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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장하는 실버산업-이어폰 보청기·노화방지 화장품·연화식(부드러운 음식) 액티브 시니어가 감동할 상품 개발 특명

  • 노승욱 기자
  • 입력 : 2019.05.10 09:53:59
불황 속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는 산업이 있다. 바로 실버산업이다. 경제력과 활동성을 겸비한 액티브 시니어(잠깐용어 참조)들이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르며 식품, 뷰티, 헬스케어, 미디어 등 여러 산업에서 이들을 겨냥한 신제품 출시가 봇물을 이룬다.

노인층 공략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식품업계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3월 발표한 ‘가공식품 세분 시장 현황조사’에 따르면 국내 실버푸드 시장 규모는 2011년 5104억원에서 오는 2020년에는 16조원 규모로 9년간 30배 이상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출산으로 학교 식수 인원 감소에 직면한 급식업체나 분유업체 등이 연화식 등 케어푸드(실버푸드)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현대그린푸드가 노인층을 겨냥해 선보인 연화식 제품.

현대그린푸드가 노인층을 겨냥해 선보인 연화식 제품.

현대그린푸드는 국내 최초 시니어푸드 전문 제조시설인 ‘스마트푸드센터’를 경기 성남시에 구축 중이다. 올 하반기 완공 예정으로 토지 매입, 공장 신축 등 총 600억원을 투자, 최대 100여종의 시니어푸드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시니어 전문 식자재 브랜드는 현대그린푸드의 ‘그리팅 소프트’를 비롯해 CJ프레시웨이(헬씨누리), 푸드머스(소프트메이드) 등도 운영 중이다. 삼성웰스토리도 올해 안에 B2B(기업 대 기업 간 거래) 형태 연화식을 선보일 예정이다.

노인들의 위생관리 시장도 성장세다. 요실금, 변실금 등에 대비한 성인용 언더웨어(기저귀)가 대표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50세 이상 인구 1800만명 중 350만명이 요실금을 겪고 있다. 출산을 경험한 국내 여성의 약 40%, 60대 이상 남성 중 25%가 경험한다. 이 덕분에 유한킴벌리는 지난해 디펜드 요실금 언더웨어 매출이 전년 대비 24% 늘었다.

피부 노화방지를 위한 ‘시니어 뷰티’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국내 안티에이징(노화방지) 산업 시장 규모가 지난해 25조원에서 2020년에는 28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국내 화장품 업계는 물론, 제약업계도 관련 시장에 발 벗고 뛰어들고 있다.

헬스앤드뷰티(H&B)스토어 ‘부츠’는 영국의 대표 안티에이징 스킨케어 전문 브랜드 ‘넘버 세븐(No.7)’을 최근 들여왔다. 제약업계는 화장품(Cosmetic)과 의약품(Pharmaceutical)을 접목한 ‘코스메슈티컬’ 시장을 노린다. 종근당 ‘벨라수’, 동국제약 ‘센텔리안24’, 일동제약 ‘퍼스트랩’, 한미약품 ‘프로-캄’, 대웅제약 ‘이지듀’, 동화약품 ‘활명’, 유한양행 ‘리틀마마’ 등이 대표 사례다. 특히 동국제약의 센텔리안24는 첫해인 2015년 매출 150억원에서 지난 2017년 600억원 규모로 크게 성장했다. 대웅제약 이지듀의 대표 제품 ‘DW-EGF 크림’도 TV 홈쇼핑에서 수차례 완판을 기록하며 회사 신성장동력으로 떠올랐다.

의료기기 시장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보청기는 그간 노화의 상징이어서 액티브 시니어의 거부감이 많은 제품이었다. 이에 최근 업계에서는 기능에 혁신적 디자인을 더한 제품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멘스 시그니아(Signia) 보청기의 ‘스타일레토 커넥트(Styletto Connect)’는 블루투스 이어폰과 흡사한 디자인으로 내놨다. 이 제품은 iF,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등에서 잇따라 수상할 만큼 혁신적 디자인을 자랑한다. 레이저·초음파 의료기기 전문기업 원텍은 기능성은 높이고 본체 무게는 절반으로 줄인 탈모 치료기기 ‘헤어빔에어’를 선보였다. 저출력 레이저 요법을 활용해 모근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주는 이 제품은 AI 스피커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으로 호평받고 있다.

미디어 시장에서는 ‘실버 크리에이터’가 각광받는다. 데뷔 48년 차 배우 이덕화 씨가 유튜버가 된 ‘덕화TV’를 비롯해 ‘이홍렬TV’ ‘주현미TV’ 등 왕년의 연예인들이 유튜브에서 크리에이터로 활약하고 있다. ‘실버 유튜버’의 선두주자 박막례 할머니의 구독자 수는 85만명에 이른다.

전국노래자랑에서 가수 손담비 씨 노래를 부른 지병수 씨는 ‘할담비(할아버지 손담비)’로 인기를 모으며 단숨에 대기업 TV CF 모델 자리까지 꿰찼다.

전국노래자랑에서 가수 손담비 씨 노래를 부른 지병수 씨는 ‘할담비(할아버지 손담비)’로 인기를 모으며 단숨에 대기업 TV CF 모델 자리까지 꿰찼다.

전국노래자랑에서 가수 손담비 씨 노래를 부른 지병수 씨는 ‘할담비(할아버지 손담비)’로 인기를 모으며 단숨에 대기업 TV CF 모델 자리까지 꿰찼다. 이들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중장년층이 이제 유튜브 등 뉴미디어 이용에 익숙해진 데다, ‘꼰대’ 이미지가 강했던 과거 노인과 달리 수평적이고 활기차게 소통하는 액티브 시니어의 등장에 젊은 층도 열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지형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액티브 시니어의 미디어 이용’ 보고서에서 “50~60대가 중심이 되는 액티브 시니어는 소비와 경제활동의 새로운 주축이 되고 있다. 이들은 TV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미디어를 이용하고 있고 특히 온라인 활동에 참여해 정보를 검색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하는 데 있어서도 적극적인 양상을 보인다. 이들의 미디어 이용 양상을 토대로 각 계층의 니즈에 맞는 콘텐츠 제작·확산을 위한 노력도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버산업 해외 사례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가 진행된 선진국에서는 실버산업이 어떻게 발달했을까.

미국은 베이비붐 세대(1946~1965년생)가 2010년께 노년층에 진입하며 실버 시장 규모가 급성장했다. 마케팅 전문업체 ‘KGC Direct, LLC’에 따르면 미국 실버 시장은 연간 7조달러에 달하는 미국 전체 소비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2030년에는 약 8000만명의 베이비붐 세대 인구 모두가 65세 이상 노년층에 진입할 전망이다. 이들은 자녀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보다 자산이 많고 연금 소득도 상당해 은퇴한 이후에도 높은 소비력을 자랑한다. 이들을 가리켜 ‘구매력 높은 노인층’을 뜻하는 ‘그레이 달러(The gray dollar)’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실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55세 이상 인구가 미국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2%에 달해 45~54세(23.7%), 35~44세(21.6%), 34세 이하(12.7%)보다 훨씬 높았다. 상황이 이렇자 미국 기업들은 앞다퉈 노인 대상 서비스에 발 벗고 나섰다. 애플은 지난해 선보인 애플워치4에 헬스케어 기능을 대거 탑재했다. ‘넘어짐 감지 기능’ ‘심장 박동 이상 감지·알림 기능’ ‘심전도(ECG) 측정 센서’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넘어짐 감지 기능은 65세 이상 사용자에게 자동 적용된다. Tech.co의 작가 잭 터너는 애플워치4에 대해 “분명하게 노인 소비자층을 공략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그레이 달러가 있다면 일본에는 ‘아라고희’가 있다. 40세 전후를 뜻하는 ‘아라포(around 40)’에 이어 70대 반열에 오른 ‘단카이(團塊) 세대(around 古希)’를 이르는 말이다.

1970~1980년대 일본 고도성장기 주역인 이들은 최근 인구 감소로 인해 노동력이 부족한 일본 산업계에서 여전히 현역으로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후생노동성이 지난해 5월 발표한 ‘노동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70세 이후에도 일할 수 있는 기업’ 비율은 2013년 7.2%에서 2017년 8.7%로 증가했다. 정년 기준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한 일본 기업도 지난 10년 새 3배나 늘었다. 2025년 노인 인구(65세 이상) 비중이 전체의 30%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일본 노년학회는 노인 연령 기준을 75세로 높이자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은 EU 28개 회원국의 65세 이상 인구가 약 1억명에 이르러 전체 유럽 인구의 19.4%를 차지한다(2017년 기준 EU 공식 통계기구 유로스타트 자료). 유럽 전체가 하나의 초고령사회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은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섰다. 실버세대의 구매력이 높은 것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 따르면, 프랑스 실버세대는 지난 40년 넘는 기간 동안 평균 수입이 가장 크게 증가한 세대다. 1970~2013년에 60~69세의 평균 수입은 152%, 70~79세 평균 수입은 148% 증가했다.

프랑스 스타트업 전문 매거진 매디니스(Maddyness)는 노인을 주 고객층으로 하는 프랑스 스타트업이 약 50개며 향후 더욱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령 ‘GROOPIZ’는 여행 또는 취미활동을 혼자 즐기기 꺼려 하는 실버세대를 위해 여행·취미 공유 플랫폼을 제공한다. ‘auxivia’는 노인들의 탈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인들의 물 섭취를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사물인터넷 물컵을 개발했다. 또 독일의 대형 체인 슈퍼마켓 중 하나인 카이저(Kaiser`s)는 매장 복도를 넓히고, 노인을 위해 진열대 위에 돋보기를 설치하는 등 노인 친화적 경영 전략을 펼치고 있다. 황혼 결혼 증가로 노년층을 이어주는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도 등장했다. 네덜란드에서 시작해 주변 유럽 국가로 진출한 ‘50 Plus Match’는 50만명 넘는 네덜란드 노인이 이용한다.

잠깐용어 *액티브 시니어 은퇴 이후에도 하고 싶은 일을 능동적으로 찾아 도전하는 50~60대를 일컫는 말. 이들은 전통적인 고령자와는 달리 넉넉한 자산과 소득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자기 계발과 여가활동 등에 적극적이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양유정·박영선 인턴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7호 (2019.05.08~2019.05.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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