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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NOW] 글로벌 M&A 투자 몰리는 일본-외국자본, 신뢰·기술력 갖춘 日기업에 베팅

  • 정욱 기자
  • 입력 : 2019.04.22 14:40:36
“중국 기업보다 일본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더 안심된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의 조지 로버츠 공동회장이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내놓은 평가다. KKR은 전 세계에서 1950억달러(약 220조원) 자산을 관리하는 대형 사모펀드다. 일본에 대해 높아진 관심을 보여주듯 KKR은 80여명 간부가 모이는 올해 연례 파트너 회의를 도쿄에서 열었다.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조지 로버츠 회장과 함께 KKR을 이끌고 있는 헨리 크래비스 공동회장도 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외의 시장에서는 일본을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 10년간 중국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일본에 더 큰 관심을 둔다는 얘기다.

KKR의 두 회장은 도시바, 히타치, 파나소닉 등을 언급하며 이들 기업 체질이 변하고 있어 관심을 갖고 있다 설명했다. GE 등 미국 기업이 1970~1980년대 경험한 것처럼 일본 기업들도 문어발식 확장을 포기하고 주력 분야 집중에 나서면서 매력적인 매물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KKR 외에 베인캐피털이 지난해 SK그룹과 도시바메모리를 2조엔(약 20조원)가량에 사들이는 등 해외 자본의 일본 기업 공략은 계속 늘고 있다.

미국계 사모펀드만이 아니다. 중화권 자본 역시 일본 기업을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지난 4월 13일에는 대만과 중국 업체로 구성된 타이중(臺中) 연합이 일본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인 JDI(재팬디스플레이)를 인수했다. 각국 규제당국 승인이 완료되면 총 420억엔 출자에 380억엔의 전환사채 매입을 통해 49.8%의 지분을 확보, 최대 주주로 올라선다.



▶지난해 日인수합병 건수·규모 사상 최대

JDI는 지난 2012년 히타치, 도시바, 소니의 디스플레이 사업 부문이 통합하면서 출범한 회사다. ‘액정디스플레이(LCD) 왕국’으로 불리던 일본의 자존심을 되찾자며 일본 정부가 주도해 설립했다. 관민펀드인 INCJ(산업혁신투자기구)가 2000억엔을 투자해 지분 70%를 확보하는 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다만 액정 기술을 과신했다. 경쟁 업체들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전환할 때 뒤처지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매각으로 내몰리게 됐다.

경영은 고전했지만 LCD나 OLED에서는 상당한 기술력을 갖췄다. 대만 터치스크린 패널업체 TPK와 대만 푸방그룹, 홍콩 하비스트펀드가 참여한 컨소시엄은 중국 내 OLED 공장 건설 등에 JDI의 기술을 활용할 전망이다. 이를 통해 선두를 달리는 한국 기업과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포석이다. 지난 2016년에는 폭스콘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대만 홍하이가 샤프를 사들이기도 했다. 사모펀드는 수익을 위해, 중국 기업은 기술 격차 축소를 위해 일본 기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뿐 아니라 후계자 문제로 고민하는 중소기업이 늘면서 일본 정부까지 나서 M&A를 유도하고 있다. 그 덕분에 가족이나 직원이 아닌 제3자에 의한 기업 승계가 최근 5년간 전체 기업 승계의 40%에 달할 정도로 중소기업 M&A가 늘고 있다. 이 수치는 일본 경제가 버블 정점이던 30년 전에는 전체의 5% 수준이었다. 중소기업은 해외 기업에 의한 인수와 관련된 통계 등이 없지만 점차 중국 등의 존재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일본 기업들은 해외 기업을 사들이는 데도 적극적이다. 컨설팅 기업인 레코프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기업 관련 M&A는 금액으로 전년 대비 2.2배인 29조8802억엔. 1999년 이후 19년래 최고치다. 건수로도 전년에 비해 26.2% 늘어난 3850건에 달했다. 건수는 7년 연속 증가 추세다. 지난해 다케다제약은 일본 기업 사상 최대규모인 814억달러(약 90조원, 부채 20조원 포함) 딜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일본 기업 관련 M&A가 규모를 불문하고 크게 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등장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불편한 양국관계 탓에 한국 기업이 인수전에서 불리한 면도 있을 것이다. 다만 더 큰 요인은 해외 기업 인수에 대한 여전한 불안감과 외형 확장까지 신경 쓰기 어려운 현재의 경영 상황 때문일 터다. 세계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활동 무대가 점점 쪼그라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워지는 대목이다.

[도쿄 = 정욱 특파원 woo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5호 (2019.04.24~2019.04.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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