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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또 다시 섬으로 마라도와 가파도 반나절 여행

입력 : 
2019-06-12 16: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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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적지 않은 부속섬들이 있다.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섬들로는 서쪽에 마라도, 가파도, 비양도, 차귀도가 있고, 동쪽에 우도가 있다. 그리고 범섬, 토끼섬 등 가까운 무인도와 추자도, 여서도 등 먼 유·무인도들도 있다. 여행자들이 제일 가고 싶어하는 섬은 마라도, 가파도, 우도 등이다. 특히 마라도는 대한민국 국토최남단이라는 기록이, 가파도는 제주 본섬보다 더 제주스러운 평화로운 풍경과 한라산, 산방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끝내주는 전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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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물론, 제주도민들도 갈등하는 여정 중에 ‘마라도로 갈 것인가, 가파도를 갈 것인가’가 있다. 두 섬 모두 가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두 곳 모두 여행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대부분 여행자들은 둘 중 한 곳만 결정하곤 한다. 이곳에는 섬 말고도 가야 할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왕 마라도 여행을 계획했다면 내친김에 가파도까지 순례해 보는 것은 어떨까. ‘두 곳을 모두 여행하는 일정은 너무 빠듯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겠지만, 선박 출항–입항 시간을 들여다 보면, ‘두 곳 다 가기 어렵지 않게 짜 놓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비교적 정교한 편이다. 일단 선박 운항 일정표를 보자. 마라도와 가파도를 모두 왕복하는 배편은 서귀포시 대정읍 운진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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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와 가파도 모두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일단 배편 시간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마라도와 가파도를 운행하는 선박은 발권과 동시에 ‘가는 배편 시간’과 ‘오는 배편 시간’이 확정된다. 운진항에서 09:40분발 마라도행 배를 탔다면 돌아오는 배는 꼭 11:50분 마라도발 운진항행 배를 타야 한다. 좀 더 놀고 그 다음 배를 탈 수는 없다는 말이다. 배 시간과 현지 체류 시간 등에 대한 계획을 잘 세우면 마라도와 가파도 두 곳을 모두 반나절 만에 여행하는데 아무 문제 없다. 어디를 먼저 갈 것이냐는 개인 마음이지만 나는 마라도 먼저, 그리고 이어서 가파도를 여행했다. 거리와 운항 시간이 주는 안정감을 택했다고나 할까? 나는 마라도행 12:20분 배편(마라도 출발 시각 14:30)과 가파도행 15:00분 배편(가파도 출발 시각 17:20)을 구입했다. 결론적으로 일정은 다소 타이트한 편이었다. 운진항에서 마라도까지 걸리는 시간은 편도 25분, 왕복 50분이다. 전체 여행 시간 2시간10분 가운데 바다에 떠 있는 시간 50분을 빼면 마라도에 머무는 시간은 80분, 1시간20분이다. 시간 안배를 잘 해야 볼 것 다 보고 먹을 것 다 먹고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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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에 사는 사람들 운진항을 출발한 배는 정확히 25분 뒤 마라도 자리덕 선착장에 배를 댔다. 마라도는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섬이다. 마라도는 오래 세월 무인도로 떠 있었다. 사실 사람이 들어가 산다 해도 딱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 별로 없는 곳이다. 관광지가 된 지금 이곳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리의 경제를 이끌어 가는 주력 산업은 서비스업이다. 무인도에서 유인도로 변한 섬이라 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신화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단 무인도였던 마라도에 사람이 들어가 살기 시작한 연유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무인도 마라도에 사람이 입도한 계기는 ‘개발’이었다. 1883년은 조선의 개화가 진행되던 고종 20년 때로 미국 방문을 한 보빙사가 당시 미국 대통령인 체스터 아서를 만나 유교의 예, 즉 큰 절을 올린 사건이 있던 해이기도 하다. 당시 제주도 대정읍 모슬포에 사는 몇몇 가난한 사람들이 관아에 ‘마라도 개간’을 허락해달라고 청했고, 당시 제주 목사 심현택이 마을 사람들의 청을 받아들였다. 허가를 받는 사람들은 마라도 개간 계획을 세웠고, 모슬포에서 배를 띄워 마라도에 입항했다. 마라도에 들어간 그들이 맨 먼저 한 일은 농지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당시 마라도는 울창한 원시림의 무인도였다. 이 섬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그 숲을 없애야 했다. 숲은 조금씩 불타 없어졌고, 결국 지금 눈앞에 보이는 마라도의 평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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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이 그렇듯, 마라도 여행 또한 쫀쫀한 동선 계획이 필요하다. 마라도에 들어가서 할 수 있는 일은 산책, 명소 방문과 짜장면 먹기 등 세가지 정도이다. 가파른 절벽과 해식동굴, 장군바위, 대문바위 등은 마라도 자연을 대표하는 경관이고, 교회, 사찰, 성당, 마라분교, 국토최남단비 등은 사람 사는 섬 마라도를 확인해 주는 소소한 공간들이다. 마라도 등대와 세계 등대 모형도들도 마라도 여행에서 주목할 만한 시설들이다. 제주 해산물과 톳을 올린 마라도 짜장면도 마라도 여행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관심 거리다. 마라도 짜장면은 나름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마라도에 짜장면 집이 생긴 건 1997년의 일이었다. 당시 마라도는 약간의 관광객과 지금도 여전히 발길이 이어지는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섬이었다. 당시 짜장면 집은 사실 일반 관광객보다는 낚시꾼들이 더 많은 관심이 많았다.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던 강태공이 속이 출출해 전화를 걸어 음식을 주문하면 배달 직원이 절벽과 갯바위를 지나 짜장면을 배달해 주는, 그야말로 ‘극한직업’으로서의 짜장면 집이었던 것이다. 그런 배달 장면이 TV에 소개되고, 광고의 소재로 활용되면서 졸지에 짜장면이 ‘마라도 명물’로 등극했다. 지금 마라도에 가면 여전히 짜장면 집들이 즐비하고 일부 호객 행위도 벌어진다. 마라도에 들어가면 짜장면을 먹을 것인지 그냥 산책만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짜장면을 선택하면 오랜 세월 마라도의 주인이었던 학교, 예배당, 불당 등 전통 시설들과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지점으로 인정받는 마라등대, 그리고 국토최남단비와 그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을 여유롭게 즐기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여행자들이 그나마 원만한 방법으로 선택하는 동선은, ‘우선 구경부터 다 끝내고, 짜장면은 마지막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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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고 걷자…마라도 한 바퀴 마라도의 해안선 길이는 4.2km, 제일 높은 곳의 고도는 해발 39m이다. 마라도는 제주 본섬, 한라산과 관계없이, 그저 그 지점의 해저에서 폭발한 화산에 의해 생긴 화산섬으로 ‘추정’된다. 분화구 흔적을 볼 수는 없다. 분화구 흔적이 없는 오름은 제주도에 수두룩하게 많다. 마라도의 지표면은 흙으로 이뤄져 있지만 섬 전체는 당연히 현무암이다. 마라도의 단층을 보려면 운항중인 배, 또는 선착장 인근의 동굴 등 섬의 옆면을 보아야 조금이나마 작은 화산섬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다. 마라도를 걷고, 보고, 찍고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한 시간 남짓. 마라도를 걸으면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물론 바다인데, 날씨 맑을 땐 제주도가 통째로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섬의 주인은 역시 억새이다. 억새가 가장 많고, 남쪽 성당 부근 바닷가에는 선인장 자생지가 있다. 마라도에는 꽤 많은 건물들이 있다. 짜장면 집, 편의점, 운영이 중단된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 보건소, 파출소, 등대, 그리고 절과 성당과 교회가 있다. 또한 태양광발전소가 그들의 일상을 밝혀주고 있다. 이 모든 시설들 앞에는 ‘국토최남단’이라는 기록과 수식의 수사가 붙는다. 국토최남단 마라교회는 1987년에 생긴 작은 교회다. 미니멀한 예배당 앞에 서 있는 ‘기독교100주년기념탑’ 등 조형물들이 조화로운 곳이다. 국토최남단 관음성지 기원정사는 역시 1987년에 창건한 조계종 사찰이다. 육지의 대형 사찰들이 갖고 있는 대웅전, 관음전, 관음상 등 기도 시설들을 갖추고 있고, 부지 또한 꽤 넓다. 대웅전은 생전 처음 보는 사찰 양식이다. 목조건물이긴 하지만 한옥도 전통 사찰 모습도 아니다. 그냥, 솔직히 말해서 텍사스 목장의 창고같이 생긴 건물이다. 물론 내부는 일반 사찰의 법당과 똑같다. 마라도성당 또한 대한민국 최남단 성당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서기 2000년에 故민성기 요셉 신부가 전국 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마라도 뽀르지웅꿀라 성당’이라는 이름으로 봉헌했다. 성당 건물치고는 다소 만화 같은 디자인이 눈길을 끄는데, 지붕을 마라도 특산물인 전복 모양으로 만들었다. 성당이지만 신부가 상주하는 곳은 아니라 정기적인 미사가 진행되지는 않는다. 대신 관리자와 교리교사가 상주하고 있어서 일반 여행자에게 기도처를 제공하고 있다. 마라도의 최대 기념비는 역시 ‘대한민국최남단’비이다. 동경 126° 16´30˝ 북위 33° 06´30˝ 지점에 있는 대형 비석으로, 1985년 10월2일에 건립되었다. 사진 찍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이곳에 오면 누구나 기념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한다. 이런 곳은 ‘기념’해야 마땅하지 않겠나.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 등대는 100년도 넘은 역사적 유산이다. 1915년 일제강점기 때 군사목적으로 건축되었고 제주도 동쪽 동중국해와 제주도 남부 해역을 지나는 선박들의 ‘희망봉’으로 불리고 있다. 우뚝한 건축물도 아름답고, 그 앞에 조성된 세계 유명 등대의 모형, 세계 전도가 새겨진 대리석도 살펴볼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마라도에 가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 마라도 등대 아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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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의 섬 가파도 마라도에서 오후 2시30분에 출항한 배는 약 20분 뒤에 운진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하선과 동시에 잠깐 쉬었다 가파도행 배에 올랐다. 마라도를 오가는 배에서 가파도를 바라보는 마음은 싱숭생숭하다. 큰 파도가 밀려오면 어쩌나?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나 가파도는 한번도 바다에 잠긴 적이 없다. 가파도 유물 가운데 선사시대 고인돌이 있는데, 그것은 인류가 가파도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 이 섬은 결정적 자연재해 없이 인간과 어우러져 살아왔다는 근거이다.

운진항에서 가파도 선착장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연안에서 벗어날 겨를도 없이 가파도항에 들어가게 된다. 가파도의 첫인상은 ‘단순함’이다. 가파도에 들어가 맨 먼저 만나게 되는 ‘가파도 터미널’이 그 미니멀한 인상의 첫 풍경이다. 그리고 가파도 터미널의 건축 디자인은 매우 제주스럽기도 하지만 매우 모던한 모양이다. 이 단순하고 완성도가 높은 건축물은 가파도에 무궁무진하다. 가파도 주택들이나 관공서, 보리 창고, 학교가 그렇고, 심지어 가파도 스낵바가 그렇다. 또한 가파도 아카이브룸, 가파도의 오래된 빈집을 재생한 독채 숙박 시설 가파도하우스, 가파도 어업센터, 가파도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등도 마찬가지다. 이 건축물들은 독립된 공간으로 지어졌고 운영되고 있지만 그 양식 면에서 통일성을 갖고 있다. 모두 ‘가파도협동조합’ 주도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가파도협동조합은 제주도, 현대카드, 원오원건축 등이 함께 만든 조합이다. 협동조합의 목적은 ‘최소의 변화’이다. 제주도도 개발과 풍화의 흐름에서 벗어날 도리는 없다. 가파도 또한 마찬가지. 그러나 가파도는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되, 멋있고, 유연하고, 아름답게 ‘변화하자’는 실리적 방향과 함께 했다. 이런 흐름에는 가파도 주민들의 생각도 많이 적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가파도는 ‘무분별 개발이 난무하는 많은 지역들과 달리’ 소박하고 단순한 최소의 섬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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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 터미널
가파도에는 ‘둘러보기’ 루트와 ‘올레코스’ 루트 두 가지 길이 있다. 이 루트들은 겹치기도 하고 가지를 치기도 하면서 가파도 구석구석을 흘러간다. 두 가지 루트에서 만날 수 있는 가파도의 문화재들로는 상동마을 할망당(제주 할머니, 여자들이 수시로 소망을 빌곤 했던 기도처), 보름바위, 일몰전망대, 고냉이돌(고양이돌이라는 뜻으로 바다로 떠밀려오는 생선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전설의 바위) 등이 있다. 고인돌군락지(선사시대 인류의 무덤들로 약 130여 기가 있다), 상동우물, 하동마을 할망당, 까마귀돌동산, 불턱(해녀들이 작업하기 전후에 준비와 마무리, 회의도 하던 공간으로 지금은 해녀작업실에서 해결하고 있고, 불턱은 문화 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등도 가파도에서 만나게 되는 풍경이다. 또한 가파초등학교(마라도 마라분교의 본교이다. 이 학교 역시 학생이 10여 명으로 줄어들었지만 학교 풍경은 여전히 평화롭다), 보리도정공장, 보건소, 의용소방대, 보건소, 발전소 등의 주민 편의 시설들은 제주도보다 더 제주스러운 단정한 모습들이다. 가파도 하면 봄에 열리는 청보리밭축제와 가을에 열리는 해바라기축제 등 두 가지 강렬한 색깔 축제를 떠올리게 된다. 지난 5월까지 열린 청보리축제는 이미 막을 내렸고, 이제 가파도에는 청보리는 물론 누런 황금보리조차 수확이 끝이나 텅 빈 들판만 남아있다. 청보리도 예쁘고, 해바라기도 아름답지만, 지금 그곳에 가면 모든 것을 비운 ‘최소의 섬 가파도’의 진수를 느낄 수 있어서 더 좋다. 여행자와 함께 사진 모델이 되고, 바람 소리를 들려주었던 보리는 이제 상품이 되어 가파도 보리순차, 가파도 수제 에일맥주 등으로 소비자와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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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 스낵바 사진 가파도협동조합
가파도에도 식당은 많이 있다. 인기 맛집으로는 대표 메뉴와 식당 이름이 같은 ‘가파도해물짜장짬뽕’, 생선구이와 해물죽이 일품인 ‘가파도용궁정식’(예약 필수), 가파도 스낵바의 ‘청보리핫도그’와 ‘해물라면’, ‘청보리수제비’, ‘가파도뿔소라비빔밥’ 등이 있다. 물론 이런 집들 외에도 비슷비슷한 메뉴를 파는 식당들을 골목골목에서 만날 수 있다. 식당들은 주로 상동 여객선 터미널 근처와 하동 포구 근처에 집중되어 있다. 가파도를 떠나는 배는 오후 5시20분에 가파도항을 출발했다. 반나절만에 마라도와 가파도를 모두 여행하고 나니, 더 이상 제주에서 볼 것이 없을 것 같은 충만감이 일어난다. 물론 운진항이 있는 모슬포로 돌아가면 또 다시 갈 곳 리스트가 차르륵 펼쳐지겠지만. [글 이영근(여행작가) 사진 안동수(다큐PD), 가파도협동조합]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3호 (19.06.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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