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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소장하고 싶은 의자-의자 디자인이 존중받는 시대

입력 : 
2019-06-05 11: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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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가 갑인 이케아 가구도 좋지만, 때때로 소장하고 싶은 디자이너 가구가 맘을 들뜨게 한다. 특히 의자라면 진입 장벽이 그나마 낮은 편이니 입문용 가구로는 이만한 게 없다. 철저히 개인적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365일 나와 함께하는 가구에 돈을 투자하고 안목을 길러 디자인 가치를 품을 줄 아는 사회. 의자 디자인이 존중받는 사회가 디자인을 존중하는 사회로의 첫발이라 믿는다.

사진설명
수년 전부터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들의 전시가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2016 덴마크 디자인展)
십 년 전만 해도 을지로 가구 골목엔 ‘◯◯스타일’ 의자가 불티나게 팔렸다. 누구 디자인을 모방한 건지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예쁘다는 이유에서 지갑을 열었다. 더 중요한 건 엉덩이를 얹고 생활하는 데 필요한 ‘아무 의자’가 아니라 ‘예쁜 의자’를 찾는 게 목적이었다는 거다. 생활에 여유가 생길수록 기능이 전부였던 가구는 디자인 역시 중요한 요소로 그 가치가 상향된다. 이제는 을지로 마성에서 벗어나 스스로 취향에 맞는 진짜(이미테이션이 아닌) 인생 가구를 찾는 시대가 됐다. 덴마크 디자인展, 핀 율展, 제스퍼 모리슨展 등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의 작품 전시가 수년 전부터 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 건 그 관심과 애정에 대한 방증이다. 그런데 그 멋진, 유명한 가구를 사랑할 마음이 한껏 차오른다 해도 지갑 사정은 늘 녹록지 않다. 그게 현실이다. 그래서 디자이너 가구의 가치에 눈뜬 소비자들은 ‘의자’로 입문한다. 가격적인 측면에서 구매 가능성이 있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금전적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의자에 애정을 쏟고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돈을 모아 살 수 있는 가격대의 제품이라는 건, 그래서 첫 월급부터 저축해서 목돈이 되었을 때 하나씩 마련한 의자라는 건, 무엇보다 ‘첫정’이라는 의미에서 그 가치가 높다. 하지만 의자 디자인에 의미를 과하게 부여하는 건 다른 이유에서다. 의자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나’이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아르네 야콥센의 가구들은 시간이 흘러도 항상 사랑받는다. 그 완벽한 균형감으로 공간에 정점을 찍는다.
가구 중에서 의자만큼 개인적인 성향을 가진 가구는 없다. 의자는 가구 가운데 가장 프라이빗한 물건이다. 그만큼 신체 접촉이 빈번하다. 사람은 보통 무언가를 하기 위해 의자에 앉는다. 먹기 위해, 읽기 위해, 일하기 위해, 보기 위해…. 그렇기 때문에 의자는 나와 동일시하게 되는 경향이 있고 애착의 대상이 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미학적 가치다.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들이나 건축가는 누구나 자신의 대표작인 의자가 있다. 찰스 임스의 플라스틱 암체어나 LCW 체어, 베르너 팬톤의 팬톤 체어,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체어, 아르네 야콥센의 개미 체어, 에어로 사리넨의 튤립 체어같이 말이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이 20세기 의자 디자인은 현대인의 삶을 변화시키려 한 디자이너의 의지와 욕망이 반영된 것이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의자를 꼭 넣고 싶어한다. 기능, 편리성, 아름다움, 비례 등의 요소를 담은 축소된 건축이라는 점에서 수긍이 간다. 실제로 르 꼬르뷔지에나 아르네 야콥센 등은 ‘의자는 작은 건축이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삶의 풍경을 바꾸어 줄 수 있는 내 공간 속의 화룡점정, 의자. 그 가치를 생각하면 심리적 가성비는 너무나 뛰어나다. 의자 디자인 하나로 공간이 갖는 가치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걸 인정하는 순간, 가구 소비 패턴과 방향에 변화가 시작된다. 물론 디자이너 가구 시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 대신 소비자들의 디자인과 그 안의 히스토리를 보는 안목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적어도 의자가 존중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글 한희(문화평론가) 사진 피크닉, 한가람미술관, 프리츠한센]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2호 (19.06.1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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