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신나는 모험’이란 없다

임소정 기자

나와 신밧드의 모험

제냐 칼로헤로풀루·마이크 케니 지음·바실리스 셀리마스 그림·길상효 옮김

씨드북 | 64쪽 | 1만2000원

“그리고…. 군인들이 우리 집까지 들이닥쳤어.”  <나와 신밧드의 모험> 중에서

“그리고…. 군인들이 우리 집까지 들이닥쳤어.”  <나와 신밧드의 모험> 중에서

잠들기 전에 아빠가 읽어주는 <신밧드의 모험>을 좋아했습니다. 일곱 번이나 길을 떠나 넓은 세상을 만나는 신밧드가 늘 부러웠습니다. 아빠는 말했죠. “부러울 게 따로 있지. 집도 돈도 다 잃어서 그런걸”

어느날 아빠가 허겁지겁 들어와 당장 짐을 싸서 가자고 합니다. 천둥이 치는데 비가 오면 어떡하죠? “폭탄 소리야”

가방과 염소 세마리를 실은 수레가 부리나케 큰길을 가로질렀습니다. 사람들이 불길과 연기 속을 내달리고, 아이들이 울어댔습니다. 도시처럼 드넓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에 수많은 사람이 천막을 치고 있었어요. 이쪽은 산, 저쪽은 사막. 모두가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게 첫 번째 여행이었죠.

신밧드의 모험과는 달랐어요.  <나와 신밧드의 모험> 중에서.

신밧드의 모험과는 달랐어요.  <나와 신밧드의 모험> 중에서.

어떤 아저씨에게 아버지가 돈뭉치를 보여줬어요. “이걸로 네 식구 전부? 꿈도 크시네”

염소를 팔기로 했다며 엄마 아빠가 어디론가 간 사이 버스가 사람들을 태웠습니다. 버스에 올라 어떤 여자애 옆에 앉았는데, 기사 아저씨가 시동을 겁니다. 엄마 아빠가 아직 안 탔는데. 돈도 다 냈는데.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네 것만 냈어.”

버스가 출발하자 창밖으로 울고 있는 엄마 아빠가 보였습니다. 나만 떠나고 있었습니다. 드넓은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신밧드처럼요. 이게 꿈이고, 이 버스는 배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옆자리 여자애가 이름을 묻습니다. 신밧드라고 말했습니다. “넌 양 치는 신밧드니? 아휴 고린내”

몇 날 며칠을 버스만 타고 달리면서 자다 깨고 자다 깼습니다. 옆자리 크리샤는 가끔 울다가 깨기도 했어요. “얘기 하나만 해 줘, 신밧드”

모두가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여기가 베를린이에요? “어딜 봐서 베를린 같으냐? 멍청한 놈”

그렇게 두 번째 여행이 끝났습니다. 이제 보이는 건 눈 덮인 높은 산뿐입니다. 양치기 아저씨가 다가와 산 너머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합니다. 아빠가 돈 안 드렸나요? “못 받았는데. 넌 안되겠다”

[이 책을 댁으로 들이십시오]그들에게 ‘신나는 모험’이란 없다

산 넘고 물 건너는, 말 그대로 산전수전 다 겪는 모험입니다. 스스로를 신밧드라 소개한 꼬마 나즈의 모험은 ‘신나는 모험’이라 말하기엔 너무나 무섭습니다.

읽으면서 함께 마음 졸이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문득 석 달 전쯤 토요일에 혼자 사무실에서 받은 전화 통화가 생각났습니다.

“댁의 집 안방에 외국인이 들어앉으면 좋겠냐고요. 우리가 예멘 사람들 싫다고 하는 게 왜 혐오야. 왜 자꾸 그런 기사를 자꾸 써서 우리를 나쁜 사람 만들어요, 예?”

제주도에서 들은 예멘 난민에 대한 혐오 발언들이 재일동포가 일본에서 듣는 혐한 발언과 흡사하다는 기사가 나갔던 날이었습니다.

일곱 번의 여행을 끝낸 나즈는 꿈꾸던 세상에 도착했을까요? 그곳은 정말 천국 같았을까요? 예멘 사람들에게 이곳은 과연 천국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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