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휘청’한 것 같아 힘이 든 당신에게

정지혜 사적인서점 대표·북디렉터

기쁨의 노래

미야시타 나츠 지음·최미혜 옮김

이덴슬리벨 | 256쪽 | 1만4800원

[책 처방해 드립니다]나만 ‘휘청’한 것 같아 힘이 든 당신에게

매주 토요일, 모 방송사의 라디오에서 사적인서점이 반짝 문을 엽니다. 청취자의 사연을 듣고 디제이는 그에 맞는 맞춤 노래를, 저는 책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를 맡았거든요.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사연에 적힌 한 글자 한 글자를 꼼꼼히 읽고 그것을 힌트 삼아 책을 고릅니다.

회사에서 전혀 관련 없는 분야로 급작스러운 인사이동을 하게 된 청취자의 사연이 도착했습니다. 수년간 쌓인 커리어는 단절되었고, 나이가 있어서 이직도 쉽지 않은데, 새로운 업무는 어렵기만 한 상황. 어떤 책으로 용기를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미야시타 나츠의 <기쁨의 노래>를 골랐습니다.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메이센여고에 입학한 여섯 소녀들이 음악을 통해 부딪치고 어울리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지요. 그중에서도 사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사키는 중학교 시절 소프트볼 에이스 선수였습니다. 중3 여름, 마지막 시합에서 무리하다 큰 부상을 입고 선수 생활을 그만두었지요. 소프트볼로 유명한 고등학교에 추천 입학이 예정되어 있던 걸 취소하고 아무 연고도 없는 신설 메이센여고에 입학한 뒤로는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미래를 잃은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합창대회를 기점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닫혀 있던 마음의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기쁨의 노래>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사키가 친구들에게 부상으로 꿈을 접어야 했던 과거를 고백하는 대목입니다. 사키의 얘기를 들은 고리에가 자신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휘청하고 균형을 잃었다고, 자신의 인생은 거기에서 휘어진 그대로라고요. 그 말을 들은 사키는 생각합니다. 한 교실에서 만나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어울려왔지만 다들 ‘휘청’하는 순간이 있었을 거라고, 우리는 여기저기에서 부러지거나 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고요. 열여섯 살에 미래를 잃었다고 생각한 사키,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던 음대부속고교에 떨어진 뒤 좌절감을 느끼며 일반 학교로 진학한 레이, 집안 사정으로 피아노를 배우지 못한 치나츠…. 다른 사람들은 잘만 달리고 있는데 나만 길을 잃고 멈춰 선 것 같아 힘이 든 당신에게 이 책은 말합니다. 이 세상에 혼란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저마다의 혼란과 갈등을 겪으면서도 그런 걸 깨끗하게 포장해 사람들 앞에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만 보이는 거라고요.

[책 처방해 드립니다]나만 ‘휘청’한 것 같아 힘이 든 당신에게

“다음이 있어.” (…) “사키는 소프트볼에 열중할 수 있었으니까 분명 다음이 와. 하나의 일에 열중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일에도 열중할 수 있어. 소프트볼로 그런 밑바탕을 만들어온 거잖아.”(114쪽)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낯선 환경에 내던져졌지만, 선택지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전에 상처받은 마음을 충분히 위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지요. 최선을 다한 자신을 믿어주기를, 그런 당신이라면 분명 다음이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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