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게 되는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이들을 가리킨다. 이렇게 구획을 짓고 보면 밀레니얼 범주의 폭은 꽤 넓어지는데, 그 초입에 속한 이들은 벌써 30대 후반에 들어섰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밀레니얼은 현재를 이끌어가고 있는 중추적 세대임은 틀림없다. 이 세대는 벌써 가정을 이루었고, 가족 구성원을 형성했으며, 대부분 트렌디한 소비 문화를 만들어 가는 사회 구성의 핵심이 되었다. 사회 전반에서 이뤄지는 마케팅 역시 이들을 타깃으로 진행되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유행을 선도해 나가며, 주요 소비자로서 선택과 비판을 하는 것 역시 밀레니얼 세대이기 때문이다.
▶가사 노동의 최소화
밀레니얼 가족은 라이프스타일의 추구에 있어 몇 가지 주요한 특징을 띤다. 그중 첫 번째는 ‘최소한의 가사 노동’이다. 남녀 모두 자신의 삶에 가치관이 뚜렷하다. 그런 탓에 대부분이 맞벌이 가정이기도 하다. 이 말인즉,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에 퇴근 후 집으로 귀가하는, 그래서 주말을 제외하곤 저녁 몇 시간이 자유로운 일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족에게 집안일은 꽤나 번거롭고 번잡스러운 과외 노동이다. 밀레니얼 가족은 그래서 가성비가 높은 가사 처리 과정을 보인다. 최근 결혼하는 이들의 혼수 품목을 살펴봐도 이 특성은 쉽게 이해된다. 가사 노동 줄이기에 적합한 가전 제품으로 세 가지가 있다. 이를 ‘삼신(三新: 세 개의 새로운) 가전’이라 부른다. 로봇 청소기, 식기 세척기, 그리고 빨래 건조기가 그 주인공이다. X세대지만 결혼이 늦은 탓에 이러한 가족형태와 궤적을 함께 하는 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근 우리는 아기를 가졌다. 아내는 삼신 가전 중 마지막의 ‘빨래 건조기’를 들이기로 결정했다. 집이 좁아 놓을 데가 없어 이고 지고 살아야 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구매했다. 방 한편에 거대한 건조기가 놓였지만, 이 제품은 신세계를 열어 주었다. 베란다가 좁은 우리 아파트 거실에는 일주일에 몇 번씩 빨래 건조대가 펼쳐져 있었다. 건조기는 이 풍경을 삭제했다. 세탁 후 작동시키기만 하면 불과 1시간여 만에 완전히 건조된 옷이 나온다. 이것만으로도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은 확연히 달라졌다. 집이 좁아 로봇 청소기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핸디 청소기만으로도 아직은 충분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식기 세척기는 고려 대상이다. 자주 요리를 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내의 임신 후 설거지 전담반이 된 필자의 머리 속에는 이게 있으면 좀 더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가사 노동의 분담도 밀레니얼 가족의 특징이지만, 그 노동을 최소화하고 가족만의 짧은 여유를 즐기겠다는 의지는 명확하다. 건조기, (드라이클리닝을 대신할) 에어 드레서 혹은 스타일러 등이 최근 혼수 필수품이 되고 있는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근 필자의 아파트 현관 앞에도 종종 이런 음식 재료 혹은 모든 재료의 손질이 완료된 채 배달되는 ‘밀키트 제품’들이 도착한다. 주말 아침 눈을 뜨면 현관 앞에 놓인 물건을 들이고, 아내는 재빠르게 식사 준비를 한다. 한 끼를 위한 정량이라 음식물 쓰레기가 늘어날 일도 없고, 주체할 수 없는 양으로 냉장고에서 시들어 가거나 썩힐 필요도 없다. 굳이 가성비를 따지자면 비용은 조금 높으나 효율은 훨씬 좋은 그런 소비 문화인 셈이다. 얼마나 편리한지 모르겠다. 장을 보기 위해 교통 체증과 주차난을 뚫고 대형 마트에 간들, 필요한 물품 이외에 이런저런 할인에 눈이 멀어 과소비를 하고 돌아오기가 다반사였으니까. 이는 분명 밀레니얼 가족의 형성에서 도출된 새로운 소비의 방식임에 틀림없다.
여담으로 나는 아내와 여섯 살 나이 차 부부다. 나도 일을 하고, 그녀도 열심히 직장에 다닌다. 결혼 초부터 우리에게 가사 분담은 명확했다. 아내가 식사를 차리면 나는 뒤처리를 한다. 아내가 청소기를 들면, 나는 걸레를 잡는다. 어느 한쪽이 야근, 회식 등의 사유로 늦게 귀가할 예정이면 먼저 도착한 이가 집에서 해야 할 일을 알아서 해 둔다. 주말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보통은 내가 커피를 내리고, 아내가 빵을 굽는다. 배달 업체에서 온 식품이 있어 우리의 저녁과 주말은 그나마 여유가 있다. 그런 우리 부부에게 아기가 생겼다. 그때부터 가사노동의 많은 부분은 내가 전담하게 되었다. 임신 여성의 고충을 정확히는 몰라도 남편으로서 아내를 위해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필자의 경우도 아내는 동반자이자 친구인 셈이었다. 그런 친구의 몸이 무거워졌으니 무거운 일이나 몸에 부담이 가는 일은 나 스스로 해내는 게 맞다. 아마도 몇 개월 후 출산이 이루어지면 동반자의 부부는 육아를 위해 또 다른 일을 분담해야 할 테다. 그리고 점차 현관 앞에 새벽에 놓여질 제품의 양은 더 많아질 게 자명하다.
▶끊임없는 자기 계발
밀레니얼 가족의 마지막 특성은 바로 ‘자기 계발’이다. 이는 고령화 시대로 접어든, 그래서 경제적 활동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서도 이해된다. 동시에 자기 계발은 자존감 강한 밀레니얼 세대가 업무적 생존과 삶의 의미를 찾아 나가는 지속적인 여정이기도 하다. 필자만 하더라도 그렇다. 함께 준비한 아내의 임신이었지만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나이를 말하기 참 민망하지만, 이 녀석이 건강하게 세상에 나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면 필자의 나이는 쉰을 훌쩍 넘긴다.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돈을 벌어야 하나?’라는 생각 때문에 겁도 났다. 하지만 가장 행복한 소식에 이게 무슨 대수겠나. 이 때문이라도 나 역시 자기 계발을 통한 사회적, 업무적 성장이 절실해졌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외국어 능력이 꽤 뛰어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너도 영어해?’라는 광고 카피로 사람들을 사로잡은 사이트에 덜컥 가입도 했다. 조금 일찍 출근해 매일 10분씩 이 수업을 듣는다. 이 역시 미래를 위한 자기 계발이라면 계발이다. 물론 한 문장씩 내 입에 익을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이 꽤 크다. 이렇듯 새로운 세대의 가족은 개인 시간과 공간의 소중함을 통해 또 다른 계발을 이루어 내려 한다. 분명한 것은 이 계발이 생존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운동이나 취미 활동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형성한다는 점에서 중요하기도 하다.
점차 ‘밀레니얼 가족’이라 불리는 세대 수는 증가할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 청춘들의 결혼과 출산이 늘어남에 따라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지금보다 더욱 더 중요한 소비자군이 될 것이라는 점 역시 명확하다. 더욱이 한국은 미세먼지, 불경기, 가계 부채 증가 등의 환경, 경제적 문제 등 다방면으로 심각성이 고조되고 있다. 누누이 말하듯, 밀레니얼 세대는 굉장한 자존감으로 똘똘 뭉쳤고, 또 쓸 때는 쓰고 닫을 때는 확실히 닫는 영리함으로 무장한 이들이기도 하다. 미세먼지로 인해 공기 청정기, 고가의 미세먼지 마스크 등은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넷플릭스 등 영상 정기 구독 미디어의 증가로 인해 TV에 대한 수요는 점차 줄어든다. 하지만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가전 제품의 수요는 역으로 늘어난다.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에 대한 관심과 취향에 맞는 자기 계발 욕망의 주체할 수 없는 폭발력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명쾌한 소비를, 공급자 입장에서는 그들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해야 생존할 수 있는 불가분의 생태계를 조성했다. 이제 밀레니얼 가족을 고려하지 않은 마케팅은 결코 성공하기 힘들 것이다. 그들 세대의 성향을 파악하고, 또 그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꼼꼼히 분석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73호 (19.04.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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