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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대중의 행복을 위한 디자인-어쩌다 마주친 공공 미술

입력 : 
2019-05-09 09: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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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거리를 걷다가, 또 녹사평 전철역에 들어섰다가 마주치는 아트 작품들은 삭막한 도시 공기를 환기시킨다. 공기처럼 주변에 살아 숨 쉬는 공공 미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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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사평역은 하나의 거대한 지하 아트 뮤지엄으로 디자인되었다.
최근 화제인 녹사평역. 과거에도 지하철역에 아티스트의 작품이 설치된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역 전체가 대형 예술 공원으로 꾸며진 건 특별한 일이다. 마치 거대한 지하 미술 도시처럼 설계되었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을 ‘지하 예술 정원’으로 꾸미고 지난 4월14일 대중에게 공개했다. 실제로 지하로 내려가면서 마주하는 풍경은 한 편의 예술 영화를 감상하는 느낌이다. 이 역은 천장 중앙에 반지름이 21m나 되는 거대한 유리 돔이 있고 지하 승강장까지 12층 깊이나 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5층까지 서서히 내려가면서 우리는 빛과 숲의 장엄한 광경에 취한다. 지하에서 만나는 지상이다. 하늘로부터는 다양한 날씨 변화에 반응하는 유리 나루세와 준 이노쿠마 작품 ‘빛의 댄스’의 다양한 그림자에 취하고, 땅으로는 지하를 메운 숲의 환대에 놀란다. 페이스북 ‘녹사평 프로젝트’에는 이런 글이 남겨져 있다. ‘햇살 쏟아지는 봄날, 녹사평역에서 잠시 멈추어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 내는 풍경에 푹 빠져 봅니다.’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디자인하는 이들의 속내는 다들 이럴 것이다. 그래서 시간과 환경에 따라 작품의 모양이 변하고, 그걸 보는 사람들의 감흥도 시시때때로 달라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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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설치된 작가 다니엘 뷔랑의 작품 ‘한국의 색, 인 시튀’.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이 또 있다. 지난 4월 초 선보인 서울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 우뚝 선 건물을 감싼 원색 필름들이 묘하게 한국적이기도 유럽적이기도 하다. 건물 모서리가 곡선으로 처리된 오래된 건물의 16개 층. 그 전면부를 감싼 일자형 창문들은 노랑, 보라, 빨강, 초록, 파랑 등 여덟 가지 색을 입었는데 이는 현대 미술 작가 다니엘 뷔랑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품이다. 루이뷔통 아트재단, 스트라스부르 현대미술관 등 한 도시의 랜드마크에 컬러풀한 필름을 설치해 햇빛에 따라 달라지는 도시 풍광을 재설계하는 그는 이번에도 특유의 테크닉을 서울 한복판에 풀어놓았다. 이번 작품은 밤에 진가가 드러난다. 네온사인처럼 환하게 불이 켜진 건물은 리드미컬한 컬러가 만들어 내는 활기로 도시에 무지개 빛 동심을 풀어놓는다. 퇴근길의 시민들은 잠시 시름을 잊고 이 매직 팔레트를 행운 부적처럼 뇌 속에, 휴대폰에 저장한다. 누군가에겐 동화로, 누군가에겐 로맨스로 기억될 장소의 기억. 이렇게 열린 장소에 열린 태도로 설치된 아트 작품은 대중들에게 서로 다른 기억으로 남아 추억이 된다. 공공 미술이 추구하는 긍정의 힘이다. 물론 광장이나 대로 등 특정 장소에 국한될 수밖에 없는 작품성의 한계, 특정 작가나 단체의 정치색이 드러나는 공공 미술을 향한 불편한 시선도 여전하다. 하지만 긍정의 역할이 더 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대중들 간의 적극적인 상호 작용을 추구하는 공공 미술을 디자인하고 설계하는 경향이 점차 늘고 있다. 퍼포먼스나 복합 예술을 적용하는 것이다. 대중들이 모여 삶을 이야기하고 그 실제 행위를 공공이 지켜보는 방식으로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식이다.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고 에너지를 주입하는 전달형 방식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공감하는 방식으로의 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공공 미술을 디자인하는 것은 무엇보다 대중의 행복을 위한 것이니 말이다.

[글 한희(문화평론가) 사진 서울시, 녹사평역 프로젝트, 동아일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78호 (19.05.1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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