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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건 패션-채식주의로 돌아선 패션 디자인

입력 : 
2019-04-10 11: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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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로스앤젤레스 자연사박물관에서 사상 최초로 ‘비건 패션 위크’가 펼쳐졌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이 연이어 비건 패션을 추구하겠다며 자신들의 디자인 철학을 밝히고 있다. 바야흐로 채식주의 패션 디자인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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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과 9월. 매년 이맘때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시즌이 열린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개성으로 점철된 패션 피플들이 밀라노, 파리, 런던, 뉴욕 등 대도시에 일제히 몰려드는, 패션 위크 기간. 하지만 이 화려한 축제의 한 편엔 분노의 피켓 또한 보인다. 바로 ‘동물 학대 반대’ 시위대다. 모피와 가죽에 현란한 손기술을 더해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선보이는 캣워크를 향한 날 선 외침. 2000년대 초반부터 한결같던 이 목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결국 초현실주의 아트 작품보다 몽환적인 퍼 코트를 무대에 올리던 디자이너들과 아름다움 앞에서는 누구보다 과감하게 퍼를 선택하던 패션 피플들이 변화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다. 감수성이 예민한 패션계 이곳저곳에서 반려 동물에 대한 가족애, 환경 문제에 대한 고찰, 윤리적 기업 철학에 대한 논의 등으로 인해 공감이 확산되면서 절대 동물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거세졌고, 드디어 2019년 ‘비건 패션 위크’가 태동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월1일부터 4일간 로스앤젤레스 자연사박물관에서 펼쳐진 이 행사는 동물 권리 운동가인 엠마누엘 리엔다에 의해 기획되었는데, 그녀 역시 과거 패션 브랜드 홍보를 담당하며 수많은 동물 가죽과 모피 소재의 옷을 다뤘던 경험이 있다. 그에 대한 통렬한 반성의 결과물인 이 행사는 마치 패션(fashion)이 아니라 패션(passion)을 전하는 ‘열정의 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인애플 가죽, 사과껍질 가죽, 코르크 가죽에 이르기까지 소재에 대한 인간의 집념을 그대로 드러낸다. 심지어 패션 위크가 열린 장소는 ‘자연사박물관’이며, 강연을 해 준 이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로버트 램퍼트’. 패션 디자인의 나아갈 바가 인류 삶의 나아갈 바와 동일함을 선포하는 의미심장함이 느껴진다.

이뿐만 아니다. 런던 패션 위크도 지난 9월부터 모피를 퇴출시켰다. 또 세계 유수의 브랜드에서도 줄줄이 비건 패션을 선언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스텔라 맥카트니, 조르지오 아르마니, 캘빈 클라인 등은 모피 사용을 중지했고 이어 샤넬, 비비안 웨스트우드, 구찌, 마르지엘라, 버버리, 베르사체가 ‘퍼 프리(Fur Free)’를 선언했다. 네타포르테 같은 거대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이제 퍼를 구입할 수 없게 됐다. 심지어 빅토리아 베컴은 2019년 가을부터 모피뿐 아니라 가죽까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귀금속처럼 부유한 여성들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고가의 모피와 가죽 제품들이 옷장에서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다. 곧 전 세계의 모든 디자이너들이 베지터리언 선언을 할 것이고, 여기에 부응해 수많은 동물성 소재의 대체제가 개발될 것이므로. 콩으로 만든 고기처럼, 식감과 영양을 골고루 갖춘 것으로 말이다.

[글 한희(문화평론가) 사진 비건 패션 위크, 비건타이거]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74호 (19.04.1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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