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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sinki in ‘카모메 식당’ 다른 곳에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꿈꾸다!

입력 : 
2019-04-04 11: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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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모메 식당’ 이후 일본에서는 핀란드, 헬싱키 붐이 일었다. 많은 일본인이 헬싱키로 가 실제의 ‘카모메 식당’을 찾았다. 그리고 통통한 갈매기를 사진에 담고, 자작나무 숲과 호수, 그리고 푸른 하늘을 눈에 담았다. 물론 이는 영화 외형의 답습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영화가 헬싱키에서 발견한 본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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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호수, 연어 그리고 인간의 공간 북유럽 특히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인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를 떠올리면 약간의 환상이 생긴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하, 어디를 가도 지천에 깔려 눈이 부시게 푸른빛을 반사하는 호수, 여유롭게 자리 잡은 단순한 구조의 집들과 그 집에 어울리는 더 단순하지만 기능적인 가구들, 크리스마스와 산타할아버지, 순록 그리고 몽환적인 백야와 끝없이 펼쳐지는 자작나무 숲. 게다가 풍요, 여유, 복지, 평안, 행복 등 인간이 살기에 ‘추운 날씨’ 빼고는 더할 나위 없는 곳 같은 것 말이다. 이 나라들에 우리의 시선이 닿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노벨상, 이케아, 노키아, 자일리톨, ABBA 정도로 기억되던 이 나라들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삶의 질과 관계가 깊다. 빠르지만 복잡하고 디지털화된 삶에 지친 현대인들은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여유로우면서도 소박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사람들은 이 북유럽 국가들에서 해답을 찾았다. 일테면 ‘휘게(Hygge)’ 스타일도 그렇다. 휘게는 불필요한 장식 혹은 소유와 고급스러움을 지향하지 않는다. 따뜻한 곳에서 가족과 친구끼리 그저 소박한 한 끼를 같이하는 것이다. 이는 삶의 태도다. 욕심보다 여유를, 장식보다 실용성을 선택한다. 이 선택의 보답은 단순하지만 평안한 삶이다. 이는 이들이 만들고 사용하는 모든 것, 즉 디자인에도 적용되었고 세상 사람들은 그것도 애정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혹은 ‘스칸디나비아 라이프스타일’이다. 절제된 디자인과 실용적 아름다움으로 상징되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이제 트렌드가 아닌 생활이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핀란드는 동쪽은 러시아, 서쪽은 스웨덴 그리고 북쪽은 노르웨이, 남쪽은 발트해를 경계로 덴마크, 에스토니아 등과 접해 있다. 나라 크기는 남한의 3.5배 정도지만 인구는 불과 600만 명이다. 국민 소득은 4만 달러가 넘은 지 오래고 국민 복지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국가로 행복 지수, 삶의 질 지수에서 매년 1, 2위에 랭크된다.

핀란드 민족인 핀족은 본래 중앙아시아 서쪽, 즉 볼가강 지역의 정착민이다. 이들이 서쪽으로 이주해 핀란드에 정착했다. 이들은 북유럽의 강자 스웨덴의 지배하에 있었다. 스웨덴의 핀란드 지배 정책은 거의 ‘방임에 가까운 자치’였다. 핀란드는 자주적으로 국가를 유지했다. 정치·경제적 안정은 당연했고 국민들은 자유와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이는 영원하지 못했다. 핀란드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전화에 시달렸고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심지어 1809년 핀란드는 러시아에 병합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동안 구전되던 50편의 시, 총 2만2795행으로 이루어진 핀란드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를 복원하는 등 독립과 자주를 위한 투쟁으로 국토 일부를 회복했고, 20세기 초에는 독립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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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는 가장 남쪽에 있는 항구 도시다. 헬싱키의 성장은 1812년 수도로 제정되면서부터다. 헬싱키에서는 발트해를 통해 인근 국가로 연결되고 기차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통한다. 인근 지역까지 포함하면 인구는 130만 명에 달하는데, 지구상에서 100만 명 이상이 사는 도시 중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셈이다. 이곳에 작은 식당이 문을 열었다. 바로 카모메 식당이다. 이 식당의 주인은 일본 여성이다. 그녀는 이 식당에서 일본식 주먹밥인 오니기리와 연어구이, 커피 그리고 시나몬 향 물씬 풍기는 빵을 판다. 그녀는 왜 일본에서 수만㎞나 떨어진 헬싱키에 와서 식당을 열었을까. 이렇게 영화 ‘카모메 식당’은 시작한다. 2005년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원작은 동명의 소설이다. 무레 요코가 쓴 이 소설은 사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작가에게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요?’라고 제안해 소설이 나오고 영화가 탄생하게 되었다. 영화는 일본에서 단 두 개 극장에서 개봉했다. 그러다 입소문이 나면서 개봉관은 100여 개로 늘어났고 화제를 일으켰다. 영화는 단순하다. 낯선 곳 헬싱키에 작은 식당을 차리고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을 내는 사치에와 독특한 인연으로 같이 살게 된 두 여인, 미도리, 마사코의 이야기가 슴슴하게 펼쳐진다. 여기에 핀란드 사람인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 토미, 남편의 가출에 불행한 리사, 슬픔을 가슴에 품은 중년의 핀란드 남성 그리고 수다스럽지만 사랑스러운 핀란드 할머니 세 명 등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영화는 각 인물 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혹은 ‘당신은 무슨 사연이 있는가’라고 묻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다 상대가 눈물을 흘리면 손수건을 꺼내 준다. 참으로 담담한 이 이야기가 오히려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리고 정성껏 삶을 사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 부모의 기대, 사회적 잣대 그리고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뭔가 벅차고 힘든 일본 사회에서 사치에, 미도리, 마사코는 주체적인 자신의 모습을 찾아 나간다. 이 영화 개봉 이후 일본에서는 핀란드, 헬싱키 붐이 일었다. 많은 일본인이 헬싱키 ‘카모메 식당’을 찾았다. 그리고 통통한 갈매기를 사진에 담고, 자작나무 숲과 호수 그리고 푸른 하늘을 눈에 담았다. 물론 이는 영화의 외형을 답습한 것이다.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어 본 ‘다른 곳에서의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일 것이다. 사치에는 그것을 해냈고 미도리와 마사코 역시 꿈의 대리자인 셈이다. 또 하나 이 영화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카모메 식당에서 보이는 그야말로 ‘리얼 100%의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다. 간결하고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실용적이면서 아름다움의 집합체인 식당과 그릇, 컵, 주방기기, 조명 등등에서 핀란드산 명품 이딸라의 디자인 철학과 핀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알바르 알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야말로 ‘발견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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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에서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았어요 헬싱키에 작은 식당이 생겼다. 식당 이름은 ‘카모메’. 카모메는 핀란드어로 ‘갈매기’를 뜻한다. 식당 주인 사치에(코바야시 사토미)는 일본인이다. ‘나는 뚱뚱한 동물이 좋다. 그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이 좋다’고 생각한 사치에는 핀란드에서 뚱뚱한 갈매기, 비둘기를 보고 식당 이름을 카모메라고 지었다. 그녀는 일본인의 ‘영혼 음식’인 주먹밥, 즉 오니기리를 팔지만 한 달째 식당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관심을 갖는 이는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식당 안을 쳐다보는 핀란드 할머니 3인방. 그들은 이 식당이 궁금하다. “저 일본인은 아이인가? 아냐 작은 어른일 거야”라고 수군거리지만 식당 밖에서 그저 쳐다볼 뿐이다. 사치에는 핀란드 할머니들에게 활짝 미소를 짓지만 들어오라는 손짓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딱 한 달째, 한 핀란드 청년이 카모메 식당의 문을 연다. “커피.” 그리고 사치에에게 일본 애니메이션 ‘갓차맨’의 주제곡을 물어본다. 사치에는 귀와 입에 익은 이 노래를 부르려 하지만 머릿속에서 맴돌 뿐이다. 가사를 받아 적으려던 토미와 사치에는 그저 얼굴만 쳐다본다.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값을 내려는 토미에게 사치에는 말한다. “이 커피는 무료입니다. 식당 문을 열고 한 달 만에 첫 손님이에요. 그 기념으로 무료로 대접하겠습니다.” 이윽고 중년의 한 핀란드 남성이 들어와 커피를 주문한다. 사치에는 커피를 내린다. 남성은 사치에에게 말한다. “지금도 이 커피는 맛있어요. 하지만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줄까요?” 사치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남성은 “커피는 내릴 때, 더 진심과 정성을 담으면 더 맛있어지죠.” 사치에는 너무도 당연한 조언이지만 이 역시 마음속 깊이 받아들인다. ‘정성과 진심.’

매일 ‘갓차맨’ 주제곡을 떠올리는 사치에. 하지만 노래가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시내 서점에 들른 사치에는 여전히 갓차맨 주제곡 생각뿐이다. 자리에 앉은 사치에의 눈에 한 일본 여성이 들어온다. 그 여성에게 간 사치에는 주저 없이 묻는다. “저, 혹시 갓차맨 주제곡을 아나요?”

미도리(카타기리 하이리)는 조금 당황스럽지만 필기도구를 꺼낸다. 사치에와 미도리는 갓차맨 주제곡을 생각해 내고 적어 간다. 두 사람은 끝까지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나눈다. 미도리는 “나는 눈을 감고 지도를 손가락으로 찍었는데 그곳이 핀란드였어요”라고 답한다. 사치에는 “이 먼 핀란드에서 일본인을 만난 것도 인연이네요. 원래 갓차맨 주제곡을 다 외우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없어요. 특별히 머물 곳이 없다면 내 집에 머물러요”라고 제안한다. 사치에와 미도리는 같이 지내게 된다. 사치에의 집, 일본식 식사를 마주한 미도리는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사치에는 조용히 미도리에게 휴지를 준다. ‘왜 우는지, 어떤 사연인지’ 묻지도 않는다. 미도리가 사치에에게 묻는다. “어떻게 핀란드에서 일본 식당을 열었나요?” “이곳 헬싱키에서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았어요.”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인다. 미도리는 식당 일을 돕는다. 여전히 손님은 없다. 미도리는 오니기리를 다양한 재료로 사용해 보는 것을 또 메뉴를 바꾸어보는 것이 어떤지, 또 여행 가이드북에 카모메 식당을 광고하자고 사치에에게 권유한다. 그러나 사치에의 생각은 확고하다. “나는 가이드북을 뒤져서 찾아오는 일본인이나 일식하면 술과 초밥밖에 모르는 외국인은 우리 가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해요. 여긴 레스토랑이 아니라 동네 식당이에요. 근처를 지나다가 마음 편하게 그리고 가볍게 들르는 곳이죠. 식당이 잘돼서 손님을 꽉 채우는 것이 제 목적이 아니에요.” 두 사람은 묵묵히 자신의 일에 몰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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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일을 해서가 아니라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 좋다 미도리는 시나몬 빵을 만든다. 이 시나몬 빵이 풍기는 냄새는 유혹적이다. 이 향에 이끌려 핀란드 할머니 3인방이 드디어 식당에 들어온다. 이들은 시나몬 빵을 먹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식당은 사치에의 말처럼 지나다가 가볍게 들어오는 손님들로 하나둘 차기 시작한다.

한 일본 여성이 카모메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녀는 마사코(모타이 마사코)다. 공항에서 짐을 잃어버린 그녀는 시내를 돌아다니다 식당에 온 것이다. 사치에는 마사코를 반갑게 맞는다. 그리고 짐을 찾을 때까지 이곳에 있으라고 한다. 사치에, 미도리, 마사코의 동거 시작이다. 마사코는 시내로 나가 당장 입을 옷 몇 가지를 사온다. 그리고 미도리와 마찬가지로 식당 일을 돕는다. 식당은 이제 활기 넘치는 곳이 되었다. 핀란드인들은 연어구이, 커피, 시나몬 빵, 오니기리 등을 편하게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마사코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털어놓는다. 병에 걸린 부모님을 평생 간호하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이제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여행을 온 것이라고. 그리고 핀란드를 찾은 것은 평소 일본에서 TV를 볼 때 정말 별 것도 아닌 일테면 아내 업고 달리기, 휴대폰 멀리 던지기 등의 게임에 몰두하는 핀란드 사람들이 여유 있어 보이는 이유가 정말 궁금했단다. 마사코는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대접하는 사치에를 존경하게 된다.

“사치에,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 부럽군요.”

“아니에요, 마사코. 원하는 일을 해서 좋은 게 아니라,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 좋은 거예요.”

“그럼 만약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마지막으로 뭘 할 거예요?”

“엄청 맛있는 걸 먹고 죽을 거예요.

좋은 재료를 써서 잔뜩 만들고 좋은 사람만 초대해서 술도 한잔 하면서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는 거죠.”

사치에에게 오니기리는 추억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집안일과 요리를 시작한 사치에. 그래도 아버지는 소풍날이면 손수 오니기리를 싸셨다. 예쁘지도 않고 투박했지만 다시마, 연어, 가다랑어포로 만든 오니기리. 아버지는 “음식을 네가 하잖아, 사치에. 하지만 오니기리는 남이 만들어 준 것이 제일 맛있는 거다”라며 오니기리를 주셨다. 사치에는 이 주먹밥이 제일 맛있었다.

평생 한 직장에만 다닌 미도리. 어느 날 회사가 문을 닫았다. 미도리는 졸지에 할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가족들조차 결혼도 하지 않고 활기 없는 미도리를 부담스러워한다. 미도리는 책상을 정리하다가 여권을 본다. 너무나 깨끗한 여권. 단 한 번도 외국을 나간 흔적이 없다. 미도리는 결심한다. “무조건 떠나자.” 그리고 세계 지도를 펴고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찍은 곳이 이곳이었다. 지금 카모메 식당에서 미도리는 인생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활기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병을 앓는 부모님을 간호하느라 결혼도 못한 마사코.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갑자기 그녀는 할 일도 없고 뚜렷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목적도 상실했다. 마사코는 부모님을 간병하며 독특하게 생각했던 핀란드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고, 곧바로 핀란드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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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서도 슬픈 사람은 슬프고 외로운 사람은 외롭다 남편이 불륜으로 가출한 뒤 매일 술에 의지하는 핀란드 여성 리사,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비법(?)을 알려준 핀란드 아저씨도 카모메 식당의 단골이 되었다. 이들에게 식당은 ‘누구나 부담 없이 들어와 자신을 위해 기운 나는 음식을 먹는 편안한 공간’이다. 카모메 식당은 품위 있게 요리를 즐겨야 하는 ‘레스토랑’이 아니라 ‘소박하고 정갈한 음식으로 상처와 피로를 덜어주는 다정한 공간’이 된 것이다. 마사코는 술에 취해 쓰러진 손님을 집에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식당에 와서 이야기한다. “그 사람이 말했어요. 물론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요. 하지만 듣고 느꼈어요. 여기 행복하고 평안해 보이는 핀란드 사람들도 다 슬픈 사연을 가졌구나, 라고.” 사치에가 말한다. “세상 어디에 있어도 슬픈 사람은 슬프고, 외로운 사람은 외로워요.” 마사코는 궁금해한다. “왜 핀란드 사람들은 조용하고 편안하게 보일까요?” “숲이 있거든요. 울창한 숲이 있어요. 핀란드 사람은 숲에 신이 있다고 믿어요. 숲에 가는 걸로 신과 가까워진다고 할까, 신성한 장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마사코는 숲으로 간다. 숲은 울창하다. 마사코는 버섯을 보고 따기 시작한다. 양손 가득 버섯을 딴다. 그것도 모자라 이리저리 버섯을 챙기다가 문득 하늘을 본다. 높은 나무 사이로 푸른 하늘이 반짝인다. 마사코는 순간, 하늘의 색과 높이 그리고 편안하고 무한한 공간에 몰입한다. 집에 온 마사코의 손에는 버섯이 하나도 없었다.

공항에서 전화가 온다. 마사코의 짐을 찾았다고. 마사코는 떠날 준비를 한다. 작별 인사를 하고 나온 마사코. 공항 직원과 통화한다. 직원은 마사코의 짐을 찾았지만 바뀐 것 같다고 말하며 원래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묻는다. 마사코는 잠시 말을 멈춘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짐을 챙길 때 뭔가 대단히 소중하다고 넣은 것인데, 무엇이 들어 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가만히 생각하는 마사코. 그때 누군가 마사코에게 고양이를 맡긴다. 고양이를 들고 마사코는 카모메 식당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사치에와 미도리에게 말한다. “이 고양이를 맡았어요. 고양이 때문에 이곳을 떠나기가 어렵게 되었어요.” 활짝 웃으며 마사코를 반기는 사치에와 미도리. 세 사람은 오늘도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미도리가 마사코에게 말한다. “마사코는 인사를 너무 정중하게 해요.” “그래요? 미도리는 너무 터프해요.” 그러자 사치에가 말한다. “늘 똑같은 생활을 할 수는 없죠. 사람은 모두 변해 가니까요.” 그때 카모메 식당의 첫 손님이자 단골인 토미가 들어온다. 사치에는 활짝 웃으며 인사한다. “어서 오세요.”

▶카모메 식당 디자인의 모든 것 알바르 알토

영화 속 카모메 식당에는 그야말로 정제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으로 가득 차 있다. 디자인 전시장인 셈이다. 사치에가 정성껏 음식을 만드는 오픈 주방의 냄비, 포트, 글라스 등은 모두 이딸라 제품들이다. 머그잔은 핀란드를 비롯해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이 사랑하는 캐릭터 무민 시리즈고, 카모메 식당의 이웃들이 서슴없이 들어와 그들만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테이블과 의자는 바로 알바르 알토가 디자인한 작품들이다. 핀란드 국민 브랜드인 ‘이딸라 Iittala’는 1881년 가내 수공업 형태로 시작해 이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각종 글라스, 도기 그릇 등 주방과 식탁 그리고 요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140년 전통의 기업이다. 그들은 깔끔하고 뛰어난 디자인, 북유럽의 전통이 살아 있는 공예 기술 그리고 높은 품질을 보장하는 최상의 재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브라함손이 시작한 이딸라에 품격과 디자인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실용적인 기능을 접목시킨 이는 바로 핀란드가 자랑하는 알바르 알토(Alvar Aalto)다. 알바르 알토는 1937년 이딸라와 협업을 시작했다.

알바르 알토는 가구 디자인의 원칙을 이딸라의 글라스 디자인에도 접목했다. 자연스러운 형태를 유지하는 유려한 곡선이라는 이딸라의 대표적인 브랜드 콘셉트의 출발이다. 그 뒤 이딸라는 알바르 알토가 빚어낸 이딸라의 정체성을 티피오 빌카라, 발토 코코 등의 디자인들에 의해 더욱 세밀하고 우아하게 물론 ‘단순한 아름다움’이라는 알바르 알토의 철학은 유지하면서 발전시켜 왔다.

알바르 알토는 핀란드인들이 지폐에 얼굴을 새길 정도로 사랑하는 디자이너다. 헬싱키 공대를 나온 그는 청년 시절 유럽 전역을 다니며 디자인에 대한 철학을 다졌다. 1925년 결혼한 뒤 아내를 위해 집을 직접 설계하고 건축했다. 사무실과 생활 공간이 공존하는 이 집을 학자들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시작점으로 본다. 그는 건축가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가구, 조명, 유리 공예는 물론이고 특히 합판을 활용한 거의 발명에 가까운 가구 디자인이라는 탁월한 재능을 후대에 선사했다. 이는 핀란드의 자연환경 즉 풍부한 목재를 이용한 것으로, 우리가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이라고 하는 원형을 만든 디자이너이다. 그는 나무의 물성을 그대로 살리지만 디자인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다. 일테면 합판을 아주 얇게 준비하고 이를 접합해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 내는 기법은 알바르 알토만의 독창성이었다. 그의 합판을 이용한 가구 디자인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1939년 뉴욕 국제박람회에서다. 그는 이 박람회에서 핀란드 전시관을 디자인했다.

그가 만든 가구들은 곡면의 자유로움이다. 이는 나무를 목재로 다듬고 이를 가구로 만드는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들어가는 인간의 시선보다는 가구 원형인 천연의 나무 질감과 형태를 그대로 집 안으로 들인 것이다. ‘인간의 생활 공간을 어떻게 자연과 조화롭게 하는가?’라는 명제를 한 시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알바르 알토에게 핀란드 국토는 디자인을 얻는 영감의 보고였다. 하늘을 찌를 듯 끝없이 펼쳐진 자작나무 숲, 바람에 따라 다양한 물결을 만들어 내는 호수, 푸르고 푸른 하늘, 햇빛을 받으면 온갖 색을 뿜어내는 얼음, 하얀 눈의 평원에 점점이 박혀 있는 순록 무리, 그리고 편안한 사람들까지. 알바르 알토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에 천착한 인물이다. 한마디로 알바르 알토는 핀란드인들의 ‘생활까지 디자인’한 위대한 인물이다. 그의 손길이 카모메 식당에 녹아 있다.

[글 정유진(프리랜서) 사진 픽사베이, 위키피디아, 포토파크, Daum영화, 이딸라 공식홈페이지 인용 및 참조 『카모메 식당』 (무레 요코 저, 권남희 역, 푸른숲 펴냄) 『알바 알토』 (세계 건축 산책 3) (이토 다이스케 저, 김인산 역, 르네상스 펴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73호 (19.04.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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