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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더 이상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남성과 양산

이승연 기자
입력 : 
2019-06-12 16:16:03
수정 : 
2019-06-17 17: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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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막기 위해 우산을 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리쬐는 햇빛을 막기 위한 양산은 왜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것일까. 양산과 남성은 정녕 만날 수 없는 평행세계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사실 남녀로 나뉘는 이분법도, 잠깐의 거추장스러움도 태양의 뜨거움 아래선 결국 모두 무용지물인 것을.

사진설명
남성들에게 ‘양산’이란 ‘여성들의 전유물’, 특히 ‘중장년층 어머님들의 아이템’이란 고정관념이 뒤따르는 물건이었다. 여성인 에디터 역시도 양산을 ‘어머니 선물 리스트 1위’로 생각할 정도였고, 양산의 사전적 의미도 ‘주로 여성들이 햇빛을 가리기 위해 쓰는 우산 모양의 물건’이니 남성들에겐 오죽했을까. 이쯤에서 한번쯤 짚고 넘어가보자. 어째서 애초에 ‘양산=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을까. 먼저 양산의 형제 격인 우산의 탄생부터 살펴보면, ‘우산 Umbrella’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그늘’을 뜻하는 라틴어 ‘Umbra’에서 유래했다는 점, 또 이집트에선 우산이 천상의 여신 누트를 상징하고, 그리스와 로마 남성들은 우산 사용을 나약하다고 생각해 여성들 위주로 사용됐다는 점,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개화기 이후 양산이 신여성들의 상징으로 여겨진 점 등이 꾸준히 내려와 이러한 인식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들고 다니기 불편하다는 점이 양산을 남성들에게 ‘굳이 필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처럼 오랜 시간 ‘남성’들과 ‘양산’은 쉽사리 친해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지만, 점차 ‘양산=여성들의 전유물’이란 인식이 고릿적 사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루밍족, 맨즈 뷰티 문화가 확산되면서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남자들도 양산을 써야 한다’는 주장 또한 슬금슬금 나오고 있고, 최근 몇 년 동안 연이은 폭염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양산이 그야말로 미세먼지 마스크만큼이나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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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이러한 인식 변화가 아직 시작단계지만 필요한 변화임은 두말할 것 없다. 2018년 질병관리본부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운영 결과에 따르면, 온열질환자 1043명 중 78.5%(818명)가 남성이었다. 이는 ‘야외 활동이 잦은 경우 더위에 대한 남성들의 대응이 여성들보다 적지 않았을까’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옆 동네 일본은 우리네 사정보단 낫다. 도서 『라이프트렌드2018-아주 멋진 가짜』에 따르면 일본에선 노인층을 겨냥한 건강용 도구로 1990년대 후반부터 오사카에 있는 우산전문점에서 남성용 양산을 만들기 시작했고, 2010년에는 배우이자 음악가, 소설가인 이토 세이코가 자신의 SNS에 ‘남자도 양산이 있는 편이 좋다’라는 글을 올려 많은 남성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다. 또 2013년엔 양산 쓰는 남자(洋傘男子, 히가시단시)라는 단어가 유행어로 꼽힐 정도로, 일본에선 남성들의 양산 사용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직 보편화까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지난 5월 일본 도쿄도지사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여름철 열사병 대책으로 ‘모자형 양산’ 보급 방침을 내렸는데, 공개된 시제품 사진이 한차례 논란이 됐다. 머리에 꽂는 우산 모양에 일본 네티즌들은 ‘벌칙게임이다’ ‘차라리 양산을 쓰고 말지’라는 반응을 불러오기도 했다(사실 이런 파급효과를 노린 것이라면 오히려 성공적인 마케팅이 아니었을까). 결국 정부가 나서서 억지로 권하거나 강요할 문제가 아닌, 양산 사용은 자연스러운 인식 변화가 필요한 문제일 것이다. 국내에서도 ‘지드래곤이나, 패션을 선도하는 유명인들이 양산을 쓰고 나왔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공감을 얻은 것을 보면, 결국 영향력 있는 누군가 양산을 들기 시작하면 충분히 너도 나도 유행처럼 쓰고 다닐 의향이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글 이승연 기자 사진 포토파크 참고 『라이프트렌드2018-아주 멋진 가짜』(김용섭 저/ 부키 펴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3호 (19.06.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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