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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냉(冷)면스플레인-여름의 면을 탐닉하다

이승연 기자
입력 : 
2019-06-20 10:5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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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다. 여름철에 반짝 등장해 찬 바람 불면 사라지는 계절 면 요리는 그야말로 강렬한 미각의 기억을 남긴다. 시원한 면 요리 한 입은 무더운 여름에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다.

본디, 국수란 옛 시절부터 ‘잔치’ 음식이었다. 밀이 풍부한 유럽에서 국수가 서민 음식에 가까웠던 반면, 우리나라에선 밀가루가 귀했기 때문에 축하하거나 기념할 일이 있지 않는 한 평상시에는 쉽게 즐겨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오늘 날 우리가 아는 국수는 중국에서 건너왔다. 중국에서는 실크로드를 통해 아랍 지역에서 들어온 밀을 제분 과정을 거쳐 여러 가지 음식으로 만들어 먹었는데, 그중 한 가지가 바로 국수였다. 우리나라에는 통일 신라 말기 또는 고려 시대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후 국수는 시기별,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를 띠며 탄생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과정 일면은 언뜻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저마다 지닌 탄생 스토리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실 여름철 시원한 면 요리 앞에서는 이러한 음식의 유래나 복잡한 역사는 뒤로 하고 기꺼이 고민의 즐거움에 보다 초점을 맞추게 된다.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입맛에 따라 어느 날은 시큼할 정도로 폭삭 익은 열무김치를 넣어 만든 감칠맛이 별미인 막국수가 당기는 날이 있고, 어느 날엔 숯불에 구운 고기 한 조각을 얹어 먹는 물냉면의 쫄깃함이 그리울 때도 있는 법. 에디터 역시 소위 ‘면스플레인’(냉면과 익스플레인explain의 합성어, 냉면은 반드시 어떻게 먹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언행을 의미하는 신조어-네이버 오픈사전)과는 거리가 멀다. 여러 유명 가게의 평양냉면을 앞에 두고 냉면의 역사를 논하지도 못하고, 먹는 법의 정석? 더더욱 모른다. ‘입맛에 맞는 게 최고’라 여기는 동시에,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김없이 식초와 겨자를 찾는 대한민국 평균 입맛이랄까. 그렇기에 이 기사는 냉면의 가치와 먹는 법 등을 논하기보다는, 여름철 즐겨먹는 별미이자 차가운 면 요리에 대한 공감 가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스스로를 ‘면스플레인’이라 지칭하며 타박을 주는 이들에게 꿋꿋하게 내 입맛대로 먹을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지식을 쌓는 과정이라 여겨도 좋겠다. 짧고도 긴 여름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인, 대표적인 여름 면 요리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고소한 맛의 결정체, 콩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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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만나손칼국수’
필자의 경우 콩국수의 맛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콩물의 밍밍함이나, 아무런 곁들임 없이, 기껏해야 채 썬 오이 몇 가닥이나 깨 정도를 올려 먹는 콩국수의 맛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그런 내가 콩국수를 먹기 시작한 것은 지독한 더위를 맛본 작년이었을 것이다. 비릿한 콩 내음 대신에 입 안에 퍼지는 고소함을 먼저 느끼기 됐을 때쯤 알게 됐다. 콩국수가 꽤나 매력 있는 음식임을. 그 해 여름철에는 전통시장 두부 가게에 들려 얼음이 동동 뜬 아이스박스에 파는 콩물 한 병을 사 들고 오기도 하고, 어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콩물(콩 종류에 따라 국물의 색깔, 맛, 냄새, 고소함 등이 전부 달라진다)에 시중에 파는 소면을 살짝 삶아서 함께 먹기도 했다. 서울 내에 콩국수 맛집들이 있다. 서울시청 뒤에 위치한 진주회관이나, 여의도 진주집 등이다. 잘 알려진 콩국수 맛집인 만큼 여름철엔 기나긴 웨이팅 줄이 생기는데, 일찌감치 포기하지 말자. 테이블 회전율이 빠른 편이라 웨이팅과 여름철 열기에 지친 체력을 금세 회복시켜준다. 최근 에디터의 콩국수 맛집 리스트 속 상위권을 차지한 가게가 있다. 충무로에 위치한 ‘만나손칼국수’는 점심 시간만 되면 인근 인쇄소 사람들과, 직장인들로 긴 줄을 이루고 있는 가게다. 사시사철 판매하는 손칼국수는 물론, 여름철 계절메뉴로 판매하는 콩국수는 이곳에 발걸음을 옮겨 웨이팅을 하는 보람을 느끼게 한다. 손으로 직접 만드는 면과, 진득한 콩물이 특징. 콩물은 한 입 머금는 순간 입 안에 고소한 내음이 퍼지는데, 손님에 따라 면보다 국물을 더 찾기도 한다. 고소함의 비법으로는 껍질 깐 땅콩과 깨를 첨가한다고. 특히 이곳에선 음식이 나오는 동시에 한두 개 떨어뜨려주는 작은 얼음이 인상적인데, 진한 콩물을 맹맹하게 만들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득한 국물에 얼음이 점차 녹아 들며 시원함을 돋구어주고 목넘김 역시 부드러운 음식이 된다. 밑반찬은 알맞게 간이 되어 있는 겉저리가 전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큰 그릇 가득히 나오는데 아쉽게도 ‘완뽕’처럼 바닥을 보이는 것에는 실패한다. 그만큼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곳이다. ‘콩물국수’라고 불리는 콩국수는 말 그대로 콩물과 국수를 함께 섞어 만든 음식이다. 콩국수는 사실 전라도에서 유명한 음식이라고 한다. ‘밀면의 부산, 콩국수의 전라도’라고 할 정도라니 말은 다했다. 전주가 고향인 친구와의 대화 중에 등장한 놀라운 사실. “서울은 (콩국수에) 설탕 안 넣어먹어?” “어? 설탕이 왜 들어가?” 애초에 달짝지근한 콩물에 굳이 설탕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보통 콩국수는 소금 간을 하고, 깨, 오이, 방울 토마토 등을 가니쉬로 올리는 경우가 전부라고 생각한 내 좁디 좁은 고정관념이 무너진 순간이다. 전라도에서는 소금 간 외에도 설탕을 넣어 감칠맛을 더하기 때문에, 설탕과 소금 두 가지를 기호에 맞게 조금씩 간을 맞춰 먹으면 된다고 한다. 또 콩국수의 면을 일반 소면이나 칼국수면 대신 메밀면을 넣는 경우가 많아서, 유명 콩국수(또는 메밀국수) 가게를 찾으면 메밀국수, 메밀콩국수 등의 메뉴가 함께 붙어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흰 색의 콩물에 담긴 거무죽죽한 메밀면이라…. 다음 전주 여행에 비빔밥과 국밥 대신 콩국수 전문점을 찾을 이유가 생겼다.

일본에서 건너와 한국식으로 변화한 ‘메밀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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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국수(사진 매일경제 이승환 기자)
메밀국수(‘모밀국수’라고 알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모밀은 사투리다)는 일본 ‘소바’의 영향을 받았지만, 우리나라에 건너오며 맛과 형태가 조금씩 달라졌다. 메밀 수확시기인 가을이나 10월쯤이 가장 제철이겠지만, 국내에서는 한 여름에 냉메밀국수를 찾는 이들이 많아 여름 음식처럼 알려지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타코야키 먹으러 일본 간다”, “라멘 먹으러 일본 간다”라는 말은 있어도, “메밀국수 먹으러 일본 간다”라는 말이 없는 이유가 아마도 한국에서도 충분히 입맛에 맞는 메밀국수 전문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한국에 건너온 메밀국수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레시피를 보인다. 전라도의 경우 앞서 말했듯 메밀 면을 선호하는 편이라 메밀국수와 콩국수를 함께 전문으로 파는 곳이 많고, 또 광주에서는 멸치나 가다랑어포 국물을 장국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또 의령소바로 유명한 경상남도 의령군 메밀국수는 잔치국수에 메밀면을 넣은 듯 간이 강하지 않고 담백한 육수의 국수 요리로 선보인다(의령에서는 ‘소바’라는 단어도 익숙하게 쓴다). 서울 역시 대체적으로 판메밀, 냉메밀국수가 흔한 편이다. 미쉐린 가이드에 소개된 서소문동 ‘유림면’, 연희동 ‘호천식당’ 등이 잘 알려진 메밀국수 맛집이다. 또 종로3가역에서 종각역 일대 빌딩 숲 사이 자리잡은 피맛골 골목에는 각종 음식점 상가와 맛집들로 즐비한데, 이곳에 위치한 메밀 전문점 ‘미진’은 여름철만 되면 메밀 음식을 즐기기 위한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곳이다. 이곳의 대표적인 메뉴는 냉메밀과 온메밀, 비빔메밀, 메밀전병 등 메밀을 활용한 음식들. 미진을 처음 찾는다면 그 양에 기함할 지도 모른다. 1인분을 시키면 메밀국수 2판이 나온다. 한 판에 메밀면 두 덩이가 담겨 있어 크게 4번에 거쳐 먹는 셈이다. 처음 보는 양에 ‘메밀은 금방 소화돼!’ 하고 안심하고 먹어도, 어느 순간 면이 증폭하는 느낌이다. 이런 푸짐한 양은 남성 손님들에게도 충분할 듯싶다. 장국이 모자를 거란 걱정도 필요 없다. 살얼음 띤 육수를 주전자에 담아 손님이 필요한 만큼 더 부어먹을 수 있다. 이러한 푸짐한 인심 덕분에 맛집이 된 거 같지만, 사실 맛이 가장 중요한 요소일 터. 후루룩 빨려 들어가는 메밀면의 부드러운 식감과, 달달한 장국의 조합이 좋다. 곱게 간 무, 와사비, 파, 김 등이 자리마다 비치되어 있으니 내 기호에 맞춰 먹어보도록 하자. 보쌈과 닭갈비로부터 독립된 ‘막국수’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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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국수(사진 매일경제 이승환 기자)
처음 먹었던 ‘막국수’라는 개념은 보쌈이나 족발과 함께 나오던 것에 비빔국수에 불과했다. 하얀 보쌈 고기와 곁들여 먹는 매콤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인상적이라, 보쌈을 한두 점 집어먹다 보면 당연스럽게 손은 막국수 그릇으로 향하곤 했다. 이처럼 ‘함께 먹는 음식’의 선두주자로 여겨진 막국수가 ‘저평가되었다’고 느껴진 계기는 어느 날 혼자 떠난 춘천 여행이었을 것이다. 춘천은 닭갈비 맛집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막국수 외에도 작은 음식점에서도 막국수나 메밀을 활용한 음식이 메인 메뉴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혼자 찾은 여행자에게 아쉬웠던 점이라면, 유명 식당이 아닌 이상 1인분 주문이 들어온 경우 면을 뽑는 기계를 돌리기가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먹고 싶어도 쉽사리 먹을 수 없다는 과거 기억 때문이었을까. 그 이후로 막국수 맛집을 따로 찾아가 먹기 시작했었다. 금방 삶아낸 메밀면 위에 양념장과 잘게 썬 김치, 오이, 절인 무, 깨소금 등을 곱게 뿌려져 있는데 취향에 따라 식초와 겨자를 조금씩 가미해 한 차례 비벼 먹는다. 그리고 그릇의 바닥이 보일 때쯤 살얼음이 동동 뜬 육수를 조금 부어서 먹으면 그 역시 별미다. 이처럼 강원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면 요리가 막국수이다. 강원도에서는 메밀로 만든 면 요리를 어디서든 먹을 수 있을 만큼 흔하다고 해서, 또는 막 만들어서 먹었다고 해서 ‘막국수’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메밀은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 춥고 척박한 땅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는 편인데, 과거 을미사변 이후 일본군을 피해 산으로 들어간 의병들이 산에 불을 지펴 농사 지을 땅을 만들고, 주식으로 메밀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1968년 ‘화전정리법’이 시행돼 도심으로 이동한 화전민들이 생계를 위해 막국수 음식점을 열었다고 하는데, 사실 이 또한 하나의 설에 불과할 뿐이다. 각설하고, 춘천에서 막국수가 대표적인 음식이 되자, 닭갈비와 막국수가 함께 묶여 ‘춘천 막국수 닭갈비 축제’ 등이 열리곤 한다. 올해는 6월 중순까지 열린 축제를 놓쳐서 아쉽다면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을 추천한다. 1층 전시관은 메밀과 막국수의 유래와 종류, 음식 등 전반적인 것을 확인할 수 있고, 2층 체험관에서는 고객이 직접 메밀을 반죽하여 전통 방식의 막국수틀에서 막국수 면을 뽑아 체험한 막국수를 시식 가능하다.

여름 부산의 맛, 어른의 맛 ‘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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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초량밀면’
여름철 부산 여행을 떠난다면 ‘먹킷리스트’에 필수적으로 포함되는 메뉴가 있다. 바로 밀면이다. 면 성애자, 평양냉면·콩국수의 맛을 알기 시작한 초보 어른 입맛, 에디터가 기대한 메뉴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한 입 먹고 나서 나는 바로 젓가락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부산의 유명 밀면 맛집들은 저마다 육수 비법을 가지고 있다. 대체로 돼지뼈나 닭뼈를 육수로 이용하거나, 한방약재를 넣어 진하게 우려내기도 하는데, 에디터가 찾았던 부산 밀면 맛집이라는 초량밀면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이 문제였다. 개인적으로 계피 향이나 진한 한약 냄새에는 취약한지라, 아쉽지만 쉽게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 옆 테이블도, 앞 테이블에도 모두가 “맛있다”를 연발하며 거부감 없이 쭉쭉 면치기를 할 때 에디터는 결국 양념과 식초, 겨자를 듬뿍 추가해야만 했는다. …인정한다. 아직은 초딩 입맛에 가깝다는 사실을. 밀면은 부산 지방의 향토 음식 중 하나이다. 밀가루 면으로 만든 냉면이라고 불리는데, 그 기원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한국전쟁 이후, 산으로 피난 온 이북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만들었다고도 설도 있고,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모녀가 부산에 와 냉면집을 열면서 밀면이 탄생했다는 설, 또 진주의 밀국수 냉면이 부산에서 변형되었다는 설도 있다. 오늘날 부산 밀면의 경우 대체로 밀가루에 고구마 전분이나 감자 전분 등을 배합해 만드는데, 종류는 크게 물밀면, 비빔밀면으로 구분된다. 다진 양념이 많이 들어가 다소 자극적인 맛이 여름철 더위에 지친 입맛을 돌아오게 해 사랑받는 밀면. (어른 입맛의 사람들은) 더운 여름엔 물밀면의 시원한 육수와 진한 감칠맛이 진리라고 외친다.

취향을 존중해드립니다, 함흥냉면, 평양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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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본가 평양면옥(매일경제 김재훈 기자), 을지로 을지면옥(매일경제 한주형 기자)
여름철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자 한반도 고유의 찬 국수 요리인 냉면은 삶은 국수에 육수와 양념, 고명을 얹어 즐겨 먹는 요리다. 고려 시대 중기 평양에서 유래됐지만 현재는 지역에 따라 ‘평양’과 ‘함흥’, ‘진주’와 ‘연길’ 냉면으로 구분된다. 이렇게 대표적으로 지역에 따라 냉면을 구분하는 문화는 비교적 최근에 생겼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평양, 평양, 평안도, 함흥, 함경도 사람들이 남한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구분이 생겼다고 한다. 메밀을 주 재료로 대체적으로 맑은 국물에 메밀 면을 함께 즐기는 방식인 평양냉면, 감자의 녹말 면에 생선회나 고추장 비빔장 등을 곁들여 먹는 것이 함흥냉면이라는 인식이 가장 기본적이다. 쉽게 즐길 수 있는 함흥냉면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오장동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이북 함흥에서 녹말가루로 면을 뽑아 만든 음식이 ‘농마국수’가 함흥냉면으로 변신한 것은 6.25 직후. 함흥에서 피난을 내려온 이들이 서울 오장동에 가게 터를 얻어 녹말 대신 고구마나 메밀로 국수를 만들고, 그것에 홍어나 가자미를 양념해 매콤하게 만들었다고 한다(참고 기사-‘오장동-여름이면 찾게 되는 빨간 맛 동네’ 매일경제 2019.05.09). 오래된 벽돌이 눈에 띄는 흥남집과, 그 옆으로 이어진 오장동 함흥냉면은 아직까지도 이 맛을 잊지 않고 찾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지난해 4월 진행된 남북정상회담 만찬으로 평양냉면이 등장한 이후 평양냉면은 그야말로 ‘인싸푸드’로 등급했다. 최근 역사를 자랑한다는 유명 식당의 평양냉면 가격이 1만 원대에 돌입하며 서민음식이 아닌 ‘귀족음식’이라는 해시태그가 따라 붙었지만, 그럼에도 여름철이 되자 한국의 5대 평양냉면 전문점들은 물론 냉면 전문점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평양에 옥류관이 있다면 서울에는 을밀대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을밀대와,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우래옥, 그밖에도 피양옥, 봉피양, 평양면옥, 필동면옥 등 ‘평양냉면’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맛집들은 식사 시간만 되면 북새통이다. 가게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장충동 계열과 의정부 계열 양대 계보 중에서 어디서 시작된 것이냐에 따라 냉면의 맛이 조금씩 다르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입맛에 맞는 곳, 혹은 쉽게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에디터 역시 편집부 신입이었던 차에 선배들을 따라 처음으로 평양냉면을 경험했었다. 처음 그 맛을 마주할 때의 느낌은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심심한 육수, 뚝뚝 끊어지는 면발, 주객전도라 할 정도로 물씬 풍기던 파 향까지. 밀면 못지 않게 어렵게 받아들였던 맛일 것이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 평양냉면을 먹고, 육수와 면의 식감까지 따져가며 즐기기 시작한 것을 보면 “평양냉면은 나이가 들수록 이해하는 맛”이라는 조언은 변하지 않는 진리인가 보다.

[글 이승연 기자 사진 이승연, 매경DB, 포토파크 참고 『10대와 통하는 요리 인류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4호 (19.06.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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