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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영칼럼] 제3 금융중심지가 웬말?

  • 홍기영 기자
  • 입력 : 2019.04.08 10:36:26
  • 최종수정 : 2019.04.09 09:53:38
서울 여의도와 부산 문현지구가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지 10년이 지났다. ‘동북아 금융허브’를 육성하려는 금융중심지 정책은 2003년 노무현정부 국정과제였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도리어 금융중심지 경쟁력에서 서울·부산은 뒷걸음질만 친다. 영국계 컨설팅 업체 지옌그룹이 발표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에 따르면 서울은 36위, 부산은 46위에 각각 그쳤다. 아시아에서 홍콩·싱가포르·도쿄는 물론 중국 상하이·칭다오, 대만 타이베이에도 뒤진다.

금융허브는 인적·물적·기술적 인프라가 집결돼 금융소비자에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거점이다. 금융공기업 강제 이전만으로 금융허브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자생력을 갖춘 금융시장, 경쟁력 있는 금융산업 생태계가 조성돼야 가능하다. 당초 해양·파생금융 중심을 표방했던 부산은 ‘금융공기업 집적지’가 되고 말았다. 정부는 지역균형발전 명분으로 금융공기업을 대거 부산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부산은 민간 금융회사를 유치 못 하고 내실 성장을 일궈내지 못했다.

금융공기업이 빠져나간 서울은 ‘외국 금융회사의 무덤’이 되고 말았다. 외국 금융회사의 엑소더스가 줄을 잇는다. 금융산업 수익성 악화와 경쟁 심화, 국내 규제체계가 글로벌 스탠더드와 맞지 않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서다. 외국은행 국내 지점은 5년 새 11개가 줄었다. UBS 은행 부문, 바클레이즈, 골드만삭스 은행 부문, 로얄뱅크오브스코틀랜드 등 글로벌 금융회사가 서울지점을 잇따라 폐쇄했다. 최근 4년간 외국계 금융투자 업체 8곳도 국내 법인을 철수하거나 사업을 축소했다. 지난 2015년 골드만삭스투자자문이 철수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 프랭클린템플턴투자신탁운용·뉴엣지파이낸셜증권·BOS증권·바클레이즈증권·에셋원자산운용·제이피모간자산운용·피델리티자산운용 등 쟁쟁한 금융투자회사들이 한국 비즈니스를 접었다. 외국계 보험사도 한국을 등진다. 알리안츠생명(현 ABL생명)과 PCA생명(현 미래에셋생명)이 매각됐다. 메트라이프생명은 매각설이 나온다. 중국 안방보험에 넘어갔던 동양생명도 재매각 가능성이 점쳐진다.

제3 금융중심지 지정 문제가 논란을 일으킨다. 630조원의 자산을 굴리는 국민연금공단 본사가 있는 전주를 금융중심지로 추가 지정하는 방안이 ‘뜨거운 감자’다. 사실 대통령 공약이라는 것 외에 뚜렷한 명분이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표심을 얻으려는 정치적 포퓰리즘이 춤을 춘다. 정치권 갈등과 지역 간 대립이 치열하다. 연기금과 산업은행·수출입은행·기업은행 지방 이전설이 난무한다. 서울·부산 등 기존 금융중심지가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 제3 금융중심지 조성은 행정력과 예산 낭비만 초래한다. 가뜩이나 ‘금융 홀대론’에 발목 잡혀 발전이 더딘 금융산업에 후진 기어를 넣는 셈이다. 지역 이기주의에 함몰된 비효율적인 나눠먹기식 행정으로는 부작용만 키울 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존 금융중심지도 전략 변화가 요구된다. 금융산업 체질을 바꾸고 역량을 강화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서울과 부산은 신기술·지식 기반 ‘핀테크 듀얼 허브’로 변신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핀테크 기업이 은행·금융투자·자산운용·보험 등 모든 금융 영역에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핵심 지대가 돼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활용해 ‘레그테크(RegTech·규제+기술)’를 선도하는 혁신금융의 요람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금융은 경제의 혈맥이다.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중국에 밀리는 상황에서 금융중심지 정책은 미래 먹거리가 달린 중차대한 이슈다. 정부와 정치권은 장기적 국가 발전에 필요한 금융중심지를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키우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주간국장·경제학 박사 kyh@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3호 (2019.04.10~2019.04.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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