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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매거진의 디자인적 부활 『라이프』

입력 : 
2019-06-26 11: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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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잡지의 폐간 소식에 가슴을 치던 이들에게 전하는 단비 같은 소식이 있다. 제호와 매거진에 실린 역사적 사진들을 부활시키는 디자인 프로젝트 이야기다. 무려 그 잡지는 『라이프』다.

사진설명
1, 빨간 네모 상자를 배경으로 산세리프체로 앉혀진 LIFE 제호를 현대적으로 디자인에 적용한 제품들 2,3 『라이프』의 사진을 활용해 디자인한 티셔츠 콜렉션 4. 1936년 첫 호를 장식한 마가렛 버크-화이트의 흑백 포트 펙 댐(Fort Peck Dam) 사진을 시작으로 처칠, 마릴린 먼로 등 유명 인사의 인상적 모습이 등장했던 표지들


『라이프』는 미국에서 1936년에 창간한 비주얼 위주의 시사 잡지다. 시각 언어가 인간에게 얼마나 강렬한 메시지를 주는지 온몸으로 증명해 냈고, 특히 한 컷의 사진에서 오는 감흥은 메시지를 넘어 인간의 감성을 주무르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것마저도 알려주었던 위대한 매체다. 이전까지의 시사 잡지가 갖추고 있던 틀(사실과 비평으로 촘촘히 채운 글이 중심이고 사진은 이를 뒷받침하는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을 깨고 박진감 넘치는 사진과 세심한 인쇄술을 우선해 잡지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포토 저널리즘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대중에게 역설했던 기간은 약 71년. 안타깝게도 2007년 인쇄 잡지의 폐간을 맞았다. 매주 1350만 부를 판매했던 위대한 기록과 1000만 장의 오리지널 필름을 보유한 이 위대한 잡지의 발행이 중단되었을 때, 전 세계 마니아들은 더 이상 ‘사진가들이 심장을 내걸고 찍은 시사적 사진’을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가슴을 쳤다. 오죽하면 영화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나왔을까. 2013년. 영화에서 주인공 윌터(벤 스틸러)는 마지막 지면 잡지의 표지 사진을 구하기 위해 일생일대의 모험을 떠난다. 그에게, 아니 독자들에게 『라이프』의 표지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2019년, 『라이프』 아카이브에 잠자고 있는 사진들과 그 제호가 거리를 활보하게 되었다. 그 시작은 한국이다. 링크인터내셔널에서 그 유명한 『라이프』의 로고와 사진 아카이브를 패션 아이템에 입혀 되살려 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역사를 되살리는 현대적 디자인 프로젝트다. 우리에게 각인된 역사적 사진, 붉은 박스 안에 담긴 화이트 산세리프체의 ‘LIFE’ 로고는 티셔츠, 힙색, 에코백, 캡, 트렁크, 파우치 등 실용적인 물건에 실려 오히려 더더욱 모던하게 변모했다. 좋은 소스를 활용한 감각적 디자인의 힘이다. 힘 있는 로고와 사진을 강조하기 위해 제품 디자인은 되도록 단순하게, 여백을 살렸다. 중성적이면서 도시적인 스트리트 감성도 짙게 묻어난다. 대중에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 ‘즉 합리적 가격, 실용적인 아이템, 생활에 꼭 필요한 제품’ 같은 요소를 적절히 안배한 제품 전략은 디자인 언어가 간명한 것만큼 중요한 브랜드 전략이다. 71년 동안 『라이프』라는 매체가 추구하던 이상과 같다.

『라이프』의 시작은 놀랍도록 강력한 시각 언어에 대한 꾸준한 믿음이었다. 반대로 지금은 일상적 시각 언어의 춘추 전국 시대다. 의미를 크게 담지 않은 사진들을 벗하며 살아가는 시대다. 이 같은 휘발성 시각 언어가 아니라 소장 가치 있는 시각 언어를 소유하고 싶은 이들에게 『라이프』 아카이브의 디자인 작업은 의미가 있다. ‘오래된 것을 현재의 것으로 이어 가기, 현대적인 시각으로 옛것을 재해석하기, 그러기 위해 지금의 라이프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에 적용하기’가 기본이다. 하루에도 수만 개의 시각 콘텐츠에 둘러싸여 사는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 주어진 메시지다.

[글 한희 (문화평론가), 사진 『라이프』 아카이브]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5호 (19.07.0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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