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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성수동식 디자인

입력 : 
2019-06-19 16:3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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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큰 공장 혹은 창고. 그 뼈대를 유지하며 꾸밈을 최소화한 공간 디자인. 지난 7, 8년 성수동이 서울 최고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건 이런 낡은 공장형 공간이 풍기는 아날로그 감성 때문이었다. 최근 블루보틀 성수점이 오픈하며 이런 스타일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성수동 스타일’이라는 게 있다. 낡고, 넓고, 거칠다. 그런데 힙하다. 지난 5년 동안 성수동은 문화 첨병들의 최신 집합소가 되었다. 그건 아티스트와 바리스타가 성수동 연무장길로 몰려갔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래된 그리고 넓은 공간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공간에는 이야기가 있다. 지난 세월이 드러내는, 인공적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새것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런 무드에 감동 받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걸 예민한 촉수로 가장 먼저 인지하는 게 문화의 선봉장에 있는 아티스트들이다.

사진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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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기본은 이야기가 있는 공간의 골격을 살리는 일이다. 2011년 복합 문화 공간으로 개조된 대림창고. 성수동식 공간 디자인의 원조다. 블루보틀은 전 세계에 지역의 감수성을 더한 공간 디자인을 선보인다.


성수동 빵집(이라고 하기엔 너무 트렌디한 곳) ‘어니언’은 자신들의 공간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공간은 1970년대에 처음 지어졌다. 그리고 50여 년이 다 되어 가는 시간 동안 슈퍼, 식당, 가정집, 정비소 그리고 공장으로 변형되었다. 때마다 필요에 따라 쓸모 없는 부분은 부서졌고, 더해져야 할 부분은 주먹구구식으로 증축되었다. 우리는 공간을 탐색하던 중 과거의 구조 속에서 새것이 줄 수 없는 가치를 발견했다. 바닥에 묻은 페인트 자국, 덧대어진 벽돌 하나하나가 세월을 기억하는 훌륭한 소재였다. (중략) 이 공간은 마음을 정화시키는 휴식과 서비스가 존재하는 곳이 될 것이며, 공간을 찾는 이들의 머릿속 소음을 잠재워 줄 안식처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이 장소가 누군가에겐 새로운 삶의 영감을, 누군가에겐 온전한 휴식을 선사하는 곳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동네는 1970년 신발 공장이 활황일 때 조성되었다. 대규모 기계가 놓였던 벽돌로 둘러싸인 신발 공장, 높은 천고와 삼각 지붕이 상징인 물류 창고의 나이는 보통 50세가량이다. 공장 생산의 쇠퇴로 침침한 기운이 돌던 성수동을 일으킨 건 패션 문화 업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트적인 공간을 찾아 전시나 패션쇼를 진행하고자 했던 그들이 강남과 가까운 성수동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와중 2011년 ‘대림창고’라는 복합 문화 공간이 랜드마크로 우뚝 섰다. 물품 보관 창고던 건물이 환골탈태한 것이다. 이후 ‘어니언’, ‘어반소스’, 올초 오픈한 ‘성수연방’까지 인스타 성지가 줄을 이었다. 이렇게 아트, 커피, 전시 콘텐츠가 몰리는 건 공간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이곳의 공간 디자인은 기존 골격만 잘 이용해도 ‘분위기’가 풍긴다는 얘기다. 일단 철거는 최소로 한다. 그래야 과거의 이야기가 들린다. 마찬가지 이유로 낡은 벽, 기둥, 골조 등은 최대한 살린다. 여기에 빈티지 철재나 합판을 이용해 가구를 설치하면 공간 디자인은 완성이다. 소위 말하는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이다.

최근 이 공간 디자인에 소비자들의 이목이 다시 한 번 쏠렸다. 바로 블루보틀 때문이다. 오픈과 동시에 인스타 성지가 된 그곳은 ‘역시!’와 ‘과연?’을 줄타기 중이다. 특히 공간은 그렇다. 크게 흠잡을 데 없지만, 그리고 빈 벽에 붙은 로고만으로 충분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이전의 성수동 스타일에 더해진 비슷한 또 하나라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평범하다는 의견도 많다. 어찌 보면 그건 성수동이라는 동네가 가진 공간의 정체성이 모두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크기, 나이, 구조가 비슷한 태생적인 유사성 때문에 공간을 최대한 덜 개조하는 디자인으로 꾸며진 곳들이 대개 신선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화제의 블루보틀과 함께 제기된 성수동식 공간 디자인의 식상함. 올 것이 온 것이다. 아날로그적 이야기는 살리되 좀 더 새로울 것. 요즘 제기된 성수동식 공간 디자인의 화두다.

[글 한희(문화평론가) 사진 언스플래시, 대림창고]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4호 (19.06.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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