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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nburgh in ‘브레이브 하트’-자비와 동정 대신 택한 ‘고통스런 죽음의 자유’

입력 : 
2019-04-11 10: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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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안 또 다른 나라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는 ‘북유럽의 아테네’라 불린다. 스코틀랜드인에게 잉글랜드가 그들의 나라가 아니듯 런던은 그들의 수도가 아니다. 에든버러에는 스코틀랜드인들이 긍지와 자존심으로 이룩한 그들만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이 곳곳에 남아 있다. 로마 제국에도 당당히 맞서고 잉글랜드와 수백 년 투쟁을 감수한 스코틀랜드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국가로서, 민족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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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안의 또 다른 나라, 스코틀랜드

미국의 정확한 국명은 ‘아메리카 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이다. 광의의 자치권을 가진 50개 주가 모여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연방제다. 그래서 대통령 못지않게 50개 주를 대표하는 상원의원들의 권한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이다. 모두 100명의 상원의원은 임기에서도 하원의원 2년은 물론이고 대통령 4년에 비해 훨씬 긴 6년을 보장받는다. 영국은 미국과는 조금 다르지만 독특한 형태의 국가 체제를 지녔다. 우리는 단일 국가 체제라고 생각하지만 영국 내 특정한 지역에서 ‘당신은 영국인인가?’라고 물으면 과격한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영국의 정식 국호는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일반적으로는 ‘연합 왕국United Kingdom’이라 부른다. 이는 잉글랜드England, 웨일스Wales, 스코틀랜드Scotland,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 등 네 지역이 모여 하나의 국왕을 인정하는 연합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 연합 형태는 ‘영국’이 안고 있는 난제다. 북아일랜드의 무력 저항, 스코틀랜드의 끊임없는 독립 시도로 인해 영국은 현재 EU와의 관계 못지않게 안정된 내정이라는 숙제를 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북아일랜드와는 평화 협정을 맺었고 스코틀랜드 역시 2014년 독립을 묻는 국민 투표에서 54%가 연합 국가 존속을 찬성했지만 브렉시트 결과에 따라 스코틀랜드의 독립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그레이트 브리튼 섬 북쪽에 있는 스코틀랜드는 면적이 약 8만km²로 남한보다 조금 작고 인구는 550만 명이다. 이 스코틀랜드에서 ‘수도가 런던이냐?’는 질문은 ‘금기어’다. 그들의 수도는 런던이 아닌 ‘에든버러’이며 자치 정부를 이루고 있고, 국가 원수는 엘리자베스 2세지만 행정 수반은 니콜라 스터전이다. 이들은 영어 외에 고유의 언어인 게일어, 스코트어를 쓰고 있고 앵글로 색슨족이 아닌 픽트족 후손인 스코틀랜드인이 90%를 차지한다. 잉글랜드와 북아일랜드가 ‘하느님, 여왕 폐하를 지켜 주소서’라는 국가를 부를 때 스코틀랜드인들은 ‘스코틀랜드의 꽃’이라는 국가를 부르고, 월드컵에는 잉글랜드와 별도의 국가 대표가 출전한다. 즉 외교와 국방 권한만 런던에 있을 뿐 스코틀랜드는 자치적, 자결권을 가진 엄연한 국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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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코틀랜드의 무엇을 알고 있을까. 스카치 위스키, 남성이 입는 치마 킬트, 고유의 문양 타탄 체크, 백파이프, 에든버러 축제 정도다. 스코틀랜드는 영국 안에서도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이 문화의 전통에는 스코틀랜드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우리는 잉글랜드와는 다르다’, ‘우리는 독립 국가다’라는 DNA가 흐르고 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분리와 결합 그리고 전쟁과 평화의 천 년 역사, 그 힌트를 얻을 영화가 있다. 바로 멜 깁슨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브레이브 하트’다. 영화는 스코틀랜드의 독립 전쟁을 이끈 윌리엄 월리스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픽션을 가미해 흥행에도 성공하고 아카데미에서도 5개 상을 수상했다. 물론 월리스 영웅화 작업에서 상대적으로 잉글랜드에 잔혹, 폭력, 허구를 강조하고 첨가해 한때 영국뿐 아니라 유럽 역사 학계에서 ‘반역사적인 허구 영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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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인 윌리엄 월리스는 13세기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을 이끈 인물이다. 그는 하급 귀족 출신으로 잉글랜드 군에게 아버지와 두 형을 잃었고 이후 독립 전쟁의 중심 인물로 활약하다 잉글랜드에 잡혀 잔혹한 죽음을 당했다. 당시 그의 사지는 모조리 찢겨 각지로 보내져 잉글랜드에 저항하는 세력들에게 처절한 응징의 본보기가 되었다. 이후 월리스가 죽고 583년이 지나 스코틀랜드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는데 수많은 사람이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한마디로 그는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의 상징이다. 약 400년을 유지하던 스코틀랜드 독립은 18세기 들어 무너졌다. 당시 잉글랜드는 엘리자베스 1세에게 후계가 없자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를 잉글랜드 후계자로 삼았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제임스 6세의 할머니가 엘리자베스 1세의 고모로 한 혈통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제임스 6세는 엘리자베스 1세를 이어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일종의 ‘겸직 왕’이다. 그는 잉글랜드에서는 제임스 1세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제임스 6세로 불리며 두 왕국을 통치했다. 이를 역사에서는 ‘동군同君 연합’이라 부른다. 즉 같은 왕을 모시는 국가의 연합인 것이다. 그 뒤 두 나라가 하나의 정치 및 통치 체제를 완성한 것이 잉글랜드의 앤 여왕 때로 1705년이다. 스코틀랜드와 그들이 사랑하는 도시 에든버러. 우리는 영화에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스코틀랜드인들의 역사와 독립을 향한 열망 그리고 그들의 자주적인 문화와 전통의 뿌리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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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형 그리고 아내의 죽음 13세기 스코틀랜드. 국민들은 힘들다. 귀족과 영주들은 국민들을 쥐어짠다. 노동으로, 세금으로. 아무리 일하고 공물을 내도 그들은 여전히 힘들다. 잉글랜드는 호시탐탐 스코틀랜드를 지배할 야욕을 감추지 않는다. 스코틀랜드 국민들은 수도 많고 무기도 월등한 잉글랜드군에 맞서 싸운다. 윌리엄 월리스(멜 깁슨)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그의 아버지와 형 역시 잉글랜드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었다. 월리스는 잉글랜드군에 무참히 죽은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과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 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번민한다. 결국 그는 결혼해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는 평범한 시민의 삶을 선택한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에드워드 롱생크)는 강한 군주였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완전한 정복을 원했다.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를 지배하기 위해 거친 스코틀랜드 국민의 혈통에 잉글랜드의 충성심을 흐르게 할 계획을 세운다. 일종의 인종 청소이자 인종 교배인 셈이다. 에드워드는 ‘초야권’을 발동한다. 이는 스코틀랜드 여인들은 결혼식 전 무조건 잉글랜드 군인이나 귀족들과 하룻밤을 먼저 보내야 하는 것이다. 에드워드는 이 법으로 잉글랜드 영주들의 스코틀랜드 원정에 미끼로 삼았다. 월리스와 결혼할 머론(캐서린 맥코맥) 역시 이 법을 피할 수 없었다. 월리스는 머리를 써 몰래 결혼식을 올렸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월리스는 사냥을 하고 농작물을 가꾸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 날, 잉글랜드 병사들이 월리스가 사는 마을로 들어왔다. 그리고 머론을 마을 한가운데 기둥에 묶었다. 마을 입구에 도착한 월리스는 군데군데 포진한 잉글랜드군을 보고 위험을 감지한다. 아내가 묶여 있는 곳으로 조용히 말을 모는 월리스. 잉글랜드군은 월리스를 보자 칼과 창을 부여잡는다. 순간 월리스는 말에서 내려 잉글랜드 병사를 쓰러뜨린다. 일제히 몰려드는 병사들. 월리스와 동료들은 칼과 몽둥이, 곡괭이로 그들과 맞선다. 머론의 목에 칼을 대고 있던 영주는 월리스가 거칠게 대항하자 일말의 주저도 없이 머론의 목을 칼로 베어 버린다. 이를 본 월리스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잉글랜드 병사들을 마구 쓰러뜨린다. 월리스의 행동을 본 마을 사람들도 일제히 잉글랜드 병사들에게 달려든다.

잉글랜드 영주는 거세게 몰아치는 월리스를 피해 목책 안으로 피신하지만 월리스는 잉글랜드 병사들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조금 전 머론이 묶여 있던 기둥으로 영주를 끌고 간다. 기둥에 영주를 세운 월리스. 영주가 비명을 지를 틈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영주의 목을 베어 버린다. 그가 머론에게 했던 것처럼. 아내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와 형의 죽음. 결국 월리스는 잉글랜드와 싸우기로 결심한다. 가족과 아내의 복수를 위해,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해, 그리고 인간의 자유를 위해서다. 월리스는 잉글랜드 영주들과 전투를 벌인다. 처음에는 수십 명이던 월리스의 부대는 점차 그 숫자가 늘어난다. 이제 스코틀랜드에서 월리스는 저항군의 중심이, 잉글랜드에게는 반란군의 수괴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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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정신적 수호자로 잉글랜드의 군주 에드워드 1세는 월리스를 잡기 위해 군대를 보낸다. 월리스가 있는 한 스코틀랜드를 점령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잉글랜드 귀족들은 “왕이 나이 들면서 판단력이 흐려진 것 같아. 그깟 도적떼들에게 겁을 먹다니!”하며 마치 산보하듯 천천히 진군한다. 1297년 9월, 월리스는 스털링성 인근에 군대를 배치했다. 그는 귀족 앤드루 모레이와 같이 스코틀랜드 병사를 지휘했다. 월리스의 군대는 기병 300명, 보병 약 1만 명. 잉글랜드군은 서리 남작 등 영주 수 명이 지휘하는 기병 3000명, 보병 3만 명, 웨일스에서 차출한 병사들이 합세한 대규모 연합군이었다.

월리스는 집결한 스코틀랜드 병사들을 바라본다. 겁에 질린 눈동자, 어떻게 칼을 쓰는지도 모르는 소년 병사, 허연 수염이 난 노년의 농부 등. 월리스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 순간, 이곳에서 달아나면 당분간은 살 수 있겠지만, 세월이 흘러 당신이 침대에서 죽게 되었을 때 당신들은 그때부터 오늘까지의 모든 시간과 오늘 하루의 시간을 맞바꾸고 싶어질 거요. 이 단 한 번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 여기로 돌아오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적에게 이렇게 말하기 위해서 말이오. ‘너희들이 우리의 목숨을 빼앗아 갈 순 있다. 하지만 절대로 우리의 자유는 빼앗지 못할 것이다’라고. 스코틀랜드 만세!”

월리스는 평원에 진을 치고 잉글랜드군을 조롱했다. 스코틀랜드 병사들은 킬트를 입고 일제히 엉덩이를 내보이며 잉글랜드군의 심기를 건드렸다. 진격해 오는 잉글랜드군. 월리스는 창병을 써서 잉글랜드군의 기병대를 막고 이어 매복해 있던 기병대를 보내 잉글랜드군의 배후를 공격했다. 그리고 월리스를 선두로 스코틀랜드 병사들은 야차처럼 잉글랜드를 베었다. 대승리였다. 스코틀랜드군은 약 400명의 병사를 잃었지만 잉글랜드는 무려 1만 명이 이 전투에서 사망했다.

월리스는 스코틀랜드 저항군의 지도자로 부상한다. 그는 귀족 로버트 브루스(앵거스 맥페이든)와 손을 잡는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스코틀랜드군은 물론 국민들을 이끈다. 이들은 잉글랜드의 요크성까지 쳐들어가 영주 에드워드 1세의 조카마저 죽인다. 이제 월리스는 단순한 저항군 지도자가 아닌 잉글랜드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거물이 된 것이다. 두 사람의 입지가 단단해지고 월리스는 오직 자신의 영지와 돈만 아는 스코틀랜드 귀족들에서 보지 못한 고결함, 충성심, 진심을 브루스에게서 발견한다. 월리스는 브루스에게 스코틀랜드와 국민을 이끌어 달라고 부탁하지만 브루스는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

에드워드 1세는 무력으로 월리스를 진압하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는 협상술을 벌이면서 군대를 정비할 시간을 벌기 위해 세자빈 이사벨라(소피 마르소)를 협상 대표로 스코틀랜드에 보낸다. 프랑스 왕족인 이사벨라는 에드워드 1세의 속마음을 알고 있지만 조금씩 마음이 월리스에게 기우는 것을 감추지 못한다. 이사벨라의 남편인 왕자는 나약한 데다 동성애자였다. 그 와중에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 귀족들에게 뇌물을 안긴다. 잉글랜드에 협력하면 부와 계급을 인정하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하면서.

군대를 다시 조직한 에드워드 1세는 원정군을 보낸다. 월리스가 지휘하는 스코틀랜드군과 잉글랜드군은 폴커크에서 마주했다. 월리스가 선두에 서서 병사들을 지휘했지만 스코틀랜드군은 밀리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 귀족들은 말머리를 돌려 놓고 전투에 소극적이었다. 월리스는 함정에 빠졌다. 그는 자신을 유인한 한 귀족을 때려눕히고 죽음의 함정에서 빠져 나왔다. 귀족의 얼굴을 가린 투구를 벗겨 내는 월리스. 월리스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그만 쓰러진다. 그 귀족은 그토록 월리스가 믿었던, 그래서 스코틀랜드의 미래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던 로버트 브루스였다. 그렇게 스코틀랜드의 희망은 조금씩 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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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동정 대신 ‘고통스런 죽음의 자유’ 스코틀랜드는 분열되고 병사들은 점차 오합지졸이 되었다. 월리스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잡고 병사들을 모아 잉글랜드군을 그리고 조국과 국민을 배신한 귀족들을 처단하기 시작했다. 이에 로버트 브루스 역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월리스에게 다시 손을 잡고 잉글랜드군을 몰아내자고 제안한다. 월리스는 로버트 브루스를 믿고 그를 만나기로 한다. 동료들은 “월리스, 로버트를 믿으면 안 돼. 그러면 너는 네 죽은 마누라 그림자를 쫓아다니는 것뿐이야”라고 하지만 그는 로버트와의 약속 장소에 나간다. 월리스와 로버트는 서로의 손을 다시 꽉 부여잡는다. 하지만 월리스는 또 다시 함정에 빠졌다. 이번에는 로버트의 아버지가 그를 배신한 것이다. 잉글랜드 군에 잡힌 월리스. 로버트는 아버지에게 짐승처럼 소리치며 안 된다고 말하지만 월리스는 그 소리를 듣고 눈을 감는다. 월리스는 런던으로 끌려왔다. 런던 시민은 그를 조롱했고 귀족들은 거만하게 그를 쳐다보았고, 에드워드 1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법정에 선 월리스. “너의 반역을 인정하는가?” “나는 스코틀랜드인이다. 한 번도 잉글랜드 왕을 인정하고 섬기지 않았는데 무슨 반역이냐?” 재판은 형식적이었다. 에드워드 1세는 월리스를 살려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재판관은 월리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 즉 ‘교수척장분지형’을 내린다. 이는 죽음을 늦추며 참기 어려운 고통을 주면서 결국에는 목을 자르고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 월리스에게 마음을 준 이사벨라는 감옥으로 월리스를 찾아와 간청한다. “월리스, 차라리 고통 없이 자결하세요. 아니면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이 마취약을 먹어요.” 월리스는 당당하고 정의로운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말하지만 결국 마취약을 마신다. 그리고 이사벨라가 떠나자 마취약을 뱉어 버린다.

광장. 월리스는 끌려와 죽음을 기다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월리스를 쳐다본다. 모두는 곧 있을 죽음의 향연을 기대한다. 로버트 브루스 역시 월리스를 쳐다본다. 월리스의 동료들도 그와 눈을 마주친다. 월리스에게 고통이 밀려온다. 배가 갈라지고 내장이 몸 밖으로 나온다. 재판관은 월리스에게 말한다. “자비Mercy를 구하라! 그럼 죽음을 당겨주겠다. 어서!” 월리스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천천히 사람들을 쳐다본다. 그리고 단말마의 비명 같은 마지막 말을 목에서 토해 낸다. “자유FREEDOM!” 이 소리는 메아리처럼 광장에 울려 퍼진다. 그 순간,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에드워드 1세에게 이사벨라가 귀에 대고 속삭인다. “지금, 내 배 속에는 월리스의 아이가 자라고 있어요. 장차 그 아이가 잉글랜드의 왕이 될 겁니다. 당신의 핏줄은 지질한 당신의 아들과 함께 이제 끊기게 됩니다. 당신 아들도 왕의 자리에 그리 오래 있지 못할 겁니다.” 에드워드 1세는 눈을 부릅뜨고 죽음을 맞이한다.

로버트 브루스는 스코틀랜드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군과 마주한다. 이 자리는 로버트 브루스가 스코틀랜드 왕위 계승을 두고 잉글랜드에 허락을 구하는 자리다. 로버트 브루스는 스코틀랜드군을 쳐다본다. 그들의 얼굴은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자유다. 이름 모를 병사도, 오랜 세월 월리스와 전장을 누빈 역전의 용사들도. 로버트 브루스는 외친다. “여러분은 그동안 월리스와 같이 피를 흘렸소. 내가 많이 부족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 나와 함께 피를 흘리자고!” 그 순간, 월리스가 항상 사용하던 큰 칼, 클레이모어가 하늘을 날아 대지에 꽂힌다. 스코틀랜드 병사들은 함성을 울리며 일제히 앞으로 뛰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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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축제, ‘인간 정신의 기본’ 영화는 흥미롭지만 역사적 고증에는 허점이 많은 작품이다. 윌리엄 월리스의 태생은 영화에서처럼 평민이 아닌 귀족이었고 그가 상대했던 잉글랜드 에드워드 1세는 잉글랜드 시각으로는 영민하고 능력 있는 왕이었다. 그는 로버트 브루스를 정벌하기 위해 직접 스코틀랜드 원정 길에 오르다 병으로 죽었다. 그는 “내 시체를 태우고 스코틀랜드를 정복한 후에 그 평원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강한 군주였다. 그리고 잉글랜드의 세자빈이 된 프랑스 왕녀 이사벨라와 월리스의 ‘썸씽’이야말로 완벽한 허구다. 당시 이사벨라의 나이는 10세로 월리스가 죽은 후에 그녀는 잉글랜드 왕실과 결혼한다. 단지 영화에서 이사벨라가 에드워드 1세가 죽기 전 속삭인 말들은 후에 사실이 된다. 이사벨라는 남편 에드워드 2세 대신 귀족과 불륜 관계를 유지했고 이후 에드워드 2세를 몰아내기도 해 결국 영화 캐릭터처럼 에드워드 1세를 배반했기 때문이다. 다큐가 아닌 이상 상업 영화에 약간의 MSG가 가미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잉글랜드 사람들 입장에서 이 영화는 보기 거북한 장면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논쟁점은 과연 잉글랜드의 스코틀랜드 정복이 영화에서처럼 ‘인종 청소’와 ‘인종 교배’때문이었나. 하는 점이다. 당시 각 국가, 영주들 간의 싸움은 일상이었다. 영토 분쟁, 왕위 계승권 그리고 국가와 왕실의 합종연횡에 입각해 잉글랜드의 스코틀랜드 침략 전쟁을 보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물론 이 역시 설득력을 갖지만 전쟁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많이 보고 후유증을 앓아야 하는 것은 힘없는 백성들임은 틀림없다. 그 어떠한 명분도 인간의 존엄, 생명권, 자유 앞에서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 이곳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키워드는 단연 ‘EIF’라 부르는 국제적인 명성의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이다. 매년 8월에 3주 동안 열리는 이 축제는 연극, 음악, 뮤지컬, 춤, 군악대, 책 등 문화와 예술의 대향연이다. 이 축제가 시작되면 전 세계에서 문화 예술인과 관람객이 에든버러에 몰려든다. 이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공연을 보고 들으며 문화와 예술의 순기능, 즉 ‘인간 정신의 기본’을 확인한다. 에든버러 축제의 시작은 1947년이다. 당시 스코틀랜드뿐 아니라 유럽은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인간 정신은 점점 황폐화되었고, 문화와 예술은 그 힘을 상실하고 사람들은 절망에 허덕였다. 그때 몇몇 예술가가 모여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고 그들은 예술, 그중에서도 음악을 선택했다. 오스트리아 출신 루돌프 빙은 스코틀랜드 영국문화원장 헨리 하비 우드와 손잡고 음악 축제를 기획했다. 1947년 8월, 제1회 에든버러 축제가 개최되었다. 당시 축제의 중심은 브루노 발터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오케스트라 공연. 어셔 홀에는 감동과 환희가 넘쳐흘렀다. 에든버러 축제의 성공적 데뷔였다. 다음 해인 1948년 2회 축제는 클래식 공연에 연극 등 다양한 공연이 추가되면서 스코틀랜드뿐 아니라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후 1950년대부터는 스코틀랜드 군악대 등이 참가하는 ‘군악대 연주Royal Edinburgh Military Tattoo’도 큰 인기를 얻었다. 에든버러 축제가 이처럼 국제적인 명성을 이어오는 것은 다양한 분야의 균형감, 수준 높은 공연의 질 유지이다. 에든버러 축제를 이끄는 예술 감독은 객관적인 심사를 통해 축제 참가자와 팀을 선정하고 이를 통해 에든버러 도시 전체를 문화와 예술의 거대한 공연장으로 연출하기 때문에 매년 수백만 명의 관람객이 이곳을 찾는 것이다.

또 하나 에든버러 축제에서 주목할 포인트는 ‘에든버러 프린지’다. 이는 에든버러 축제에 초청 받지 못한 소극단들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공연을 시작한 데서 유래한다. 에든버러 축제 사무국은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참가 단체나 개인을 선정하는 에든버러 축제와 달리 누구나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에 참가해 각자의 재능과 끼를 선보이게 한 것이다. 이 프린지 축제는 코미디, 소극단 연극, 마임 등이 주축을 이루며 에든버러 축제의 한 축으로 성장했다. 문화와 예술에서 엄격한 수준 유지 못지않게 다양성을 인정하는 개방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문화와 예술 그리고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일 것이다. 생각하고, 만들고, 표현하고, 선택하는 그 모든 것에서의 자유 의지는 인간을 절대 방종의 길로 가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성숙하고 창의적이며 하나의 인격체로서 완성의 길로 가게 한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월리스가 죽음과 함께 외친 ‘자유’라는 단어가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자유민’이기 때문이다.

[글 정유진(프리랜서) 사진 픽사베이, 위키피디아, Daum영화,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74호 (19.04.1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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