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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 ‘악질경찰’ 멋들어진 액션과 2% 부족한 서사

입력 : 
2019-04-10 10: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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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아저씨’나 ‘우는 남자’에서도 그랬듯이, 사회의 시선으로 봤을 때 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여성 뮤즈를 등장시키고, 위기를 통해 그들을 각성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액션 대신 서사를 조금 더 다듬는 데 신경 썼다면 ‘최악에 대항하는 차악’이라는 악질경찰 캐릭터가 더 살아났을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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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경찰이 뻔뻔하게 범행을 저지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무전을 몰래 엿들으며 ATM 기계를 털고, 내부 정보로 재테크를 하는 등 경찰이라기보다는 범법자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는 경찰 조필호(이선균). “내가 경찰 무서워서 경찰 된 사람”이라고 말하며 뒤로 온갖 비리를 저지르던 필호는 사내 감사팀의 눈길을 돌릴 급전이 필요해지자, 이번엔 경찰 압수 창고를 털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사건 당일 밤, 조필호의 사주를 받아 창고에 들어간 한기철(정가람)이 의문의 폭발 사고로 죽게 되고, 필호는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때맞춰 압수 창고에서 사라진 비자금의 행방 또한 묘연해지고, 필호는 기철이 죽기 직전 창고 동영상을 전송한 여고생 미나(전소니) 일행을 만나 태성그룹의 오른팔 권태주(박해준)의 추적까지 받게 된다. ‘아저씨’나 ‘열혈남아’에서도 눈에 띄던 이정범 감독 특유의 파워 넘치는 액션(특히 미나의 집에서 이뤄진 이선균과 박해준의 격투는 실감 넘친다)은 여전하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서사 면에서는 다소 부실한 전개가 아쉽다. 나쁜 놈이라 손가락질 받았던 악질 경찰마저 바꾸어 놓는 계기를 위해 무리하게 소녀와의 우정 곡선을 상승시킨 데 이어, 마지막 순간 미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다소 무리한 설정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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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친구가 세월호에 희생된 학생이었다는 사실, 그 가족의 아픔을 보여 준 것은 감독이 세월호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상처를 안고 방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여전히 아이와 약자가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사회를 보여 주는 스타일을 택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전면이 아닌 서브 스트림의 단편적인 나열에 그쳐, 세월호라는 소재를 이런 방식으로 꼭 끼워 넣었어야 했는지 의문이 들면서도, 사건 자체에 대한 감독의 깊은 고민이 느껴져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그러나 등장 자체로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던 권태주 역의 박해준, 이런 얼굴이 있었나 싶게 불량한 마스크의 이선균 등 믿고 볼 만한 배우들의 연기는 발군이다. 예상치 못했던 범죄에 휘말리고 궁지에 몰리며 거대하게 짜여진 판 속에서 발버둥치는 역을 이선균만큼 잘 소화해 낼 마스크가 있을까. 사건 사고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점점 더 폭주하는 필호는 자신보다 더 큰 악을 마주하고, ‘못된 놈이지만 너 정도는 아냐,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어’라고 말하는 듯, 작심하고 폭주한다.

극이 다소 산으로 간다 싶을 때마다 등장해 꿈에 나올까 무서운 신 스틸러 연기를 선보인 박해준은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의 총기 전문 저격수, ‘미생’의 쓸쓸한 직장인, ‘4등’에서 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수영 강사에 이은 ‘독전’의 마약 조직원까지, 이번에도 긴장감 100%의 악역 포텐을 폭발시킨다. 이정범 감독이 “아주 잘 다듬어진 칼 같다”고 표현한 신예 전소니는 영화 ‘여자들’, ‘죄 많은 소녀’, ‘남자친구’ 등에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 준 데 이어, 이선균과 박해준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카리스마를 보여 준다. 배우들은 강렬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고 감정선을 이끌어 가지만 시나리오가 따라 주지 못한다는 것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속도감 있는 범죄물이다.

[글 최재민 사진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74호 (19.04.1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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