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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레시피-리더는 ‘판관 포청천’이 아닌 조력자다!

입력 : 
2019-06-26 17: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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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리더들은 ‘나는 팀원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자주 식사를 같이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회식도 하기에 소통은 충분하다’고도 판단하다. 순전히 공급자 위주의 생각이다. 젊은 사원들이 원하는 소통은 회식이나 점심식사, 월례 행사 같은 판에 박힌 회식, 가끔의 커피 타임이 아니다. 그들은 ‘상사는 상사답게’ 해 주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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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통? 관계 유지, 증진, 개선에 중요

‘굿피플’이라는 인턴십 TV 프로그램이 있다. 로펌에 인턴으로 들어간 8명의 예비 법조인들이 현장에서 뛰는 변호사들과 멘토-멘티가 되어 과제를 풀어 나가는 방송이다. 방송이라는 한계가 분명 있지만 여기서도 멘토들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그야말로 인턴들이 궁금해하는 점을 콕 집어 가려운 곳을 정확하게 긁어 준다. 멘토 한 명에 멘티 두 명이 짝을 이루어 4개 팀이 있는데 각기 다른 성향을 보이지만 멘토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첫째, 길게 설명하고 많이 가르치지 않는다. 간결성이다. 법을 다루는 프로그램이지만 멘토들은 설명조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단어, 문장, 맥락, 메시지를 간단하지만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 설명한다. 멘티들에게는 단시간에 선배들의 많은 노하우를 전수받는 기회다.

둘째, 핵심만 짚어 내고, 항상 멘티 입장에서 말한다. ‘공급자 위주’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잘 설명해도 받아들이는 수요자의 수준, 입장,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입식 교육은 비효율적이다. 수요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교육하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다.

셋째, 실수는 정확하게 단 한 번 지적하고 대신 장점을 찾아내 용기를 준다. 멘토 역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실수는 누구나 다 한다. 하지만 그 실수가 계속 반복되지 않게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수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의 지적은 오히려 실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의 기피로 연결된다. 그리고 단순히 ‘너는 할 수 있어’ 식의 용기백배 단어보다는 ‘너는 핵심을 잘 파악하는 장점이 있어. 이제 그것을 바탕으로 전체 형식을 구성하는 것만 보완하면 완벽해’ 정도의 가르침이 사실 ‘윗사람’의 자세다.

지금 방탄소년단이 화제다. 현재 이 일곱 명의 아름다운 청년들이 만들어 내는 기적 같은 행보는 단군 이래 한국이 전 세계로부터 최고의 문화적 관심과 집중을 받게 했다. 속물 근성으로 그들이 1년에 얼마를 벌고, 향후 각자 ‘청년 재벌’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해 보지만 사실 이들이 흘린 ‘피, 땀, 눈물’이 밑거름이 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들의 성공에 대한 많은 분석과 리포터, 강연이 수도 없이 쏟아지고 있다. 그중에서 ‘아미’라는 막강한 팬덤의 영향이라는 분석도 있고, 그들이 일관된 스토리텔링으로 동시대 젊은이들의 사랑, 희망, 꿈, 자기애를 강조한 것도 성공 요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BTS가 줄기차게 외치는 ‘사랑’은 만국의 모든 이와 통하는 언어이기에 BTS의 가치와 영향력은 더욱 단단해지고 넓어질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요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만의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BTS는 ‘홍보’가 아닌 ‘소통’을 했다는 점이다. 일방적으로 ‘우리는 어떤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무엇을 추구한다’는 알림보다, 사소한 일상부터 피땀 흘리는 연습 과정 그리고 동시대를 같이 하는 ‘아미’들과 하나의 목표를 갖고 만들어 낸 ‘스토리 공유’가 사실 BTS의 성공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소통을 이야기한다. 가정, 선후배 그리고 직장에서도. 마치 소통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말이다. 소통은 분명 쌍방이다. 관계에서의 일방은 소통이 아닌 명령과 지시다. 물론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이고, 속도전에 더 어울리는가에 대해 이견은 있다. 하지만 소통은 관계의 유지, 증진, 개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직장에서의 소통은 더할 나위가 없다. 직급이 있고 그 직급에 따른 권한과 책임의 크기가 각각인 것이 직장의 특성이지만 마치 ‘군대’와 같은 일사불란한 명령 체계를 직장들이 유지한다면 개발 지상주의 시대의 유물일 것이다. 꽤 오래 전부터 한국의 직장에서도 ‘소통’을 강조하고, 시도하고, 심지어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 하지만 소통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진정한 소통인지,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공유된 개념은 뚜렷하지 않은 것도 현재 직장인들의 현실이다.

요즘 ‘상사 시집살이보다 부하 직원 눈치 보기가 더 어렵다’는 이야기도 고참 직장인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빠지지 않고 나오는 레퍼토리다. 그만큼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와 그 전 세대 간의 의식, 가치관, 직장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에도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써 있을 정도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는 바라보는 지점도, 높이도, 관심도 다르기 때문이다.

모 광고 회사에 다니는 K부장도 그런 고민에 휩싸여 있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가치관을 공유하는 이들이 모였다는 광고 회사지만 K부장은 “직원들이 나를 대하는 것이 지극히 형식적이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어느 날부터는 나에게 개인적인 고충은 물론이고 회사에서의 문제도 상의하지 않는다”고 걱정한다. 물론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일에 있어서도, 개인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자신이 다가가려 하면 부하 직원들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는 것. 그는 “항상 그들의 언어와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젊은 문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회식도 자신보다는 젊은 직원들을 위해 루프톱에서 칵테일 파티로 하는데…”라고 한다. 그러면서 회사에서는 승진이나 부장단 이상의 인사 고과에 부서원들의 리더십 항목이 있어 그 부분이 은근히 신경 쓰인단다.

K부장은 동료인 M부장에게 이를 상의했다. 입사 동기로 누구보다 K부장의 성격, 업무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M부장은 K부장에게 아주 솔직히 상담해 주었다. 문제점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K부장의 과잉 의욕이었다. 즉 부서원들이 K부장에게 자신의 문제와 고민을 상담하면 K부장은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가르쳐 주려는 의욕이 앞선 것.

즉 이런 기본 마음 자세에서 시작된 상담은 ‘항상 바르고 정답인 옳은 것을 알려주겠다’는 태도를 유지해 부서원들은 오히려 이를 부담스러워한 것이다. K부장은 소통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부서원들은 ‘역시 부장은 가르치려고 하고 지시하는 스타일이야’라고 여기고 그와의 소통을 중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팀장급 이상만 되어도 팀원이나 부서원들을 어떻게 통합하고 소통하며 최상의 성과를 내는가는 최대 과제다. 그 방법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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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시자가 아닌 조력자가 되어라

얼마나 궁금한 것이 많겠는가? 당신도 회사에 입사했을 때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고 어색했을 것이다. 복사기 하나 쓰는 것도, 또 몇 층에 어떤 부서가 있는지도, 부장님이 들어올 때, 말을 시킬 때 앉지도 서지도 못한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게 되고, 처음 식사 자리에 가서 무엇을 시킬지, 물을 따르고 냅킨을 꺼내 수저를 공손히 놓아야 하는 건지, 먹고 나면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퇴근 시간이 되었을 때 가도 되는지 눈치 게임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1년 혹은 몇 년이 지나도 윗사람 입장에서는 여전히 부족하고, 일이 서툴러 보이는 것이 당연한 노릇이다. 그럼 반대로 그들은 얼마나 많은 것을 당신에게 물어보고, 조언을 구하고 싶었겠는가. 그때, 그 순간에 당신은 어떤 태도로 그 궁금증을 풀어 주었는지를 반추해 보면 ‘과연 부서원들은 나를 진정한 리더로 여기는가’의 답이 나온다.

직장인도 똑같다. 일로 만나 성과로 평가 받는 곳이지만, 유난히 살갑고 자신의 고민과 갈등을 상담하고 싶은 ‘끌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리더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장이라는 권위 그리고 직급의 차이를 내세운다면 상사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명령하는 자가 아닌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어려운 일, 갈등을 일과 과정을 먼저 겪은 선배로서 지혜롭고 자연스럽게 풀어 주고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 주는 상사가 되어야 한다.

조력자는 말 그대로 ‘고민을 같이 하고 나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혹시라도 관계의 경계가 무너지면 부장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 고민하지 마라. 권위는 자리가 아닌 인격과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믿음이 만드는 것이다. 칼 같은 일 처리로 고위층의 신임을 받고 있는 부장이라도 위와의 소통에만 올인하고 아래로의 소통에 무심하다면 그는 분명 반쪽의 성공 열매만 취할 뿐이다. 조력자는 대가를 바라면 안 된다. 공명심을 내세우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자신의 역할을 강조한다면 ‘잘하고 욕먹는, 실속 없는 사람’이 될 뿐이다.

또 있다.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부서원들이 갖고 있는 현재의 문제를 가볍게 치부하는 듯한 말과 행동 또한 삼가야 한다. 그들에게는 ‘사표를 낼까’라고 고민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이를 ‘그거 별거 아냐. 선배들도 다 겪은 일이야. 신경 쓰지 말고 일에 집중해 봐’라는 조언은 용기를 내어 당신에게 상의한 후배에게 자격지심을 안겨 줄 뿐이다. ‘내가 별것도 아닌 것으로 투정한다고 여기나 봐’라고 생각한 순간 후배는 당신 앞에서 입을 닫을 것이다. 가벼운 태도나 농담처럼 대화를 이어 나가도 부하 직원은 다시는 당신에게 그 어떤 ‘지혜로운 경험’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3 ‘판관 포청천’이 되지 마라

이 세상 일에는 정답이 없다. 대신 수많은 변수와 상황 논리가 존재한다. 정답과 올바른 길을 알려주려는 ‘올바른 선배 강박증’에 사로잡히면 후배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판정하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특히 회사 업무에서의 고민은 더욱 그러하다. 서툴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실수를 정확하게 “결론적으로 조언하자면 박 사원이 업무를 숙지하고 있지 않아서야. 일단 업무에 대한 공부를 해봐. 머리와 몸에 박힐 정도로 해 보라고. 할 수 있어!” 현실적인 조언 같지만 이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정답이다. 박 사원이 선배, 혹은 리더에게 듣고 싶은 말은 실수를 벗어나는 방법이 아닌 그 실수가 ‘나만의 것이 아닌 모두 경험하는 통과 의례’라는 말일 것이다. 이는 박 사원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닌 리더가 하고 싶은 말만 한 케이스다.

후배가 리더인 당신에게 고민과 갈등을 털어놓는 것은 완벽한 해결책, 흑백 논리처럼 누구의 잘못에 대한 판정이 아니다. 그저 나와 같은 고민의 과정을 거쳤을 선배에게 듣는 ‘따뜻한 위로’인 것이다. 사실 후배는 당신에게 이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만능 키트 같은 ‘정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애초 정답이 있는 수학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업무는 상대가 있고, 그 상대의 뒤에는 또 다른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런 복잡한 연결 속에서 빚어지는 문제들일수록 정답은 없다. 이를 잘못 받아들여, 정답을 알려주겠다는 의욕으로 ‘판관 포청천’이 된다면 듣는 순간은 ‘똑 부러지는 묘안’ 같지만 ‘약발 없는 조언’일 뿐이다. 더구나 매뉴얼북 같은 조언에다 도덕 선생님 같은 충고를 곁들이면 이는 최악이다. 상대가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다 알고 있다’는 듯 중간에 말을 끊고 이런저런 잘잘못을 곁들여 냉철한 분석을 마치 ‘해결책’인양 꺼내는 것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후배 역시 나름 사회와 인간관계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직장인이다. 그에게 필요한 말은 “나도 다 겪어본 일이니까. 내 말대로 해봐”가 아닌 “네 고민을 이해할 수 있어. 내가 부장으로서 가르치는 말이 아니고 선배로서 네가 이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조언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어”라는 화법이 더 필요하다. 박 사원은 당신을 ‘판관 포청천’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이야기할 ‘끌리는 상대’라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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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회의는 모두의 의견을 듣는 자리다

회의의 목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회의는 말 그대로 모두의 의견을 듣고 결론을 도출하는 자리다. 한 사람의 ‘투 머치 토커’가 필요한 자리가 아니다. 당신이 리더라면 어떤 방식으로 회의를 하는지 복기해 보자. 먼저 회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은연중에 결론을 내는 것은 아닌지, 혹은 “모두 의견들을 내 보지”라는 말 정도로 회의의 자유로운 토론을 유도했다고 자족하지는 않는지. 이는 회의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자리다. 회의는 구성원 모두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

또 “나는 회의를 짧게 한다”고 주장하는 리더들도 있다. 그들의 속내에는 ‘내가 길게 해 봤자 잘 알아듣지도 못해’ ‘의견을 내라고 해도 별 이야기가 없어’라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들의 회의는 물론 짧게 끝나지만 그것은 거의 ‘명령과 지시’를 전체 부서원이 모인 가운데서 공개적으로 하는 자리일 뿐이다. 아무리 노련하고 유능한 리더라도 전체의 힘, 모두의 생각을 능가할 수는 없다. 공자께서도 “세 사람만 있어도 이 중 스승이 있다”고 설파하셨다. 부서원들의 독특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비록 완성되지 않은 날것의 생각이라도 이를 모아 구슬을 꿰는 것이 바로 리더의 몫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무시’다. 경력이 적다고, 능력이 떨어진다고 각자의 의견에 대해 듣자마자 판정을 내리는 것은 어쩌면 ‘모욕’이다. 비록 의견이 주제와 근접하지 않더라도 의견은 의견이다. 부서원들도 많은 회의와 대화 속에서 자신의 생각이 정리되고 이는 업무에도 반영되기 때문이다. 특히 공개적인 자리에서 “박 사원 생각은 주제와 동떨어진 것 같아. 지금 가을 신상품 기획 회의가 주제인데 이미 지난 봄 상품을 자꾸 얘기하네” 하며 타박한다. 박 사원도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을 짚어야 한다. 리더는 박 사원의 의견을 ‘봄 상품의 영업 수지를 통해 가을 상품 기획을 점검하자’는 것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럼에도 무시하는 말로 그의 의견을 자르면 그는 다음 회의부터는 아마도 입을 굳게 다물고 매번 ‘당신이 준 모욕감’만 곱씹을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당신의 의견과 지적이 백 번 맞다 하더라도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으면, 인간은 그 기억을 지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의를 길게 하는 것도 좋지 않다. 말이 많다는 것은 해서는 안 될 말, 굳이 필요 없는 말을 한다는 뜻이고, 이는 백 퍼센트 꼰대의 자랑스런 경험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못 알아듣는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설사 당신의 의견과 지시를 완벽하게 수용하지 못했다고 이를 그 자리에서 수학 문제 정답 풀이처럼 알려줄 필요는 없다. 다음 기회, 다음 회의에서 다른 방법으로 복습을 통해 학습한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케아에서 가끔 쇼핑을 한다. 무거운 포장 박스를 풀고 조립을 시작할 때 조립도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조립을 해 가면서, 어렵고 막힌 부분은 조립도를 다시 살펴보고 하나씩 조립을 완성해 가는 것이다. 회사 업무도 마찬가지다. 단번에 ‘알아듣는’ 부하 직원을 원한다면 AI센터에서 찾을 일이다. 당신도, 당신의 상사가 ‘척 하면 삼천리’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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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실수를 과감하게 받아들여라

누구나 실수를 한다. 직장에서의 실수는 대개 사소한 것이 많다. 근태, 보고서 제출, 거래처 연락 등등이다. 물론 이런 것들도 쌓이고 상사의 눈에 자꾸 밟히면 결코 좋지 않지만, 몇 백억 원의 손실을 가져오는 치명적 실수에 비하면 사소하다는 뜻이다. 직장 생활에서 의도적인 실수는 없다. 만약 의도적 실수를 반복한다면 이는 ‘밀접 면담’이 필요한 사원일 것이다.

부서원의 실수를 받아들이는 상사의 유형은 각가지다. 절대 용납하지 못하고 분노 게이지를 위험 수위까지 올리는 상사도 있고, 실수인지도 모르게 슬쩍 넘어가도 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무심한 상사도 있다. 하지만 실수는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서 꼭 밝혀진다. 직장은 기록의 문화다. 어떤 일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결과는 항상 문서화된다. 그것이 꼭 누군가를 문책하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책임 소재’는 분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수는 그 실수를 범한 당사자가 제일 잘 안다. 이때 유능한 리더는 그 실수의 다음 순서를 생각해야 한다. 실수를 덮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만회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실수를 지적하고, 문책하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렇게 실수를 해결하고 실수를 한 사원의 반응을 체크해 보는 것이 좋다. 실수를 한 직원들은 자괴감, 두려움이 있다. 이러한 반응들은 향후 그의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다시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 업무 자체에서 도망가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리더는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그 실수로 인한 파장은 팀과 리더가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직장은 반복 학습의 장이다. 실수가 실수를 낳는 것이 아니라, 실수가 명쾌한 해결책을 낳는 동기가 되어야 한다.

아량 있는 리더라면 부서원의 사소한 실수는 한 번쯤 눈 감아 줄 수 있어야 한다. 가르쳐 준다는 생각이 앞서 지적하고, 다시 일을 시키고, 또 지적하는 것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게다가 비슷한 실수를 다른 부서원이 했을 때 그 전의 실수까지 꺼내어 지적하는 것은 부서의 분위기를 ‘차라리 욕먹을 바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복지부동’으로 만드는 셈이다.

실수를 알려주는 방법도 중요하다. 이때는 공개적인 자리가 아닌 1:1 면담에서 아주 짧게 실수와 그 솔루션을 같이 말해 주는 것이 좋다. 부서원은 리더와의 면담 자리에서 하나를 지적당하는 기분이지만 또 다른 업무 노하우를 하나 더 얻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규칙을 보면 신뢰받는 리더가 되는 것은 믿음직한 부하 직원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직장에서 모두의 마음을 얻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건 목사님, 스님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물론 전제 조건이 있다. 공평해야 한다.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고 일에 대한 성과와 문책에 선입견이나 호불호를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

존중해야 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다. 몇 마디 말에서 사람들은 말 주인의 인격, 능력도 간파하기 때문이다. 경력이 적다고, 나이가 어리다고, 직급이 낮다고 무조건 반말부터 일삼는다면 실속 없는 리더일 뿐이다.

또 있다. 리더는 나보다 항상 팀이 먼저여야 한다. 나의 승진, 나의 인사 고과, 나의 공명심보다 우리 팀의 성과를 먼저 생각하는 리더에게는 자연스럽게 ‘충성스럽고 믿음직한’ 부서원들이 함께한다. 직장 생활. 쉽고도 어렵다. 이는 마음먹기 나름이다. 내가 상대를 먼저 존중하고, 겸손하고, 팀을 먼저 생각하는 부서를 만들면 된다. 어떻게? 당신, 즉 리더부터 그렇게 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글 박기종(커리어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5호 (19.07.0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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