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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서커스 캬바레’, ‘푸에르자 부르타’에서 만난 감동-신체 움직임을 예술로 승화시킨 공연들

이승연 기자
입력 : 
2019-05-29 17: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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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스토리 전개나, 대사 또는 여타의 아름다운 무대 배경도 이곳에선 주인공이 아니다. 오롯이 신체의 움직임을 돋보이게 해 감동을 주는 공연들이 있다. 국내 최초 선보이는 서커스 페스티벌 ‘서커스 캬바레’가 지난 한달 동안 관객들을 색다른 느낌의 서커스의 나라로 초대한 데 이어, 러닝머신에서 내린 남자가 계단을 오르며 와이어를 타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매혹적인 공연 ‘푸에르자 부르타’가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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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일, 마포 문화비축기지 야외마당에 만화나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알록달록한 색깔의 대형 ‘서커스 텐트’가 세워졌다. 지름 18m, 높이 9m의 커다란 텐트 안. 그 안으로 들어서자 300명까지 수용 가능한 넓은 공연장이 펼쳐진다. 어떤 공연이 펼쳐질지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텐트 한 가운데 원형무대. 그 외에도 문화비축기지 야외마당 곳곳이 순식간에 하나의 무대이자, 문화의 장(場)으로 변신한다.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가 5월 한달 동안을 ‘서커스의 달’로 지정해, ‘서커스 캬바레’와 ‘서커스 시즌제’를 릴레이 개최했다. 지난해 서커스 탄생 250주년을 맞이해 선보인 국내 유일 서커스 축제 ‘서커스 페스티벌’의 경우 이틀간 총 1만1684명의 발길이 이어졌고, 그 경험을 살려 선보인 ‘2019 서커스 캬바레’는 서커스 예술에 대해 문외한 사람들이나, 가정의 달을 맞이해 풍성한 볼거리를 기대한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며 호평을 받았다. 축제는 국내외 총 25팀의 아티스트들이 모여 국내 초연 작품들을 비롯해 평소에 보기 어려웠던 프랑스, 벨기에, 대만 등 해외 초청작 4편도 선보였다. 또 전통적인 줄타기부터 ‘동춘서커스’로 대표되는 공중곡예, 저글링은 물론 클래식,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한 서커스까지 선보였다. 메인 축제인 ‘서커스 캬바레’가 막을 내린 이후에도 마포 문화비축기지에선 5월26일까지 매주 토·일요일마다 ‘서커스 시즌제’가 열려, 영화를 보러 가는 것처럼 서커스도 일상에서 가볍고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었다.

▶과거의 맥을 잇는 현대 서커스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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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 튀기듯 연주되는 빠른 비트의 바이올린과 타악기 소리가 들려온다. 가파른 오르막에서부터 휘청휘청 달려오는 한 사내가 있다. 하얗게 칠한 얼굴에 빨간 코, 큰 입 분장을 한 광대다. 아슬아슬하게 걷고 뛰고 구르며 무대 중앙까지 다가온 그는 객석을 향해 무언가를 호소하듯 질문을 던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악사는 독특한 사운드로 분위기가 연출되고, 공허함에 둘러싸인 듯한 광대의 손은 잘 드러나지 않는 근본적인 무게를 느낀다. 그는 뛰어오르고, 발악하는 추격을 시작한다. 세상의 사건들에 의해 겁을 먹고 무대 위 설치된 긴 봉을 향해, 그는 한 발을 딛고 한 발자국 더 위로 올라간다. 앞뒤로 구르고 오르다가 떨어지면 다시 오른다. 기댈 수 있는 도구 하나 없이 손과 발만을 이용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한 단어 한 단어, 격한 감정에 휩싸인 모습은 마치 광대의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 섞인 것과 같다.’ 2019 서커스 페스티벌 프로그램 ‘사탕의 숨결’(la brice de la pastillel)의 일부 장면을 묘사한 글이다. 에디터가 본 이날 공연에는 갈라피아 서커스의 모이즈 베르니에와 니콜라 로페즈, 국내 배우 김선혁이 함께 야외 무대에 올랐다. 독특한 사운드의 음악과, 말이 통하지 않아도 존재감만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광대의 모습은 ‘이것이 서커스가 맞는가?’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만큼 저글링, 외줄타기, 불 쇼, 공중곡예 등 우리가 ‘서커스’ 하면 막연하게 떠올린 익숙한 이미지나, ‘태양의 서커스’처럼 서양에서 넘어온 고난도 기예의 서커스 이미지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이 시대의 서커스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국내에선 ‘서커스’라는 개념의 시작은 연희단과, 농악 등을 통해 내려져 왔다. 그러다가 1925년 ‘동춘서커스’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인 서구 스타일의 서커스가 시작됐다. 아버지 시대에 소위 약장수들이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 요소이자, 퍼포먼스로 서커스는 우리에게 가깝게 혹은 얇게 다가왔다. 그리고 현대에 다다르며 서커스는 예전만큼 대중들에게 가깝고, 얇은 예술 공연으로는 보기 힘들게 됐다. ‘옛 시절의 어른들이 즐겨보던 공연’, ‘지방에 위치하거나 적은 수의 공연장’이 된 만큼 거리감은 멀어졌고, 해외의 ‘태양의 서커스’ 등을 통해 화려하면서도 막연한 이미지에 빠져 얇은 일부 면만을 보게 된 것은 아닐까 의문을 던져보게 된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는 서커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서커스 예술가들의 활동이 늘어남에 따라 ‘서커스 페스티벌’처럼 서커스 예술 장르의 지원을 정책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북미, 유럽과 비교해볼 때 아직까지 컨템포러리 서커스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도는 낮다. 컨템포러리 서커스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눌 수 있다. 마임축제, 아크로바틱, 광대 등 ‘몸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아티스트 스스로가 선보이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예술. 그리고 전통적인 서커스 공연들부터 거리 문화, 극장 예술 등이 음악, 무용, 연극 같은 다양한 장르와 결합해 ‘종합예술공연’으로서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기도 한다.

‘육감적이고 시각적으로 호화로운 쇼(-뉴욕타임즈)’ ‘오프 브로드웨이를 강타할 새로운 작품이다(-뉴욕 데일리뉴스)’ ‘수많은 뮤지컬과 공연의 홍수 속에서 푸에르자부르타는 무대 공간을 재정의하여 관객몰이에 성공했다’(-김난도 『트렌드 코리아 2019』)

각종 언론의 찬사를 받은 공연 ‘푸에르자 부르타(Fuerza Bruta)’가 다시 한번 한국을 찾았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관객을 흥분시키는 광란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푸에르자 부르타’. 무대와 객석은 경계를 허물어 벽, 천장 극장의 모든 공간을 무대이자, 관람석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배우와 관객 그리고 스태프 역시 하나가 되어 극을 완성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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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자부르타에 참여한 장우혁 꼬레도르(쇼비얀엔터테인먼트 제공)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분출하는 강렬한 퍼포먼스 막이 오르면 관객은 무대 중앙으로 향한다. 그 후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혹은 자신이 보고 싶은 장소로 자유롭게 이동하며 공연을 관람한다. 정형화되지 않은 무대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흥겨운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화려한 퍼포먼스, 배우들의 힘찬 움직임에 몸과 마음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공연과 하나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러닝머신 위를 질주하다 벽을 부수고(‘꼬레도르’), 내 머리 위의 투명한 욕조에서 누군가 헤엄을 치고, 물이 사방에 튀어도(‘밀라르’), 또 배우들이 공연에 쓰이는 스티로폼 소품을 관객 머리에 내리쳐도 그 누구도 놀래거나 말리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이 즉석으로 무대 위로 올라와 배우로 분하기도 하고, 중력을 거스른 배우들은 종횡으로 날아다니는 모습에 환호한다. 이것이 가능한 일이냐고? 물론이다. ‘푸에르자 부르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장면이자, 유쾌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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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초연 이후 전세계 36개국, 63개 도시에서 6300여 회 공연을 하며 640만 명이 열광한 인터랙티브 퍼포먼스(Interactive performance) ‘푸에르자 부르타’. 퍼포먼스 뮤지컬 ‘델라구아다’를 만든 디키 제임스(Diqui James)가 음악 감독 게비커펠(Gaby Kerpel)과 함께 영화의 특수효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공연이다. 10년 이상 투어를 하면서 매번 새로운 장면을 추가해 꾸준히 발전시켜왔으며, 아르헨티나의 대표적 문화 콘텐츠로 주목받아오고 있다. 스페인어로 ‘잔혹한 힘’이라는 뜻인 푸에르자 부르타는 도시의 빌딩 숲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모티브로 한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슬픔, 절망으로부터 승리, 순수한 환희까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다양한 감정을 언어가 아닌 강렬한 퍼포먼스로 표현해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때문에 공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넌버벌(무언어)’ 극이라는 점을 꼽는다. 언어가 없어도 무대와 관객 사이는 경계 없이 공연장의 모든 공간이 활용된다. 또 파격적인 공연 장치와 특수효과, 조명과 소품 그리고 음악으로써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관객들은 이를 보며 공감을 하고 힐링을 얻는다. 국내에선 2013년 초연 이후 지난해 7월, 5년 만에 ‘2018 푸에르자 부르타 웨이라 인 서울’로 오랜지색 전용 극장(푸에르자 부르타 서울 공연을 위해 지은 극장, 올해는 강렬한 빨간색 극장으로 변신했다)의 문이 열리며 관객 5만5000여 명이 공연장을 찾았다. 그 인기에 올해 곧바로 재공연에 돌입할 수 있었다. ‘2019 푸에르자 부르타 웨이라 인 서울’에는 새로운 씬과 장비가 어우러져 더욱 강력해지고 더욱 화려해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공연장 한 가운데 러닝머신 위에 한 남자가 숨 가쁘게 달리는 푸에르자 부르타의 대표적인 장면 ‘꼬레도르’에는 러닝머신에서 내린 남자가 계단을 오르며 와이어를 타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장면이 추가되었다. 또 공연 초반과 후반을 장식할 ‘웨이라’ 장면에는 화려한 LED 조명을 설치했고, 각 장면은 레이저 효과와 강력해진 사운드가 더해져 마치 만화경을 보는 것처럼 더욱 화려하고 감각적으로 변모했다. 커튼콜 후 배우와 관객 모두가 어우러져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DJ 장면이 추가되어 잊을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트렌드 코리아 2019』(김난도 저)는 이러한 푸에르자 부르타의 인기를 ‘수많은 뮤지컬과 공연의 홍수 속에서 푸에르자 부르타는 무대 공간을 재정의하여 관객몰이에 성공했다’고 설명하며, 입체적인 공연문화와 오감을 만족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말 그대로 공연장에서 한시도 앉아있을 수 없는 스탠딩 공연의 매력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오감을 자극하는 원초적인 공연’을 맘껏 누려보고 싶은 관객들이라면 이곳을 찾아보자.

한 눈에 살펴 보는 ‘2019 서커스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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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모사 서커스 아트 ‘찰나의 빛: 지금 이 순간은 얼마나 길까?’ 대만의 현대 서커스 예술의 다양한 측면을 개발하기 위해 2011년에 설립된 포모사 서커스 아트의 ‘찰나의 빛: 지금 이 순간은 얼마나 길까?’. 한때 서커스가 추구했던 놀라운 신체의 감각적 자극이라는 서커스의 전통에 반하며, 이러한 전통을 뒤집기 위해 옷걸이, 양동이, 대걸레, 깡통 등 일상적인 필수품들과, 신체의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움직임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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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타기 권원태 연희단 ‘쌍줄타기’ 줄타기 권원태 연희단은 대한민국 어름사니 권원태 명인이 2009년 창단한 단체이다. 권원태는 영화 ‘왕의 남자’ 지도 및 출연, 미국 세계줄타기 대회 우승, 남사당줄타기 기네스북 등재 등을 통해 줄타기의 예술성을 한층 높였다. ‘쌍줄타기’는 남사당의 줄타기를 새롭게 구성한 작품으로, 두 명의 어름사니인 권원태 명인과 제자인 유진호가 공연장에 두 개의 줄을 설치해 공중에 맨 줄 위에서 재담과 발림을 섞어가며 갖가지 재주를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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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앤줄 ‘태움’ 서커스창작집단 봉앤줄은 주로 봉과 줄을 활용한 기예 작업을 한다. 부단히 노력하기도 하고 떨어지면 자책하며 다시 올라가지만, 또 다시 떨어지고 만다. 그리고 그것들의 반복. 공연 ‘태움’은 서로 마치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줄타기에 빗대어 본다.

[글 이승연 기자 사진 및 참고 서울문화재단, 2019 푸에르자 부르타 웨이라 인 서울, 쇼비얀엔터테인먼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1호 (19.06.0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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