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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국의 첼시마켓을 꿈꾸다-뉴 플레이스 탐방 ‘성수연방’

이승연 기자
입력 : 
2019-06-20 10: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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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오래된 건물이 멋스럽게 느껴지는 뉴욕의 동네 첼시. 이곳에 위치한 ‘첼시 마켓’은 옛날 과자 공장 자리에 들어선 대형 식품매장으로, 다양한 식료품 가게와 사고 싶게 만드는 기념품 등으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뉴욕의 관광 명소다. 최근 첼시 마켓을 벤치마킹해 만들어진 ‘성수연방’은 지역적 특색을 살리는 OTD 코퍼레이션의 새로운 작품이다. 성수연방엔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라이프스타일 숍들이 입점 소식을 알리고, 성수동만의 분위기가 뒤섞여 독특한 활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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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준공업지대를 형성해, 낡은 공장만 가득했던 이미지의 성수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예술가의 아지트가 집결된 동네, 도시 재생 작업을 이룬 문화공간, 뉴트로 트렌드의 선봉주자로서 힙스터들이 사랑하는 동네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대림창고, 커피오스, 블루보틀까지 입점하며 더 이상 놀라울 변화가 없을 것 같은 성수동이지만, 최근 들려온 새로운 복합문화공간 소식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오픈한 지 4개월 만에 다양한 후기를 낳고 있는 ‘성수연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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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명소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이 조금은 옅어지는 오픈발 기간이 지난 시점인 5월, 그곳을 찾았다. 성수동의 대표 명물 ‘자그마치’와 ‘대림창고’ 사이의 골목길. 그 길로 들어서 분주해 보이는 공장 지대를 몇 블록 지나자 오늘의 목적지가 등장한다. 1970년대 화학 공장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 ‘성수연방’은, 가운데가 뻥 뚫린 ‘ㄷ’자형 모양의 건물 양쪽을 A동, B동으로 나눠 그 속에 라이프스타일 숍과 쇼핑 공간, 서점, F&B 등 다양한 매장을 선보이고 있다. 성수연방은 건대의 ‘오버 더 디쉬’, 하남 스타필드의 ‘마켓로거스’, 명동·을지로 ‘디스트릭트’ 등을 기획한 기업이자, 공간 플랫폼 기획 기업인 OTD 코퍼레이션이 새롭게 선보인 곳으로, 오랜 시간 비어있던 화학 공장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어 성수동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앵커플랫폼(Anchor Platform)’으로써 자리잡고자 한다. 최근 OTD 코퍼레이션의 손창현 대표는 한 인터뷰를 통해 “성수연방을 만들면서 첼시 마켓을 벤치마킹했다. 첼시 마켓은 한때 과자공장이던 공간을 상업시설로 개조하고 주변 소상공인을 끌어들여 뉴욕의 관광 명소가 된 곳이다. 성수연방은 독특한 맛집, 개성 있는 스몰 브랜드들을 모았다는 것 외에 특성이 많다.”(2019/05/24 ‘성수연방·파워플랜트 등 공간기획자 손창현 OTD 대표’-매일경제 권한울 기자)라고 밝혔던 바. 이처럼 성수연방이 새로운 명소로서 자리하게 될 거란 예측이나, 기존의 복합문화공간과 다른 ‘새로운 공간 유형’으로써 여겨지는 이유로 생산과 소비, 유통 등이 한 장소에서 이뤄지고, 이용객들은 그 속의 이야기를 듣고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을 둔다. 각자의 분야에서 특별한 개성과 능력, 이야기를 가진 스몰 브랜드들과, 그 구성원들이 가치를 공유하거나 관계를 구축하는데 목적을 두고 함께 만들어가는 유형은, 고대부터 이어진 ‘길드’에서 그 개념을 착안했다. 공간을 큐레이션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각 분야별 브랜드들이 모여 구성원 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관점의 신(新) 공간인 셈이다. 예를 들어 성수연방 1층에 마련된 띵굴 스토어에서 국내의 소규모 브랜드가 전시, 유통 및 판매되는 ‘공유 생산 시스템’, 그리고 1층에 마련된 더미트퀴진 ‘존쿡 델리미트’에서 판매하는 샌드위치나 바비큐 등에 들어가는 육류품은 2층 공유공장 ‘팜프레시 팩토리’에서 생산해 바로 공급을 받는 시스템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시도는 유통에 걸리는 시간을 줄인 것은 물론, 다양한 유통 채널 확보, 또 다소 생소했던 제품의 제조·유통 과정 모두를 소비자에게 오픈한다는 점에서 색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서울 성동구 성수이로14길 14(성수동2가) 지하철 2호선 성수역 3번 출구

성수연방 속 주목해볼 스몰 브랜드(Small Brand) ▶성수연방 봄의 파빌리온 ‘성수춘상(聖水春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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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연방의 입구를 들어서면 중앙에 떡하니 위치한 건축물이 있다. 바로 성수연방의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중앙 정원인 파빌리온(pavilion)이다. 나무로 지어진 이 투명한 집은 전시공간이자, 포토존, 하나의 쉼터로서 역할을 하는데, 계절이나 주제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지난 1월에는 성수설원(聖水雪原)이라는 주제로, 얼어붙은 땅에서 새싹이 피어 오르듯 도시 재생의 땅 성수동에 새로운 시작과 탄생을 알리는 특별한 전시공간을 진행한 데 이어, 지난 4월부터는 ‘성수춘상’이라는 주제로 파빌리온을 오픈했다. 성수춘상은 ‘녹빛의 생기로 충만한 봄날, 여럿이 함께 상을 펴고 앉아 봄의 정취를 즐긴다’는 의미를 담은 플랜테리어 콘셉트로 구성, 보는 이들이 도심 속 정자에 모여 앉아 그동안 잊고 지낸 일상의 풍경을 감상하고, 사람 간의 교감을 나누는 특별한 외출이 되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다. 고독을 위해, 사랑을 나누기 위해, 풍경을 즐기기 위해, 연회를 위해 영혼을 달래기 위해 존재한다는 파빌리온의 목적만큼이나, 성수연방을 찾은 사람들은 가장 먼저 이 전시공간에 들러 애정, 우정을 나누기도 하고 저마다 인생샷을 남기기에 바쁜 모습이다. 녹색의 천을 활용해 안과 밖을 구분했지만,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성수연방 파빌리온에선 차후 전시 테마에 맞춰 패션 및 예술 등 다양한 브랜드와, 입점 브랜드들과의 콜라보를 통해 공간이 선사하는 느낌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진행할 예정이다.

▶띵굴이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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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연방 오픈 소식과 더불어 뭇 사람들이 가장 기대한 공간 중 하나일 것이다. 오프라인 쇼룸 매장 ‘띵굴스토어’는 소규모 브랜드 마켓 편집숍 ‘띵굴시장’의 정식 오프라인 매장 1호점이다. 이곳에서 처음 든 생각은, 우리의 정서에 맞춘 ‘한국식 이케아’ 같다는 점이다. 이곳에 가기 전부터 궁금했던 점은 ‘옹기종기 모인 150여 개의 브랜드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였다. 삼성동에 위치한 ‘티 컬렉티브’ 제품이나, ‘부엉이곳간’과 같은 식재료 브랜드, ‘김석빈 도자기’ ‘슬로우우드’와 같은 디자인 공방 브랜드, 일본의 디자인 용품 회사 ‘킨토’ 등 인테리어나 리빙 디자인 페어에서나 볼 법한 물건들을 한 장소에 모아 소개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닐 터. 이에 대한 해답은 띵굴스토어의 인테리어 테마와, 디스플레이에 있었다. 띵굴스토어는 긴 직사각형 공간을 ‘하나의 가정집’ 느낌으로 꾸몄으며, 중간중간 벽을 세워 갖가지 콘셉트의 쇼룸 공간을 만들었다. 동선에 따라 거실, 다이닝 룸, 작업실, 주방, 욕실 등을 떠올리는 공간들이 등장한다. 그곳에 들어서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큰 다이닝 테이블을 두고 정갈하게 세팅된 그릇들과 디자이너들의 주얼리를 함께 배치하기도 하고, 부엌에선 각종 브랜드의 조리 도구가, 냉장고에는 주부들이 탐낼 조미 재료들이 등장하기도 하며, 부엌을 지나면 나오는 옷방에선 잠옷, 양말, 옷가지와 가방, 모자 등이 함께 걸려 있기도 하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배치하지 않은 느낌이다. 띵굴 스토어의 또 하나의 볼거리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개 글’이다. 조리 도구가 가득한 주방에서 만난 글을 읽다 한참을 머물렀다. ‘나의 살림로망: 어릴 적 모래밥과 나뭇잎 그릇 갖고 놀던 소꿉놀이. 어느덧 실전이 된 나의 살림살이들. (생략) 매일 아침 즐기는 나만의 홈 카페, 정갈하게 짝을 맞춘 커트러리, 음식의 기를 한껏 살려주는 예쁜 그릇들까지. 다들 자기만의 살림로망 하나쯤은 있잖아요.’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했던 작은 로망이나 소소한 행복을 건드리는, 그야말로 ‘이중에 네 취향 하나쯤은 있겠지’라는 말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아크앤북×로우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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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레스토랑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화제가 된 을지로 ‘디스트릭트C’의 큐레이팅 서점 ‘아크앤북’이 성수연방에도 새롭게 자리잡았다. 을지로 지점에 비해선 좀 더 소규모이지만, 철제 사물함을 활용한 책장, 독서 공간 등 성수동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인테리어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로우로우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공간 등이 눈에 띈다. 아크앤북 내부는 1층 띵굴스토어와 마찬가지로 긴 직사각형의 형태의 공간을 1, 10, 100, 1000마일로 구분해, 책과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큐레이팅했다. 1마일에선 에세이 도서와 안경 제품을, 100마일에는 로컬 관련 도서와 가방을, 1000마일 여행 도서와 캐리어 등을 배치하는 식이다(1000마일에선 영국 BBC 전기작가가 쓴 BTS 도서도 만나볼 수 있다). 또 아크앤북의 ‘버터 마켓’ 서비스도 흥미로운 요소. 집에 있는 중고 서적을 가지고 오면 로우로우 제품이나, 매장 내 동일한 중고 서적으로 물물교환이 가능하다.

▶존쿡 델리미트×팜프레시 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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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가공제품 브랜드 존쿡 델리미트에서 운영하는 햄 전문 가게로, 1층 존쿡 델리미트에서는 핫도그, 풀드포크 샌드위치, 바비큐 포크 립 세트, 샐러드 메뉴 등을 맛볼 수 있다. 2층 팜프레시 팩토리에서는 3~4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육제품’에 대한 제조, 유통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생햄이나 소시지, 베이컨, 바비큐, 건조육 등의 제품과 이를 만드는 과정을 배워볼 수 있고, 일부 제품을 시식 및 구매도 가능하다. ‘마이 소시지’ 코너에선 고객이 원하는 재료(분말류, 향식료, 잼 등)를 직접 선택해 마이스터가 현장에서 만드는 신선한 소시지를 맛볼 수 있다. [글과 사진 이승연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4호 (19.06.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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