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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그레이 4인 4색-은퇴 후 청춘보다 화려한 장년 인생 ‘활짝’ 육십갑자 살아본 지금이 인생 최전성기

  • 박수호·노승욱·정다운 기자
  • 입력 : 2019.05.10 09:53:48
인생 100세 시대. 은퇴 후에도 청춘보다 화려한 장년기를 보내는 이들이 있다.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아들뻘과 공동대표를 맡는가 하면, 스타 유튜버와 패션 모델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육십갑자를 다 지내고도 인생 최전성기를 달리며 여전히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있는 ‘그레이트 그레이’ 4인을 만나봤다.

스타트업 합류 김양환 얌테이블 이사

▶“명품조연도 주인공만큼이나 멋지죠”

1961년생/ 강릉명륜고/ 중앙대 경영학 박사/ KPMG컨설팅 부사장/ 삼성그룹과 포스코그룹 컨설팅담당 임원/ 2014년 노을과봄 창업/ 2017년 1월 합병으로 얌테이블 출범/ 얌테이블 CSO(현)

1961년생/ 강릉명륜고/ 중앙대 경영학 박사/ KPMG컨설팅 부사장/ 삼성그룹과 포스코그룹 컨설팅담당 임원/ 2014년 노을과봄 창업/ 2017년 1월 합병으로 얌테이블 출범/ 얌테이블 CSO(현)

한때 상위 1% 안에 드는 고액 연봉자였다. KPMG 컨설팅에서 25년간 일하면서 유명 컨설턴트로 이름을 날렸다. 삼성 등 대기업에 스카우트되기도 했다. 그렇게 직장생활 30년. 그리고 남들 은퇴하는 54세를 맞았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기획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해본 일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길로 그 어렵다는 창업, 그것도 50대가 도전하기 힘들다는 ‘푸드 큐레이션 온라인 커머스’ 기치를 내걸고 스타트업을 설립했다. 각종 식품을 선별해 온라인 판매를 하는 사업 모델. 산지 직송 모델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 여러 식품업체와 제휴하는 등 의욕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트렌드는 수시로 바뀌었고 IT 안정화도 쉽지 않았다. 혼자서는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젊은 대표가 하는 수산물 전문 식품회사와 만났다. 한산도수산의 주상현 대표로 본인보다 스무 살 어렸다. 얘기를 나눠 보니 사업 모델이나 방향성, 추진력이 마음에 들었다. 두 사람은 그길로 한 회사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대표는 추진력 있는 젊은이가 맡고, 본인은 이사로 회사 운영·투자 유치 등에서 힘을 쏟겠다고 했다. 2017년 출범한 스타트업 얌테이블의 김양환 이사(58) 얘기다.

1961년생인 김 이사는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은퇴했다고 했다. 본인도 나름 재테크한 것을 바탕으로 여생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면 인생 자체가 무미건조해지잖아요. 밤낮 일해왔던 습관이 쉬 사라지지 않았어요. 또 평생 공부한 내용을 현장에 적용시켜 효과를 보는 데서 일의 보람을 찾았는데 그런 짜릿함이 없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스스로가 사고 친(?) 인생 2막의 결과는?

얌테이블은 수산 온라인 커머스에서 압도적인 1등 회사로 지금까지 누적 투자유치 금액만 110억원이 넘어간다. 지난해 12월에는 매출액 25억원을 돌파하며 전년 동월 대비 5배 급상승했다. 올해 목표 매출액 300억원을 설정할 정도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신구 조화가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확실히 젊은 사람들은 트렌드에 빨라요. 대신 저는 인맥, 조직 운영 등에서 경험을 활용할 영역이 많았어요. 컨설턴트 때보다 더 많은 시간 일을 하고 있는데 노후 걱정은 전혀 없고 하루하루가 너무 재미있습니다.”

그는 ‘그레이트 그레이’의 요건으로 ‘나이를 초월해 내 가슴을 뛰게 만들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또 찾았다면 이를 행동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컨설턴트로 있을 때 전략적 딜에서 과감한 의사결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멋진, 쓰임새 있는 시니어라면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짐)’와 같은 전략적 판단을 잘해야 합니다. 이왕이면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호흡할 수 있는 스타트업에서 청년이 주인공이 되고, 장년이 조연이 되는 구도를 그리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레이트 그레이’의 진면목은 조연이라 해도 특정 장면에서는 주인공 못지않은 활약을 펼치는 영화배우처럼 빛날 수 있는 것이니까요.”

SNS 스타 심방골주부 조성자 씨

▶시골 아낙, 스타 유튜버가 되다

1958년생/ 농업·양봉일을 하던 주부에서 2016년 12월 유튜브 방송 시작, 구독자 27만명

1958년생/ 농업·양봉일을 하던 주부에서 2016년 12월 유튜브 방송 시작, 구독자 27만명

“집밥이 생각나는 음식으로 한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각종 음식 레시피, 황금 레시피, 전통음식, 간편식 등 한식에 대한 모든 것을 만나보세요.”

조성자 씨(61)가 운영하는 요리 레시피 전문 유튜브 ‘심방골주부’의 채널 소개 문구다.

그는 원래 충남 부여군에서 농사와 양봉을 병행했다. 30년 넘은 주부 내공으로 평소 요리에 자신이 있었던 그는 4년 전 블로그에 자신만의 요리 레시피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글과 사진을 통한 정보 전달에는 한계가 있었다. 마침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막내아들이 영상 촬영과 편집을 도와줘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전업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진정성 있고 따라 하기도 쉬운 그의 영상은 이내 인기를 끌었다. 현재 구독자는 27만명, 누적 조회 수는 4477만회에 이른다.

“아침에 일어나면 강아지와 닭 먹이를 주고 양봉장을 한번 둘러봅니다. 양봉일이 바쁜 4~5월은 오전에는 아들과 양봉일을 같이 하고 오후에는 유튜브 촬영을 해요. 저녁에는 유튜브 채널에 달린 댓글들을 보며 답글을 달죠. 아들은 채널 관리와 편집을 해서 촬영한 영상들을 미리 업로드해놓고요. 요즘은 농사와 양봉일을 줄이고 방송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250여개 영상을 제작한 조 씨의 수입은 이제 일반 직장인 평균 연봉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신문사나 잡지 등에서 인터뷰 요청은 물론, 최근에는 방송 촬영 제의도 들어온다. TV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10회 동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조금 더 유명해지게 됐다고. 유튜브 채널에 6~7살짜리 꼬마 구독자들도 적잖다.

“어린 구독자분들이 ‘어머니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많이 말씀을 해주세요. 서울에 일정이 있어 올라오면 알아보고 사진을 같이 찍자는 분도 있어 쑥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모든 것이 하나하나 다 즐겁습니다.”

요즘은 ‘1인 1유튜브’ 시대라는데, 장년에 유튜버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 시작하는 분은 조급해하지 말고 처음부터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즐기면서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뿐 아니라 유튜브를 운영하는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유명해진 것이 아니거든요. 저는 앞으로도 아들과 함께 초심을 잃지 않고 이대로 쭉 유튜브 채널을 운영할 생각입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힘 닿는 데까지 맛있는 음식을 많은 분께 알려드리고 싶어요. 방송을 보신 분들이 집 주변 전경이 너무 아름답다고 해서 내년에는 평소의 일상도 한번 올려볼까 생각 중입니다.”

패션모델이 취미 최용환 씨

▶SNS 통해 자신감 되찾은 ‘패셔니스타’

1960년생/ 프리랜서 시니어 모델(현)

1960년생/ 프리랜서 시니어 모델(현)

지난해 말 여성 구두 쇼핑몰 ‘트라이문’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인생로퍼’ 펀딩에 도전했다. 남성화 판매에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최용환(59), 최수환(26) 부자가 모델을 맡았다. 이 프로젝트에서 트라이문은 6932만원 펀딩에 성공했다. 목표했던 금액(250만원)보다 27배 이상 큰 규모였다. 이후 진행된 인생로퍼 앵콜펀딩에서는 1억9142만원이 모였다.

환갑을 바라보는 최용환 씨는 전문 모델이 아니다. 한 아들의 아버지이자 부산 서면에서 건축업에 종사 중이다. 원래 동네에서도 소문난 ‘패셔니스타’였던 최 씨에게는 과거에도 모델 제의가 제법 들어왔다. 하지만 선뜻 제의를 수락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계속되는 사업 실패로 자신감이 바닥을 친 상태였던 것.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함께 찾아왔다. 패셔니스타인 아버지의 축 처진 어깨가 보기 싫었던 아들 수환 씨는 아버지에게 패션 사진 촬영을 제안했다. 일종의 ‘아버지 기 살리기’ 프로젝트였다. 그렇게 아버지의 멋진 모습을 SNS에 찍어 올리기 시작했더니 ‘멋있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젊은 시절 막연하게 패션 쪽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교사였던 아버지가 ‘딴따라’라며 허락하지 않았죠. 그렇게 오랜 기간 평범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사업이 부도난 후 한참 두문불출하다 2015년 서울 동대문에서 열린 ‘서울패션위크’에 참가했습니다. 아들과 함께 멋지게 빼입고 상경했더니 카메라 수십여 대에서 연신 플래시가 터지는 거예요. 이후 서울패션위크를 매년 찾게 됐지요. 자신감을 완전히 되찾았답니다.” 최용환 씨의 회고다.

현재 최 씨는 부산 서면에서 건축업에 종사 중이다. 옷 잘 입는 패셔니스타인 점도 여전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따금 들어오는 모델 제의를 흔쾌히 수락한다는 점. 올 들어서는 홈쇼핑 채널 SK스토아 패션 모델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세 번 정도는 서울에 올라와 하루종일 촬영을 한다. 최근에는 가정의 달을 맞아 아내, 아들과 함께 패션 편집숍 ‘웰메이드’ SNS 화보를 촬영했다. 이제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어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아직 전문 모델도 아니거니와 모델일로 버는 수입이 많은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 도전 못 해봤을 일을 하고 있잖아요. 이제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 참으로 즐겁습니다.”

그는 함께 나이 들어가는 동지들(?)에게 옷맵시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날렵한 청바지를 복숭아뼈가 보이도록 접어 입고 바지통은 항상 7인치를 유지하라고, 수염을 멋지게 다듬으라고 주문한다.

“뭐라카나. 50~60대 대부분 ‘나이에 맞게 입어야 한다’며 기장이 길고 헐렁한 옷을 찾아 입기 시작해요. 나이 들수록 등이 굽고 몸에 탄력도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그럴수록 날렵하게 입어야 젊어 보이지 않겠어요? 비싼 옷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1만~2만원짜리라도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찾아 입으면 그게 명품옷일 테니까요.”

인기 저자 지성언 차이나다 대표

▶LG 임원, 스타트업에 편지로 러브콜

1955년생/ 1981년 LG상사 입사/ 2004년 LG패션 상하이법인장/ 2015년 마스크 중국브랜드 총괄/ 2016년 차이나다 합류/ 차이나다 공동대표(현)

1955년생/ 1981년 LG상사 입사/ 2004년 LG패션 상하이법인장/ 2015년 마스크 중국브랜드 총괄/ 2016년 차이나다 합류/ 차이나다 공동대표(현)

1980년대 상사맨이 일등 신랑감이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종합상사는 우리나라 수출 주역이었다. LG상사 중국 광저우지사장으로 일하던 지성언 씨(64)는 2004년 LG패션(현 LF) 상하이법인장으로 옮긴 뒤 10년을 더 일했다. 2014년 33년간 몸담은 회사에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그 뒤로 얼마간 중국 내 미국계 패션 회사에서 ‘마스크’ 브랜드 총괄을 맡으며 인생 2막을 준비했다. 기왕이면 한국에 돌아와 중국에서의 사업 노하우를 가르쳤으면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국의 온라인 중국어 교육 스타트업 ‘차이나다’를 알게 됐다.

온라인으로 듣는 중국어 수업이라니 ‘이거다’ 싶었다. 차이나다에 연예인 아닌 ‘중국통’ 일반인 모델이 필요하면 기꺼이 돕겠다는 편지를 썼다. 당시 중국에서 길거리 캐스팅으로 TV 광고를 찍어본 적이 있던 터라 자신감도 있었다. 스타트업의 젊은 대표에게서 바로 답신이 왔다. 상하이에서 만나자고. 모델이 아닌 함께 일할 직원으로.

“처음에는 오프라인 사업을 맡아달라기에 ‘그냥 학원’이면 안 하겠다 말했습니다. 그럼 어떤 학원을 만들고 싶느냐 묻더라고요. 가기 싫은 학원 말고 멋진 분위기 속에서 소통 가능한 카페, 캠프 같은 곳을 만들고 싶다 대답했어요. 그런데 김선우 대표가 흔쾌히 동의해주는 거예요. 그렇게 센터장으로 합류했는데 지금은 공동대표가 돼 함께 일하고 있답니다.”

지성언 대표는 2년 만에 7곳을 성공적으로 출범시켰다. 3곳은 공유오피스 위워크 내에 자리했다. 학원이 아닌 교류의 장(場)이어야 한다는 지 대표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스무 명 남짓이었던 차이나다 직원은 80여명으로 늘었다. 대기업 임원까지 지낸 사람이 예전 월급 3분의 1을 받고, 평균 나이 30대 직원과 어울려 일하는 것이 체력에 부치지 않을까 싶지만 일주일에 이틀 정도 일하도록 협의했기에 문제없단다. 지성언 대표는 멋진 슈트를 빼입고 차이나다에 출근하거나 특강을 한다.

그사이 작가로도 데뷔했다. 책 제목은 ‘그레이트 그레이(Great Grey·위대한 노년)’. 흰머리조차 장점으로 승화하자는 의미로 지은 SNS 계정 아이디에서 따왔다.

즐겁게 일하는 비결이 뭘까 물었더니 “내가 누군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처음부터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은 얼마 없어요. 대부분 회사가 정해주는 대로 일하며 살죠. 다만 인생 2막을 앞두고는 부지런히 고민하고 방향을 정해둬야 합니다.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쉽게 결심할 수 있습니다.”

[박수호·노승욱·정다운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7호 (2019.05.08~2019.05.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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