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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활로 모색하는 재건축 단지-1대1 재건축·리모델링·신탁으로 선회 재초환(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담에 추진위 늦추는 단지 늘어

  • 강승태 기자
  • 입력 : 2019.04.12 08:48:35
  • 최종수정 : 2019.04.12 09:17:10
‘진퇴양난’. 현재 서울 재건축 단지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재건축 단지는 서울 집값 상승을 주도했다. 사업 시작부터 준공까지 최소 7~8년 이상 소요되지만 성공만 하면 가격이 2~3배씩 뛰었기 때문이다. 새 아파트에 대한 욕구가 남다르다는 점도 재건축 단지 인기 요인 중 하나. 하지만 정부의 3중, 4중 규제에 꽉 막혀 재건축 가격 상승세는 확연히 꺾였다.

물론 재건축 단지들도 마냥 잠자코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는 분위기다. 다양한 전략을 통해 돌파구 마련에 고심 중이다. 서울, 수도권 주요 단지들은 크게 5가지 전략을 통해 침체에 빠진 재건축 시장을 살리려 분주하게 움직인다.

서울시가 한강변 아파트지구에 대해 재건축 용적률 완화 여부와 관계없이 기부채납을 요구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가 한강변 아파트지구에 대해 재건축 용적률 완화 여부와 관계없이 기부채납을 요구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전략 1 대안으로 떠오른 리모델링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가 관건

첫 번째 전략은 리모델링이다. 리모델링은 준공 후 15년이 지나면 추진할 수 있으며 재건축처럼 규제가 까다롭지 않다. 가구 수가 작아 재건축 사업성이 낮거나 용적률 높은 단지를 중심으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가 부쩍 늘었다.

최근 포스코건설은 서울 강남구 개포우성9차아파트 수평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1991년 준공한 개포우성9차는 총 232가구로 구성됐다. 리모델링 공사 기간은 32개월이고 공사비는 799억원을 투입한다. 지하 1층이었던 지하주차장을 지하 3층까지 신설 확장해 주차난을 해소하고 지하주차장과 가구를 직접 엘리베이터로 연결해 입주민의 편의성을 확보한다.

강남구 개포동 대청아파트(822가구)는 3개 층 수직증축을 통해 900가구가 넘는 새로운 단지로 변경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 도시계획심의와 안전성 검토 등을 완료하고 사업계획승인 신청 접수를 위한 주민 동의를 얻는 작업에 착수했다.

잠원동 잠원동아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는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체를 선정하고 리모델링 설명회를 열었다. 이 단지는 기존 용적률이 300%가 넘고 대지지분이 낮아 재건축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 단지다. 서울시 도시계획조례 등에 따르면 3종 일반주거지역에 들어서는 새 건물은 기준 용적률 250%(최대 300%)를 적용받는다. 재건축을 하면 오히려 주택 수를 줄여야 할 가능성이 높은 단지다.

반면 리모델링은 기존 용적률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잠원동아 리모델링 추진위는 단지 3개 층을 새로 올리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반분양분 150여가구가 새로 나올 전망이다. 오는 6월까지 주민설명회 등을 거쳐 7월부터 주민동의서를 걷을 예정이다. 9월 중 조합을 설립해 연내 시공자 선정까지 끝낸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외에도 잠원 한신로얄, 분당 한솔5단지, 무지개4단지 등이 사업계획 승인을 받았거나 사업계획 승인 신청을 완료했다. 분당 느티마을3·4단지도 최근 사업계획 승인 신청을 접수했다. GS건설, 대림산업 등 대형 건설사도 리모델링 수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리모델링 사업의 가장 큰 변수는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다. 내력벽은 건물 하중을 견디기 위해 만든 벽이다. 내력벽을 철거할 수 있으면 기존 평면을 4베이(방 3개와 거실 전면 배치)로 바꾸는 등 가구별 평면 구성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당초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를 올해 3월 결정할 방침이었으나 관련 용역이 지연돼 올 연말로 결정을 연기했다.

전략 2 안전진단 추진 강행

▶올림픽선수촌·성산시영 속도전

재건축 사업 초기 단계인 일부 단지는 이참에 사업 추진 속도를 높이려는 분위기다. 규제가 강화되기는 했지만 되도록 빨리 사업을 진행해 손실을 최소화한다는 전략이다.

지난 1년간 재건축 시장이 위축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지난해 3월 시행된 안전진단 기준 강화다. 이전까지만 해도 안전진단은 요식행위에 가까웠다. 재건축 연한 기준(30년)을 맞출 경우 신청만 하면 대부분 통과했다. 하지만 안전진단 기준이 강화되면서 무너질 위험이 없는 한 재건축 추진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지난해 안전진단을 신청한 재건축 단지가 단 한 곳도 없었던 것은 조건이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안전진단을 시도하는 단지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단지가 서울 송파구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올림픽선수촌)다. 올림픽선수촌 주민들은 올해 초 송파구청에 안전진단을 신청했다. 송파구청은 안전진단 용역업체 모집을 마감하고 이르면 4월 초쯤 최종 업체 선정을 할 계획이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올해 8~9월쯤 안전진단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정비업계에서는 올림픽선수촌 안전진단 통과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림픽선수촌 안전진단이 통과되면 재건축 추진 초기 단지들은 잇따라 안전진단을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성산시영도 재건축 안전진단을 추진하고 있다. 성산시영 재건축 예비추진위원회는 지난 3월 30일 마포구청 대강당에서 재건축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성산시영 소유주 약 300명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1986년 준공한 성산시영은 이미 재건축 가능 연한을 채웠으며 2016년 재건축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했다. 지난해 초에는 정밀안전진단을 추진했으나 국토부 안전진단 기준 강화에 직격탄을 맞았다. 성산시영 재건축 예비추진위원회는 정밀안전진단 비용을 자체 모금하고 있다. 주민설명회를 통해 사업성을 알리고 모금을 완료해 이르면 올해 상반기 중 안전진단을 신청하는 것이 목표다.

성산시영의 안전진단 통과 여부는 ‘가구당 주차 대수’와 ‘소방활동 용이성’ 등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성산시영 차량 등록 대수는 3700대가 넘지만 주차 허용 대수는 1233대에 불과하다. 만성적인 주차난으로 입주민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 예비추진위 측 설명이다. 단지 안쪽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차가 진입하기도 어려워 화재 대응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건축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성산시영 집값은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성산시영 3개 단지 중 대우아파트 전용 59㎡는 올 들어 8억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12월 거래가격(6억7570만원)과 비교해 1억원 이상 올랐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안전진단을 추진하는 단지는 입지가 탁월하거나 사업성이 좋다는 공통점이 있다. 올림픽선수촌과 성산시영 두 랜드마크 단지의 안전진단 신청 결과는 재건축 초기 단지의 나침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사업이 사실상 멈춘 목동 신시가지.

재건축 사업이 사실상 멈춘 목동 신시가지.

전략 3 차라리 장기전으로

▶‘식물 추진위’ 교체하고 비용 절감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로 인해 아예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단지도 생겼다. 조합장을 교체하거나 사업비만 탕진하는 추진위 혹은 조합을 규탄하는 주민도 늘었다.

서울 강남구 대치쌍용1단지는 재초환 부담으로 조합장과 임원진이 전원 교체됐다. 총회를 통해 재건축 추진을 반대하는 후보가 새로운 조합장으로 선출됐다. 조합 측은 “조합원들이 재초환 부담과 이주비 대출금 규제 등으로 자금 부담이 매우 큰 상황에서 불안감이 팽배했다”며 “이번 기회에 조합 운영 비용을 최소화하고 긴축 운영해 최대한 중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전 조합은 지난해 10월 서울시 사업시행인가가 난 직후 시공사를 선정하기 위한 입찰 준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재초환 부담에 따른 주민 반대로 시공사 선정에 난항을 겪었다. 결국 이 단지는 조합장을 교체하고 사업을 원점에서 새롭게 추진하기로 했다.

재건축 사업 추진을 중단하거나 반대하는 주민도 늘고 있다. 압구정 구현대아파트가 대표적이다. 단지 곳곳에는 재건축 사업 추진을 반대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기존 추진위원회나 조합이 매달 5000만원 이상 비용을 쓰는 것에 대한 불만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략 4 1 대 1 재건축을 허하라

▶일반분양 없애고 명품 단지로

‘명품 단지’를 만들기 위해 일반분양을 포기하고 1 대 1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도 늘었다. 서울 광진구 워커힐아파트가 대표적이다.

1978년에 준공된 워커힐아파트는 2개 단지로 나뉜다. 1단지(광장동 145-8, 432가구)로 불리는 11개 동은 2종 일반주거지역이고, 2단지(광장동 362, 144가구)인 51·52·53동 3개 동은 자연녹지 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 중 1단지는 2016년 8월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아 재건축을 추진해왔다. 이 단지는 기존 432가구에서 총 982가구 규모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또 임대주택이 없는 1 대 1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워커힐 정비계획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재건축에 따른 용적률이 188%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 단지의 현재 용적률은 100% 미만이다. 2종 일반주거지역에 위치한 재건축 단지들은 서울시 조례에 따라 최대 300%(법적 상한 250%+추가 인센티브)까지 용적률을 받을 수 있다. 워커힐 용적률은 1 대 1 재건축을 추진 중인 용산구 이촌동 왕궁아파트(205%)보다도 훨씬 낮다. 건폐율도 법적 상한선인 60% 이하에 한참 못 미치는 25%로 계획했다. 워커힐아파트 추진준비위원회 측은 “원래 199% 수준으로 계획했는데 추가 보완 절차를 거쳐 188%로 더 낮췄다”며 “생태·활동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 리조트와 같은 주거단지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1 대 1 재건축으로 성공한 가장 유명한 단지는 용산 이촌동 래미안첼리투스다. 래미안첼리투스는 1974년 지어진 렉스아파트를 재건축한 단지. 일반분양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재건축 이후 분담금을 포함해 10억원 이상 올랐다.

다만 1 대 1 재건축이 앞으로도 계속 유효한 전략이 될지는 미지수다. 서울시가 ‘한강변 관리 기본계획’에 따라 한강변 아파트지구에 대해 재건축 시 용적률 완화 여부와 관계없이 토지면적의 15%를 기부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한강변에서는 어떤 형태로 재건축하든 서울시가 기부채납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이로 인해 1 대 1 재건축을 추진하던 용산구 이촌동 왕궁아파트 주민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전략 5 신탁방식도 대안

▶대단지 성공 사례 나와야

재건축 신탁방식으로 활로를 모색하는 것도 핵심 전략 중 하나다. 일례로 최근 서울 성동구 장미아파트가 KB부동산신탁을 재건축 사업 시행자로 선정했다. 영등포구 광장아파트는 한국자산신탁을 사업시행자로 선정했다.

하나둘씩 성공 사례를 써 가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코람코자산신탁이 사업관리를 맡은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 성광·호계·신라아파트 통합 재건축 단지인 ‘안양 호계동대성유니드’가 준공을 앞뒀다. 지난해 초 분양을 마친 이 단지는 올해 4월 중으로 입주를 시작한다.

서울에서는 코리아신탁이 사업관리를 맡은 서울 광진구 대영연립 재건축 아파트가 지난해 12월 준공 인가를 받았다. 대영연립 재건축 아파트는 지하 1층, 지상 17층 2개 동으로 전용면적 52~84㎡ 78가구 규모다.

신탁방식은 통상적인 조합 방식과 달리 신탁사가 조합원을 대신해 자금 조달부터 분양까지 전반적인 업무를 맡아 추진한다. 신탁사에 위탁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지만 안정적인 자금 조달, 투명한 운영, 사업 기간 단축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여의도에서는 대부분 단지가 신탁방식으로 재건축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국자산신탁은 서울 여의도 2654가구 규모의 시범아파트를 포함해 958가구 규모인 수정아파트, 3350가구 규모 광장아파트 재건축 사업시행자로 선정됐다. 여의도 634가구 규모 공작아파트, 576가구 규모 대교아파트, 938가구 규모 한양아파트 등은 KB부동산신탁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신탁방식 성공 사례가 하나둘씩 생기고 있지만 숙제도 산더미다. 여전히 관련 제도가 미비해 내홍을 겪는 사업장도 많다. 설익은 제도 탓에 주민 간 갈등으로 치닫거나 신탁사 간 다툼까지 이어지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주민 이익을 대변할 법적인 주민 협의체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신탁사가 쓰는 사업시행 규정은 과거에 만든 것이다 보니 신탁사에 유리한 구조로 설계돼 있다. 신탁사를 견제하는 주민대표기구를 설립할 수 있게 제도를 고치고 주요 사업 안건은 협의해야 신탁방식 재건축 장점을 살릴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어차피 1순위는 일반 재건축이지만 여러 규제로 사업성이 나오지 않아 단지마다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며 “신탁형 재건축은 조합 설립 등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인기가 높지만 재초환 부활에 각종 수수료 등을 감안하면 큰 매력이 없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3호 (2019.04.10~2019.04.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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