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공유경제로 포장된 ‘플랫폼 자본주의’

정유진 기자

불로소득 자본주의

가이 스탠딩 지음·김병순 옮김

여문책 | 464쪽 | 3만원

[책과 삶]공유경제로 포장된 ‘플랫폼 자본주의’

어쩌면 세계는 이미 변곡점을 지나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고용안정성과 기업 복지의 확대를 바탕으로 한 20세기 소득분배 체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됐다.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국가 경쟁력이란 어느 나라가 기업의 법인세를 더 많이 낮추고, 임금은 더 많이 깎을 수 있는지의 문제가 돼 버렸다.

특히 기술혁명으로 인한 ‘맞춤형 경제’는 자본주의의 슬로건을 뒤바꿨다. 예전에는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한 기업에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했다면, 이제는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 노동·일자리에 놓인 비정규직과 실업자 등을 가리키는 신조어)가 노동력은 물론 생산수단까지 직접 갖춰야 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를 야기한 가장 큰 요인은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시켜주고 대신 중개 수수료로 수익을 올리는 디지털 플랫폼의 등장이다.

소비자로서의 우리는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하고 우버 택시를 잡는 행위에 어느덧 익숙해져 버렸다. 하지만 노동자로서의 우리는 이러한 기술혁명으로 인해 잉태된, 피고용자도 아니고 자영업자도 아닌, 그렇다고 독립된 프리랜서라고도 할 수 없는 아메바 같은 형태의 저임금 일자리에 점점 더 빠르게 잠식돼 가고 있다.

<불로소득 자본주의>의 저자인 가이 스탠딩은 “자본주의의 핵심 추세가 이렇게 빨리 바뀐 것은 자본주의 역사상 처음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는 새로운 ‘공유경제’라고 포장되지만, 사실 불로소득을 갈취하는 ‘플랫폼 자본주의’라 불러야 마땅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불로소득’은 금융투자나 부동산으로 얻는 소득뿐 아니라 특허권·저작권 같은 ‘지식재산권’을 과도하게 독점함으로써 얻는 소득, 정부 보조금이나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정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남기는 기업 이익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는 과거 기업들과 달리 생산수단을 소유하지도 않은 채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중개 수수료를 떼가는 디지털 플랫폼 업체들 역시 ‘불로소득자’라고 지목한다.

<불로소득 자본주의>를 쓴 가이 스탠딩은 ‘공유경제’라 불리는 에어비앤비나 우버 같은 디지털 플랫폼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도 않은 채 적정 수준 이상의 소개료를 가로채며 불로소득을 올리는 ‘플랫폼 자본주의’라 비판한다.

<불로소득 자본주의>를 쓴 가이 스탠딩은 ‘공유경제’라 불리는 에어비앤비나 우버 같은 디지털 플랫폼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도 않은 채 적정 수준 이상의 소개료를 가로채며 불로소득을 올리는 ‘플랫폼 자본주의’라 비판한다.

우버는 택시요금의 20~30%를 수수료로 받아가고, 예약 수수료도 추가로 챙긴다. 에어비앤비는 예약이 성사될 때마다 9~15%의 순이익을 올린다. 이런 거래 수수료로 챙기는 수입은 플랫폼 운영비보다 훨씬 더 크다. 반면 플랫폼 작업자들은 과거 임금노동에 포함됐던 많은 일들을 이제는 돈을 받지 않고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예를 들어 우버 기사는 자기 차량을 관리하고 연료를 주입하는 데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이는 우버가 아닌 운전사만의 몫이다.

우버나 심부름 대행을 중개하는 태스크래빗 같은 플랫폼 업자들은 이들을 자기네가 고용한 직원으로 보지 않고 독립계약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일정 기간에 주어진 양의 작업을 소화하지 못하거나 30분 안에 고객 요청에 응대하지 못할 경우 플랫폼에서 ‘활동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저자는 “늘 대기상태에 앉아 있어야 하는 이들을 독립계약자라고 말하는 것은 얼토당토않다”면서 “이는 저비용(저임금)으로 자기 착취를 유도하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우버는 자신들의 책임을 덜기 위해 운전사들이 본업은 따로 있으면서 추가 수입을 올리기 위해 부업을 하고 있는 것이란 인상을 주려 애쓴다. 하지만 2015년 미국에서 실시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자유계약자로 일했던 사람의 75%는 그 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었다. 저자는 “전 세계 수백만명에 이르는 플랫폼 작업자들은 이런 임시직이라도 구하기 위해 숨가쁘게 경쟁하면서 엘리트와 샐러리아트(안정적인 정규직) 계급을 위한 ‘맞춤형 하인’ 노동을 하고 있다”면서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를 연결시키는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노동중개인(디지털 플랫폼 업체)이 하는 일이라면, 그들은 정말 하는 일은 별로 없으면서 많은 돈을 버는 불로소득자인 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맞춤형 경제가 이미 우리 생활의 일부가 돼 버렸기 때문에 이전의 고용관계로 되돌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1980~1990년대 노동조합이 노동유연성 정책을 거부하다 더 불리한 조건으로 합의하고 말았던 것처럼, 지금의 변화를 직시하지 않고 20세기식 임금협상에만 초점을 맞추는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는 21세기 새로운 분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그중 하나로 기본소득을 제시한다. 이는 다양한 형태의 불로소득을 올리며 부를 독점하는 소수와 기존의 일자리 범주에 속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다수 사이에서 균형추를 되찾기 위한 수단 중 하나다. 저자는 “기본소득은 소득불안정성을 줄이고 인간의 활동을 ‘노동’이 아닌 ‘일’의 형태로 향하게 해 줄 수 있다”면서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변화와 함께 결합하면 효과가 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과 함께 <노동의 미래와 기본소득>(갈마바람)을 읽어도 좋겠다. 저자인 앤디 스턴은 2010년까지 미국 최대 서비스노동조합을 이끌다 “나는 더 이상 노동의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상실했다”고 선언한 뒤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기술 발전으로 급변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노동조합을 강하게 만드는 일에 매달린다고 해서 25년 후 노동자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 그는 노조 지도자, CEO, 미래학자, 경제학자 등을 두루 만난다. 그 결과, 그 역시 가이 스탠딩처럼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대안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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