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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線 예타면제` 정부 엇박자…고양주민 두번 운다

손동우,김태준 기자
손동우,김태준 기자
입력 : 
2019-05-10 17:55:04
수정 : 
2019-05-11 12: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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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면제 발표` 하루 만에
기재부 "우리와 합의한적 없어
1000억 넘는 사업은 예타대상"
3기 신도시 추진 벌써 `엇박자`

집값 하락 우려 일산 주민들
"공급폭탄 던져놓고 나몰라라"
사진설명
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3기 신도시 공급 정책의 핵심인 교통망 건설 사업이 발표 사흘 만에 삐걱거리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경기도 고양시 창릉신도시 발표에 집값 폭락을 우려하는 고양시민을 달래기 위해 '고양선'(가칭) 경전철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고양선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받지 않아 조기 건설이 가능하다고 내세웠는데 예산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가 "협의되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실제 예타에 걸리는 2~3년을 단축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알고 보니 권한이 있는 부처(기재부)와 협의 없이 발표를 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국토부는 정책 신뢰도에 상처를 입게 됐다. 특히 국토부는 최근 과격한 공시가 인상 등 시장을 무시한 어설픈 정책으로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번엔 담당 부처끼리도 협의 없이 제멋대로 정책을 발표해 결과적으로 고양 일대 주민을 혼란에 빠뜨린 셈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통망이 부실해 '출퇴근 지옥'을 겪고 있는 2기 신도시 주민들과 같은 고통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10일 "국토부가 고양선 등이 정부의 예타를 받지 않는다고 발표했는데 협의된 사항이 아니며 최종 결정된 사항도 아니다"면서 "관련 사안에 대해 국토부에 항의했다"고 밝혔다.

예타는 경제성, 재원 조달 방법 등을 따져 대규모 신규 사업 추진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다.

국토부는 전날인 9일 "고양선, 서울지하철 3호선 연장 사업 등은 100% 광역교통부담금으로 추진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재정이 투입되지 않아 예타 대상이 아니므로 사업기간 단축이 가능하다"고 공개적으로 자료를 발표했다.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 투입되면서 국가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건설 사업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타를 받아야 하지만 재정을 투입하지 않는 만큼 이를 거치지 않고 국토부가 계획한 대로 추진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는 예타 주무 부처인 기재부와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 입장은 완전 다르다. 재정이 투입되지 않는 사업이라도 공공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시행하기 때문에 기재부 공공정책국에서 공공기관 예타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진행하는 사업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과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 등을 따르는데 1000억원 이상의 공공기관 신규 투자·출자 사업은 공공기관 예타를 받아야만 한다. 이 조사 또한 일반 예타와 마찬가지로 비용·편익 분석(B/C), 종합평가(AHP) 등을 거친다.

사진설명
새절역(6호선·서부선)부터 고양시청까지 14.5㎞ 길이의 고양선은 사업비가 1조5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기재부 말대로 공공기관 예타를 거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재정 투입이 없다고 예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며 "국토부 발표에 항의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국토부의 자의적인 발표에 대해 청와대에서 어떻게 된거냐는 강력한 지적을 내려보냈다는 얘기도 나온다. 반면 국토부는 "공공주택특별법으로 추진되는 신도시 사업에 따른 교통대책이기 때문에 예타 심의위원회에서 공공기관 타당성 조사도 면제된다고 확인받았다"고 재차 주장했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40조 3항에 따르면 "지역균형 발전, 긴급한 경제적·사회적 상황 대응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은 공공기관 예비타당성조사에서 제외한다"고 명시돼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역균형 발전과 부동산 과열을 막기 위해 추진되는 만큼 긴급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지만 논리가 빈약하다는 평가다.

특히 이 조항엔 "사업 목적 및 규모, 추진 방안 등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 수립돼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어 있다. 기재부는 고양선에 대한 구체적 계획 자체가 없기 때문에 예타 면제를 거론할 단계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사업비 규모, 공공주택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재정이 정말 투입되지 않는지 등을 다 따져서 예타 면제를 판단해야 한다"며 "협의된 것도 없었고, 설사 면제 대상이라도 기재부가 결정할 몫"이라고 밝혔다.

결국 3기 신도시의 고양 일대 물량 폭탄으로 주민 민심이 끓어오르자 부처 간 협의도 거치지 않은 설익은 '예타 면제' 카드를 내밀었다가 망신을 당한 셈이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서 일산 일대 주민은 더욱 분노하고 있다. 2기 신도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2기 신도시 10곳 중 판교·광교를 뺀 8곳은 교통 오지로 불린다. 2기 신도시 주민은 도시 조성 전에 교통사업비를 분양가에 반영하는 방식을 통해 17조8000억원을 걷었다. 하지만 사업성 문제, 정부 부처끼리 이견 등 이유로 광역 교통망이 수년째 늘어지고 있다.

국토부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사업을 최대한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고양선은 창릉지구 핵심 교통대책이기 때문에 입주 시 교통 불편이 없도록 올해부터 바로 사업계획 수립용역을 착수하는 등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이라며 "예비타당성 면제 여부를 놓고도 기재부와 긴밀히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손동우 기자 / 김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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