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아버지인 실리콘밸리의 거물 팀 드레이퍼에게 투자를 받았고, 가족 인맥을 총동원해 창업을 하자마자 600만 달러의 돈을 끌어 모았다. 홈즈는 미세 바늘로 피부를 통해 고통 없이 혈액을 채취할 수 있는 접착형 패치의 가능성을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패치 안에는 혈액을 분석하고 약물을 얼마나 처방할 것인지를 측정하는 마이크로칩이 포함되며, 분석결과는 무선으로 주치의에게 전달된다는 꿈의 기술이었다.
꿈이 현실이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홈즈는 기업가 특유의 낙천주의의 화신과 같은 인물이었다. 밤에는 4시간을 자고 카페인을 주입하며 집요하게 일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직원들에게 절대적 충성을 요구했으며 누군가가 충성을 하지 않으면 즉각 공격했다. 창업 후 2년 반 동안 해고당한 직원만 30명이 넘었다. 보안에 강박증을 보인 홈즈는 생화학 부서, 기술부서가 서로 협력하지 않고 모두 자신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사내 채팅은 모조리 차단됐고, 기술부서는 각자가 하는 일을 모른 채 경쟁을 했다. 심지어 ‘의학계의 아이팟’이란 별명을 달고 태어난 시제품 ‘에디슨’은 사실상 중학생의 과학숙제 수준의 조잡한 외형이었다. 연구 막바지에는 직원과 그들의 가족 혈액까지 제공받았고, 실험의 윤리적 규제도 너무 쉽게 넘었다. 테라노스는 망하는 조직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홈즈는 판을 키우는데 능했다. 약국 월그린, 슈퍼마켓 세이프웨이 매장에서 일반인들이 혈액검사를 할 수 있도록 수억 달러의 사업 파트너십을 맺었다. 월그린과의 계약 데드라인이 맞닥뜨린 홈즈는 결국 2013년 9월 제품을 출시한다. 창고에 처박혀있던 구형 에디슨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실제로는 지멘스의 분석기를 대신 사용했다. 이때 이미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는 90억 달러까지 도달해 있었다. 마지막 모금에서 투자받은 1억2500만 달러는 심지어 루퍼트 머독의 돈이었다. 그리고 머독이 소유한 신문이 테라노스를 저격하기 시작했다.
존 캐리루는 의학 블로그를 운영하는 애덤 클래퍼의 전화를 받고 추적을 시작했다. 8개월의 취재동안 비밀유지 각서를 쓰고 쫓겨난 숱한 해고자들을 만났다. 테라노스는 미국 최고의 로펌을 앞세워 협박하고, 감시와 아찔한 미행까지 불사했지만 캐리루는 위험한 사기극을 폭로했고 이 스캔들은 미국을 집어삼켰다. 몰락의 드라마는 언제나 흥미롭다. 낙폭이 클수록 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자의 소송은 진행 중이다.
▶인간 없는 자동차의 시대가 온다 『오토노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75호 (19.04.23)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