로 갈지 모르는 차를 탄 것처럼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했다.”(최우식)

“처한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생긴 파열음이 구조적으로 움직이게 되고 점점 더 일이 커진다. 봉준호 감독의 진화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영화의 진화를 이 작품을 통해서 꼭 확인해주면 좋겠다.”(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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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열린 제 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이례적으로 두 번의 상영 중 박수와 탄성이 터진 ‘기생충’. 미처 상영관 불이 켜지기 전부터 박수가 시작, 8분간 이어진 기립박수에 봉준호 감독은 “감사합니다. 이제 밤이 늦었으니 집에 갑시다”라는 이색 멘트로 화제를 모았다. ‘기생충’은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에 이은 봉준호 감독의 7번째 장편 영화다. 데뷔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완성도를 지녔던 ‘플란다스의 개’, 모성애의 어두운 면을 그린 ‘마더’, 어설픈 일가족의 사투를 그린 ‘괴물’로 기존 괴수 영화의 공식을 허문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에서는 앞칸과 꼬리 칸으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계급 문제를, ‘옥자’에서는 공장식 축산 시대 속에 고통받는 동물들의 문제를 다뤘다. 코미디, 미스터리, 드라마, 사회 고발, 크리쳐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계단들을 차근차근 밟아온 그는 ‘기생충’을 통해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자신보다 더 약한 자를 밟고 올라서며 끝내 파국으로 치닫는 인간군상들을 보여준다. 뒤틀린 상황이 주는 파열음, 그 구조를 놀랍도록 정교하게 세팅해 둔 봉준호 감독이라는 세공사 덕에 배우들은 기꺼이 그 뒤틀린 퍼즐 위를 매끄럽게 가로지른다. 최근작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인물을 연기했던 시대의 무게를 내려놓은 송강호는 친근한 서민 가장의 얼굴 뒤로 서스펜스 가득한 서늘함을 함께 선보이며 미묘한 표정의 변화만으로 극중 서사를 납득시킨다. 박사장 동익 역을 익숙한 미디어 속 재벌의 이미지가 아닌, 젊고 나이스한 인물로 설정한 것도 흥미롭다. 자신은 철저하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순진해서 다 당하는 그의 아내 연교 역을 맡아 ‘조여정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은 신선함을 선사한 조여정, 깨어있는 쿨한 캐릭터로 자신을 포장하고 싶은 엘리트 재벌의 허세를 이용하는 기우 동생 기정 역의 박소담 모두 봉 감독의 디렉션을 충실히 따른 것만으로도 배우 생활의 커리어를 새로 들여다보게 만든다. 감독은 ‘봉테일’이라는 별명답게, 영화 속 공간에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테마를 숨겨놨다. 굽이굽이 코너를 돌 때마다 새로운 비밀이 나올 듯한 집의 독특한 구조, 밀실이 주는 서스펜스, 오르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이 상징하는 수직적 질서. 코미디와 서스펜스를 버무려 시스템과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데에도 달인인 봉준호 감독은 허를 찌르는 상상력으로 뒤틀린 인간 군상을 보여주지만, 그 끝에서 결국은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 상식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래서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생각이 많아진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얼까. 공생을 꿈꾸는 것 자체가 점차 공상이 되어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생은커녕, 기생조차 힘든데 말이다. 자신의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되는 주인공들을 보며 관객들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봉 감독이 의도한 것이라면, 그의 의도는 적중했다. 감독은 “사람이 온갖 감정을 느끼게 될 때면 혼자 소주 한 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인데, 영화의 마지막 ‘기우’의 감정을 담은 이 노래를 들으며 만감이 교차하는 영화의 여운을 이어 나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의 바람은 이루어졌을까. ‘길은 희뿌연 안개 속에/힘껏 마시는 미세먼지/눈은 오지 않고 비도 오지 않네/바싹 메마른 내 발바닥/매일 하얗게 붙태우네/없는 근육이 다 타도록 쓸고 밀고 닦고’ (봉준호 작사, 정재일 작곡, 최우식 노래 ‘기생충’ OST 중 ‘소주 한 잔’ 가운데) ▶봉준호 “인간에 대한 예의 지키는 게 ‘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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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수상을 축하한다. 수상소감에서 “12살의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다”고 말했는데. 기분이 어떤가. 정확히 말하면 중학생 때인 14살이었는데 장소가 프랑스라서 12세로 이야기했다(웃음). 좋아하는 배우와 감독들을 동경했고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서 당시 『스크린』 『로드쇼』 등을 스크랩해 탐독하는 그런 평범한 아이였다. 집요함이 있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쭉 영화를 좋아할 수 있었고, 영화를 찍게 됐고, 지금처럼 좋은 배우들과 일하는 시간이 오지 않았나 싶다. 제목 ‘기생충’은 어떤 의미인가? 영문 제목이 ‘Parasite’라서 다들 크리쳐 영화나 ‘괴물’ 류의 SF영화로 짐작하던데, ‘기 생충’은 상생과 공생의 삶을 원하지만 그게 잘 안 되는, 기생의 처지로 내몰린 현실 가족이 주인공이다. 같이 잘 살고 싶어도, 그게 얼마나 힘든지를 그리며 거기서 우러나오는 웃음과 공포와 슬픔을 담은 희비극이랄까. 살인이 추억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살인의 추억’이라는 반어법을 쓴 것처럼, ‘기생충’도 ‘과연? 왜? 그들이?’라는 반어적 뉘앙스와 맥락을 가지고 있다. 작품들 중 부모와 자녀, 4인 가족의 형태는 최초다. 기묘한 인연으로 뒤섞이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가족’은 우리 삶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공통 단위지만 삶의 형편이나 형태는 굉장히 다르다. 기택 가족은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데 그조차도 쉽지 않은 반지하 서민 가족인데 비해 박사장 가족은 이상적인 4인 가족처럼 보일 수도 있는, 세련된 부유층 가정이다. 2013년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설국열차’ 후반 작업을 할 때였는데, 당시 부자와 빈자를 앞칸과 꼬리 칸으로 나누고 SF적인 상상력을 덧붙였다면, 이번엔 우리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다. 얼핏 독특하고 유니크한 상황들의 연속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뉴스나 인터넷에서 스쳐 지나가듯 봤을 법한 일들이라는 점에서 무척 현실적인 드라마다. 캐스팅 과정을 알려달라. 딱 봐도 가족처럼 여겨져야 했기에 마치 축구팀처럼 서로 간의 앙상블이 중요했다. 송강호 배우가 가장 먼저 캐스팅됐고, ‘옥자’를 촬영하며 송강호 배우의 가냘픈 아들로 최우식이 떠올랐다. 묘한 현실감을 풍기는 박소담 배우가 최우식 배우와 닮은 눈매 때문에 동생으로 낙점됐고, ‘우리들’에서 생활감 있으면서도 자기만의 결과 힘을 보여주던 장혜진 배우가 기택의 박력 있는 아내가 됐다. 상투적 부유층이 아닌, 젠틀하고 친절한 이미지의 재벌을 그리고 싶었는데 이선균 배우는 원래도 다채로운 매력을 지녀 거기에 적역이었다. 조여정 배우는 엄청나게 깊은 다이아몬드 광산 같은 배우인데, 아직 진가를 모르는 듯 해서 그 일부라도 채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캐스팅했다. 팀에 꼭 필요한 플레이를 해준 축구 선수들이었다. 오랜만에 한국어 대사가 많은 영화를 작업했는데 어땠나.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전원 한국어로 하니까 방언 터지듯이 촬영했다. 배구로 치자면, 내가 토스를 했을 때, 배우들이 강스파이크를 때려주는 느낌. 영어로 하면 주거니받거니 하는 게 조금 힘들다. 칸에서 해외 매체 기자들과 통역을 거쳐 인터뷰 하다가 지금은 한국말로 하니까 너무 좋다, 하하하. 영화에서 ‘냄새’를 강조한 이유?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 중 하나다. 현실에서 상대의 냄새를 지적하는 건 굉장히 공격적이고 무례한 것이잖나. 영화에선 주인공들이 아주 사적이고 내밀한 것에까지 파고들기 때문에 거리낌이 없다. 현실 속 부자와 빈자는 서로 냄새 맡을 기회가 잘 없다. 비행기를 타도 좌석이 나뉘고 식당이나 회사도 동선이 겹칠 일이 없는데, 가정교사나 기사라는 근무상황은 그들이 서로 가까이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상황이다. 영화 자체가 그런 상황의 연속들인데, 쓰여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법한 날카롭고 예민한 도구가 바로 ‘냄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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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층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초기작 ‘지리멸렬’이 떠오른다. 25년 전, 1994년 영화아카데미 다닐 때 찍은 실습 작품이었다. 거기서도 사회고위층의 기행이 등장했지만 옴니버스식의 구성이었던 ‘지리멸렬’과 ‘기생충’은 구조가 다르다. 이번엔 우리 일상에서 늘 마주치는 부자와 빈자의 모습을 솔직하고 가감 없이 다뤄보고 싶었다. 풍부한 희로애락의 감정을 지닌 배우들이 뿜어내는 인간적인 면이 투영돼 있다. 계층문제라기보다는 서로 간, 인간에 대한 예의에 대한 문제라고 본다. 예의를 어디까지 지키느냐에 따라 ‘기생’이 되느냐 ‘공생’이나 ‘상생’이 되는 게 아닌가 한다. 현대사회에 대한 일종의 소묘인가? 전 세계적으로 우리는 그것 외에는 대안이 없는, 자본주의가 유일한 세계 질서가 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영화는 양극단의 계층 동선이 겹칠 때 벌어질 수 있는 균열과 파열음을 따라간다. 우리도 표면적으로는 신분제를 구시대의 유물처럼 비웃지만 보이지 않는 신분과 계급이 있지 않나. 영화는 계층 간 건널 수 없는 선을 잘 포장하고 감추지만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그 틈새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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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에서도 그랬지만 세트나 미술 디자인에 굉장히 신경을 쓴 것 같다. 반지하집, 박사장 집, 동네 모두 100% 세트였는데,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버드맨’,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연출)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도 “그 집을 어디서 섭외했느냐?”라고 묻더라. 세트인 걸 아무도 몰라서 짜릿한 쾌감을 느꼇다. 모든 디테일은 이하준 미술감독과 그 팀의 공로다. 그들의 장인정신과 집요함이 빛을 발했다. 영화의 90% 정도가 박사장의 집인데, 그간 작업한 영화 중 공간의 숫자가 가장 적어서 미시적인 것까지 신경 써야 했다. 사건의 절반 이상이 일어나는 박 사장 집은 누군가 등장했을 때 누군가는 숨어 있는 등, 인물간의 동선이 교묘하게 엮여 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모든 게 결정돼 있어 미술감독에게 대략의 구조에 대한 주문은 했다. ‘아무도 집을 이렇게 짓진 않는다’는 건축가와 ‘드라마를 풀어가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나 사이에서 미술감독이 꽤 고생을 했을 것이다(웃음). 영화를 통해 계급 문제를 많이 다뤘었는데 영화 속 기정(박소담)과 기우(최우식)의 나이인 대한민국의 20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영화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영화에 다 담겨 있다. 최우식 배우가 끝에 직접 하는 노래도 영화의 일부다. 다들 잘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녹록하지가 않다.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고 거기서 나오는 슬픔, 어려움, 불안, 두려움 그 복합적인 마음, 그 속에서 또 꾸역꾸역 살아가는 모습, 그것이 이 영화가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의 일부일 수도 있을 것 같다. 100% 국내 스태프와 완성한 ‘기생충’은 처음으로 표준계약서를 쓴 뒤 작업한 영화로도 화제를 모았는데. 나나 ‘기생충’이 한국표준근로 정착에 있어서 특별한 노력을 했던 건 아니다. 해외에서 ‘설국열차’ ‘옥자’를 찍을 때부터 규정과 조항에 있어서 기준에 따라 찍는 게 훈련된 상태로 한국에 왔다. 드라마 쪽도 요즘 논의가 활발히 진행된다고 하니 빨리 협의가 잘 이루어져서 빨리 장착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주면 좋겠는가? 칸은 벌써 과거가 됐다. 그보단 한국 관객 한 분 한 분과의 만남이 굉장히 궁금하다. 변장을 하고 극장에 가서 실제 관객들 틈바구니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싶다. 궁금하다. 어떤 느낌으로 무슨 생각을 하며 보는지.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예상을 뛰어넘으려 했고 ‘기생충’ 또한 그런 영화가 되길 바란다. 보고 나면 웃기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갈래 없이 드는 생각들 속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글 박찬은 기자 자료제공 CJ엔터테인먼트 *본 인터뷰는 간담회 현장에서 오간 문답과 영화사 제공 인터뷰 자료를 기초로 작성됐습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3호 (19.06.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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