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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사 전환 후 변화 바람 우리금융그룹-은행이 직접 벤처투자…IB·PB 전문가 키워

  • 박수호 기자
  • 입력 : 2019.04.08 09:24:26
전구를 갈아 끼운다. 제품 설명서대로 ‘메를로라이팅’ 앱을 스마트폰에 깐다. 구글, 아마존, KT 기가지니 등 인공지능(AI) 스피커와 연결이 가능하단다. 쉽게 말해 말로 조명을 켜고 끌 수 있고, 또 밝기도 조절 가능하다는 것. ‘조명에 네트워크 기술을 넣은 제품을 세상에 알리자’는 슬로건으로 창업한 스타트업 메를로랩의 스마트 조명 ‘소요리’ 얘기다.

회사 관계자는 “글로벌 조명업체인 오스람, 필립스도 개발하지 못한 기술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자랑했다. 올해 스페인 MWC에도 나가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매출액은 48억원, 올해 목표 매출액은 130억원을 내다본다. 내년 코스닥 상장 계획도 있다.

이처럼 급성장하는 스타트업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우리은행이다. 지난해 우리은행 혁신성장금융팀에서 직접투자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올해 1월 창립 120주년 행사 때도 메를로랩의 스탠드를 고객 선물로 나눠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메를로랩처럼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에만 180억원을 직접투자했다. 올해도 빅데이터, 결제·보안 솔루션, 의료기기 등 다양한 산업에 약 200억원을 투자하는 것은 물론 3년간 총 3000억원의 ‘혁신성장펀드’를 모(母)펀드로 직접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을 확대 재편,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후 변화하고 있는 우리금융그룹의 단면이다. 흔히 국내 은행 하면 ‘보수적이다’ ‘신사업에 약하다’ ‘예대마진으로 손쉬운 장사만 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우리금융그룹은 유망 벤처기업 투자처럼 좀더 ‘질 좋은 실적’을 올리는 데 초점을 맞추기 위해 체질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지주사 전환 후 우리금융그룹의 변화, 그리고 과제를 짚어봤다.

지주사 전환 후 첫 주주총회를 주재한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사진 가운데).

지주사 전환 후 첫 주주총회를 주재한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사진 가운데).

▶지주사 전환 후 호재 만발

▷비이자이익 은행권 최고 기록

지난 3월 말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주주총회에서 지주사 전환 후 처음으로 주주와 공식 대면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고객 중심 맞춤형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자산관리, CIB, 혁신성장부문을 집중 육성해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소개했다. ‘간판만 바꿔 단 꼴’ 등 우리금융지주 관련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손 회장은 “종전 이자이익(예금과 대출금리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 중심의 순익 기반 자체를 달리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해 말부터 성과 위주 조직으로 과감하게 바꿔나가고 있다.

손 회장 취임 후 기존 영업지원부문 소속 디지털금융그룹을 국내 마케팅을 총괄하는 국내 부문에 전진 배치해 IT 기반 금융회사로 빠르게 전환하도록 힘을 실었다. ‘최고디지털책임자(CDO)’도 외부 전문가를 영입했다. 더불어 IB그룹에 혁신성장금융팀을 신설해 벤처 직접투자에 나섰는가 하면 해외 스타트업 투자·여신심사를 위한 별도 조직인 아시아심사센터를 싱가포르에 설치하기도 했다.

잠재 고객인 20대 고객을 잡기 위해 유스(Youth) 브랜드 ‘스무살우리’를 출시한 것도 눈길을 끈다. 스무살우리는 20대 청년들의 자산 형성을 돕는 ‘3.8% 고금리 스무살 우리적금’ 등 맞춤형 금융상품 외 금융교육, 문화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런 다양한 시도를 하는 이유는 결국 비이자이익을 늘리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비이자이익이란 은행수익 중 이자이익을 제외한 이익을 뜻한다. 은행이 다양한 신수익원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기도 하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비이자이익만 9723억원을 올려 주요 은행 중 비이자이익이 가장 많았다.

박진형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자산관리부문을 강화하고 다양한 금융상품 판매를 통해 수수료 수익이 늘어났다. 기업금융을 좀 더 강화해 IB부문에서도 의미 있는 비이자이익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손태승 회장은 여세를 몰아 2~3년간 근무하면 다른 부서로 옮기는 ‘순환 배치’ 제도도 손보겠다고 예고했다. 자산운용(WM), 기업금융, IB(투자금융)부서 실무자는 전문성이 중요한 만큼 장기 근무를 허용하겠다는 취지다. 손 회장은 “익숙해질 만하면 담당 PB가 바뀌어 불만이라는 고객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기업금융부문도 기업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가 계속 관련 업무를 하면 관계형 금융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문가를 양성하되 주특기나 부서를 옮기고 싶은 직원이 있으면 본인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주가에 부담을 줬던 사안이 하나둘 해소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3월 말 우리금융지주 지분 1834만6782주(지분율 2.7%)를 블록세일 방식으로 해외 기관투자자에게 전량 매각했다고 밝혔다. 증권가에서는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은행이 보유한 지주사 지분을 털어야 하는데 대량 물량이 나올 경우 과연 시장에서 소화가 잘될 것인지를 두고 우려가 있었다.

우리금융지주 관계자는 “해외 투자자가 사갔다는 것은 그만큼 국외에서 우리금융지주를 바라보는 인식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20위권 해외 네트워크(441개), 해외 순익 2000억원 돌파 등 해외 실적이 받쳐준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완전 민영화가 변수

▷경기 둔화 여파로 주가 주춤하면 차질

지주사 전환 후 우리금융그룹은 체질 개선, 각종 호재 등으로 사내 분위기가 좋은 편이다.

문제는 주가다. 지주사 출범 후 우리금융지주 주가는 1만5000원대에서 시작했지만 한 달 만에 1만3000원대로 밀렸다.

껍데기는 지주사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비은행 계열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신한금융그룹이나 KB금융그룹처럼 증권, 보험사 등이 1000억원 이상 당기순이익으로 그룹에 힘을 보태는 그림을 우리금융그룹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외부 투자자 입장에서 향후 성장이나 순이익 급증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못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우리금융그룹이 대규모 자금 조달을 해서 대형 M&A를 할 처지도 못 된다. 지주 출범 첫해인 올해는 자기자본비율 산출 방식에서 표준등급법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 시절에는 내부등급법을 적용했다. 표준 등급법과 내부등급법의 가장 큰 차이는 자기자본비율. 같은 규모라 해도 우리은행 시절에는 내부등급법을 적용받아 자기자본비율이 15.9%로 안정적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주사가 되면서 은행 대신 지주사 기준(표준등급법)으로 자기자본비율을 산정하다 보니 10%대 초반 정도로 인정받는다.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지면 그만큼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올 때 조달금리 조건이 안 좋아진다. 비은행 계열사를 늘리려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연쇄적으로 M&A를 해야 하는데 당장은 손발이 묶여 있는 꼴이다. 최근 우리금융지주가 지난해 우리은행 실적 개선에도 불구, 배당률을 낮춘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는 후문

이다.

우리금융지주 관계자는 “올해는 중소형 매물 위주로 계열사를 늘려나갈 수밖에 없다. 올해 안정적인 순익을 올려 내년 중 자본 확충 여력이 늘어나는 시점에 대형 M&A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금융지주의 숙원인 ‘완전 민영화’도 숙제 중 하나다. 한국금융지주, 중국안방보험 등 민영 회사가 주요 주주로 등장하면서 ‘부분 민영화’에 성공했다고 평가받지만 3월 기준 예금보호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우리금융의 잔여 지분은 18.4%다. 여전히 자율경영을 하기 힘들다는 시각이 많다.

정부는 “조속한 시일 내에 우리금융의 ‘완전한’ 민영화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하지만 그러려면 주가가 올라줘야 한다. 그런데 현재 경기 등 대외 여건상 금융주가 급상승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변수다.

박진형 애널리스트는 “우리금융지주 펀더멘털(기초여건)은 나무랄 데가 없고 향후 호재도 적지 않지만 금융권 전반에 순이익 증가율 둔화 조짐이 있는 만큼 경영진이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2호 (2019.04.03~2019.04.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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