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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 ‘돈’ 이토록 스펙타클한 작전 생존기

입력 : 
2019-04-03 16:34:41
수정 : 
2019-04-03 16:3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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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에선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돈이 움직이는 여의도 증권가에 입성한 신입 주식 브로커를 주인공으로,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 듯한 작전 현장이 빠른 템포로 펼쳐진다. 전문성과 재미는 잃지 않았고, 어디서 본 듯한 소재들이지만 코믹하면서도 진지하게 화두를 던진다. 극장을 나서며 이런 생각이 든다. ‘누가 돈이라는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진설명
하루 평균 거래 대금 7조 원이 오가는 여의도 증권가. 업계 1위 증권사에 입사는 했으나 빽도 줄도 없는 신입 주식 브로커 일현(류준열)은 수수료 0원의 벽 앞에 좌절한다. 하지만 베일에 싸인 신화적인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를 만나고, 실적 0원 신세에서 억 단위 돈을 벌게 된다. 그러나 머지않아 번호표를 뒤쫓던 금융 감독원의 사냥개 한지철(조우진)이 그를 조여 오기 시작한다. 설계만 했다 하면 엄청난 돈을 긁어 모으지만, 실체가 한 번도 드러난 적 없는, 베일에 싸인 작전 설계자 번호표는 유지태가 맡았다. 그와 한번 일해 보겠다고 번호표 뽑고 기다리는 브로커들이 줄을 설 정도라 ‘번호표’로 불린다. ‘올드보이’ 등에서 목소리만으로도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 낸 유지태는 이번에도 판을 모두 짜는 조종자 역을 날카로운 눈빛과 목소리로 충실히 연기해 낸다.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목소리 연기는 그 자체로 압도적이다. 번호표의 조종대로 움직이는 신입 주식 브로커 일현 역할은 류준열이 맡았다. 거의 대부분의 신에 등장하는 만큼, 그간 류준열의 필모그래피가 쌓아 놓은 폭넓은 스펙트럼을 좀 더 넓고 깊게 경험할 수 있다. 실적 빵빵한 선배들과 달리 신입 직원이 느끼는 괴리에 대한 절망,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과정의 조바심과 불안함, 큰돈을 만지게 된 후 성공이 주는 자신감, 금융 감독원의 추적으로 인한 갈등과 불안 등을 폭넓게 연기해 냈다는 평이다.

사진설명
불법 작전의 냄새를 맡고 집요하게 뒤쫓는 금융 감독원 자본시장 조사국 한지철 역을 맡은 조우진은 ‘저 사람한테는 걸리기 싫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논리적이고 깐깐한 ‘사냥개’ 역할을 잘 소화해 낸다. 조연 가운데 정만식, 김종수 등은 어떤 직장이건 꼭 있을 법한 생계형 상사의 리얼함을 잘 소화해 내고, 번호표를 소개해 주지만 정작 자신은 결국 파국을 맞는 유민준 과장 역은 김민재가 맡았다. 류준열이 대부분의 신을 소화한 가운데 매수·매도 순간의 긴장감을 그래픽과 음악으로 리듬감 있게 보여줘 증권 시장의 이해도를 높인다. 증권가 지라시 제작, 조세 회피 지역의 페이퍼컴퍼니, 브로커와 펀드 매니저의 먹이사슬 등 외부인들이 표피적으로 알던 주식 거래의 뒷모습을 현실적이면서도 리듬감 있게 보여준 것은 살아 있는 취재 덕이다. 감독은 실제 출퇴근 시간에 맞춰 여의도로 1년여 출근 도장을 찍으며 장 시작 전인 7시부터 퇴근하는 5시까지, 사람들을 바라보며 시나리오를 썼다. 장현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방대한 취재가 바탕이 됐지만 어디선가에서 이 영화를 볼 작전 세력과 조종자가 ‘현실과 꽤 비슷한데?’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극은 꽤 현실적이다. 한지철 검사역이 일현에게 외치던 “일하는 만큼만 벌어!”라는 일갈은 보통 사람의 울분을 대변해 준다. [글 최재민 사진 쇼박스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73호 (19.04.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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