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늘 푸른 녹음을 좇던 동화작가…그는 훌륭한 농부이자 정원사였다

유정인 기자

베아트릭스 포터의 정원

마르타 맥도웰 글·베아트릭스 포터 그림 | 김아림 옮김

남해의봄날 | 292쪽 | 1만8000원

[그림책]늘 푸른 녹음을 좇던 동화작가…그는 훌륭한 농부이자 정원사였다

1916년 3월 영국 신문 ‘타임스’에 농장일을 도울 여성을 찾는 광고가 실렸다. 발신인은 ‘여성 농부’. 지원자가 찾아오자, 이 농부는 “나는 가금류와 과수원, 화원, 채소를 기르는 텃밭이 있고 일 돕는 여자아이와 함께 직접 요리도 해요. … 시간이 나면 순무를 돌보고 땅을 살피죠”라고 말했다. 농부이자 정원사, 그리고 ‘피터 래빗’을 만들어낸 동화작가 베아트릭스 포터(1866~1943)의 이야기다.

포터가 그려낸 세계의 빛깔은 푸르다. 재킷을 차려입은 갈색 토끼 피터 래빗, 장난꾸러기 새끼 고양이 톰, 분홍 숄을 두른 넓적부리 오리 제미마의 모험은 옅은 초록의 풀숲과 흐드러진 꽃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런 수채 일러스트의 영감은 그가 사랑한 정원과 식물들이었다. 런던 상류층 가정에서 나고 자란 포터는 어려서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았다. 여성은 런던의 식물학자 집단인 린네학회에 출입조차 하지 못했던 시절, 포터는 남성이 대신 낭독하는 방법으로 식물학 논문 발표를 시도하기도 했다.

연구를 멈춘 뒤에도 그의 삶은 늘 푸른 녹음을 좇았다. 가깝게 지내던 가족의 네 살배기 아이에게 야자나무와 동백나무의 아름다움을 들려주는 편지를 쓰고, 전나무 뿌리 아래 엄마 토끼와 함께 사는 토끼 4총사의 이야기를 지어 보냈다. 지금까지 1억5000만부 이상 팔린 <피터 래빗 이야기>의 시작이다.

‘남해의봄날’ 제공

‘남해의봄날’ 제공

첫 작품부터 성공을 거뒀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함께 정원을 가꾸기로 약속한 약혼자가 급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슬픔 속에서 포터는 ‘자기만의 정원’을 가꿨다. 잉글랜드 북서부의 레이크디스트릭트의 ‘힐 톱 농장’에 자리 잡은 게 이때다. 모종을 심고, 비료를 주고,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를 치유해 나갔다. 정원에 잔뜩 핀 붓꽃과 모란은 <톰 키튼 이야기> 속 새끼 고양이들이 어머니 타비타 부인에게 혼나는 장면의 배경이 돼 책에 담겼다. <제미마 퍼들덕 이야기>의 주인공 제미마가 “세이지, 백리향, 민트, 양파 두 개와 파슬리 약간”을 따오던 곳도 힐 톱의 텃밭이다.

개발의 손길이 뻗어올 때는 피터 래빗 원화를 팔아 주변 땅을 사들였다. 그렇게 지켜낸 500만평의 정원은 그의 사망 뒤 유언에 따라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부됐다. 유해는 힐 톱 농장을 굽어보는 어느 작은 언덕에 뿌려진 것으로 전해진다.

포터의 인생을 다룬 영화와 책이 적지 않지만, 이 책은 ‘정원사’이자 ‘농부’로서의 삶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저자 역시 정원사이자 작가로서 ‘작가들이 가꾼 정원’을 들여다보는 데 관심을 기울여온 인물이다. 저자는 마지막에 “포터의 정원 여행을 마무리지을 최고의 장소가 있다면 바로 당신의 정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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