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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금호아시아나그룹 어디로-박삼구 사재 출연 관건…박세창(아시아나IDT 사장) 역할 커질듯

  • 김경민 기자
  • 입력 : 2019.04.15 09:33:35
박삼구 회장이 퇴진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공평동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

박삼구 회장이 퇴진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공평동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

“주주와 채권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사퇴한다. 아시아나항공 감사보고서로 그룹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 책임을 통감한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최근 사퇴하면서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이다.

박삼구 전 회장이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서 그룹 내부가 뒤숭숭하다. 박 전 회장은 그룹 회장직은 물론이고 아시아나항공, 금호산업, 금호고속 등 모든 계열사 대표이사와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 감사보고서 사태에 대해 책임지고 물러난다지만 박 전 회장 사퇴만으로 혼란이 수습되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적잖다.

사태의 발단은 아시아나항공 회계 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삼일회계법인에서 감사의견 ‘한정’을 받아 주식거래가 일시정지됐다. 자금 회수 가능성까지 불거지면서 주주, 투자자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이후 재감사를 통해 ‘적정’ 판정을 받았지만 순손실이 1050억원에서 1959억원으로 급증하는 등 시장 불신을 초래했다.

박 전 회장은 사퇴 의사를 밝히기 하루 전인 3월 27일 오후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과 만나 경영권 포기 의사를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지난해 맺은 재무구조 개선 관련 업무협약(MOU) 연장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년 전인 지난해 4월 대출금 만기 연장을 조건으로 MOU를 맺었다. MOU에는 자산 매각, MOU 이행실적 보고, 미이행 시 신규 여신 중단과 차입금 회수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4월 초로 예정된 MOU의 연장 논의를 앞두고 회계 문제가 불거지자 채권단은 시장 신뢰를 회복할 만한 강도 높은 자구책을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박 전 회장이 결국 ‘경영권 포기’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적 선방 금호산업 역할 관심

박 전 회장 퇴진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원태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그룹 비상경영위원회 체제를 운영하기로 했다. 이른 시일 내 외부 인사를 그룹 신임 회장으로 영입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박 전 회장 퇴진만으로 사태가 원만히 수습될지는 의문이다. 당장 아시아나항공이 문제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 매출 중 60%가량을 차지하는 아시아나항공이 부실에 빠지면 그룹 전체 재무구조가 위험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시아나항공의 총 차입금은 무려 3조4400억원에 달할 정도다(지난해 말 기준). 당장 올해 갚아야 하는 차입금만 1조3000억원이 넘는다. 1분기 2820억원에 이어 2분기에도 2950억원 차입금을 상환해야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자금 조달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고금리 덕분에 개인투자자에게 인기가 높은 영구채(신종자본증권) 발행조차 어려워졌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3월 중순 1500억원 규모 영구채 발행을 결정해 850억원을 모집했다. 하지만 추가 모집하기로 했던 650억원은 감사보고서 사태로 금융권 투자자들이 이탈하면서 끝내 발행이 무산됐다.

자금 조달 핵심 수단 중 하나였던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마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신용평가사들이 최근 아시아나항공 신용등급을 하향 검토 대상에 올리면서 기존에 발행한 1조1328억원어치 ABS가 ‘즉시 상환 조건’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권 판매수익을 기초로 한 ABS에는 국내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이라도 BBB-인 아시아나항공 신용등급을 한 단계 떨어뜨리면 즉시 상환 조건이 발동된다는 특약이 붙었다. 아시아나항공이 재감사로 ‘적정’ 의견을 받았지만 신용평가사들은 여전히 아시아나항공을 하향 검토 대상에 올려놓은 상태다. 한국신용평가는 “재무 안정성이 여전히 미흡한 가운데 비적정 감사의견에 따른 주식매매 정지, 잠정실적 대비 크게 저하된 재무제표 공시 등으로 유동성 경색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아시아나항공이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는 했지만 실적, 재무구조 불확실성이 높아져 향후 자금 조달에 차질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 측에 자구계획안 제출을 요구하고 나섰다. 산은 측은 “먼저 대주주와 회사의 시장 신뢰 회복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시장의 우려를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제출해줄 것을 금호 측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부랴부랴 한창수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임직원 담화문을 통해 자산 매각, 비수익 노선 정리, 조직 개편 등 3대 쇄신책을 내놨다. 한 사장은 “노선 운수권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비수익 노선을 정리하겠다. 항공기 운영 대수를 축소해 수익성 위주의 노선 체계로 재편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시아나항공은 국제선 76개, 국내선 11개 등 총 87개 여객 노선을 운영 중이다. 이 중 비용이 많이 드는 노선부터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운영 중인 항공기 83대 중 연료 효율이 낮고 노후한 항공기를 대대적으로 처분할 가능성도 높다.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산 매각도 변수다.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인 LCC(저비용항공사) 에어서울, 에어부산을 비롯해 아시아나개발, 아시아나에어포트, 아시아나IDT 등 계열사 보유 지분이 후보로 꼽힌다. 부동산 중에서는 경기 용인 아시아나CC, 중국 웨이하이포인트호텔&골프리조트 등도 유동성을 확보할 만한 자산으로 불린다. 재계 관계자는 “재무구조가 계속 악화될 경우 최근 상장한 에어부산 등 아시아나항공의 알짜 자회사를 매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귀띔했다.

그룹 또 다른 주력 계열사인 금호산업 역할에도 관심이 쏠린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33.49%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지난해 매출 1조3767억원, 영업이익 423억원을 냈다. 영업이익만 놓고 보면 전년 대비 36% 늘어 분위기가 괜찮다. 다른 대형 건설사처럼 아파트 분양 물량이 많지는 않지만 관급공사에 강점을 가진 덕분에 정부의 인프라 확대 수혜주로 꼽힌다. 실제 금호산업은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은 부산신항~김해고속도로, 평택~오송 2복선화 사업 등에 참여했다. 정부가 지역 균형 발전 차원에서 지방 공항 등 대규모 SOC(사회간접자본) 발주에 나서는 만큼 금호산업이 유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에 나설 경우 금호산업 재무구조가 불안해질 수 있다.

최후의 수단으로 박삼구 전 회장이 금호고속 지분 등 사재 출연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지배구조는 금호고속 → 금호산업 → 아시아나항공으로 금호고속은 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회사다. 지난해 말 기준 박 전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금호고속 지분은 67.6%다.

박 전 회장 지분이 31.1%고 장남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도 21%를 보유했다. 박 전 회장 측은 지난해 말 아시아나항공의 700억원 규모 차입금 만기 연장을 위해 산은이 보증을 서주는 대가로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지분 등을 담보로 제공했다. 박 전 회장이 추가로 제공할 수 있는 담보는 금호고속 지분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이 퇴진했다 해도 산은 입장에서 무작정 금호그룹을 도와주기는 어려운 만큼 박 회장 일가가 보유한 금호고속 지분 출연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위기에 빠지면서 박삼구 전 회장 장남 박세창 사장 역할도 중요해졌다. 그룹이 명망 있는 외부 인사를 신임 회장으로 영입한다 해도 경영 사정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당장 그룹 현안을 책임지기 어렵다. 자연스레 박 사장 경영 보폭이 넓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박 사장은 최근 아시아나IDT 주주총회장에서 부친의 사퇴에 대해 “사퇴의 진정성이 왜곡되지 않기를 바란다. 비상경영위원회가 꾸려진다고 들었는데 필요하다면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박 전 회장 퇴진으로 오랜 기간 경영수업을 받아온 박세창 사장 역할이 한층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박 사장이 40대 중반으로 아직 젊은 데다 핵심 계열사 대표이사 경험이 없는 만큼 그룹 경영을 총괄하기는 이른 것도 사실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박 전 회장 리더십 부재를 극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싶다.” 재계 관계자 촌평이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3호 (2019.04.10~2019.04.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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