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문화

‘팬츠드렁크-하다’ 나만을 위한 시간, 팬츠드렁크

입력 : 
2019-06-26 16:34:01

글자크기 설정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은 영원한 판타지와 같다. 그곳에서 날아온 또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바로 ‘팬츠드렁크(Pantsdrunk)’를 소개한다. 지난해 한 핀란드 기자의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며 알려진 트렌드로, 직역하면 ‘속옷을 입은 채 술에 취하다’ 정도가 될 이 단어에 대해 저자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되돌아가는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사진설명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게 각박하고 척박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침이면 천근만근 무게의 몸을 이끌고 생계를 위한 비용을 벌기 위해 직장으로 향한다. 남의 돈 벌어 배 속을 채우기가 참 쉽지 않다. 어떤 위치에 있든 갑과 을 등으로 구획되는 계급이 존재하고, 그 수직 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도 꽤 버거울 때가 많다. 봉준호 감독의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이 잘 보여 준 계층의 문제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개인에게는 힘겨운 삶의 무게다. 하지만 삶은 지속되어야만 한다. 스스로 계급이 어떻든, 또 계층에 관계없이 주체로서의 ‘나’라는 인간은 행복해져야만 한다. 아니, 우리는 그렇게 행복해지기 위해 짊어진 사회적 무게를 버텨 내고 있다. 살아가는 것이 고달플수록 개인은 행복한 삶에 대한 판타지를 머릿속 또는 가슴속에 품는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어쩌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힙하고 핫한 도시임에 틀림없다. 이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단순한 오리엔탈리즘에 근거한 동경의 도시가 아닌, 전 세계에서 쿨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오고 싶어하고, 또 살고 싶어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사는 우리들은 또 다른 국가 혹은 도시에 대한 환상을 가득 품고 살아간다.



사진설명
▶북유럽 국가의 라이프스타일을 향한 판타지

그런 판타지가 착륙한 곳은 꽤 많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네 라이프스타일 속에 하나의 동경으로 자리한 건 아마도 북유럽 국가들의 주요 도시가 아닐까 싶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피어오른 ‘라곰’에 관심을 기울이고,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날아온 ‘휘게’에 주목한다. 꼭 북유럽이 아니어도 가까운 일본 도쿄의 ‘소확행’에도 눈을 돌린다. 사실 이런 국가와 도시에서 산출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한결같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 속에 속한 ‘나’를 중심으로 한 삶만큼은 행복해야 한다는, 언뜻 보기에도 꽤나 이기적 욕망에서 도출된 삶에의 욕심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형편에 만족하며 간결한 생활을 하려 노력해 보고, 근사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난로 앞에서 코코아 한 잔으로 마음을 다스려 보려 한다. 심지어 동네 빵집에서 풍겨 나오는 향긋함에 취하며 스스로 행복하다고 최면을 건다. 이에 대해 결코 비판적 시선을 견지할 필요는 없다. 이야말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현실에 만족하기 위해, 적대적으로 피어 오르는 욕망을 억압하기 위한 방어 기제로서의 라이프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은 그곳에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더라도 꿈꾸는 판타지가 되어 가고 있다. 사실 필자조차도 북유럽 도시에 가 본 적은 없다. 굳이 가 봤다고 한다면 서유럽으로 넘어가기 위한 비행편이 잠시 머문 핀란드 헬싱키 공항 내부가 다였으니까. 그런데 말이다. 미디어를 통해 섭렵한 북유럽은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꽤 많아 보이는 곳이 아닐까 싶다. 그곳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문의하면 곧장 답이 온다. “서울만 한 곳이 없어. 여기는 심심해 미칠 지경이야!”라고 말이다. 한결같다. TV 예능 프로그램인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핀란드 또는 스웨덴 청년들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반응만 봐도 그렇다. 그들이 사는 공간에서는 할 게 너무 없어 별장과 호수에서 시간을 때우고, 너무 빨리 저무는 태양 탓에 너무 이르게 찾아오는 저녁이 길어 하릴없이 술을 마신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은 그들에게 휘황찬란한 꿈의 도시처럼 비춰진다. 전 세계의 메가 시티 중에서도 서울은 낮과 밤의 구분이 크게 없이 언제나 깨어 있는 도시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필자가 현재 이 지면에 전하고 있는 북유럽에 대한 인상이나 서울에 대한 이미지는 그래서 음과 양의 야누스적 양면성을 띤다. 일단 ‘너무 심심하다’는 건 반대로 너무 여유롭다는 장점을 지닌다. 낮과 밤 모두 깨어 있다는 도시적 특성은 반대로 쉴 틈 없이 움직여야 살아갈 수 있다는 단점을 뜻한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편성하는 개인, 즉 주체의 의지에 달려 있다.

우리가 그토록 좋게만 바라보며,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적 지표로까지 삼고 있는 북유럽 국가의 도시적 삶 역시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할 필요는 있다. 마이클 부스의 저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이 어쩌면 그 냉정함을 유지시켜 줄 텍스트가 되지 않을까. 이 책은 국가가 제공하는 완벽한 복지의 품에서 살아가는 북유럽 국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자살률이 높은지 잘 알려주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완벽’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일 뿐이다. 거의 완벽에 가깝게 설계된 복지 제도 속에서 그들의 ‘워라밸’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조금 더 살펴보면, 우리에게 왜 북유럽 판타지가 형성되었는지를 이해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북유럽에서 파생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서울을 비롯한, 도쿄, 런던, 파리, 뉴욕 등 메가 시티즌에게 동경의 대상이 된다는 것 또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바쁘면 바쁠수록 인간의 스트레스 지수는 증가하고, 모든 것을 집어치워 버리고 만끽할 수 있는 여유를 찾는 게 당연지사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 최소한의 일을 하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만드는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은 여전히 전 지구적 트렌드의 중심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속옷을 입은 채 술에 취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그곳에서 전파되고 있는 트렌드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휘게 라이프에 맞추어 코코아 판매 매출이 갑자기 증가하기도 했고, 라곰 라이프의 실천을 위해 대단히 금욕적인 라이프를 설계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본의 소확행은 각종 SNS의 메인 해시태그로 자리매김했다. 그냥 자신의 생활에 조금이나마 행복감을 전했다면 그게 다 휘게고, 라곰이며, 소확행이 되던 트렌디한 삶을 자처해 왔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게 다 ‘인싸’가 되기 위한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나마 자신의 삶을 포장해야 각박함을 잠시나마 떨쳐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북유럽에서 날아드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용어는 당분간 지속적으로 우리네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은 틀림없다.

사진설명
이런 중에 스웨덴, 덴마크를 넘어 또 다른 최대 복지 국가 중 하나인 핀란드의 라이프스타일 중 새로운 단어가 눈에 띈다. 바로 ‘팬츠드렁크(Pantsdrunk)’라는 해괴망측한 키워드다. 우리는 핀란드에 관해 여러가지 정보들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나라’,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 ‘세계에서 가장 교육 제도가 우수한 나라’ 등등. 각종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핀란드를 접한 당신은 이 중 하나라도 부정할 수 없을 테다. 지표적으로 정확한 표현이니 말이다. 심지어 2018년 UN 세계 행복 보고서가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까지 꼽았으니 더 이상 반박할 여지가 없다. 우리에게 핀란드 헬싱키에 대한 판타지는 일본 여성 영화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의 2006년작 ‘카모메 식당’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때부터 우리에게 형성되어 왔음이 틀림없다. 그간 조금 더 부강한 국가처럼 보이는 스웨덴과 덴마크가 판타지의 정점에 있어, 핀란드는 살짝 소외된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핀란드는 교육, 경제, 복지, 문화 등의 전 분야에서 한국의 많은 부분에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로 자리매김해 왔다. 물론 이는 마케팅을 근사하게 잘 해낸 핀란드 관계자들의 노력도 있을 것이다.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테리어 등에서 북유럽 스타일이 우선시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의자 하나, 조명 하나를 선택하려 해도 그곳 태생 디자이너들의 많은 것들이 시안으로 삼아지니 말이다.

이런 작은 국가가 현재 가장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 하나를 전했으니, 그것이 바로 앞서 말한 ‘팬츠드렁크’다. 사실 이 라이프스타일은 굳이 정의를 해서 그렇지 우리 모두가 언젠가 한번쯤은, 혹은 지속적으로 실천해 오던 삶 속의 한 행위일 뿐이다. 동시에 이 단어가 책으로 소개되면서 종종 SNS 키워드로 도출되기도 하다. 팬츠드렁크는 핀란드 일간지 기자던 미스카 란타넨의 저서 『팬츠드렁크』에서 최초로 알려졌다. 2018년 연말께 이 책이 번역되면서 많은 이의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핀란드 사람들이 행복한 진짜 이유가 다름 아닌 팬츠드렁크에 있다고 말한다. 이 용어의 뜻을 정의해 보자면, ‘편한 옷차림으로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핀란드 문화다. 어원은 핀란드어 ‘칼사리캔니(Kalsarikanni)’인데, 앞의 ‘칼사리’는 속옷을 뜻하고, ‘캔니’는 취했음을 뜻한다. 분명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어가 아닌가? 한국의 우리에게는 ‘혼술’이라는 문화가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 생활 방식은 핀란드인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고, 매일 밤 그들의 행복을 책임진다고 한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직후 세계 유수 언론은 휘게와 라곰을 이을 새로운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이라며 떠들어 댔다. 그 결과로 한국에도 팬츠드렁크를 실천하려는 이들로 들끓고 있다. 삶의 소확행 중 일부로 팬츠드렁크를 실천한다는 의미다.



사진설명
▶술, 팬츠와 함께하는 ‘혼자만의 시간’

사실 ‘혼술’에 대해 우리는 일정 부분 부정적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대단히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지만, 결국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신다는 것은 사회생활이 원만하지 않은 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 ‘혼술남녀’도 있었듯, 동시에 대단히 개인화된 라이프스타일 시대에 접어듦에 따라 혼자 먹고 마시는 행위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은 상당히 줄었다. 더욱이 불경기 혹은 불황이라는 경제적 혼돈의 세월이 지속됨에 따라 ‘함께 먹고 마신다’는 행동 자체가 불편한 시대 역시 도래했다. 이런 결과로 우리에게 ‘팬츠드렁크’는 이제 주요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된 셈이다.

‘팬츠드렁크-하다’는 문장은 첫 번째로 ‘어디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가장 편안한 옷차림으로 혼자 술을 마신다’는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두 번째로 ‘현재의 순간을 온전히 즐기며 몸과 마음을 쉬게 한다’가 된다. 마지막으로 이것을 한다는 건, ‘지금, 가장 트렌디한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을 즐긴다’를 뜻한다. 한국 사회에서 트렌드를 추구하는 삶은 그 누구보다 앞서 나간 인싸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팬츠트렁크 하는 행위는 우리네 가슴속에 판타지로 자리한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을 한발 앞서 실천하는 트렌드세터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재 팬츠트렁크는 많은 SNS에서 파자마 업체의 광고 콘셉트로도 많이 인용되고, 스스로의 삶에서 여유를 찾으려는 이들이 복잡한 관계 후 모든 것을 내려 두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해시태크로서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내일을 준비하는 또 다른 의미 있는 행위이기도 한다. 과거 우리는 사회생활의 연장선상에서 술자리를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폭음은 마치 전염병처럼 번졌고, 어느 순간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은 능력 있는 사람의 영웅적 행위로 인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와 세대가 변화함에 따라 이 같은 음주 문화는 구시대적 유물이 되었다. 술을 권하는 시대는 저물었고, 술을 즐기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래서 다양한 술의 종류가 우리 곁에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 많은 알코올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는 현명하게 자신에게 맞는 카테고리를 선택하고 음미하는 방식으로 문화가 변화했다. 그래서 팬츠드렁크는 무작정 술을 마신다기 보다는 고달픈 삶 속에 잠시나마 스스로를 위로하고 정리하는 중요한 시간 활용의 한 사례가 되고 있다.

다시 미스카 란타넨의 책 『팬츠드렁크』로 돌아가 보겠다. 저자는 팬츠드렁크를 ‘있는 그대로의 나로 되돌아가는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동시에 오로지 술을 마시기 위한 시간으로서 팬츠드렁크를 활용하지 않고, 자신의 취미와 함께 곁들여지는 음주 문화로서의 팬츠드렁크를 강조하기도 한다. 앞서 팬츠드렁크의 의미 확장에서 보았듯, 미스카 란타넨은 꼭 집뿐만 아니라 좋은 환경, 좋은 공기, 좋은 자연과 더불어 실천하는 팬츠드렁크에 대해서도 말한다. 책의 말미에는 ‘술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팬츠드렁크’를 덧붙인다. 음주는 이성적 사고를 방해할 수도 있음을 강조하고, 술 마시는 중 주의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당부하는데, 이를 통해 혼술이 술이 목적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의 또 다른 확장임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셈이다.

필자의 경우 음주는 신체적 반응에 의거해 피해야 하는 행위 중 하나다. 한마디로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이런 나의 술에 대한 (건강상의) 거부는 과거 직장 생활 중 약점으로 꼽히기도 했다. 당시 많은 기자 및 에디터 선배들은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나를 비아냥거리기 일쑤였다. 마시고 싶어도 마시면 몸이 힘들어지는 걸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좋은 사람과 대화하며 마시는 맥주 한 잔은 되려 약이 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퇴근 후 아무도 없는 집에서 좋아하는 바이닐 레코드 한 장을 플레이어에 걸어 두고, 그 음악 소리와 함께 시원한 맥주 또는 향긋한 와인 한 잔을 곁들일 때의 행복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순간만큼은 야단법석의 우주 속에 홀로 고독을 즐기는 어린 왕자 기분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찰나가 될 수 있을 이 시간은 현대인에게 상당히 소중하다. 이 시간이 지나자마자 곧장 또 다른 전쟁터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그렇다. 현대의 많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점차 미시적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음을 이번 팬츠드렁크에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라곰, 휘게, 소확행 등은 굉장히 거시적이며 포괄적 범주에서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이것이 대단히 정서적인 어떤 것이었다면 팬츠드렁크는 꽤 실천적 카테고리의 최전방에 있는 트렌드다. 동시에 꼭 술이 아니어도 내 삶 속에서 소소한 여유와 함께 행복을 전하는 주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 소중함을 한번 직접 경험해 보는 건 어떨까?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5호 (19.07.02)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