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서비스 안내

대한민국 강타한 ‘어벤져스 신드롬’ 연전연승 MARVEL 성공 경제학

  • 명순영 기자
  • 입력 : 2019.05.10 09:53:10
  • 최종수정 : 2019.05.10 09:58:01
지난 4월 29일 낮 1시 40분 강남CGV. 평소 같으면 텅 비었을 극장 안이 꽉 찼다. 정장을 빼입은 1인 관객이 적지 않아 보인다. 스포일러(spoiler)를 당하기는 싫고 일 마치고 보자니 티케팅이 어려워 연차·반차 휴가를 낸 것은 아닐까.

영화가 시작하기 전 간간이 팝콘을 먹는 소리만 들릴 뿐 속닥거리는 소리조차 없다. 알 수 없는 긴장감. 마치 ‘이별 의식’이라도 준비한 듯한 숙연한 분위기다. 극장가에서 역대급 화제를 불러온 ‘어벤져스 : 엔드 게임(어벤져스4)’ 상영관의 한 단면이다.

그야말로 ‘어벤져스’ 난리통이다. 영화를 보기 전 스포에 노출될까 우려해 인터넷조차 멀리한다는 직장인의 웃픈 얘기가 들린다. 영화가 보고 싶어 군인이 탈영하고, 스포를 외친 한 남성이 집단 폭행을 당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뉴스마저 터져 나온다.

화제만큼 관객 수는 사상 최고다. ‘어벤져스4’는 국내 상영 8일 만에 800만명 관객을 돌파했다. 이는 2018년 ‘신과함께-인과 연’이 개봉 9일째, 2014년 ‘명량’이 개봉 10일째 800만 관객을 돌파했던 것보다 각각 하루와 이틀 빠른, 역대 최단 기록이다.

마블스튜디오는 2008년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어벤져스4’까지 총 22편의 슈퍼히어로(영웅) 영화를 발표하며 화제의 중심에 서왔다. 마블 작품은 국내에서만 1억명 관객을 모았고, 마블을 사랑하는 한국은 ‘마블민국’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마블스튜디오의 성공 키워드를 ‘MARVEL’ 알파벳에 맞춰 6가지로 정리해봤다.



Mega 역대 최대 규모 블록버스터

▶천문학적 제작비…수익으로 보답

1조1500억원.

지난 2017년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어벤져스3)’를 제작 중인 애틀랜타스튜디오 CEO는 “10억달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특정 영화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어벤져스3’와 ‘어벤져스4’를 염두에 둔 얘기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최고 제작비는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4600억원 정도였다. 업계에서는 ‘어벤져스4’ 제작비가 이를 넘어선 6000억원대에 달할 것이라 추정한다.

마블 제1의 성공 키워드는 ‘메가(Mega)’다. 마블은 작품을 냈다 하면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고 산다. 최고 제작비를 쓰고 최고 배우에게 최고 개런티를 제시한다. 탄탄한 시나리오에 수백 명의 글로벌 스타가 등장하고 관객 기대를 뛰어넘는 영상을 갖춘 작품이 나오는 이유다. 관객은 1만원 안팎의 영화 관람비로 수천억원짜리 작품을 즐기는 셈이다. 직장인 나현철 씨는 “마블 영화는 관람료가 아깝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며 “화려한 캐릭터와 영상만으로도 가성비를 충분히 느낀다”고 평가했다.

극장 입장에서도 마블 영화는 ‘흥행 보증수표’다. ‘어벤져스4’는 전국 스크린 96%를 장악했다. 독점 논란이 있으나 극장으로서는 눈에 보이는 수익 카드를 버리기 힘들다.

마블 투자 결과는 만족스럽다. ‘어벤져스4’에 앞선 21편의 영화는 전 세계에서 183억달러(약 21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어벤져스4’는 개봉 첫날만 25개 국가에서 2000억원에 달하는 수입을 올렸다. 제작비의 3분의 1을 첫날 거둬들인 셈이다. 개봉일이 늘어날수록 마블 수익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All-star 다양한 캐릭터 매력

▶‘히어로’ 쌓이며 폭발력…시리즈의 힘

MCU(Marvel Cinematic Universe).

마블스튜디오가 만든 영화 시리즈이자, 영화 속 히어로들이 활동하는 세계관을 일컫는 용어다. MCU의 모든 영화는 마블 코믹스에서 출간된 만화를 기반으로 스토리 전개와 설정은 개별 영화에 맞춰진다. MCU는 만화 원작자이자 마블스튜디오 명예회장인 스탠 리(1922~2018년)가 남긴 원작 만화를 유산으로 삼아 오늘의 자리까지 왔다.

마블코믹스 캐릭터는 수천 개에 달한다. 그중 2008년 ‘아이언맨’부터 최근 ‘어벤져스4’까지 12년간 22편의 ‘어벤져스’ 영화를 통해 다양한 글로벌 스타급 캐릭터를 배출했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토르, 앤트맨, 닥터 스트레인지, 블랙 팬서 등이 주인공이다.

각 시리즈 작품은 캐릭터와 스토리에 집중해 관객이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한 시리즈가 이어지며 ‘쉴드’의 수장 ‘닉 퓨리’가 개별 작품의 연결고리가 된다. 각 캐릭터들은 영화를 넘나들고 관객은 자신이 MCU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만화책뿐 아니라 TV 시리즈 ‘에이전트 카터’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장된 스토리는 영화를 보는 팬들에게 다층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 속 ‘히어로’가 쌓이며 시리즈의 힘이 폭발적으로 커져 나간다는 뜻이다.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면 관객 끌기에 유리하다. 마블 솔로무비는 캐릭터에 대한 호불호로 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벤져스’ 시리즈는 각자가 좋아하는 히어로를 적어도 한 명 이상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관람 욕구를 높인다는 설명이다.

윤성은 평론가는 “마블이 12년간 축적한 노하우를 통해 오락영화 시스템을 잘 구축했다”며 “기존 캐릭터와 스토리에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새로운 캐릭터와 스토리를 결합시켜 끊임없는 변형과 확장으로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평가했다.

Ridiculous 유쾌한 발상

▶무거운 스토리에도 유머…B급 감성

심지어 인류 종말이 가시화된 ‘어벤져스4’에서마저 마블은 웃음코드를 잃지 않는다. 팬들의 셀피 요청에 능글맞게 웃으며 응대하는 헐크, 촉새처럼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앤트맨, 보통의 인간 중년 남성처럼 아랫배가 살짝 처진 토르까지. 이렇게 망가진(?) 영웅의 모습은 관객 긴장감을 풀기에 충분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마블을 대표하는 히어로인 아이언맨은 배트맨처럼 어둡지도, 또 슈퍼맨처럼 진지하지도 않다. 유머러스하고 부유하다는 장점과 함께 돈과 여자를 밝히고 신체에 치명적인 결함도 함께 가졌다. 이런 탕아스러운 매력과 인간미가 MCU를 관통하는 이미지가 됐다”고 평했다. 그간의 MCU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마블스튜디오 히트작이었던 ‘앤트맨과 와스프’는 B급 코미디 감성을 가져와 크게 히트 쳤다.

아울러 마블 영화가 픽션이면서도 현실에서의 고민을 잘 녹여냈다는 점도 호평받는다. 블랙 히어로 ‘블랙 팬서’와 여성 히어로 ‘캡틴 마블’이 좋은 예다. 인종·성차별 문제는 최근 몇 년간 미국 사회의 뜨거운 화두였다. 지난해 개봉한 ‘어벤져스3’도 그랬다. ‘어벤져스3’에서 우주의 균형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생명체 절반을 소멸시킨 ‘악의 대명사’ 타노스를 등장시킨다. 빌런의 눈으로 인구 폭발과 식량·자원 부족을 지적했다는 평론이 나온다. 조 루소 감독은 국내 기자간담회에서 “어떤 내러티브가 투영되고 사회적인 시사점이 있었을 때 의미를 더한다”며 “지금도 우리 철학을 MCU에 투영하려 노력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큰 공감을 얻었다고 생각한다”며 말하기도 했다.



Viral 입소문 타고 ‘훨훨’

▶스포일러 논란이 되레 흥행 요소로

“손님 여러분 죄송합니다. 오늘 오전 영업 쉽니다. 스포일러 당하기 전에 ‘어벤져스’ 보고 오겠습니다.”

‘어벤져스4’ 개봉 사흘째인 지난 4월 26일, 경기도 한 커피전문점 정문에 써붙인 글이다. 하루 장사보다 ‘스포’를 당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인의 의지가 느껴진다. ‘마블 덕후’라면 대부분 그와 비슷한 마음일 테다. 스포일러 홍수로부터 극장 입구까지 스스로를 무사히 지켜낸 후 온전히 영화를 즐기고 싶은 마음 말이다.

한국 전역이 ‘어벤져스4 스포일러’로 떠들썩하다. 마블 측에서는 감독과 배우, 제작사까지 총출동해 스포일러 방지 캠페인에 나서고 있지만 속으로는 표정관리 중이지 않을까 싶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무지막지한 광고 효과를 누리는 중이기 때문이다. 영화에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얼마나 재미있기에 이 난리일까’라는 심리로 극장을 찾는다. 바이럴 마케팅, 그야말로 입소문의 힘이 전대미문 흥행세를 이끄는 모양새다.

스포일러란 영화 등 결말이나 반전을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스포일러는 영화 흥행에 찬물을 끼얹는 경우가 많지만 ‘어벤져스4’에는 예외다. 스포일러를 둘러싼 사건 사고가 그 자체로 강력한 마케팅이다. 아직 ‘어벤져스4’를 보지 못한 이들은 영화관 인근 식당이나 커피전문점 주변을 아예 피해 다닌다. 극장가 주변에 위치한 식당에는 ‘어벤져스4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자제해달라’는 호소글을 써붙인 곳도 적잖다. 유튜브에는 ‘어벤져스4 스포일러 당하지 않는 법’이라는 영상이 화제다. SNS 활동을 잠시 금하고 정치나 스포츠 기사 등 영화와는 전혀 관련 없는 기사 댓글도 조심하라는 내용이다.

‘어벤져스4’ 입소문의 근원지는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중국의 20대 여성은 영화를 보다 지나치게 눈물을 쏟은 나머지 호흡곤란 증세로 응급실로 실려갔다. 홍콩에서는 영화 내용을 스포일러 했다 집단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 유명 풋볼선수는 SNS에 감상평을 썼다가 퇴출 위기까지 내몰렸다. ‘어벤져스4’와 관련된 사건 사고가 뉴스로 재생산되고 이것이 다시 영화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끌어올리는 양상이다.

Expandability 확장성

▶원소스 멀티유즈…만화의 힘

영화만 ‘대박’ 난 것이 아니다. 장난감, 패션, 게임 등도 마블 이름 두 글자만 들어가면 ‘완판 행진’이다. 잘 키운 마블 하나가 열 영화 안 부러운 셈이다. 만화 원작이 갖는 힘도 재조명되고 있다. 만화의 특성상 남녀노소를 불문, 다양한 연령과 계층을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벤져스4’ 인기에 힘입어 장난감이 불티나게 팔리는 중이다. SSG닷컴에서는 영화 개봉 이틀 뒤인 4월 26일, 레고 장난감 등 4개 상품이 품절돼 비상이 걸렸다. SSG닷컴 관계자는 “평균 10만원 안팎의 비싼 제품이라 가격을 감안해 물량을 1000개만 준비한 상황이었는데 급하게 3000개 물량을 추가 확보해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난감뿐 아니다. 아디다스·유니클로·홈플러스는 마블 한정판 농구화와 티셔츠를, 파리바게뜨는 아이언맨·토르로 장식한 어벤져스 초콜릿 케이크를 ‘어벤져스4’ 개봉에 맞춰 팔기 시작했다. 다이소는 개봉 일주일이 지난 후 ‘어벤져스’ 캐릭터가 디자인된 생활용품 70여종을 시장에 내놨다. LG유플러스는 AI 스피커에 마블 캐릭터 디자인을 녹여낸 ‘U+AI 어벤져스’를 5월 중 선보일 예정이다.

게임업계도 ‘어벤져스 특수’를 노리고 있다. 에픽게임즈코리아는 최근 ‘포트나이트’에 어벤져스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기간 한정 모드 ‘엔드게임’을 추가했다. 넷마블은 모바일 게임 ‘마블 퓨처파이트’에 ‘어벤져스4’를 테마로 하는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이베이코리아 관계자는 “만화 캐릭터 기반 상품은 아이를 넘어 어른, 즉 키덜트 공략에도 효과적이다. 영화 개봉 전에도 ‘어벤져스’를 비롯한 마블 시리즈 피규어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었다. 최근에는 없어서 못 파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만화의 ‘원소스 멀티유즈’ 성공 사례는 마블뿐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영화사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운 ‘신과함께’를 비롯해 케이블 드라마로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미생’ 역시 웹툰에서 기반했다. 이병민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마블은 ‘어벤져스’ 영화를 보다 게임을 하고, 이후에는 웹툰으로 넘어가는 등 소비자들이 여러 매체와 플랫폼을 넘나들며 즐기고 있다. 웹툰을 비롯한 만화는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는 융합적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어 더욱 경쟁력을 갖는다”고 말했다.

한국의 마블 사랑은 유별나다. 마블도 한국을 각별히 챙긴다. 사진은 ‘아이언맨’으로 친숙한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호크아이’ 제레미 레너, ‘캡틴 마블’ 브리 라슨 등이 지난 4월 내한 행사에 참여한 모습.

한국의 마블 사랑은 유별나다. 마블도 한국을 각별히 챙긴다. 사진은 ‘아이언맨’으로 친숙한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호크아이’ 제레미 레너, ‘캡틴 마블’ 브리 라슨 등이 지난 4월 내한 행사에 참여한 모습.



Loyalty 충성고객

▶마블의 민족? 한국 관객 열광

개봉 8일 만에 800만 돌파다.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흥행 속도다. N회 차(2회 이상) 관람에 나선 ‘마블 덕후’의 공이 크다. 반차를 내거나 장사를 하루 접고 극장을 찾는 것은 물론 1일 2~3회 관람도 서슴지 않는다. 마블 히어로 피규어로 방 한쪽을 장식하고 좋아하는 캐릭터가 들어간 굿즈 구입에는 지갑을 여는 데 거리낌 없다.

마블 팬의 높은 충성심 배경에는 총 12년이라는 MCU의 역사가 자리한다. 스무 살 대학생 때 첫 영화 ‘아이언맨’을 봤던 이는 이제 32세 직장인이 됐다.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청춘의 일부인 셈이다. 이들은 단순히 영화를 소모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관객은 SNS와 유튜브, 커뮤니티 사이트 등을 통해 MCU 캐릭터 패러디 등 자체 제작 콘텐츠를 양산한다. MCU에서 던져놓은 여러 ‘떡밥’들을 해석하며 스스로 놀이문화를 만들어갔다.

전 세계에서도 한국 마블 덕후의 충성도는 특히나 유별나기로 소문났다. 오죽하면 ‘마블의 민족’이나 ‘마블민국’이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다. 마블이 한국을 ‘특별 관리’한 결과다. 마블은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일 때마다 한국을 최초 개봉 국가로 지정해 가장 먼저 영화를 공개한다.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서울에서 촬영해 엄청난 화제를 모았고 ‘블랙 팬서’는 부산에서 촬영했다. 배우들의 한국 사랑도 남다르다. 아이언맨을 연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마블 시리즈 출연진은 지난 4월 15일 대거 내한해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광장시장 등에 방문해 한국 음식을 맛보는 사진 등을 개인 SNS에 올리기도 했다. 특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이번이 4번째 내한이었을 정도다.

강유정 평론가는 “마블 ‘어벤져스’에 대한 한국 팬의 관심과 열성은 단순한 영화 소비를 넘어섰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관객들은 마블 속 캐릭터의 성장을 지켜봤고, 같이 성장했다. 스스로 MCU 구성원이라고 생각하는 등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나건웅 기자 wasabi@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7호 (2019.05.08~2019.05.14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