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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축의 시대’ 한국 경제 생존법-스마트 비즈니스에 해법 있다

  • 명순영, 배준희 기자
  • 입력 : 2019.04.26 09:50:26
  • 최종수정 : 2019.04.26 10:20:02
“지난 시절 미래는 늘 희망적이었다. 현실이 다소 어렵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삶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미래는 암울하고 불확실한 것이 됐다.”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전 미래에셋대우 사장)가 본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이 같은 평가에 공감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그는 움츠러드는 현상을 ‘수축사회’라 이름 지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취임 첫 행사로 홍 대표의 저서 ‘수축사회’ 북 콘서트를 제안했을 만큼 ‘수축’이라는 단어는 시대를 아우르는 키워드로 떠올랐다.

인류는 그간 다양한 ‘팽창’을 경험했다.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이후 거의 500년간은 파이가 커지는 팽창사회였다. 홍 대표에 따르면 지금 사회는 팽창사회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점점 파이가 커지는 속도가 더뎌지더니 파이가 고정됐고, 일부 영역에서는 오히려 파이가 줄어들었다고 했다.

▶왜 한국이 수축사회가 됐나

▷급격한 인구 감소 가장 큰 이유

21세기 들어 수축사회로 진입한 핵심 요인은 인구구조 변화다. 그간 국가와 사회가 인구가 늘어나는 피라미드형 구조를 전제로 만들어졌으나 장기간 저출산으로 선진국이 항아리형 인구구조를 거쳐 역피라미드형으로 바뀌고 있는 형국이다. 생산(공급)과 소비(수요)에서 인구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데 이견이 없다. 홍 대표는 “인구가 줄어들면 팽창시대 산물인 연금·의료보험·복지 등 사회안전망과 교육 시스템이 붕괴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분석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감소와 노령화를 겪고 있다. 2024년이면 60세가 넘는 베이비부머가 700만명을 돌파한다. 1·2차 베이비부머(1955~1974년생)를 합치면 1500만명에 달한다. 재정적자도 본격화하고 가계부채도 감당이 쉽지 않다.

수축사회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특징은 크게 5가지다.

첫째, 원칙이 없어지고 이기주의가 만연하게 된다. 파이가 줄어든 상황에서는 생존만이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남는다는 뜻이다.

둘째, ‘모두’가 싸우는 ‘입체 전선’이 펼쳐진다. 세계적으로 민족주의가 부활하고, 종교 간 갈등이 심해지는 것이 그 사례다. 모든 영역이 전투 전선으로 변하며 ‘토머스 홉스’가 말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현실화된다. 생존과 패배라는 2가지 선택지만 있는 수축사회의 특징 때문이다.

셋째, 미래를 꿈꾸지 못하고 당장의 이익만 챙긴다. 제로섬전투에 집중하다 보면 미래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넷째, ‘팽창사회’를 좇는 집중화 현상이 벌어진다. 수축사회를 벗어나고자 돈이 있는 곳으로 사람이 몰려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구 4000만명의 캘리포니아 경제 규모는 2조7000억달러에 달한다. 영국을 제치고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번째 규모로 성장했다. 한국에서도 지방이 붕괴하고 사회 인프라와 기업 본사가 집중된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는 현상이 수축사회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홍 대표는 “정신질환이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제로섬전투를 겪다 보면 피로도가 높아져 정신질환이 심해진다는 논리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20년 우울증이 모든 질병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 예측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예 ‘전장’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이 늘어난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캥거루족’이 그 사례다. 성년이 돼서도 어린 캥거루처럼 부모 품 안에 머물며 사회생활을 기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홍 대표는 “이 같은 5가지 특징은 팽창사회에서도 존재했으나 수축사회로 접어들며 보편적 현상으로 굳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령화와 극심한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는 수축사회를 가속화하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고령화와 극심한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는 수축사회를 가속화하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한국 경제 생존법

▷4차 산업혁명에서 답 찾아야

4차 산업혁명은 위기이자 기회다. 4차산업혁명은 기존 산업을 파괴하며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고 일자리를 감소시킬 수 있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일부 상층부는 온갖 부와 명예를 누리겠지만 4차 산업혁명에 편승하지 못하면 양극화에서 뒤로 밀려난다.

그러나 홍 대표는 “4차 산업혁명이 발달하며 수축사회는 심해지겠지만 일정 지점을 넘어서면 수축사회 부작용이 약해질 수 있다”고 봤다. 위기를 불러온 4차 산업혁명이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 중 수출이 가능한 ‘글로벌형’에 집중하라는 조언이다. 예를 들어 모바일 결제 등 내수형 공유경제는 기존 일자리와 제로섬 관계라 일자리 파괴 속도를 높인다. 이보다는 IoT, 전기자동차, 바이오시밀러같이 수출 가능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신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고 한국 경제도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기존 산업과의 연계도 중요하다. AI 기반 새로운 운영체계를 IT 기업뿐 아니라 중후장대형 굴뚝산업에 스며들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려면 이공계 중심으로 교육을 바꿔야 한다. 홍 대표는 “예체능 전공자가 12%를 넘어서며 지금의 세계적인 한류가 탄생했을지 모르지만, 이공계 교육 약화를 인정해야 한다”며 “아직 4차 산업혁명 초기이기 때문에 하드웨어 중심으로 초기 대응한 뒤 소프트웨어 쪽 인력을 키우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 생존법

▷벤처로 일자리 절벽 돌파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스타트업 등 벤처기업 육성은 일자리 절벽 돌파의 비결로 꼽힌다. 한국과 비슷한 일본은 이미 이 길을 걷고 있다. ‘아베노믹스’ 효과로 일본 대기업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거세질수록 지속 가능하기 힘들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판단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최근 일본에서는 벤처 열기가 소리 없이 뜨겁다.

한국이 정부 주도로 벤처투자가 이뤄지는 것과 달리 일본은 대기업이 이를 주도한다. 일본 1위 인공지능 스타트업 ‘프리퍼드네트웍스’와 다케다약품공업에서 분사한 ‘스코히야빠마’ 등이 대기업 주도로 투자가 이뤄진 좋은 사례다. 일본은 부품, 소재 등 제조 부문에서 기술력이 강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우주산업, 로봇, 자동차 분야에서도 다양한 스타트업이 나오고 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대표는 “대기업의 협업과 이종 업종 간 활발한 교류, 빠른 IPO(기업공개) 등이 일본 벤처투자의 강점이다. 웬만한 일본 대기업은 다 벤처캐피털 계열사(CVC)를 운영한다. 스타트업에 대한 대기업의 관심이 높으니 조금만 두각을 나타내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정부 주도로 벤처 생태계가 조성되다 보니 성장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벤처 성적표는 경제 규모가 상대적 열위에 있는 동남아에도 밀릴 정도다.

미국의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정보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국에서 탄생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 6곳의 가치는 238억달러(약 26조5600억원)로 한국 유니콘 기업 6곳의 가치(235억8000만달러)를 넘어섰다.

동남아 유니콘들은 기술이나 사업 방식 면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다. 한국과 달랐던 점은 이 업체들이 사업을 시작하고 확장하는 데 별다른 규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아세안 국가 간 무역·투자장벽이 낮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규제 때문에 한국 벤처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외국 기업과의 격차만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 생존법

▷방망이 짧게 잡고 금리 주목

수축사회 재테크의 화두는 ‘소확재’다. 수축사회는 산업, 인구, 거시경제 등 전방위 변화로 내 손안에 들어올 현금흐름을 예측하기가 훨씬 힘들어진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수익을 안겨주는 곳을 노려 재테크에 나서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수축사회를 앞두고 자산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는 금리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부채비율이 가장 높은 상황인 만큼 늘 금리를 주시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미국채금리가 3.3%가 되자 시장이 요동을 쳤다가 3% 수준이 되자 바로 안정을 찾았던 것이 단적인 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주식시장에서는 배당주의 몸값이 더욱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투자 고수치고 배당주를 우습게 보는 이는 없다. 금리가 오르더라도 배당주 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주가 변동 폭이 작고 매년 투자 원금 5~6% 안팎을 배당금 형태로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점을 감안하면 투자가치는 여전히 높다.

두산우, SK이노베이션우, 화성산업 등은 최근 주가 기준 배당수익률 6%를 넘는 알짜 종목이다. 배당수익률은 1년 동안 받는 총 배당금액을 주가로 나눈 수치다. 1년 동안 배당금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을 의미한다.

맥쿼리인프라와 미래에셋맵스리얼티1도 대체로 4~5% 정도의 배당수익률을 보여 인기가 높다.

특히 수축사회에서 글로벌 자산배분은 필수다. 한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전 세계 3%에 불과하다. 주식과 채권, 주식과 부동산 등 서로 상관관계가 낮은 글로벌 자산에 분산투자하면 리스크를 낮추면서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한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더라도 다른 자산에서 수익이 발생해 전체적인 투자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의미다.

수축사회의 중요한 특성인 ‘집중화’가 진행되면서 부동산 시장은 돈이 되는 곳으로 자금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 특히 강남권의 경우 앞으로도 높은 가격이 유지되겠지만 서울과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의 가격 차이는 앞으로 더 벌어질 수 있다. 홍 대표는 “목표 수익률을 늘 염두에 두고 예상 수익을 달성하면 바로 털고 나와야 한다. 특히 3년 이상의 장기투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빚더미에 오르기 십상이다”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

“골든타임 5년 놓치면 일본 전철 밟는다”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는 1986년 증권업계의 사관학교로 불리는 대우증권에 입사했다. 대우증권 재직 30년 동안 주로 투자분석과 경제 전망을 담당하는 리서치센터에 있었다. 리서치센터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특유의 혜안을 갖고 업계 최고의 리서치센터로 이끌었다. 2014년 대우증권 공채 출신 첫 최고경영자(CEO)에 올랐고 미래에셋증권과 합병한 후로도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다음은 홍 대표와의 일문일답.

Q 본격적인 수축사회가 앞으로 5년 뒤 닥칠 것으로 봤다. 왜 하필 5년인가.

A 국가와 산업, 그리고 각 사회 영역별로 수축사회 진입 속도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5년을 제시한 것은 이때가 되면 700만명 이상의 베이비부머가 60세를 넘기고, 국가 재정 문제도 본격화될 것이다. 또 현재의 가계부채도 이때쯤 되면 더 이상 유지가 불가능할 전망이다. 한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중국도 이때가 되면 거의 고성장이 멈출 것으로 예상한다. 사회적으로 민주화 욕구가 늘어나고 중국 내부 양극화 문제도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 경제도 5년 정도 지나면 부채를 견디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G2패권 대결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을 수 있지만 자유무역은 크게 쇠퇴할 가능성이 높아 한국에는 매우 불리한 상황일 듯하다.

Q 글로벌 국가 중 한국의 수축 정도가 유독 심한가.

A 고령화와 최악의 출산율이 눈앞에 닥쳤지만 산업구조는 여전히 공급과잉이 많고 효율적이지 못하다. 그럼에도 가계부채는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1500조원으로 이미 가처분소득의 160%를 넘겼다. 1500조원의 1년 이자를 4%로 계산하면 60조원이다. 매년 60조원씩 가계가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Q 미중 패권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나.

A G2 경쟁은 무역전쟁이 아니라 패권전쟁이다. 중국은 추가로 성장하지 못하면 시민혁명 같은 사회불안으로 공산당 독재가 종말을 고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가진 패권을 빼오는 것이 유일한 방책이다. 반면 미국은 패권을 뺏기면 국가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패권 기반으로 구성돼 있다. 화웨이를 둘러싼 갈등도 결국 미국이 지배하는 네트워크 권력을 둘러싼 패권다툼이다. 승패는 상당 기간 나지 않을 듯하다. 한국의 처신이 매우 어려운 시기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국내적으로 사회의 안정성 문제다. 미국은 양극화, 산업의 편중, 글로벌 리더십, 국가 재정 등에서 시간이 지나면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다. 중국은 부족한 사회적 자본과 민주화 욕구로 국내 문제가 점점 부각될 듯하다. 한국은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Q 한국은 결국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나.

A 한국은 국가 부채 문제가 곪기 시작한 초기 단계라는 점에서 일본의 1990년대와 유사하다. 1980년대 일본만큼 아직 자산시장에 버블이 없다는 점이 위안거리지만 고령화 속도는 전 세계 톱이며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도 일본과 판박이다. 정치 리더십이 제 기능을 못 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결국 저출산·고령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반복적인 정책 실패로 장기 복합 불황을 겪었던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Q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이 만들어지고 수행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반발이 큰 것 같다.

A 소득주도성장은 경제정책이 아니라 사회정책으로 봐야 한다. 문재인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경제정책으로 좁게 사용하고 있지만 국민은 살아가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많은 정책들이 사회구조의 대전환을 요구하지만 통합적 시각으로 정책을 바라보지 못했다.

Q 해법으로 사회적 자본을 제시했는데.

A 금융자본이나 지적자본과 달리 사회를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스스로 정화할 수 있게 하는 신뢰의 문화를 말한다. 양극화 등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려면 교육, 도덕 등 사회 전반의 신뢰가 유지돼야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 사회의 불신과 갈등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은 사회적 자본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양적 성장만 강조했지 사회적 자본 축적에는 소홀했다.

Q 기업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A 수축사회에서는 산업구조는 물론 일하는 방식이 완전히 바뀐다. 그만큼 유연해야 위기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 IT 기술의 고도화로 모든 공산품의 품질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지금보다 연구개발, 디자인, 브랜드에 더 많이 투자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또 한국의 내수 시장은 양극화, 고령화, 공급과잉이 심하기 때문에 글로벌로 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5호 (2019.04.24~2019.04.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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