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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Citylife 제681호 (19.06.04) BOOK

입력 : 
2019-05-29 17: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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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오만과 편견’이 사라진다 『다시,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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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언 울프 지음 / 전병근 옮김 / 어크로스 펴냄
인지신경학자이자 아동발달학자 메리언 울프는 지난 10년간 ‘읽는 뇌’를 연구했다. 난독증 아이들을 연구하고, 인간이 글을 어떻게 습득하며, 글을 통해 미래 세대의 지적 발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그는 곧 인간의 뇌는 읽는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문해력은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 중 하나다. 6000년 전에야 인류는 문자 문화를 개화해 뇌에 새로운 회로를 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리언 울프는 6000년간 진화해온 ‘읽는 뇌’가 퇴보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디지털 문화로 인해서다. 우리 삶이 이를 증명한다. 스크린과 디지털 기기에 몇 시간씩 빠져 있다가 책을 집어들 때 집중의 질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읽기 능력의 퇴화로 인해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 심지어 인류 전체의 인지 능력에 큰 변화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읽는 뇌의 형성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깊이 읽기 과정이 형성되려면 몇 년이 걸리며, 꾸준한 숙련과정을 필요로 한다. 현대 사회의 큰 문제는 이 ‘깊이 읽기’가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읽기의 경험 속에서 일어나는 친밀한 감정을 “고독 속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비옥한 기적”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 읽기만으로도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력이 떨어진 독자들이 다수인 사회는 무지와 공포, 오해를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MIT 셰리 터클 교수는 지난 20년간 젊은이들의 공감 능력이 40%가 떨어졌다는 연구 결과를 알렸다. 그는 젊은이들이 온라인 세상을 항해하느라 현실 속의 대면 관계를 희생시킨 것이 공감 능력을 급감시켰다고 해석했다. 게다가 난독 사회는 민주 사회의 적이다. 영화와 영상은 독서만큼의 몰입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디지털 사슬의 대가는 크다. 디지털은 읽기에 있어 ‘경로의 감각’에 악영향을 끼쳤다. 알베르토 망겔은 ‘읽기는 누적되는 것’이라고 했다. 배경 지식이 없이는 깊이 읽기의 과정이 작동하는 빈도가 줄어 이미 알고 있는 것 바깥으로는 나가지 않게 된다. 정보 과잉의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쉽게 소화되고 밀도도 낮고 지적인 부담도 적은 정보들로 둘러싸인 익숙한 골방으로(SNS와 유튜브) 뒷걸음치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다. 140자의 트위터에 익숙해진 뇌가 150~300자에 달하는 프루스트의 문장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최신 베스트셀러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짧아지고 있으며, 대학생들의 글쓰기 실력도 퇴보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쉬운 정보에 중독돼 비판 능력이 퇴화한다면, 우리 사회도 퇴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출간 후 언론과 전문가들의 많은 찬사를 받은 책이다.

▶우주에는 우리만 있을까? 『침묵하는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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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데이비스 지음 / 문홍규·이명현 옮김 / 사이언스북스 펴냄
“우주에는 우리만 있을까?” 이 질문은 사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질문 중 하나다. 어떤 형태로든 이 질문에 답이 주어진다면,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화학 같은 기초 과학은 물론이고, 철학, 종교 등 인류 문명의 정신적 기초까지 크게 흔들릴 것이다. 그렇기에 이 위험한 질문에 프랭크 드레이크, 칼 세이건, 질 타터, 세스 쇼스탁 같은 기라성 같은 과학자들과 지성들이 매혹되는 것이다. 20세기 과학자들은 위험한 이 질문에 ‘전파 천문학’이라는 신기술을 들고 도전해 왔다. 세티(SETI), 즉 외계 지성체 탐색(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연구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세티 프로젝트는 내년, 즉 2020년이면 60주년을 맞는다. 폴 데이비스 애리조나 주립대 교수는 이제 환갑을 맞은 세티 프로젝트의 어제, 오늘, 내일을 살피면서, 세티 프로젝트의 과학적 방법론과 목적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 우주에서 우리 인류가 유일한 존재인지, 아니면 우주의 섬뜩한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명과 지성의 본질은 무엇인지 등을 근본적으로 탐구한다. 폴 데이비스는 생명과 지성의 탄생이 ‘우주적 필연’이라고 확신하기에는 생명과 그 진화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일천하다며, 생명과 지성이 필연적으로 우주에 넘쳐날 것이라는 세티의 낙관적 주장에 거리를 둔다. “우리가 외계 문명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생명과 마음, 문명과 기술의 본질은 물론,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우리의 고정 관념을 버려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글 김슬기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1호 (19.06.0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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