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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글로벌 밸류체인 급변해 국내 부가가치 창출 절실

  • 입력 : 2019.04.15 09:34:50
글로벌 통상질서가 새롭게 재편 중이다. 자유무역 선봉에 섰던 미국은 통상법 301조,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해 보호무역을 본격화하고 중국과 무역전쟁을 일으키는 등 WTO 체제가 흔들린다. 다른 선진국도 ‘제조업 부흥’ 기치 아래 제조업 육성 정책을 추진한다.

국제통상 환경 변화는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GVC)’ 구도를 크게 변화시킨다. 가치사슬은 기획, 연구개발(R&D), 디자인, 부품·소재 조달, 제조, 판매, 사후관리 등에 이르는 가치 창출 활동 전 과정을 말한다. 가치사슬을 구성하는 다양한 활동이 여러 국가에 걸쳐 이뤄진다. 예컨대 아이폰의 경우 제품 기획과 디자인은 미국, 부품·소재는 한국과 일본, 제조 기술은 대만, 단순제조는 중국, 판매나 사후관리는 또다시 미국에서 이뤄지는 구도다.

최근 국제통상 환경 변화를 GVC 관점에서 보자. 선진국은 적극적인 산업정책뿐 아니라 보호무역을 통해서라도 가치사슬에서 소홀히 해왔던 제조 부문에서의 자국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중국은 ‘기술 굴기’로 대표되는 ‘중국제조 2025’를 통해 제조보다는 기획, 연구개발 등 가치사슬의 전방 부문에서 자국 역할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다.

우리 경제는 알다시피 해외 의존도가 높다. GDP 대비 무역 규모가 매우 클 뿐 아니라 해외 투자나 해외 생산도 활발하다. 흔히 수출의 부가가치율(명목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자국 부가가치액 비중)이 낮은 것을 우리나라 수출의 문제점으로 지적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가 GVC에 매우 깊숙이 참여하고 있고 또 GVC를 잘 활용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 통상 환경 변화는 우리의 GVC 전략에 큰 변화를 요구한다. 당분간 해외 투자·생산을 늘릴 수밖에 없다. 주요 수출 시장인 미국이 제조업의 자국 생산을 강조하고 있고 중국도 시장 개방 속도로 보아 아직까지는 중국 내 생산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을 위한 수출기지로 아세안, 인도가 부상하지만 이를 통한 우회 수출은 한계가 있다. 결국 이들 시장을 공략하려면 미국이나 중국 내 생산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GVC에서 국내 부가가치가 제품 제조(생산·수출)보다 기획, 연구개발, 디자인, 판매, 사후관리 등 가치사슬의 다른 부문에서 창출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단순히 국내 생산·수출 규모 확대를 목표로 추진해온 지금까지의 산업·통상정책도 가치사슬 차원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산업의 가치사슬 전반을 고려해 국내에서 부가가치를 가장 많이 남기게 하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패러다임부터 바뀌어야 한다. ‘생산·수출액’이라는 잣대로만 정책을 추진하면 실제로 국내에 떨어지는 부가가치 크기는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다. 연구개발을 통해 더 싼 가격으로, 한 번 충전에 더 많은 주행거리를 달릴 수 있고 충전이 손쉬운 전기차 생산 기술을 개발하면 어디에서 조립하든 상관없이 많은 부분의 부가가치가 국내에 남는다.

산업정책은 어떤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보다 ‘부가가치의 국내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리 기업이 기획, 연구개발, 디자인, 마케팅, 글로벌 경영 등에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나아가 통상정책은 산업정책과 연계해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원활하게 경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로 앞으로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생산 활동이 증가할 수밖에 없고 현지 경영에서 많은 애로가 따를 것이다. 통상정책은 이런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장지상 산업연구원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4호 (2019.04.17~2019.04.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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