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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행복과 인내의 불편한 동행-‘동치미’ 참고 사는 게 미덕이 아니다

이승연 기자
입력 : 
2019-04-18 1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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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참고 인내하는 게 미덕’이라고 했지만, 최근에는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 되고,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조건 참는 걸 강요하지 않는 세상이 도래했다. 오는 20일 ‘동치미’에서는 ‘인내’라는 매화의 꽃말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온 매실 명인 홍쌍리와, 무려 18살 연하의 꽃미남 남편과 갓 5개월 된 예쁜 딸을 둔 배우 함소원이 출연해 속풀이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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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욱해서 남편을 중국으로 보내버릴 뻔했다 배우 함소원

“나는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영혼이 탈탈 털릴 정도로 너무 많이 참아왔다. 그래서 집에서만큼은 절대 참고 싶지 않았고 나를 잘 맞춰주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다. 엄마는 나에게 그런 사람이 나랑 왜 결혼하겠냐고 말했지만 나는 무작정 기다렸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나이도 어리고, 아이돌 외모에 나를 정말 잘 맞춰주는 남편을 만나게 됐다. 혹여나 놓칠세라 6개월 만에 서둘러 결혼을 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남편은 나를 잘 맞춰주고, 잘 참았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위기가 왔다. 우리 부부가 한국에 터를 잡기 전 친정집에서 머물렀는데, 좁은 방에서 온전히 둘만 있다 보니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이 가더라. 남편이 휴대전화를 하고 있는데 딱 봐도 여자들이랑 대화를 하는 거다. 지금껏 ‘나는 멋지고 쿨한 여자다’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 순간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어머니께 바로 그 내용을 캡처해서 보내고 전화를 드렸다. 시어머니께서 깜짝 놀라 자세히 좀 보자며 나를 달래셨지만 흥분한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남편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이거 우리 누나들이야. 어떻게 나를 믿지 못할 수가 있어?’라며 중국으로 가겠다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남편의 말을 듣지 않고 혼자 화를 내다가 한순간 남편을 잃을까 겁이 났고,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그때 느꼈다. ‘참는 사람이 더 무서울 수도 있구나’라는 걸. 그 일 이후로도 남편은 여전히 나를 맞춰주고 있고 나도 남편을 최대한 맞춰주려고 노력한다. 여전히 못 참고 버럭 할 때도 있지만 남편 덕에 참고 사는 온순한 아내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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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에서 55년 동안 살면서 매일 도망칠 궁리만 했다 매실 명인 홍쌍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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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23살이었던 나는 양장을 차려 입고 뾰족구두를 신고 다니며 세련된 인생을 살던 부산 처녀였다. 그때 나를 좋게 본 시아버지의 제안으로 도시 생활을 접고 광양 백운산으로 시집을 왔다. 처음에 사립문 하나 덩그러니 달린 으스스한 시댁의 초가집을 보자마자 ‘이곳에서 빨리 탈출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하루는 새벽 5시부터 시작됐다. 밥을 하고 밤나무를 관리하는데, 처음 하는 농사일은 실수투성이라 시어머니한테 야단맞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큰 아들이 5~6살 되었을 무렵 가족들이 밥 먹는 자리에서 ‘아버님, 어머님, 저 도시에 가서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시아버지께서 아무 말 없이 밥상을 마당으로 집어 던지셨다. 사는 게 힘든데 주변에 의지할 사람도 없으니 외롭고 사람이 그리웠다. 그때 내가 보면서 위안을 얻은 게 매화꽃이었다. 매화꽃이 피면 사람들이 우리 집에 많이 놀러와 줄 것 같다는 생각에 밤나무를 베어내고 매화나무를 심었다. 조금씩 그 양을 늘리고, 종자를 개량했다. 그때 남편이 광산 개발에 손을 댔다가 45만 평의 산과 토지를 날리고 2700만 원의 빚을 졌다. 그 바람에 원래 병약했던 남편은 화병을 얻어 드러눕고 말았다. 나는 졸지에 병든 남편과 삼남매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고, 빚쟁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 어차피 도망가지 못한다면 극복해야 된다는 생각에 매실 농사를 지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55년 동안 매실만을 바라보며 달렸다. 예전에 나를 도망가지 못하게 잡았던 시아버지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한 분야에서 명인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시아버지께서 몸소 알려주셨던 인내와 끊임없는 노력이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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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살아 이득 본 경험 vs 참았다가 병 난 경험

-방송인 신재은 “홈쇼핑 신입 때는 준비를 많이 해가도 선배의 기에 눌려 말도 거의 하지 못하고 1년을 보냈다. 힘들어도 그만두지 않고 버티다 보니 나도 말을 잘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기가 오더라. 그리고 한 번은 나를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뒤에서 나쁜 소문을 낸 적도 있다.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니까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더라.”

-한의사 이경제 “방송을 하다가 한 방송인이 나에게 억지를 부리면서 화를 낸 적이 있다. 예전 같았으면 나도 같이 화를 냈을 텐데, 주역 점괘를 보니 무조건 겸손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계속 참았다. 결과적으로는 다들 내 편이 돼서 나는 방송이 더 잘 풀렸고, 그 상대는 방송에서 잘렸다.”

-가수 성대현 “예전에 한 방송에 출연료도 모르고 출연한 적이 있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 생각보다 너무 적더라. 그래서 ‘다음 주에 올려달라고 말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괜히 조금 올리려다가 다시는 날 안 불러줄 것 같아서 참았다. 이후에 그 프로그램을 5년 동안 고정으로 했다. 그때 못 참고 돈을 올렸으면 5년짜리 고정 프로그램을 못 할 뻔 했다.”

-개그맨 김학래 “음식점을 하다 보면 손님들에게서 컴플레인이 들어올 때가 있다. 아무래도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다 보니 손님이 짜다거나 싱겁다고 하면 입맛에 맞춰 다시 해드리는 편이다. 그러면 주방에서는 ‘이 정도로 짜다고 하면 어떡하냐’라며 짜증도 낸다.”

-매실 명인 홍쌍리 “계속 무리하게 일을 하고 참고 살다 보니 29살 때 자궁내막염으로 인한 대수술을 2번 했다. 30대에는 류머티즘으로 거의 3년 가까이 목발에 의지해야 했고, 교통사고로 7년 동안 등이 굽은 채 생활을 했다.”

[글 이승연 기자 자료제공 MBN]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75호 (19.04.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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