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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SNS 펫방 열풍-힐링도 중독이 되나요?

입력 : 
2019-06-19 16: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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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잠자리에 든 내 손엔 책이 있었다. 두세 장을 못 넘기고 잠들지만, 그렇게라도 독서를 한다고, 삶의 균형을 맞춘다고 위안하고 싶어서. 지금은 그 자리를 휴대폰이 대신한다. 유튜브를 켜고 멍냥이 채널을 유람하다 보면 독서니 위안이니 하는 건 안중에 없다. 아니, 위안은 훨씬 크다. 내게는 현실 수리가 있는데, 수리도 심하게 사랑스러운데, 도무지 클릭질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사진설명
요즘 인싸 동물이라면 유튜브 채널은 하나쯤 다 갖고 있고, 셀럽견과 셀럽묘는 수백 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다. 유튜브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개와 고양이 관련 영상 조회수는 재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86%와 77%가 증가했단다. 최근에는 미니피그, 다람쥐, 카멜레온, 앵무새 등 희귀 동물까지 가세해 펫방 인기는 고공행진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갸우뚱한 지점이 있다. SNS에서 인기를 누리는 많은 영상 내용이 의외로 별 것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열심히 먹는 것만으로도, 대차게 코를 골며 자는 모습만으로도 ‘좋아요’가 치솟는다. 난장판이 된 거실과 미안한 표정을 짓는 개, 창틀에 올라앉아 느긋이 꼬리를 휘저으며 이쪽을 노려보는 고양이로도 반응은 폭발적이다. 사실 이들은 움직일 필요도 없다. 분홍 젤리 발바닥 사진 하나로도 이미 게임은 끝이니까. 특별한 이벤트도 없고, 내게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닌데, 클릭과 힐링의 거대한 물결에 몸을 내맡긴 동안 스르르르 몸이 이완되고 긴장이 풀리는 경험.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굉장한 재주를 선보이는 영상도 있다. 사람 말을 알아듣는(것처럼 완벽하게 반려인과 교류하는) 고양이, 야바위 천재 강아지에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버려져 죽어 가는 새끼 고양이를 구조해 기적처럼 살려 내는 과정, 시력을 잃고 다리 힘도 빠진 열아홉 노구를 일으켜 스스로 걸으려 애쓰는 반려견 영상에는 누구라도 응원의 댓글을 달지 않곤 못 배긴다. 지켜보는 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은 랜선 이모들은 선물을 보내고 팬 미팅에도 참석한다. 도대체 이 열풍의 원인은 뭘까?

댓글들을 보면 분명해지는데, 바로 ‘힐링’이다. “헬요일 출근길, 제대로 힐링합니다” “심쿵사 하겠어요” “극강의 행복감을 느낍니다” “정말 뭉클하네요” 하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린다. “어쩜, 우리 애도 딱 이래요!”라는 폭풍 공감에 “영상 더 자주 올려 주세요. 협박입니다” 하는 정중한 채찍질까지, 중독도 이런 중독이 없다. 반려동물을 키우든 키우지 않든 차이도 없다. 계산하지 않는 단순함과 세상 걱정 없는 동물들의 천진난만함을 지켜보노라면 일상에 지쳐 구깃구깃 주름진 마음이 하나씩 펴지는 기분이라는 게 이들의 증언이다. 여기에 반려동물 인식 개선에 일조하고 선배 반려인에게 배우는 깨알 학습 효과 등의 순기능도 펫방 열풍에 가속 페달을 밟는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따르는 법. 애초 사랑스런 반려동물의 모습을 기록하고 간직할 목적으로 시작된 반려인의 작은 놀이는 랜선을 타고 세상에 나와 어엿한 산업이 되었다.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면서 ‘조회수’와 ‘좋아요’가 돈으로 연결되었고, 랜선 고객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반려동물들의 일상이 점점 더 연출되거나, 자극적인 플레이어가 되기도 한다. 영상 속 사랑스러운 모습만 보고 반려동물을 덜컥 입양했다가 유기하거나 파양하는 사례도 있다. 대중 매체에 등장해 관심을 끈 품종이 이후 유기되는 동물 중 눈에 띄게 많은 현상이 이를 대변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힐링? 당연히 필요하고, 중독도 쉽다. 그렇지만 방향성을 잊어선 곤란하다. 펫방도 마찬가지다. 상식과 배려를 견지하는 선에서, 반려동물 본연의 모습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공생의 미덕이 살아 있는 바람직한 중독의 경계를 지켜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오늘밤에도 볼륨을 한껏 낮추고 SNS 펫방의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한 손으로는 수리 배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현실에 단단히 닻을 내린 채.

[글 이경혜(프리랜서, 댕댕이 수리 맘) 사진 셔터스톡]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4호 (19.06.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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