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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극장이 사라지는 시대-일상 속 극장 풍경

입력 : 
2019-05-29 17: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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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행위 자체가 많은 이에게 여가 생활이었고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력서에도 당당하게 ‘취미: 영화 감상’이라고 적었고, 그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극장을 찾는 총 관람자 수가 점차 줄고 있다. 이게 다 영화를 보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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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기 시절, TV에 외국인이 나오면 내 눈망울이 그리 초롱초롱해졌다고 했다. 부모님의 기억 속 나는 ‘토요명화’ 등에서 할리우드 클래식 영화가 방영되면 울음을 뚝 그치고 화면을 응시했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내게 있어 영화는 현재의 나를 만들어 준 스승이라 할 수 있다. (만화 영화, 아동 영화 등을 제외하고) 내 지갑을 열어 극장 티켓을 산 게 언제인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사실 이때의 장면이 명확하게 기억난다. 1986년, 그러니까 필자가 까까머리 중학교 1학년 시절, 왕년의 액션 스타였던 척 노리스가 주연을 맡은 ‘고등학생 이상 관람가’ 등급의 액션 영화 ‘델타 포스’였다. 괜히 입구에서 걸릴까 노심초사하며 극장 문을 들어서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각설하고 어린 시절부터 ‘영화관’ 혹은 ‘극장’이라 명명된 공간은 시골 촌구석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내가 유일하게 꿈을 꿀 수 있는 곳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영화에 대한 꿈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영화 동아리를 찾아 나섰고,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하면서 어쩌다 영화 전문 주간지 기자로 오랫동안 일을 했다. 극장은 내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생 공간’이었던 셈이다.

세월은 흘러 세상의 많은 것들이 급속하게 변화했다. 더욱이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변화도 일어났다. 과거에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행위 자체가 많은 이에게 여가 생활이었고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력서에도 당당하게 ‘취미: 영화 감상’이라고 적었고, 그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제 영화는 우리네 라이프스타일에서 (여전히 비중이 크긴 하지만) 부수적인 어떤 행위가 되었다. 또 굳이 극장에 가지 않아도 영화를 볼 기회가 많아졌고, 답답한 극장에서의 놀이보다는 더 다이내믹한 놀이가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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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미디어의 혼선 최근 보도에 따르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폭발적 흥행에도 불구하고 관객 수가 전년 대비 5.2% 감소했다고 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한국 영화 산업 분석 자료를 보면 “2019년 4월 총 관객 수는 전년 동월 대비 73만 명 감소한 1334만 명을 기록했다. 4월 전체 매출액은 전년 대비 65억 원(5.5% 감소) 줄어든 1132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명시했다. 사실 영화 관람객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이제 극장이라는 공간이 과거처럼 꿈의 공간이자 삶의 장소던 시대는 지나갔다고까지 예측할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차치하고, 영화와 극장이라는 범주 속에서만 살펴볼 필요도 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극장 상영을 하지 않고 자체 플랫폼에만 업로드되어 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화제가 된 바 있다. 몇 년 전 칸국제영화제에 넷플릭스가 제작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경쟁 부문에 진출했을 때도 논란이 일었다. 사실 이전까지 영화는 ‘극장 개봉 및 상영’을 기준으로 미디어의 카테고리를 분류할 수 있었다. 극장 상영을 하지 않는 작품은 영화로 치부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봉준호의 ‘옥자’,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등은 고전적 분류법에 의한 영화는 아닌 게 된다. 분명 애매모호한 구분의 과도기가 도래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최근 미국 법무부의 발표는 이걸 명확하게 만들었다. 오스카 어워즈(아카데미 시상식) 위원회가 온라인 스트리밍 영화의 수상 배제 논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미 법무부가 “아카데미 시상식의 온라인 스트리밍 영화 수상 배제는 반독점법 위반”이라 경고한 것이다. 지난 4월2일 『파이낸셜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마칸 델라힘 미국 법무부 반독점국장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에 서한을 보내 온라인 스트리밍 영화의 수상을 배제하도록 규정을 고치면 반독점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반독점국 관계자는 “온라인 스트리밍을 비롯 특정한 방식으로 제공되는 영화를 수상 후보에서 제외한다면 이들 영화의 판매 수익이 감소할 수 있어 ‘셔먼법(Sherman Act)’을 위반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셔먼법’이라는 건, 1890년 7월에 당시 상원 의원이던 존 셔먼이 추진하여 제정한 미국 최초의 독점 금지법이다. 이로 인해 경쟁 제한적인 행위에 의한 시장 독점은 금지되었다. AMPAS 이사회 일원이며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미국 최대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 제작의 영화는 아카데미 수상 자격이 없다”고 말하면서 독점 논란이 시작됐다.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로마’는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고, 넷플릭스 제작 작품들이 15개 부문 후보에 오르면서 이 불씨는 더 커졌다. 그런데 기존 통념에 따르면 스필버그의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말은 “오프라인 극장이 아닌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은 아카데미가 아닌 TV 시리즈에 상을 주는 에미상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계 유수 영화 시상식에서 스트리밍으로 관람할 수 있는 기존과 다른 제작 시스템의 영화들이 논란의 불씨를 일으키고 있다. 분명한 것은 제작 후 극장 상영, 그리고 IPTV, 온라인 다운로드 등의 부가 판권 시장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기존 영화 배급 시스템에 이와 같은 다른 포맷의 작품들이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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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곳이 바로 극장 칸국제영화제, 아카데미 시상식 등에서의 논란은 공급자 입장에서 불거지는, 엄청난 수익을 놓고 벌이는 전쟁에 다름 아니다. 이제 관객의 시점으로 돌아올 때다. ‘어벤져스’ 시리즈 같은 블록버스터 개봉 시즌이면 한국의 모든 극장에서 볼 영화가 그것밖에 없어지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 역시 독과점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관객이 다양한 영화를 접할 기회 자체를 극장이 주지 않는 것 역시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필자도 영화 마니아라 자청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굳이 극장에서 보지 않아도 될 작품이 있고, 또 반드시 극장에서 관람하고픈 영화가 있다. 이제 관객은 극장이라는 공간에 입장하는 것 자체를 선택할 수 있는 우위를 점하는 위치에 있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넘어가기 전에, 다양한 영화 혹은 개봉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가장 편리한 도구는 IPTV다. TV 신호 자체가 디지털화되면서 이제 모든 가정 대부분이 IPTV와 연동된 시청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다. 각 통신사가 제공하는 TV 회선이 바로 그것. 그렇기에 이 TV 속에는 극장 동시 관람으로 한 명 입장권 가격에 가족이 모두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또 개봉조차 하지 않은 영화들이 IPTV 프로그램에는 존재한다. 라이프스타일의 다변화에 따라 시간 맞춰 극장에 앉아 있고, 화장실 들락거리는 게 관람에 방해가 되기도 하는 극장을 굳이 선택할 필요가 없게 됐다. 소파에서 편히 보다가 잠시 멈추고 볼일을 봐도 되고, 구매 후 1주일 가까이 시청 권한이 존속되기에 끊어 봐도 된다. 혹자는 “영화를 그렇게 보면 보는 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역으로 이는 굉장히 편리한 방식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스트리밍 플랫폼을 돌아볼 차례다. 주변에 공중파 드라마를 안 보는 사람은 있어도 넷플릭스를 접하지 않은 이는 없을 정도로 국내에서도 이 플랫폼의 구독자가 굉장히 많다. 적게는 1만2000원에서 많게는 2만 원 내외의 가격으로 한 달간 그 속에 있는 모든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렇다 보니 넷플릭스가 영화라는 고전적 미디어를 건드리지 않을 이유가 없게 됐다. 어쩌면 넷플릭스는 미디어 생태계를 완전히 변화시켜 버린 거대한 공룡임에 틀림없다. 처음에는 기존 유명 TV 시리즈의 판권을 사들여 콘텐츠화 했던 기업이 그 누구도 범접하기 힘들 정도의 규모와 퀄리티로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초기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마냥 거대해졌다. 그래서 넷플릭스 속에는 마니아들을 사로잡았던 대부분의 해외 유명 시리즈가 다 포함돼 있다. TV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넷플릭스는 마치 인디펜던트 영화 제작사처럼 컬트적인 영화들에 꾸준히 제작비를 제공하며 자신들의 판권 보유 영역을 넓혀 갔다. 이런 연유로 초기 넷플릭스 시청자들에게 “넷플릭스 영화는 다 쓰레기 같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넷플릭스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 기폭제가 봉준호 감독의 ‘옥자’였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명장 봉준호마저 넷플릭스의 제작비를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점은 넷플릭스의 영향력을 무시하기 힘들다는 팩트의 반증일 수도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넷플릭스는 유명 감독의 연출 하에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꽤 큼직한 작품의 수를 확장시켰다. 욕을 많이 먹긴 했지만 데이비드 에이어가 연출하고 윌 스미스가 주연에 나선 ‘브라이트’ 같은 영화도 있었다. B급 SF 감성을 가득 지닌 벤 영 감독의 ‘익스팅션: 종의 구원자’ 같은 작품은 컬트 무비로 많은 팬의 호감을 얻기도 했다. 아마 넷플릭스 영화가 단박에 주목받은 건 봉준호의 ‘옥자’ 이후 선보인 수사네 비르 감독 연출에 산드라 블록이 주연을 맡은 ‘버드 박스’가 아닐까 싶다. ‘버드 박스’는 공개되자마자 엄청난 스트리밍 조회 수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제작 영화를 (극장 개봉 영화와 비교했을 때) 엄청난 흥행작으로 만들었다. 이후 넷플릭스는 끊임없이 흥행작 및 호평 받는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 정점이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였다. 이제 온라인 또는 유튜브 상에는 ‘넷플릭스 베스트 영화’라는 타이틀로 플랫폼에 있는 영화를 선별하고 추천하는 콘텐츠들이 늘고 있다. 극장이 아닌 모바일이나 태블릿을 통해서도 봐야 할, 또 볼 수 있는 영화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게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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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화된 시대의 극장 앞서 아카데미 시상식의 온라인 플랫폼 영화 수상에 대한 규제가 반독점법 위반이 되었음을 언급했다. 동시에 이 플랫폼 속 작품이 늘고 있음도 확인했다. 이제 ‘영화는 꼭 극장에서 관람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다시 한 번 제기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미래에는 극장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리 있는 주장으로 들린다. 현대인은 점차 군중이기보다는 개인이길 원한다. 또한 ‘취향 존중’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기도 한다. 극장은 하나의 콘텐츠를 많은 군중이 동시에 구경하는 공공장소다. 이곳에서 개인은 타인을 위해 기침마저 조심해야 하고, 섭취하는 음식물의 소음도 주의해야만 한다. 군중 속 개인은 또 다른 개인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에 대단히 위반되는 행동 패턴으로 읽힌다. 그런 의미에서 극장은 점차 도태될 수밖에 없는 공간으로 비친다. 이런 개인의 주체화 시대에 스트리밍 플랫폼은 아주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영역 속에서 영화를 관람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대의 일상은 어떤 행위를 향유함에 있어 제한된 시간과 공간을 싫어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극장은 TV나 모바일이 전달하지 못하는 화면 사이즈와 사운드 시스템을 제공하긴 한다. 그래서 아직까지 극장은 유효하긴 하다. 그렇지만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만 존재한다. 데이트를 위해서, 아이와의 놀이를 위해 등 여타 여러 상황에 따른 선택으로써의 극장 관람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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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이야기가 비단 영화라는 미디어 장르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근래 주변 지인들에게서 “TV가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등의 시리즈물에서도 이와 같은 상황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 이후로 범주를 좁히면 그들은 넷플릭스와 유튜브만 있으면 된다고도 말한다. 그 속에 모든 콘텐츠가 거의 존재한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방송사에서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드라마를 제작하려고 해도 넷플릭스에 판권을 팔아야 가능해지는 현실이 되었다. 예를 들어 ‘미스터 션샤인’이 그랬다. 거대한 블록버스터급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선 그 플랫폼의 자본 도움이 실로 절실했을 수도 있다. 심지어 이제는 많은 감독과 배우들이 그 플랫폼에서 직접 제작하는 콘텐츠로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자본은 제공하되 기존 제작사처럼 심한 간섭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감독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되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또한 기존과 다른 플랫폼에서는 창작과 구성의 자유도 보장된다. 최근 가수 아이유를 주인공으로 임필성, 이경미, 김종관, 전고운의 네 감독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만든 ‘페르소나’도 그 적절한 예가 될 수 있겠다. 기존 관습대로라면 이 콘텐츠는 극장에 걸리지도, TV에서 방영되지도, 심지어 제작할 기회조차 없는 작품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거대화된 스트리밍 플랫폼은 이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속에서 ‘페르소나’는 오리지널 제작 작품의 한 편일 뿐이기 때문이다. 플랫폼 속에는 시리즈, 영화, 다큐멘터리, 예능 프로그램 등 우리가 이미지로 접할 수 있는 모든 콘텐츠가 총망라되어 있다. ‘페르소나’는 애매모호한 경계를 가진 작품이지만 이 플랫폼이 있기에 제작 자체가 가능해진 작품임에 틀림없다. 물론 그 만듦새에 대해서는 시청하는 개인이 판단하면 된다. 넷플릭스 콘텐츠는 입소문도 중요하지만 취향에 따라 선택한 관람자가 직접 접한 후 평가하면 된다. 그래서 이 내부의 영화들은 관습에 따른 영화들처럼 흥행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된다. 이 역시 큰 장점이다. 플랫폼은 구독자 수를 늘리면 된다. 그게 수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플랫폼은 점차 더 확산될 것이고, 또 아마존 프라임과 같은 또 다른 플랫폼과 경쟁하고 있다. 이 치열한 경쟁은 더 많은 콘텐츠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업체들의 자율 경쟁 속에서 (과거 극장 관객이던) 우리는 콘텐츠의 홍수를 겪을 뿐이다. 어느 작품을 선택할지는 시대의 개인인 당신의 클릭에 달려 있다. 잠시 보다가 재미 없으면 그냥 중단하면 된다. 이게 극장을 위협하는 현시대가 만들어 낸 또 다른 꿈의 이미지다.

[글 이주영(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넷플릭스, 구글,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1호 (19.06.0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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