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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금호아시아나그룹 어디로

  • 김경민 기자
  • 입력 : 2019.04.26 09:51:58
한때 재계 7위 위상을 자랑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아시아나항공 감사보고서 사태로 촉발된 위기가 일파만파 커지면서 급기야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아시아나항공이 그룹 매출의 60%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인 만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사실상 중견기업 규모로 쪼그라든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주도로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 대어를 줄줄이 인수하며 덩치를 키워온 금호그룹은 어쩌다 이런 처지에 놓였을까. 금호아시아나그룹 실패 요인을 집중 분석한다. 기업마다 군침을 흘리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향방도 들여다본다.



아시아나항공 팔면 재계 60위권 밖으로

박삼구 차입경영 무리수 그룹해체 자초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로 했다. 임직원에게 면목 없고 민망한 마음이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최근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결국 핵심 계열사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한다. 1988년 당시 대한항공에 이은 제2 민간항공사로 출범한 지 무려 31년 만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4월 15일 금호산업 이사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의결했다. 금호산업 이사회는 “아시아나항공의 미래 발전과 1만여 임직원 미래를 위해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33.47%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놓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KDB산업은행은 이사회 날 오전부터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박삼구 전 회장과 아들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은 이동걸 산은 회장을 만나 아시아나항공 매각 의사를 전달한 뒤 매각 방안을 담은 수정자구계획을 채권단에 제출했다. “아시아나항공을 즉시 외부에 매각할 테니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에 신규 자금 5000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시아나항공 자회사까지 통째로 매각하고 절차가 끝날 때까지 박 전 회장이 경영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얼마 전 아시아나항공 회계 파문이 일 때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 커질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아시아나항공은 삼일회계법인에서 감사의견 ‘한정’을 받아 주식거래가 일시정지됐다. 이후 재감사를 통해 ‘적정’ 판정을 받았지만 순손실이 2배가량 급증하는 등 시장 불신이 커졌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박삼구 전 회장은 ‘경영권 포기’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룹 회장은 물론이고 아시아나항공, 금호산업, 금호고속 등 모든 계열사 대표이사와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박 전 회장이 경영권까지 포기하면서 채권단 지원을 요청하자 아시아나항공 사태는 원만히 수습되는 듯 보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채권단에 박삼구 전 회장 일가의 금호고속 지분을 담보로 제공하는 동시에 박 전 회장의 영구 퇴진 등을 조건으로 5000억원의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정작 채권단 반응은 냉랭했다. “시장 신뢰를 회복하기에 미흡하다”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구계획을 단칼에 거부했다.

이유가 있다. 박삼구 전 회장의 아내와 딸이 보유한 금호고속 지분은 4.8%로 담보가치가 200억원 안팎에 그친다. 그럼에도 금호 측이 요구한 자금 지원 규모가 5000억원에 달해 향후 채권단 자금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호 측이 겨우 200억원가량 주식을 내놓으면서 5000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손을 벌렸으니 채권단으로서는 ‘특혜 시비’ 우려로 자구안에 퇴짜를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유동성 문제를 해결한 뒤 3년 내 경영을 정상화하지 못하면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겠다는 내용 역시 ‘시간끌기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3년의 기회를 달라고 하는데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박삼구 전 회장 아들이 경영하겠다는데 뭐가 다른지 의아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재계 안팎에서도 “내년 총선뿐 아니라 이후 대선 과정에서 호남 기업인 금호아시아나그룹 지원이 정치적 이슈로 떠오를 수 있는 만큼 3년 MOU(양해각서) 요청은 논란의 소지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끊이지를 않았다.

채권단 불만이 커지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고심 끝에 애지중지하던 ‘아시아나항공 매각’ 카드를 꺼냈다. 매각 외에는 그룹을 살리기 위한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룹은 이른 시일 내 아시아나항공 매각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산은 등 채권단과 금호산업의 양해각서가 최종 확정되면 매각 주관사 선정 등 작업을 거쳐 곧바로 매각 절차에 돌입한다. 시장에서는 오는 10월쯤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될 경우 연말까지 인수합병(M&A) 작업이 완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아시아나항공 시가총액은 1조4941억원(4월 15일 종가 기준)으로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가치는 5000억원가량. 여기에다 유상증자를 통해 신주를 인수하고 에어서울, 에어부산 등 자회사까지 한꺼번에 사들이려면 매각 가격이 1조~1조5000억원을 웃돌 전망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핵심 계열사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로 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핵심 계열사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로 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회계 파문 커져 아시아나 경영권 내놔

금호산업·고속 중심 중견그룹 전락

아시아나항공을 내놓는 대신 채권단으로부터 5000억원 추가 자금 지원을 받으면 금호그룹은 일단 급한 불은 끌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금융권 차입금은 3조4400억원으로 이 중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 차입금만 1조3200억원에 달한다. 채권단 유동성 지원과 함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 확충이 이뤄지면 아시아나항공 유동성 위기는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산은 입장이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채권단 지원으로 아시아나항공 유동성 리스크가 해소되고 재무구조가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비수익 노선 정리 등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할 경우 금호아시아나그룹 위상은 크게 달라진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지배구조를 보면 금호고속 → 금호산업 → 아시아나항공 → 아시아나IDT로 이어진다.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33.47%를 매각하면 지배구조에서 ‘금호고속 → 금호산업’만 남기고 나머지 계열사는 떨어져나가는 구조다.

사실상 금호산업과 금호고속, 금호리조트 등 3개 계열사만 남게 돼 그룹 이름을 붙이기도 어려워진다. 건설업체인 금호산업(1조3767억원)과 운수업체 금호고속(4233억원) 매출을 합쳐도 2조원이 채 안 된다(지난해 기준). 두 회사 영업이익 역시 1000억원에 못 미치는 정도다.

그룹 자산 규모 역시 아시아나항공을 제외하면 11조4476억원에서 4조5644억원으로 급감한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으로 재계 25위권이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60위권 밖으로 밀려날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산 규모 5조원 이상 기업 60곳을 대상으로 지정하는 ‘공시대상기업집단’에서도 제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해 기준 재계 59위 유진(5조3000억원), 60위 한솔(5조1000억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핵심 계열사 아시아나항공이 품에서 떠나는 만큼 그룹 사명도 아시아나를 빼고 ‘금호그룹’으로 바뀔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박삼구 전 회장은 앞서 2004년 그룹 명칭을 금호에서 금호아시아나로 바꿨지만 금호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으로 경영권 승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채권단이 박삼구 전 회장뿐 아니라 아들 박세창 사장 등 총수 일가가 경영에서 손 뗄 것을 요구한 때문이다.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자회사까지 통매각하기로 한 만큼 아시아나IDT, 아시아나에어포트, 아시아나세이버 등 항공업 관련 자회사도 매각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박세창 사장은 아시아나IDT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 아시아나IDT가 상장에 성공할 때만 해도 박세창 사장이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채권단이 박 사장 경영 참여에 부정적인 만큼 당분간 경영 보폭을 넓히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특별취재팀 = 김경민(팀장)·노승욱·김기진 기자 / 그래픽 : 신기철]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5호 (2019.04.24~2019.04.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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