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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NOW] 새 日王 연호 ‘레이와’에 열광하는 일본-아베의, 아베를 위한 일본의 시대정신

  • 정욱 기자
  • 입력 : 2019.04.08 13:38:51
“뭐, 레이와? 메이와?”

오는 5월 1일 일왕에 즉위하는 나루히토 왕세자가 사용할 연호가 발표된 4월 1일 오전 11시 41분. 도쿄 시부야나 심바시 등 도심지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통해 실시간 중계를 보던 일본 국민들은 수초간 반응을 내놓지 못했다. 지금까지 일왕 연호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던 글자인 ‘령(令)’이 포함된 때문이었다. 한자의 경우 다양한 음독, 훈독이 가능한 탓에 당장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발음만이 아니다.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36대 일왕(645년 즉위)부터 아키히토 일왕의 ‘헤이세이(平成)’까지 총 247개의 연호는 모두 중국 고전에서 따왔다. ‘레이와(令和)’는 처음으로 일본 7~8세기 고전인 ‘만요슈’에서 따왔다.

이 시기 중국서 수입된 매화가 유명했던 후쿠오카의 한 신사에서 ‘매화의 밤’ 행사가 열렸다. 참석한 32명이 매화를 주제로 시를 읊었고 이를 수록한 부분에 연회를 설명한 적은 서문이 붙어 있다. 서문에 등장하는 ‘초봄 좋은 달이 뜬 밤에, 상쾌한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니(于時初春令月 氣淑風和)’라는 구절에서 두 글자를 따온 것이 레이와다. 헤이세이가 사기에 등장하는 ‘내평외성(內平外成)’ 등 묵직한 얘기들을 참조했던 것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본 사회는 벌써부터 ‘레이와 시대’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썩인다. 중국이 아닌 일본 고전을 인용했다는 것이나 발음이 현대적이라는 점 등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또 기존 연호와 달리 담긴 뜻이 ‘부드럽다’는 것도 일본인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목이다.

▶日 새 연호 발표…일본 고전서 첫 인용

‘새 시대 열자’는 아베 총리 의중 반영

연호가 뭐 얼마나 대단한 영향이 있을까 싶지만 일본에서는 각종 공문서는 물론 면허증 등 신분증, 동전 주조연도에도 사용된다. 학교 입학·졸업, 입사 등도 모두 연호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일 정도로 일본인들에게 있어 연호란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상징하는 단어다. ‘레이와 피버(열기)’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의 반응이 나오는 것도 연호의 사회적 파급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새 연호 결정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정부가 최총 후보로 마련한 안은 6개였다. 일본 고전에서 인용한 레이와, 에이고우(英弘), 고우시(広廣至)와 중국 고전에서 따온 규카(久化), 반나(万和), 반포우(万保)였다. 아베 총리는 사전 전문가 회의 때부터 일본 고유의 출전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또 이후 열린 회의 등에서도 레이와로 분위기를 유도했다는 것이 일본 언론들이 전하는 뒷얘기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아베 총리가 레이와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준 것은 기존과 다른 새로움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연호 발표 직후 가진 회견에서 “봄이 오는 것을 알리는 매화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희망을 기반으로 모두가 꽃을 크게 피울 수 있는 일본이 되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평화나 국가 안녕 등을 기원하던 연호의 목표가 개개인의 삶에 맞춰졌다.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일본 고전을 택한 것은 우리에게도 유구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이 있음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레이와라는 발음이 주는 울림이 좋았다”고도 덧붙였다. 기존 연호에서 의미를 최대한 강조하던 것과도 선을 그었다.

아베 총리가 왜 새로움을 원했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헤이세이 시대는 일본 경제가 정점을 기록했던 1989년 시작했다. 이후 시작된 거품경제의 붕괴는 헤이세이 30여년을 짓눌렀다. 여기에 전쟁을 일으켰던 쇼와 시대에 대한 반성이 헤이세이 외교를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아베 총리는 디플레이션 탈피와 전후 외교의 총결산을 자신의 목표로 내걸어왔다. 헤이세이 시대 일본을 관통해온 분위기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의지가 레이와라는 새 연호에 담겼다는 얘기다. 레이와 시대의 새로운 일본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지 자문해볼 때다.■

[도쿄 = 정욱 특파원 woo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3호 (2019.04.10~2019.04.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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