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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들어가는 천년의 휴양섬-고군산군도

입력 : 
2019-06-20 10:5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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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선유도에 갔다.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고군산대교가 생긴 뒤 처음 가 보는 여행이었다. 예전에는 군산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여행길이었지만 이제 자동차로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좋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역시 가는 길이 편해서 좋았고, 마구마구 개발되면서 사라지는 오래전 마을 풍경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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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봉에 오르면 고군산군도를 사랑하게 된다

고군산군도는 군산 앞바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57개의 섬을 일컫는 지명이다. 그중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10곳이고, 그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풍경과 양식을 제공해 주는 무인도가 47곳이다. 유인도를 대표하는 주요 섬으로는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등 네 곳을 꼽을 수 있다. 이 섬들은 다섯 개의 다리와 연결되어 있다. 첫 번째 다리는 군산시, 또는 부산군 변산에서 이어지는 새만금방조제이다. 이곳은 원래 바다였고, 방조제 도로가 생기며 연결되었으니 ‘다리’ 맞다. 새만금방조제길 중간쯤에 고군산군도로 들어가는 첫 번째 섬 신시도가 있고, 그 신시도와 무녀도를 연결하는 ‘고군산대교’가 있다. 무녀도 서쪽에 선유도가 있는데, 두 섬은 ‘선유교’가 연결한다. 또한 선유도와 거의 붙어있는 장자도는 ‘장자교’가 이어준다. 장자도는 본섬인 장자도와 옆 섬인 대장교로 분리되어 있는데, 두 섬 역시 대장교라는 이름의, 조그만 다리가 이어주고 있다. 서울 수도권 등 군산 북쪽에서 향하든, 광주, 부산 등 군산 남쪽에서 향하든, 고군산군도로 들어가는 길은 달리는 맛을 즐길 수 있는 우리나라 베스트 드라이브 코스라 할 수 있다.

고군산군도 여행은 특별한 탐험 개념이 아닌 한, 주로 이 네 곳의 섬에서 이뤄진다. 여행자 취향에 따라 그 섬이 그 섬일 수도 있고, 4섬4색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물론 여행 앞에 ‘취재’와 ‘원고’라는 숙제가 붙어있으므로 어차피 전자를 선택할 여지는 없다. 고군산대교를 지나 군도로 들어선 내가 맨 먼저 들어간 섬은 장자도 중에서도 대장도이다. 먼저 이곳을 찾는 이유는 대장도가 주요 섬 맨 안쪽에 있고, 그곳에 대장봉이 있기 때문이며, 그 대장봉에서 바라보는 군도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사실을 능력 있는 사진가의 작품을 통해 많이 확인했기 때문이다. 대장도는 크기도 작고, 집도 몇 채 되지 않는 섬이다. 이 섬의 이름이 대장도가 된 연유는 크게 놀랍진 않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대장도에 나타나 ‘훗날 이곳에 크고 긴 다리가 생길 것’이라고 말 했고, 섬 주민들이 그 말을 믿고 이 섬을 ‘장자도’가 아닌 ‘대장도’라고 불렀는데, 훗날 이곳에 다리가 생겼고, 그 다리 이름이 대장교라는 것이다. 이토록 ‘재미없는 스토리’가 또 있을까, 싶었지만 대장도 사람 입장에서 볼 때 저 짧고(대장교는 30m) 작은 다리의 역할은 한강의 한남대교 이상일 것이라는 생각에 ‘재미’ 따위는 접어버리기로 했다.

대장도 길 끝에 있는 펜션을 냉큼 예약한 이유는 ‘내일 아침 대장봉에 올라 일출 사진도 찍고, 장자도, 선유도, 무녀도, 신시도의 전경을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대장봉은 진짜로 네 곳의 섬의 ‘대장’이라고 할 만한 ‘방점의 지점’이었다. 물론 네 곳의 섬 곳곳에 솟아있는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 하나하나가 특별하지만, 주관적으로는 대장봉이 최고였다. 다음날 아침, 펜션 창문에 붉은 기운이 비치는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얼굴에 물만 바르고 해발 142.8m 대장봉에 올랐다. 대장도 본섬에서 볼 때는 뒷동산 같은 느낌이었는데, 막상 길을 나서니 경사가 몹시 가파른, 만만치 않은 ‘거의 직선’ 산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출 사진과 동영상 욕심’에 헉헉거리며 그 길을 오르며 계속 해가 뜨는 곳을 돌아보곤 했는데, 결과적으로 일출 ‘순간’을 담을 기회는 없었다. 그저 솔잎 사이로 어른거리는 장면만 보았을 뿐이었다. 결국 정상 근처에 전망이 넓은 곳이 있어서 그곳에서 이미 솟은 태양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의 숱한 일출과 일몰 가운데 ‘군도’의 그것들이 유난히 예쁜 이유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대비의 미학’이다. 섬이 몰려 있으니 섬과 섬의 사이의 간격이 적당하고, 이른 아침 출항하는 고깃배가 있고, 높은 지역에서 바라보니 바다와 하늘의 거리도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그림 같은 일출 장면을 볼 수 있는 지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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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도 대장봉, 대장봉 뷰포인트 데크, 장자교. 앞다리는 도보다리, 뒷다리는 자동차다리, 아기자기한 여행 거리들이 밀집해 있는 장자도
대장봉은 일출 감상 포인트이기도 하지만 할매바위와 사자바위 등 전설이 전해지는 현장이기도 하다. 할매바위는 대장봉 중턱에 삐죽하게 올라온 8m 크기의 바위인데, 다른 섬 장재미에 있는 할아버지바위와 같은 이야기 속에 있다. 둘은 원래 부부였다고 한다. 아내는 남편의 출세를 위해 온 힘을 다해 뒷바라지를 했고, 남편은 마침내 과거에 급제해 금의환향하게 되었다. 기쁨에 들뜬 아내는 애기를 업은 채 밥상을 차려 남편을 맞이하려 했는데, 급제한 남편 뒤에 ‘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따라오고 있는 게 아닌가! 열 받은 아내는 온 몸이 굳어버려 바위가 되었고, 그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남편 또한 함께 온 사람들과 동시에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아내가 ‘첩’으로 오해한 남편의 동행인은 첩이 아닌 역졸이었다고 한다. 대장봉의 할매바위를 받치고 있는 커다란 바위는 ‘사자바위’라고 불리는데, 망부석이 된 할매는 물론 장자도, 선유도 등 이 일대의 섬과 바다를 지켜주는 수호석 역할과 함께 풍어를 기원하는 바위로 모셔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장봉을 오르는 길목 가운데 할매바위가 잘 보이는 지점에 폐가가 한 채 있는데, 아마도 관련된 사당이 아닌가 추측되었다.

▶여행의 중심지는 역시 선유도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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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깨끗하고 고상한 선유도해수욕장, 선유도 해변데크 산책로 , 대장봉에서 본 선유도 명사십리해수욕장
대장봉에 올라 정면을 바라보면 길고 넓은 백사장과 짚라인 시설물이 눈에 잡힌다. 선유도해수욕장이다. 선유도해수욕장은 명사십리, 거대하고 뭉뚝한 모양이 매우 이국적인 망주봉, 그리고 해안선의 소나무와 해당화로 유명한 청정 바닷가이다. 거기에 최근에는 짚라인이 가세, 감성은 물론 아찔한 놀이까지 가능한 해수욕장이 되었다. 이 풍경들 가운데 역시 압권은 망주봉이다. 지구과학적으로는 지각 운동의 결과물이라는 게 진실이지만, 그 생김새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이 아니다. 중국이나 베트남의 해양 관광지에서 보았음직한 느낌이다. 망주봉은 우기가 오면 망주폭포로 불리기도 한다. 해발 152m의 이 바위산에는 수직 계곡들이 있는데, 큰 비가 내리면 7~8개의 계곡에서 큰 물줄기가 떨어져 장관을 이룬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어서 장마철이 되면 ‘망주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를 보기 위해 일부러 선유도를 찾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망주봉은 또한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스토리를 갖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고군산군도의 선유도는 그저 오랜 세월 감춰져 있다 현대 사회에 들어와 인기 여행지가 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 선유도가 중세 한반도의 대중국 교류의 거점이자 당시 왕의 행궁이자 휴양지로 이용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추측’이 가능한 기록이 있다. 고려 시대 때 망주봉 주변에는 왕의 행궁(송산행궁)이 있었고, 고려의 외교 관료가 사신을 맞이하던 군산정,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 오룡묘, 그리고 자복사와 사신의 숙소인 객관도 이곳에 있었다. 선유도가 당시 중국과의 교류는 물론 왕의 집무공간, 해양문화의 거점으로 이용되었다는 말이다. 사신들을 맞고, 그들이 머물던 곳이었으며, 왕의 행차도 간혹 이뤄졌다니 휴양과 놀이 문화도있었지 않았겠냐는 상상도 가능한 것이다. 아울러 망주봉 문화유적 안내문을 읽으며, 선유도 일대의 고려 문화 복원 작업이 진행된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선유도해수욕장을 걸었다. 깨끗하고 단단한 모래사장이 끝없이 이어지는 서해안 최고 반열의 해변이다. 해안선과 나란히 날아다니는 짚라인 이용자들의 모습에서는 이용자들의 짜릿한 즐거움이 전해지기도 했다. 선유도해수욕장은 또한 방풍림으로 조성된 소나무숲, 해안선을 침범하지 않은 상업 시설 등 휴양 해변으로서 썩 괜찮은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해수욕장 주변은 곧 시작될 피서철을 대비하는 정비 공사가 한창이었다. 명사십리 모래사장에는 벌써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와 해질녘 서해 감성에 빠져있는 연인의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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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선 끝부분에 이르자 붉은 꽃밭이 눈에 들어왔다. 해당화다. 데뷔 60년을 맞았다는 가수 이미자 선생의 대표 적인 히트곡 가운데 하나인 ‘섬마을 선생’ 가사에 등장하는 해당화는 매우 우아한 꽃이다. 활짝 벌어진 꽃잎과 그 중앙에 올라와 있는 노란색 암술, 수술의 색깔 대비에서 한복의 치마저고리를 연상했다. 해당화는 5월부터 7월까지 꽃을 피우는데, 색깔이 곱다고 만지거나 꺾는 일은 삼가는 게 좋다. 꽃잎은 예쁘지만 꽃대에 작고 단단한 가시들이 촘촘하게 있어서 자칫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장미과에 속하는 해당화의 꽃말은 ‘이끄시는 대로’이다. 해당화 꽃밭 뒷편에 있는 선유3구에는 작은 포구와 등대, 방파제가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망주봉의 모습은 앞에서 바라보는 것과 또 달랐다. 방파제 끝에는 붉은색 등대가 서 있다. 여행 당시엔 그저 평범한 등대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기도하는 손’의 모양을 한 ‘기도 등대’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등대 앞으로 크고 작은 배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고기 잡는 어선, 여행자들을 가득 실은 유람선, 낚시 다녀오는 작은 배들도 보였다. 선유도 일대의 대부분 포구에는 유람선 승선장이 있다. 고군산군도를 바다에서 바라보며 도는 배들이다. 공식적인 승선요금이 있지만 미리 전화를 하면 조금 깎아주기도 한다. 선유도 남쪽에는 옥돌해변과 해변데크 산책로가 있다. 선유도 명사십리해수욕장에 비해 조용하고, 한적한 느낌이다. 물론 피서철이 되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해변데크 산책로는 선유도 여행에서 꼭 걸어볼 만한 길이다. 바다를 끼고 걷는 느낌이 좋았고, 바로 앞에 둥둥 떠 있는 작은 무인도들의 모습도 예뻤다. 한 바퀴 천천히 걷는데 걸리는 시간은 20분 남짓으로, 사진을 찍고 사색하며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한 거리다. 그 길 초입에 있는 옥돌해변은 작고 귀여운 해변이다.



▶날것의 느낌, 무녀도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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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도 갯벌체험장, 무녀도 오토캠핑장, 무녀도초등학교
선유대교를 건너 무녀도에 갔다. 선유도와 붙어있는 섬이지만 선유도와는 확연히 다른 여행지이다. 무녀도에는 오토캠핑장이 있다. 선유도와 장자도에서 볼 수 없는 규모의 시설이다. 오토캠핑도 가능하고 캠핑장에서 설치한 카라반 숙박도 가능하다. 캠핑장 바로 앞에는 무녀도초등학교가 있다. 작은 섬에 있는 초등학교라 넓은 운동장, 작은 교실 건물 등을 상상하고 교문 앞까지 가 보았는데, 학교 건물도 작고, 운동장도 아담했다. 섬마을 초등학교는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한편으로는 ‘폐교’가 걱정되기도 한다. 무녀도 또한 인구절벽시대를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1952년 전쟁 중에 문을 연 이 학교는 개교 67년을 맞고 있는데, 올 2월15일 졸업식 때 단 한 명의 졸업생에게 졸업장을 수여했다고 한다. 현재는 유치원생 세 명, 초등학교 2학년 한 명, 3학년 3명, 4학년 한 명, 5학년 한 명, 그리고 6학년도 한 명뿐이다. 전체 학생 수가 10명인 것이다. 학교 관리자도 교장선생님, 초등학교 선생님, 유치원 선생님 등 교사가 9명이고 행정실장, 주무관, 교무실무, 돌봄 전담, 시설관리 등 행정 직원이 다섯 명, 해서 교직원이 14명이다. 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갑자기 무녀도 사람들에게 정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무녀도 오토캠핑장에서 10분 정도를 걸으면 갯벌체험장이 있다. 바다가 갈라지는 해변이다. 썰물 때 갯벌이 드러나면 동네 어부가 먼저 들어가 그물에 걸려있는 고기들을 걷어오고, 오토캠핑장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갯벌 체험 행사도 진행된다. 갯벌을 따라 들어가면 저 멀리 선유도 망주봉이 보이고 무능도에 입도할 수도 있다. 무녀도에도 작은 해변이 있다. 벌구미해변이 그곳이다. 역시 호젓한 해변이다. 무녀도는 날것의 느낌이 강한 섬이다. 캠핑장이 있고 광활한 갯벌에서 채취 체험을 할 수 있는 게 그렇고, 해안선에서 보이는 다소 거친 바다가 주는 감성일 것이다.



▶새만금과 고군산군도를 이어주는 높은 섬 신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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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도, 마음도 날카로워지는 대각산 등산로
신시도는 새만금방조제 중간쯤에 위치한 섬이다. 방조제를 건설하면서 신시도를 가운데에 넣은 것은 신시도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리라. 또한 신시도에 길이 연결되면서 고군산군도는 육지와 한층 더욱 가까워졌다. 일박 이일의 고군산군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신시도 대각산에 올랐다. 시간상 다소 무모한 발길이었지만 이 높은 산에 올라 고군산군도와 새만금 전체를 조망하고 싶었다. 대각산은 해발 187m로, 숫자만 보면 만만해 보이는 높이이지만, 결코 쉬운 곳이 아니었다. 대각산은 각진 돌산이었다. 그냥 바위산이 아니다. 등산로가 주상절리를 눕혀놓은 것 같은 ‘돌길’이다. 이거야 원… 까딱 잘못해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 부상을 입을 것 같은 생각에 마음도 날카로워졌다. 대신, 초긴장 상태로 한 걸음 한 걸을 내딛게 되는 장점도 있었다. 사실 대각산 정상까지 오르지는 못했다. 이제 서울 김포공항으로 달려가 제주도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거의 정상 근처의 봉우리까지만 올라가 고군산군도와 대각산 아래 몽돌해변, 새만금방조제도로와 그너머 야미도, 군산시 등을 보고 내려왔다. 첫날 처음 올랐던 대장봉에서 본 고군산군도와 대각산 봉우리에서 보이는 고군산군도는 달랐다. 고군산군도 하면 그저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등을 떠올리지만, 군도 여행은 이제 시작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글과 사진 이영근(여행작가) 사진 안동수(다큐PD)]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4호 (19.06.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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