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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sse in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

입력 : 
2019-06-05 15: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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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파격적 스토리와 함께 원작을 감각적으로 영상에 잘 담아냈다. 영화는 소설에 비해 시각과 청각에서 압도적으로 입체적 표현이 자유로운 영화 매체의 특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가장 난제인 후각의 시청각화에 비교적 성공했다. 보기만 해도 비린내가 날 것 같은 생선,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과일,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지저분한 뒷골목과 시장통 모습은 18세기 파리의 질척거리는 거리를 그대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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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스, 가죽 공장에서 향수 공장으로 미국의 전설적인 섹시 스타 마릴린 먼로. 그녀는 “잠을 잘 때 어떤 잠옷을 입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단지 몸에 샤넬 No.5 한 방울만 뿌리지요”라고 답했다. 샤넬 전설의 시작인 셈이다. 이처럼 향수는 누군가에는 잠옷을 대신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기억시키는 매개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매력을 발산하는 ‘단 한 방울의 마술’이다.

향수의 본고장은 프랑스다. 향수의 몇 가지 유래가 있다. 고대 인도 혹은 이집트에서 신에게 바치는 제례에 사용되었다는 기록도 있고,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톰바렐리가 16세기 프랑스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드 드 메디시스를 수행하기 위해 파리로 오면서 전해졌다는 기록도 있다. 그럼에도 세계 향수 시장의 절대 강자는 프랑스다.

프랑스에는 ‘향수 공장’ 같은 곳이 있다. 바로 프랑스 남동부 알프마리팀주에 위치한 남서부 쪽 프로방스의 그라스다. 지중해 도시 칸과 니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북쪽에 위치한 그라스는 인구 5만 명의 작은 도시지만 향수 하나로 1년에 1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향수의 본류다. 그라스는 향수를 제조하기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다. 알프스산맥 낮은 지역인 해발 330~380m에 위치한 그라스에는 향수의 주재료인 장미, 재스민, 라벤더, 아이리스, 튜베로즈 그리고 미모사가 사방에 활짝 피어 있다. 샤넬도 이곳의 재스민과 튜베로즈를 사용한다.

그라스는 본디 가죽 무두질을 하는 마을이었다. 12세기부터 시작된 가죽 다루는 솜씨는 대를 이어 16세기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뛰어난 가죽 제품 생산 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가죽 무두질은 고역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가죽을 분리하기 위해 가축의 피부를 벗겨 내는 과정에서 맡아야 하는 살과 기름이 타는 냄새는 그야말로 악취였다. 게다가 아무리 무두질을 하고 가공을 잘 해도 가죽 제품, 즉 장갑, 옷, 조끼, 부츠 등에서는 동물 특유의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갈리마르라는 무두질 장인이 식물에서 얻은 염료를 가죽 제품에 살짝 뿌려 판매했다. 이 제품은 대히트를 쳤다. 유럽의 귀족, 부자들은 일제히 그라스산 가죽 제품만 찾기 시작했다.

그라스 사람들은 가죽 제품의 향을 다양화했다. 각종 꽃과 식물에서 향을 추출했고 점차 향기를 만들어 내는 솜씨도 발전했다. 이들은 향이 밴 가죽 제품과 함께 ‘향수’를 제품으로 내놓았고 ‘그라스산 향수’는 유럽 귀족들에게 필수품이 되었다. 그라스는 지금도 인공적인 화학 향 대신 천연의 방식을 고집한다. 그들은 장미꽃 1t으로 비록 작은 에센스밖에 얻지 못하고, 강렬한 햇빛에 향이 날아갈까 새벽부터 작업을 시작하지만 이 고집스런 수고를 감수한다. 그래서일까. 유네스코는 그라스의 향수를 무형 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향료를 만드는 원재료인 식물 재배, 원료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가공 그리고 향수를 만들어 내는 기술적인 블랜딩 솜씨를 높이 산 것이다.

그라스에 가면 ‘프라고나르 향수박물관’이 있다.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에서 이름을 딴 이 박물관은 그라스 지역의 대표 향수 브랜드인 프라고나르가 운영하는 곳으로, 향수의 재료, 기구 그리고 조향 방법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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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없는 궁전에서 발달한 향수 향수 즉 퍼퓸의 어원은 라틴어 ‘per fumum’

으로 이는 ‘연기를 통한다’는 뜻이다. 고대인들이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몸을 정갈히 하기 위해 향이 좋은 나무나 잎을 태우거나 으깨 즙을 내 사용했다고 한다. 이 향수가 가장 발달한 시기는 ‘태양 왕’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루이 14세 때다. 그의 또 하나의 별명이 바로 ‘향수의 황제’다. 루이 14세는 화려하고 강력한 프랑스를 건설하고 자신의 권위와 부를 과시하기 위해 베르사유 궁전을 지었다. 하지만 천하의 보물과 명화들로 가득 들어찬 베르사유 궁전에는 딱 하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화장실이다. 당시 루이 14세는 ‘이 아름다운 궁전에 더러운 화장실을 지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5000여 명의 왕족, 귀족, 관리, 하인들이 득실대는 궁전에서의 대소변 처리였다. 루이 14세는 개인 변기를 무려 20여 개나 가지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마다 용변을 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왕과 왕비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적당히 구석진 곳을 찾아 해결했다. 그들이 가장 애용한 곳은 나무와 숲이 우거진 정원. 베르사유 궁전의 아름다운 정원에는 배설물들이 가득 쌓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배설물들이 배출하는 악취가 진동하자 이를 상쇄하기 위해 더 진하고, 자극적인 향수들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향수 문화가 베르사유를 통해 발전한 것이다. 당시 같은 이유로 귀족들의 신발이 높아지고 굽이 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이 같은 배설물 문제는 베르사유 궁전만이 아니었다. 파리 시내 전체가 배설물과 악취로 가득 차 냄새가 진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현대적인 하수도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잘 보여 주는 영화가 있다. 바로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파격적 스토리와 함께 원작을 감각적으로 영상에 잘 담아냈다. 소설에 비해 시각과 청각에서 압도적으로 입체적 표현이 자유로운 영화 매체의 특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가장 난제인 후각의 시청각화에 비교적 성공했다. 보기만 해도 비린내가 날 것 같은 생선,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과일, 퀴퀴한 냄새의 지저분한 뒷골목과 시장통 모습은 18세기 파리의 질척거리는 거리를 그대로 전달한다.

영화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후각을 가진 그루누이의 그릇된 욕망, 즉 인간의 향기를 수집, 소유하려는 망상을 다룬다. 어쩌면 그루누이는 ‘죽음과 동반하는 운명’이다. 그는 태어나면서 한 번 울음으로 바로 어머니를 교수대에 매달았고 자신에게 향수 제조법을 알려준 스승 발디니 역시 그와 함께하면서 불행해졌다. 무엇보다 그루누이는 한 여인의 운명적인 향기에 끌려 전설로 내려오는 향을 만들겠다는 욕망의 포로가 되었다. 13명 인간의 체취를 담아내는 동시에 13명의 살아 있는 인간의 죽음을 담보해야 하는 향수다.

그루누이는 결국 그 향수를 완성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이 만든 이 향수 때문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진실을 깨닫는다. 그것은 향수가 인간의 본질이나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루누이는 천재적인 후각 능력의 소유자. 하지만 그는 독특하게도 누구나 갖고 있는 향이 없이 태어났다. 향기를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정작 자신은 향이 없다는 사실에 그루누이는 자신의 존재감을 상실한다. ‘그래서 나는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한다’는 인식에 빠진 그는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의 향수를 만들어 모두의 사랑을 받겠다는 잘못된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만든 향수에 반하는 것이지 그루누이 자체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루누이는 이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태어난 더러운 파리의 뒷골목으로 가 마지막을 준비한다.

정말로, 향수는 인간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또한 존재의 근거도 아니다. 단지 향수는 매혹의 한 방울이다. 안타까운 것은, 매혹의 지속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는 것이다. 인간이 갖고 있는 본연의 향, 그것은 단순한 육체의 냄새가 아닌 내면의 향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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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 ©Christof Halbe
▶인간의 향기를 소유하려는 그릇된 욕망 18세기 프랑스 파리, 시장은 온갖 냄새에 갇혀 있다. 특히 생선 가게에서는 절로 코를 막게 되는 특유의 비린내가 진동한다. 생선 가게 여자는 생선에서 내장을 발라낸다. 그때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갑자기 산통이 시작된 것이다. 생선 가게 여자는 익숙한 일인 듯, 가게 뒤편으로 가 혼자서 아이를 낳는다. 사내아이다. 여자는 툭툭 털고 일어나 갓 태어난 아이를 생선 내장을 버리는 곳에 던져 놓는다. 이미 네 아이를 그렇게 했고 아이들은 다 사산이었다. 여자는 이내 생선을 다듬는다.

그때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사람들은 아이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본다. 그때 누군가 외친다. “저 여자가 아이를 버렸어.” “저 여자는 살인자야!” 그렇게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벤 위쇼)는 태어났다. 아무도 반기지도, 원하지도 않은 탄생이었다. 생선 가게 여자는 살인죄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루누이의 탄생은 이렇게 죽음으로 시작된 것이다.

아이는 고아원에 보내졌다. 고아원 아이들은 그루누이에게 생경함을 느낀다. 아이들은 그루누이의 얼굴을 방석으로 눌러 죽이려 한다. 그루누이는 또 울음을 터뜨린다. 고아원의 가이아 부인은 달려가 그루누이를 살린다. 그루누이는 두 번째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났다. 시간이 흐른다. 그루누이는 다섯 살이 되었다. 하지만 그루누이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저 “응” “아니” 하는 단순한 표현만 할 뿐이다.

하지만 그루누이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것은 남다른 후각이다. 그루누이는 냄새로 모든 사물의 존재를 파악하고 기억한다. 아이들이 그루누이에게 썩은 과일을 던져도 그루누이는 날아오는 그 썩은 과일 냄새를 미리 맡고 피할 정도다. 그루누이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대신 그루누이에게 숲은 가장 편안한 공간이다. 그루누이는 눈을 감고 숲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에 취한다. “따뜻한 나무, 풀, 촉촉한 풀, 돌, 따스한 돌….”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른다. 그루누이가 일곱 살이 되었다. 이제 양육비를 보조 받지 못하는 그루누이는 고아원에서 단돈 7프랑에 무두질 야역장으로 팔려 간다. 야역장 주인 그리말은 어린 아이들을 데려다 하루 16시간씩 강제 노동을 시키는 악랄한 인간이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명씩 이곳에서 죽어 나간다. 하지만 그루누이는 질긴 생명을 이어간다. 또 시간이 흐른다. 그루누이는 몇 번의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이제 제법 어른 티가 나는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루누이가 죽을 확률이 없어지자 그리말은 그루누이에게 일과 후 약 1시간의 자유 시간을 준다.

어느 날, 그루누이는 시내로 심부름을 간다. 온갖 냄새와 향기에 그루누이는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루누이는 시내를 무작정 걷는다. 향기를 맡고, 그 향기를 기억한다. 그의 발걸음이 시내의 가장 번화가에 이르렀다. 그루누이는 향수 가게 앞에서 멈춘다. 그리고 가게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에 도취된다.

어느 날, 그루누이는 심부름을 마치고 무두 작업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처음으로 맡아 보는 향기와 만난다. 지금까지 그가 맡아 왔던 옷에서, 동물의 가죽에서, 과일, 꽃, 나무, 각종 장식품에서 나는 냄새와는 전혀 다르다. 그루누이는 그 향기를 쫓아간다. 한 여인의 몸에서 나는 향기다. 그루누이는 그 향기를 소유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휩싸인다.

천천히 뒤를 따라간다. 여인과 마주한다. 순간, 공포에 질린 여인은 소리를 지르고 그루누이는 인기척을 느끼고 여인의 입을 틀어막는다. 잠시 후, 여인은 그만 질식해 죽고 만다. 그루누이는 여인의 죽음과 상관없이 그녀의 옷을 벗기고 몸에 코를 댄다. 머리카락, 손, 몸, 가슴, 겨드랑이 등등 온몸에서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그루누이는 경악한다. 죽은 여인의 몸에서는 아까 맡았던, 그래서 그루누이를 무작정 쫓아가게 했던 냄새가 사라진 것이다. 이날, 그루누이는 사람의 향기를 만들고 소유하겠다는, 인생의 목표를 세웠다.

그루누이는 주세페 발디니(더스틴 호프만)라는 조향사의 소문을 듣게 된다. 그는 젊은 시절 매력적인 향수를 만들어 냈던 유명한 인물. 하지만 지금은 초라한 노인이다. 그루누이는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향수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한다. 발디니는 그루누이에게 자신의 걸작들을 소개한다. ‘남국의 장미’와 ‘사랑과 영혼’이다. 향기를 맡는 그루누이. 그는 발디니에게 말한다. “이 향수는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아요. 1분의 시간이면 더 좋은 향수를 만들 수 있어요.”

발디니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루누이는 ‘사랑과 영혼’에 새로운 향을 첨가하고 이를 발디니에게 내민다. 향기를 맡은 발디니. 눈을 감는다. 사방에 꽃잎에 흩날리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발디니에게 “사랑해요”라고 고백한다. 발디니는 무두질 공장장 그리말에게 50프랑을 주고 그루누이를 제자로 받아들인다. 발디니는 그루누이에게 향수를 만드는 기본법을 알려준다. 그것은 물 증류법이다. 에센스 오일을 증기로 만들어 이를 응축하는 방법이다. 그루누이는 이를 토대로 사람의 향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자신이 죽인 그 여인의 향기를 제조한다. 하지만 만들 수가 없다. 그루누이는 고양이를 죽인다. 고양이 가죽에서 향기를 얻으려 하지만 실패한다. 이를 본 발디니는 그루누이에게 화를 낸다. “고양이를 증류하다니, 고양이나 사람 냄새는 향수로 못 만들어.”

그루누이는 실망한다. 발디니는 그루누이게 말한다. “그라스로 가라. 그곳은 향수의 공장이지. 무엇이든 만들 수 있어. 가서 냉침법을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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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는 사랑받았지만, 사랑받지 못한 그 그루누이는 그라스로 향한다. 그는 일부러 산과 들 그리고 강을 따라 그라스로 간다. 가면서 모든 사물의 냄새를 파악하고 각 사물들의 향이 조합되면 어떤 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렇게 그라스가 가까워졌다. 어느 날, 그루누이는 무향의 공간에서 냄새와 향기를 맡는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그 순간, 그루누이는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한다. 자신의 몸에서는 향기는 고사하고 아무런 냄새가 없음을 안 것이다. 그루누이는 모든 후각을 동원해 한 조각의 냄새를 찾지만, 없다. 그루누이는 절망에 빠진다. ‘지금까지 향기로 모든 사람과 사물의 존재를 파악하고 기억했는데, 향기로 본질을 파악했는데… 정작 나는 향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본질이 없는 것인가.’

그루누이는 그라스에 도착한다. 앞을 못 보는 여인 앞에 선다. 인기척을 느낀 여인. “누구세요. 누구예요?” 그 여인은 바로 앞에 그루누이가, 아니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루누이는 향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루누이는 이집트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향수로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그것은 각기 다른 13명의 아름다운 여인의 향기를 조합해야 하는, 절대 만들 수 없는 향수다. 그루누이는 한 명씩 여인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들의 피부를 벗겨 이를 이용해 한 방울씩의 향기를 만들어 낸다. 그의 광기는 점점 그 도를 더해 간다.

조용한 그라스를 공포가 뒤덮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인들이 사라진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지만 여인들의 행적을 찾을 수 없다. 그라스 시민들은 괴소문에 휩싸인다. 그루누이는 그렇게 12명의 여인을 살해했다. 이제 단 한 명의 아름다운 향을 지닌 여인을 만나면 그가 그토록 원하던 ‘전설의 향수’가 완성된다. 그루누이는 향기를 찾아 나선다.

그루누이의 후각에 아찔한 향기가 들어온다. 향기를 쫓던 그루누이는 아름다운 여인 로라 리치스(레이첼 허드 우드)와 마주친다. 리치스는 그라스의 명문가인 안토인 리치스(앨런 릭먼) 백작의 딸. 그루누이는 리치스를 최종 목표로 점찍는다.

도시에서 계속해서 여인들이 행방불명되자 백작도 하나뿐인 딸이 걱정되었다. 그는 자신의 딸을 이 도시에서 몰래 탈출시킬 계획을 세운다. 아무도 모르게 마차를 타고 도시를 빠져나가는 리치스. 다음 날 아침, 그루누이는 도시의 향기를 맡는다. 그런데 리치스의 몸에서 나는 그 아찔하고도 매력적인 향기가 나지 않는다. 그루누이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리치스가 이 도시에 없음을 직감한다. 그루누이는 리치스의 향기를 뒤쫓는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루누이의 후각을 벗어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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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은 하룻밤 쉬기 위해 여관에 머문다. 그는 리치스가 방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그 다음 날 아침, 백작은 딸의 방문을 연다. 그리고 경악한다. 리치스는 머리카락이 모두 잘린 채 죽어 있다. 이미 그루누이가 밤에 리치스의 방문을 연 것이다. 그루누이는 리치스의 피부에서 마지막 에센스를 채취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아 놓은 12개의 향수와 결합한다. 그 향기, 그루누이조차 눈을 감고 황홀경에 빠져든다. 그 무렵, 우연히 죽은 여인들의 옷이 발견된다. 경찰은 그루누이의 거처를 찾아낸다. 그루누이의 집, 향수를 만드는 기구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고 거대한 통 속에는 죽은 여인의 시신이 담겨 있다. 드디어 그라스를 공포와 살인의 도시로 만든 그루누이를 체포한 것이다. 그루누이는 재판에서 가장 잔인한 형벌을 받는다. 재판관은 말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 처형에 처한다. 아주 천천히 죽을 것이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드디어 사형 집행일. 그루누이는 천천히 일어나 13명 여인의 향기로 만든 향수를 든다. 그리고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그 순간, 그루누이를 사형장으로 데려갈 간수들이 일제히 그루누이를 경배하듯 바라본다. 그리고 그를 ‘모시고’ 사형장을 향한다. 사형장에 도착한 그루누이. 그가 마차에서 내린다. 파란색 깔끔한 옷을 입은 그루누이가 천천히 사형대 계단을 오른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그루누이에게 야유와 저주를 퍼붓는다.

군중 속에는 리치스의 아버지 안토인 백작도 있다. 그는 가장 사랑하는 딸 리치스를 죽인 그루누이의 최후를 지켜보기 위해 자리했다. 복면을 쓴 사형 집행인이 그루누이를 사형대로 데려간다. 이상하다. 사형 집행인의 얼굴이 풀어지고 그는 감히 그루누이의 몸에 손도 대지 못한다. “나는 도저히 사형을 집행할 수 없어요.” 그 역시 그루누이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에 매료된 것이다. 그루누이는 손수건을 꺼낸다. 그리고 손수건에 향수를 떨어뜨린다. 그 순간, 처음 맡아보는, 처음 느껴보는 황홀한 감정에 군중들은 동요한다. 그루누이가 손수건을 흔든다. 향기가 광장에 퍼져나간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 향기를 좇아 환호한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그루누이를 바라본다.

“그는 신이고 천사야!”

그루누이가 손수건을 한 번 더 흔들고 군중을 향해 손수건을 던진다. 그러자 군중들은 모두 옷을 벗고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다. 집단 최면에 걸린 사람들처럼 그들은 바로 옆 사람을 안고, 키스하고, 섹스를 한다. 모두 사랑의 열락에 취한 것이다. 심지어 리치스의 아버지조차 그루누이를 붙잡고 “나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애원한다. 그루누이는 천천히 이 광경을 바라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 사람들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구나. 내가 갖고 있는 향기를 사랑했구나. 내가 향기를 만들어도, 갖고 있어도, 나의 본질을 사랑하는 것이, 내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루누이는 천천히 광장을 빠져 나온다.

다음 날 아침, 광장에 향기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깨어난다. 그리고 자신들이 어제 열병처럼 나누었던 사랑에 부끄러워한다. 그들은 죄 없는 향수 공장 사장을 잡아 “이 자가 범인이다”고 우기고 사형시켜 버린다. 그루누이는 파리로 향한다. 파리에 도착한 그는 자신이 태어난 더럽고 역겨운 냄새로 가득한 시장에 들어선다. 시장 한가운데에 선 그루누이. 그는 향수를 꺼내 아낌없이 자신의 몸에 들이붓는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미 황홀감이 가득하다. 이들은 그루누이에게 “사랑해요”를 연발하며 그루누이를 만지고, 쥐어뜯고 심지어 먹어 대기 시작한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은 떠났다. 그루누이는 사라지고 없다. 사람들이 그를 모두 먹어 버린 것이다. 그루누이가 있던 자리에 향수 한 병이 놓여 있다. 마개가 열린 향수병, 향수 한 방울이 똑! 하고 떨어진다. 그루누이는 그렇게 마지막 향수를 남기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애초부터 아무런 냄새와 향기가 없던 그가 남긴 유일한 흔적인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향기가 있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체취가 없다는 것을. 사랑받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향기는 그 사람의 영혼이다. 향수는 사랑받았지만 그는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못했다.’

[글 정유진(프리랜서) 사진 픽사베이, 위키피디아, Daum영화, 갈리마드 홈페이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2호 (19.06.1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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