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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질병-번아웃 증후군의 키워드 사회학

입력 : 
2019-06-05 10: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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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의 결론은 아직은 모호했다. ‘번아웃증후군’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또는 자주 겪게 되는 증상인데, WHO가 그것을 ‘직업 관련 증상이지만 질병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고 했다. 증상은 분명한데 치료의 표준이 없으니 딱히 무슨 질병이라고도 말할 수도 없는 것은 아닌지, 역설적인 상상도 하게 된다.

‘번아웃(burnout)’을 직독해 보면 ‘속이 새카맣게 타서 이제 없어져 버렸다’ 정도이다. 이것을 조금 더 확장해서 번역하면 ‘없다’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번아웃증후군, ‘나는 없는’ 증상이 이해는 가지만 그것을 꼭 질병으로 분류해서 치료, 완치를 목적으로 치료법을 연구할 이유가 있을까? 회의가 오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사라진 이유’는 ‘일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 잔인한 일’과 ‘나 자신’이 맞지 않는다는 현실이 더욱 절실한 이유이고, 그것은 사회의 부조리가 원인일 가능성이 더 높다. 특히 그 부조리는 기성 사회, 선배들의 관습, 구닥다리 같은 경험 등에서 기인한다. 사회는 기성을 강요하기 일쑤다. 거기서 충돌이 일어나고, 그래서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요즘 젊은 것들이란’이란 말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 갈등이 그저 약간의 스트레스와 관계의 발전을 통해 해결되면 좋으련만, 심각할 경우 이것이 신체 질병으로 이어지고, 극단적 상황으로 가기도 하는 게 큰 문제이다.

번아웃증후군의 증상은 ‘의욕 상실’을 넘어,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음’ ‘몸이 무기력해져 움직일 수조차 없다’는 상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냥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정도가 아닌, 신체 활동이 정지되고, 그렇게 정지된 신체는 결국 다른 질병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지경이 될 수도 있다. 번아웃증후군은 ‘직업과 관련 있는 증상’이라는 것이 세계보건기구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현상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증상은 있는데 발병 원인, 분류, 그에 따른 치료 로드맵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이기 때문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관습이나 경쟁, 명령과 복종의 문화를 ‘당연한 세상의 이치’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 멍청한 짓을 내가 왜 매일?’ 하며 관습과 부조리를 마음으로부터 거부하게 된다.

번아웃증후군이 질병으로 분류되지는 않았지만 관련 논문이나 치료 방법, 사례집들은 꽤 많이 나와 있다. 종합해 보면 번아웃증후군을 유발하는 키워드는 ‘강요, 반복, 경쟁’이며, 번아웃증후군의 현상을 일컫는 키워드는 ‘무기력, 자조, 부정’이다. 또한 그것이 ‘신체에 주는 영향’ 키워드는 ‘혈관질환, 면역력 저하, 감기, 우울감’ 등이다. 이 중 가장 경계해야 할 키워드는 ‘경쟁’이다. 경쟁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경쟁은 성과, 고과, 연봉, 승진 등과 직결되는 문제이고, 그것이 삶의 질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성과는 진급과 직결되고, 진급을 못하면 유무형의 업무 압박, 심지어 퇴직 압박을 받는 게 현실이니 ‘경쟁=압박’이라는 원치 않는 등식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예방과 극복에 대한 제안들도 많다. 그 키워드는 ‘인정’, ‘칭찬’, ‘보장된 휴식’, ‘평등한 토론’ 등을 꼽고 있다. 내가 성과를 냈든, 동료나 후배의 성과든 그것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칭찬해 줌으로써 ‘함께 한다’는 연대의식을 통해 스스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보장된 휴식과 평등한 토론은 경영진의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휴일에는 그 어떤 알림이나 소식도 사원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차단해 주고, 세대가 다른 직원들과의 평등한 토론을 받아들여 그들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듣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를 자각한다는 것은 ‘그 일’이 내가 주도해서 이뤄진 일, 또는 적어도 나의 생각이 포함된 업무라는 뜻이다. 그것은 기안이나 품의서를 올려 결제 받는 것을 넘어 ‘토론’을 통해 공유하되 ‘내가 한다’는 연대와 주체 의식에서 시작되는 풍요다.

[글 소요유(프리랜서) 사진 셔터스톡]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2호 (19.06.1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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