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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 동물 임시 보호 (1) 버려졌어도, 삶은 계속돼야 한다

입력 : 
2019-04-10 10: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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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공원 산책 길에 전 직장 동료를 만났다. 곁에는 5개월이 된 진도 믹스 수컷이 있었다. 몇 달 전 아파트 화단에서 버려진 새끼 강아지 일곱 마리를 발견했고, 그 중 세 마리를 임시 보호하다가 두 마리는 새 가족을 찾아 보내고 남은 한 마리를 입양했다고 했다. 수리를 입양하고 나서 임시 보호에도 관심을 갖게 된 나는 집으로 돌아와 임시보호 사례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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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유기되는 반려동물 수가 10만을 훌쩍 넘어섰다. 평균 한 달에 1만 마리, 하루 333여 마리가 버려지는 셈이다. 신고된 게 이 정도고 작은 사설 보호소나 쉼터의 상황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쨌든 구조된 유기 동물은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보호소로 가는데, 열흘 정도 주인을 찾는 공고 기한이 지나면 안락사 위기에 처한다. 보호소 동물 가운데 30%가 주인을 찾거나 새 가족에 입양되고, 20%는 안락사 또 25%는 자연사한다. 구조 동물의 절반가량이 보호소에서 생을 마감하는 형편이다. 이 안타까운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구하는 길이 입양이다. 허나 입양이 어렵다면 임시 보호로라도 생명과 희망을 연장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흔히 ‘임보’라 칭하는 임시 보호는 안락사에 처한 아이들을 가정으로 데려와 일정 기간 돌보는 일이다. 일종의 위탁 보호 자원 봉사인데, 임시 보호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죽음의 위기로부터 생명을 구한다. 둘째, 입양 가능성을 훨씬 높인다. 첫째 이유가 물론 일차적이고 다급하지만 두 번째 이유도 그에 못잖게 중요하다. 언젠가는 새 가족을 만나야 하는 아이들인 만큼 안정적이고 청결한 환경에서 돌봄을 받으면서 건강과 사회성을 회복하는 것은 필수다. 가정에서 돌봄을 받는 아이들은 외모와 건강 관리가 잘 돼 있고, 배변 훈련, 놀이 같은 사회화 교육이 더 잘 돼 있기 때문에 보소호에 있는 유기 동물보다 입양이 빠르다. 또 개개 동물의 성격과 특징을 잘 알고 최대한 이에 맞는 새 가족을 찾아 주어 파양 확률도 적다. 여기에 임보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이유 하나를 덧붙이자. 임시 보호는 임보를 간 유기 동물과 함께 그 빈자리를 채우는 새로운 유기 동물, 그러니까 두 생명을 모두 구하는 일이라는 점 말이다.

하루 300마리가 넘는 동물이 어떤 이유로 유기되는지는 몰라도, 아니 여러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늙어서, 아파서, 짖어서, 더는 쓸모(?)가 없어서…. 이따위 처참한 상상은 일단 접어두고라도 분명히 알 수 있는 하나는, 비록 버려졌지만 삶은 이어져야 한다는 거다.

사실 서두에서 입양이 어려우면 임시 보호라도 하자고 말했지만 어쩌면 입양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임시 보호다. 어느 임보맘은 단호하게 말했다. “임보가 망설여진다고요? 당연히 망설여야 돼요.” 백번 옳다. 아무리 ‘임시’고 ‘봉사’라곤 해도 시간과 비용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큰 질병 치료에 드는 비용은 보호소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소소한 병원비와 간식, 위생 용품 등은 직접 구매해야 하기도 한다.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이는 것은 물론이고 정기적인 산책과 놀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뿐인가. 꾸준히 임보 일기를 작성해 아이의 입양 기회를 열어 주어야 하고, 종내는 정해진 이별을 담담히 겪어 낼 각오도 해야 한다. 그러니 입양보다 책임이 더 묵직하기도 하다. 그래서 충분히 망설여야 하고,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내가 임보를 두고 가장 걱정하는 게 있다. 언젠가는 평생 반려인을 찾아 떠날 아이니 정을 많이 주면 힘들어지지 않을까, 아니 그보다도 이별을 의식하지 않고 ‘지금’에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데 임보 사례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동안 정신의 가닥이 한데로 모였다. 임보의 최종 목적은 ‘입양’이고, 미래보다 중요한 건 이 순간이라는 점.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잖은가. 평범한 집밥의 위대함을, 언제고 내밀면 잡아주는 따뜻한 손의 힘을 말이다. 그것은 지금 희망을 잃은 작은 동물에게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다.

[글 이경혜(프리랜서, 댕댕이 수리 맘)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74호 (19.04.1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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