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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커진 동영상 스트리밍(OTT) 시장-애플·디즈니, 넷플릭스와 ‘콘텐츠 전쟁’ 돌입

  • 명순영 기자
  • 입력 : 2019.04.15 09:33:17
지난 3월 2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스티브 잡스 극장.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행사 때마다 늘 그랬듯 검정 니트에 화이트 셔츠를 받쳐 입은 차림으로 무대에 섰다. 그러나 이날은 ‘늘 그랬던’ 행사가 아니었다. 애플 창립 이래 하드웨어를 내놓지 않고 새로운 서비스를 발표한 보기 드문 날이었다.

청중 구성도 여느 때와 달랐다. 과거 하드웨어 기술자, 미디어 등으로 꽉 찼던 자리는 오프라 윈프리, 스티븐 스필버그 등 화려한 TV쇼와 할리우드 관계자가 메웠다. 이번 행사에서 애플은 골드만삭스와 손잡고 티타늄 재질 애플 신용카드를 선보였다. 그나마 이는 참석자들이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유일한 제품이었다.

행사의 최대 이슈는 애플TV플러스였다. 애플은 애플TV 셋톱박스를 통해 훌루, 아마존프라임 동영상, ESPN 같은 채널 TV 프로그램과 영화를 볼 수 있게 했다. 스마트폰 경쟁사인 삼성전자, LG전자, 소니 등의 TV에도 애플TV 앱을 제공한다. 자체 콘텐츠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잠깐용어 참조)를 주도해왔던 ‘넷플릭스발(發) 콘텐츠 레볼루션’에 애플이 가세한 것이다.

업계가 긴장하는 이유는 애플의 막강한 플랫폼 장악력 때문이다. 전 세계에 뿌려진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14억대에 달한다. 여기에 충성도 높은 ‘애플빠’는 강력한 응원군으로 활약할 전망이다.

애플이 그간 개발자와 공급자 몫으로 남겨뒀던 콘텐츠 시장에 진출한 이유는 분명하다. 과거 애플은 아이폰이나 애플워치, 맥을 들고 나와 제품 혁신과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자랑했다. 하지만 하드웨어 기업으로서의 애플 미래는 암울하다. 지난 4분기 아이폰, 아이패드, 워치, 맥북, 맥 등 5대 하드웨어가 이끌었던 애플 실적은 크게 주춤했다. 하드웨어에서 843억달러(약 94조3300억원) 매출을 기록했지만 전망치보다 5% 이상 줄었다.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팀 쿡 CEO는 4분기 실적 악화 원인을 중국 시장 악화로 돌렸다. 중국 경기 둔화와 미중 무역갈등으로 중국에서의 아이폰 판매가 둔화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문제만으로 치부하기도 힘들다. 아이폰이 이끈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은 교체 주기 증가와 높은 판매가에 대한 소비자 저항이 높아진 상황. 당장 아이폰 위상이 추락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상승 추세가 꺾였다는 데 전문가 사이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다.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사업 부문은 서비스다. 애플뮤직, 아이튠즈, 앱스토어, 아이클라우드, 애플케어 등 소프트웨어 서비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9% 늘었다. 애플의 밥그릇 아이폰 매출이 같은 기간 15%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애플의 서비스 부문 매출은 1분기 91억달러에서 2분기 95억달러, 3분기 99억달러, 4분기 109억달러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자랑해왔다. 애플이 하드웨어(스마트폰)가 아닌 소프트웨어(콘텐츠)로 무게추를 옮기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팀 쿡 CEO는 “언제 어디서나 놀라운 콘텐츠와 경험을 직접 제공하는 서비스에 집중하겠다”며 ‘콘텐츠 양산’을 선언했다. 애플은 올해 오리지널 콘텐츠 양산에 10억달러(약 1조1345억원)를 쏟아부을 예정이다.

워싱턴포스트는 “2007년 아이폰 출시 이래 성장을 주도해온 애플의 모바일 기술은 점차 애플뮤직이나 아이클라우드와 같은 서비스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5G 본격화하면 글로벌 OTT시장 급성장

넷플릭스·아마존·디즈니 천문학적 투자

SKT ‘옥수수’ ‘푹’과 손잡고 격변기 대응

애플이 뛰어든 OTT 시장은 한층 뜨거워졌다. OTT 시장은 이미 넷플릭스, 아마존, 훌루, 디즈니 등이 사업 영토를 넓혀가는 중이다. 지난해 글로벌 OTT 시장 규모는 48조3100억원으로 글로벌 박스오피스 매출(46조6100억원)을 넘어섰다. 5세대(5G) 이동통신이 확산하면 OTT 수요는 늘어날 게 분명하다.

글로벌 대표 콘텐츠 기업 넷플릭스는 지난해에만 80억달러를 투자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유튜브로 동영상 콘텐츠 전성시대를 연 구글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구글은 2010년에 세계 최초 스마트TV라 할 수 있는 ‘구글TV’를 내놨지만 콘텐츠 공급업자와의 협업에 실패하며 제대로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그러나 전 세계 스마트 기기 운영체제(OS)를 장악한 구글이 콘텐츠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데 의견이 모아진다.

‘어벤져스’ ‘겨울왕국’ 등으로 유명한 콘텐츠 강자 디즈니도 OTT를 강화한다. 디즈니는 최근 영화제작사 21세기폭스를 80조원에 인수해 미국 OTT 시장 3위 훌루의 최대 주주까지 됐다.

한국에서도 격변의 바람이 몰아칠 듯 보인다. 국내 OTT 시장은 지난해 5136억원, 올해 6345억원으로 성장세를 이어왔다. 2020년 7801억원까지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이라던 넷플릭스는 국내에서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 국내 이용자 수는 지난해에만 3배 가까이 늘어 130만명으로 불어났다. 결제금액만 연 1500억원에 달한다. 넷플릭스는 지난 2017년 영화 ‘옥자’를 시작으로 유재석이 출연한 예능 ‘범인은 바로 너!’, YG엔터테인먼트와 손잡은 ‘YG전자’ 등 다양한 화제작을 낳았다. 지난해 4분기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은 제작 콘텐츠 50%를 넷플릭스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진출 3년도 채 안 된 기간 동안 쓴 돈은 1500억원이 넘는다. 올해 최고 대작으로 꼽히는 ‘킹덤’도 넷플릭스 마니아층을 모으는 데 한몫했다. 주지훈, 배두나 주연의 ‘킹덤’은 회당 제작비만 20억원 규모 대작으로 화제를 낳았다.

SK브로드밴드는 지상파 3사와 OTT 연합군을 만드는 계획을 서두르고 있다. SK텔레콤은 ‘옥수수’ 사업을 분할할 예정이다. 옥수수는 SK텔레콤의 자회사 SK브로드밴드 동영상 서비스다. 옥수수는 지상파 3사가 함께 만든 동영상 서비스 ‘푹(POOQ)’과 합병한다. 옥수수 가입자 946만명과 푹 가입자 400만명이 합쳐진, 가칭 ‘푹수수(푹+옥수수)’는 국내 최대 OTT 업체가 된다. 700만~1000만명 정도 돼야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과 수급이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덩치를 키우는 것이다.

KT는 국내 콘텐츠 강자 CJ ENM을 자회사 지니뮤직 2대 주주로 끌어들여 협업 체제를 강화했다. 넷플릭스와 손잡고 가입자를 늘린 LG유플러스는 한층 더 OTT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국내 기업 간 인수합병(M&A) 물밑 작업도 활발해졌다. 스튜디오드래곤과 카카오는 신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웃돈을 주고 중소 규모 제작사와 배우 기획사를 사들이고 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지난 3월 노희경 작가가 소속된 지티스트 지분 100%를 250억원에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지티스트 2017년 매출액은 14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같은 해 93억원 당기순손실까지 기록했지만 스튜디오드래곤은 성장성을 높게 보고 최대한 비싸게 지분을 취득했다. 2016년 화앤담픽쳐스와 문화창고를 각각 300억원, 350억원에 인수했다. 같은 해 하반기에는 KPJ를 150억원에 사들였다. KPJ 인수 당시 KPJ의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은 5억원, 3억원에 불과했지만 기업가치는 150억원으로 평가받았다.

카카오는 배우가 소속된 엔터 기업에 베팅한다. 콘텐츠 산업 내 배우 품귀 현상이 심해지는 가운데 선제적으로 배우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유명 배우 송중기와 박보검이 소속된 블러썸엔터와 인수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카카오는 공유가 소속된 숲엔터와 이병헌 소속 BH엔터, 김태리 소속 제이와이드컴퍼니를 인수했다. 이 세 엔터 기업을 인수하는 데 카카오는 약 390억원을 썼다.

스튜디오드래곤이 신규 콘텐츠를 만들고 카카오는 제작 자원을 확보하는 데 신경을 쓴다면, 네이버는 풍부한 지식재산권(IP)에 집중 투자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네이버는 ‘네이버웹툰’의 풍부한 웹툰 IP를 활용해 영화·드라마 등을 제작한다. 지난해 8월 스튜디오N을 설립하고 웹툰의 영화·드라마 등 2차 콘텐츠 제작을 본격 시작했다. 이 같은 IP를 활용해 10편 이상의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다.

OTT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강자가 콘텐츠 유통에 뛰어들며 판이 커졌다”며 “국내 업체는 자체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해외 플레이어와 합종연횡을 모색할 듯 보인다”고 전망했다.

잠깐용어 *OTT(Over The Top)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Top’은 셋톱박스를 의미한다. 케이블과 IPTV를 즐기기 위해서는 유선 셋톱박스가 필요하다. OTT는 온라인 다운로드나 스트리밍을 통해 셋톱박스 없이도 미디어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3호 (2019.04.10~2019.04.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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