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정지윤 기자

정지윤 기자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6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 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6월의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 속에 피워 낸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십시오

-산문집 <풀꽃단상>에서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는 장미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장미의 기도’ ‘장미의 기쁨’ ‘장미를 생각하며’ 등 장미를 주제로 한 시를 꽤 여러 편 썼습니다. 그 가운데 독자들은 ‘6월의 장미’를 제일 많이 애송하는 것 같습니다. 이 시는 6월에 핀 넝쿨장미를 보다 문득 떠오른 생각을 정리한 것인데 인간 관계의 어려움을 순하게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러브 레터식으로 표현되어 있어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수녀원에도 요즘 장미가 한창입니다. 하얀색, 노란색, 연분홍색, 빨간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장미만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장미의 향기도 향기지만 겹겹이 포개진 장미꽃잎을 볼 적마다 얼마나 신기한지요. 장미 묵주, 장미차, 장미 사진 모음집을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장미를 보면 장미꽃잎을 말렸다가 편지에 붙여 보내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새삼 그립습니다. 내가 장미를 좋아하는 걸 눈치 챈 한 동료 수녀가 내 작업실의 하얀 벽 한쪽을 색색의 마른 장미꽃잎들로 장식해 주니 오며 가며 눈여겨보는 기쁨이 있습니다. 평소에 장미를 좋아하던 엄마가 별세하자 영정과 관을 온통 장미로 장식한 어느 예쁜 독자에게 내가 직접 말린 장미꽃잎으로 위로 카드를 만들어 보내려 합니다.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이 구절을 일상의 삶에서 실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수시로 경험합니다. 며칠 전 강연장에서 나를 소개하는 분이 덕담이라고 해주는 말이 왠지 날카롭고 듣기에 따라서는 오해의 여지가 있어 내심 못마땅했습니다. 조그만 가시 하나가 마음에 돋아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얼른 방향을 바꾸어 안으로 침묵하기로 했습니다.

감정조절을 못해 가시돋친 말로 상대방을 찌르기보다는 그의 입장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쪽으로 순하게 마음을 길들이니 이내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가시 속에도 향기를 뿜어내는 장미! 장미의 아름다움을 예찬만 하지 말고 내가 삶에서 한 송이 장미가 되기로 선한 다짐을 해보는 이 아침, 장미를 닮은 고운 환희심 한 송이 피어올라 슬며시 웃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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